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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면서 ‘변곡점’을 한두 번은 맞이하게 됩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은 운명적으로 예수님을 만났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20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의 주춧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던 사람들을 박해하였던 바오로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신비한 체험을 하였습니다. 바오로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고, 초대교회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신앙인이 아니었던 방송인이 우연한 기회에 이태석 신부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을 알기 전에는 사회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10년 정도 했는데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도 같은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왜 항상 얼굴이 어둡고, 화난 사람 같죠?’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밝히고자 했지만, 어두운 면을 보면서 본인도 정서가 메말라갔다고 합니다. 이태석 신부님을 알게 되었고 ‘울지마 톤즈와 부활’을 제작했습니다.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작품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친구들도, 가족들도 같은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얼굴이 행복해 보입니다.’
저의 사제생활에도 몇 번의 변곡점이 있었습니다. 25년 전입니다. 주교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미국에 가서 공부도 하고, 사목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인정해주신 주교님께 감사했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학원에 다니면서 영어공부를 하고, 차분하게 준비하면 좋았겠지만 그때는 생각이 짧았습니다. 송별회를 핑계로 늦은 시간까지 술자리를 했습니다. 1달 정도 지났는데 주교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누군가로부터 저의 근황을 들으셨는지 저의 생활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미국 가는 일은 없던 일로 하셨습니다. 제가 가고 싶어 한 것도 아니었기에 주교님 말씀에 순명하였습니다. 저의 부덕함을 인정하면서도 주교님께 저의 생활을 알린 분에게 서운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성당에 돌아와서 성경책을 펼쳤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2번 성경책을 펼쳤는데 같은 말씀이 나왔습니다. 욥기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좋은 것을 주셨을 때 감사드린다면 하느님께서 나쁜 것을 주신다고 할지라도 감사드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세상에 올 때 빈 몸으로 왔으니 세상을 떠날 때도 빈 몸으로 가는 것을 감사드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주교님 덕분에 제게는 좋은 습관이 생겼습니다. 사람을 좋아하기에 술자리도 마다하지 않지만 아무리 늦어도 10시 이전에는 사제관으로 돌아왔습니다. 10잔을 마실 수 있다면 5잔만 마시려고 했습니다. 본당 신부가 일찍 자리를 마치니 교우들도 좋아했습니다. 특히 자매님들이 좋아하였습니다. 과하게 마시지 않고, 일찍 들어오니 자연스럽게 일찍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5시에 일어나다가 요즘에는 4시에 일어납니다. 일찍 일어나니 새벽에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기도하고, 묵상하는 시간이 생겨서 좋았습니다. 본당에서도 새벽에 강론을 준비하고, 본당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평일미사에 오지 못하였던 분들이 강론을 읽으면서 묵상할 수 있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이곳 뉴욕에서도 변함없이 새벽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문사 홈페이지에도 강론을 올리고 있습니다. 25년 전에 주교님께 견책을 받지 않았다면 이렇게 좋은 습관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기쁨과 행복도 오지만 아픔과 시련도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기쁨과 행복에 감사드릴 겁니다. 아픔과 시련을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여길 겁니다. 천국에 계시는 주교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우리가 회개한다면 어떤 시련과 아픔이 찾아와도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회개는 단순히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만이 아닙니다. 회개는 삶의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살기를 바란다.” (조재형신부)
https://www.youtube.com/watch?v=sqfSdOJsU4I&feature=youtu.be
2020년 가해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십일조는 교만도 꺾는다>
복음: 루카 13,1-9
지금까지 예수님께서는 창조된 목적대로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 창조자에게 영원한 생명으로 보답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설명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법칙이기 때문에 요행이나 예외규정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믿지 못하여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만 특별하여 예외규정이나 요행을 따르려는 마음인 ‘교만’ 때문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예수님은 ‘포도밭의 한 그루 무화과나무’ 비유를 드십니다.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는 자신만 특별하다고 믿는 교만한 사람의 상징입니다. 그러니 열매가 맺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적게 던, 많게 던 매를 맞습니다.
