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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구설수에 오른 이천수는 사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정했다.(사진 김수홍) |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울산시로 향하는 16번 고속도로로 빠져나오면 태화강변에 깔린 인조잔디 축구장이 눈길을 끈다. 연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강산을 배경으로 짙푸른 잔디 위에서 공을 차는 시민들은 한 폭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축구 도시’ 울산의 첫인상이다.
울산은 국내에서 축구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진 도시로 꼽힌다. 천연잔디 축구장만 20곳이 넘고 조기축구 팀이 3천여 개에 이른다. 축구팀이 없는 중고등학교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울산을 대표하는 프로축구단 울산 현대의 홈구장에는 팬들의 발걸음이 뜸하다. 스타선수들을 여럿 데리고 있고 울산의 전력이 결코 낮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두 얼굴의 축구 도시’ 울산의 현주소다.
3월 17일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에서 2007년 시즌 K리그 3라운드 울산과 전북의 경기가 열렸다. 현대가(家)의 자존심 대결이자 지난해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희비가 엇갈린 두 팀의 악연이 있어 관심을 끌었다.
이날 팬들의 시선이 유독 한 선수에게 집중됐다. 울산의 간판스타 이천수(27)가 주인공이었다. 이천수는 지난해 10월 22일 인천전에서 주심에게 폭언을 해 6경기 출전 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징계는 올시즌까지 이어져 3월 중순까지 경남(4일), 대전(11일), 포항(14일)전 등 3경기에 뛸 수 없었다. 이천수는 울산 구단의 자체 징계인 사회봉사 활동을 모두 마치고 나서야 3월 17일 전북전 교체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경기는 흥미로웠다. 전북의 외국인 공격수 스테보가 전반 17분 그림 같은 가위차기 슈팅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울산은 7분 뒤 호세의 페널티킥이 전북 권순태 골키퍼에 막혔지만 정경호가 쇄도하며 마무리슈팅을 해 1-1로 균형을 맞췄다.
전반전에선 두 팀이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올시즌 들어 홈경기 승전고를 울리지 못했던 김정남 감독이 후반 시작과 함께 필승카드를 뽑아들었다. 이천수였다. 울산 구단이 ‘왕의 귀환’이라는 문구까지 쓰면서 홍보한 이천수의 2007년 시즌은 이렇게 시작됐다.
적지 않은 공백이 있었고 목근육 통증에 시달렸지만 이천수의 복귀전은 합격점이었다. 교체투입한 지 1분 만에 폭풍 같은 드리블을 선보이며 울산의 역전