‘교만’은 성경에서 ‘도시’나 성곽의 ‘탑’으로 상징됩니다. 바벨탑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탑이 허물어져야 교만이 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루카 복음에서 숫자 ‘18’은 ‘힘을 잃게 만드는 영’과 관련이 있습니다. 13장에 “마침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리는 여자가 있었다. 그는 허리가 굽어 몸을 조금도 펼 수가 없었다”(루카 13,11)라고 나오는데, 여기서 “병마”의 희랍어는 “병(힘이 빠진)의 영”입니다. ‘18’년은 분명 참 능력이요 힘인 성령을 잃게 만드는 마이너스 에너지와 관련됩니다. 자아가 품어내는 병의 영에 사로잡히면, 하느님에게서 오는 성령께서 그 사람 안에서 힘을 잃습니다. 하느님 영과 육체의 에너지는 서로 반대됩니다.
저는 ‘18’을 ‘6+6+6’으로 봅니다. ‘6’은 동물의 본성을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뱀이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는 것은 ‘세속+육신+마귀’인 것입니다. 제물이란 이 삼구(三仇)를 죽여 그 피를 봉헌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봉헌되지 않으면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는 세례의 완성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자아가 죽지 않은 어떤 누구도 사랑의 계명으로 파견될 수 없습니다. ‘실로암’은 ‘파견된 자’라는 뜻인데, 교만이 죽어야 주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기에 하느님 자녀로의 소명으로 파견될 수가 있습니다. 꽃이 떨어지지 않으면 열매가 맺힐 수 없듯, 삼구를 죽이지 않으면 깨어있지 못하게 되고 하느님 뜻을 따르는 길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엔 ‘호크 아이’와 ‘블랙 위도우’가 서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겠다고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우주 절반의 생명을 날려버린 ‘타노스’를 이기는 방법은 6개의 ‘인피니티 스톤’을 다 모으는 수밖에 없기 때문인데, 어찌 된 영문인지 하나의 인피니티 스톤은 누군가의 피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 대신 절벽으로 뛰어내릴 수 있는 희생만이 인피니티 스톤을 차지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위해 나의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또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언 맨이 타노스의 손에 있는 인피니티 스톤이 박힌 장갑을 빼앗아 타노스를 칩니다. 그러면 타노스가 죽지만 자신도 죽을 것을 압니다. 자신이 죽어야 모든 죽었던 생명이 되살아납니다. 그래서 아이언 맨은 자신이 죽고 많은 이들을 살리는 것을 선택합니다. 모든 것이 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패러디 한 것입니다.
어째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모든 영화에 이런 설정이 들어있습니다. 자신이 죽어야 좋은 열매를 맺게 한다는 것. 그래서 뭔지 모를 이 법칙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이 나오고 사람들은 이것에 감동합니다. 이는 우리가 모두 자신을 죽이지 않으면 어떠한 좋은 열매도 맺을 수 없음을 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을 죽여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리고 회개의 첫 행위가 봉헌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봉헌하지 않았습니다. 회개의 삶은 봉헌으로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알렸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제물에 피가 섞이게 하는 것’이 회개의 행위입니다.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피가 섞인 제물’이란 ‘나의 죽음을 위한 봉헌’이란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봉헌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은 짐승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었습니다. 제물 봉헌과 선교 소명은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 봉헌이 없으면 선교의 열매도 맺히지 않습니다. 봉헌으로 나의 교만의 탑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린이도 손쉽게 오를 낮은 산도 힘들어서 오르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신학생 때 동기들과 놀러 가서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가 특별하다는 의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끝까지 남아 누구보다 많은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약하게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랬을 것입니다. 그렇게 끝까지 버텨 2시간 자고 산을 오르는데 땀에서도 술 냄새가 났습니다. 더 오르면 토할 것 같아 중도에 포기했습니다.
내가 살아있으면 어떤 좋은 열매도 맺히지 않습니다. 어떤 목적이든 그것을 이루려면 자기를 포기하는 제물 봉헌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법칙입니다. 오류가 없고 예외도 없습니다. 자신만 특별하다고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 자신을 죽이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포도밭의 한 무화과나무’처럼 잘리게 될 것입니다. 자아를 죽여 그 피를 선악과와 섞어 주님께 봉헌해야만 자신 안에 들어오시는 성령의 힘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자기를 뱀으로 보고 그 피를 선악과에 섞어 봉헌하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선악과는 짐승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회개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십일조로 이어져야 하고 그 십일조에 반드시 자기를 죽이려는 의도가 섞여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할 줄 안다면 열매 맺을 준비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회개한 것입니다. 피가 섞인 제물을 봉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악과를 봉헌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를 죽여 봉헌해야 그분을 주님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그래야 그분 뜻이 내 안에서 실현될 준비가 됩니다. 주님은 뱀과 같은 방에 계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 마음을 기울이는 것은 ‘자아’ 포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715) ‘십일조’를 자신을 죽이는 회개의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 피가 빠져나간 만큼 주님의 뜻이 머물 공간이 만들어집니다.(전삼용신부)
2020년 10월 24일 토요일
[녹] 연중 제29주간 토요일 또는
[백] 성 안토니오 마리아 클라렛 주교 또는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입당송
시편 17(16),6.8 참조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정성껏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라며,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열매를 기다리는 주인의 비유를 드신다(복음).
제1독서
<머리이신 그리스도 덕분에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7-16
형제 여러분, 7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은혜의 양에 따라,
우리는 저마다 은총을 받았습니다.
8 그래서 성경도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높은 데로 오르시어
포로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9 “그분께서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분께서 아주 낮은 곳
곧 땅으로 내려와 계셨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0 내려오셨던 그분이 바로 만물을 충만케 하시려고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가신 분이십니다.
11 그분께서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예언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선포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나 교사로 세워 주셨습니다.
12 성도들이 직무를 수행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성장시키는 일을 하도록,
그들을 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13 그리하여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에서
일치를 이루고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 됩니다.
14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닐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사람들의 속임수나 간교한 계략에서 나온 가르침의
온갖 풍랑에 흔들리고 이리저리 밀려다닙니다.
15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자라나
그분에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16 그분 덕분에, 영양을 공급하는 각각의 관절로 온몸이 잘 결합되고 연결됩니다.
또한 각 기관이 알맞게 기능을 하여 온몸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하여 사랑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22(121),1-2.3-4ㄱㄴ.4ㄷㄹ-5(◎ 1 참조)
◎ 기뻐하며 주님의 집으로 가리라.
○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 나는 몹시 기뻤노라. 예루살렘아, 네 성문에, 우리 발이 이미 서 있노라. ◎
○ 예루살렘은 튼튼한 도성, 견고하게 세워졌네. 그리로 지파들이 올라가네. 주님의 지파들이 올라가네. ◎
○ 이스라엘의 법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네. 그곳에 심판의 왕좌, 다윗 집안의 왕좌가 놓여 있네. ◎
복음 환호송
에제 33,11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살기를 바란다.
◎ 알렐루야.
복음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멸망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9
1 그때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빌라도가 갈릴래아 사람들을 죽여
그들이 바치려던 제물을 피로 물들게 한 일을 예수님께 알렸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3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4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5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6 예수님께서 이러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밭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 그 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7 그래서 포도 재배인에게 일렀다.
‘보게, 내가 삼 년째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달렸나 하고 찾아보지만
하나도 찾지 못하네.
그러니 이것을 잘라 버리게. 땅만 버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8 그러자 포도 재배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9 그러면 내년에는 열매를 맺겠지요.
그러지 않으면 잘라 버리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 기도
주님,
저희가 자유로운 마음으로 이 예물을 바치오니
주님의 은총으로 저희를 씻으시어
저희가 주님께 드리는 이 성찬의 제사로 더욱 깨끗해지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3(32),18-19 참조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주님은 죽음에서 목숨을 건지시고, 굶주릴 때 먹여 살리신다.
<또는>
마르 10,45 참조
사람의 아들은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가 천상 잔치에 자주 참여하여
현세에서 도움도 받고 영원한 신비도 배우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머리에 종기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곧 낫겠거니 생각하며 사나흘은 아픈 것도 그냥 참았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베개를 베고 잘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아팠습니다. 결국에는 병원에 가서 의사의 손으로 종기를 짰습니다. 고름이 나올 때는 머리가 터질 것처럼 아팠지만, 병원에 다녀온 뒤 이틀이 지나자 아픈 곳은 빠르게 나았습니다. 그때 ‘병원에 가서 종기를 짜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록 종기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아픔이 있었지만, 그런 아픔을 겪지 않았다면 종기는 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더 나빠졌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짜내지 않으면 그만큼 우리 영혼 전체가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비록 부끄럽고, 두렵고, 어려울지라도 그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우리의 영혼에서 그것을 도려낼 때 비로소 영혼은 건강해집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이 말씀은 협박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간절한 말씀입니다. 그러하기에 비유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을 이어 가십니다. “주인님, 이 나무를 올해만 그냥 두시지요. 그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열매를 맺을 때까지 우리 삶의 둘레를 파고 거름을 주시는 예수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한재호 루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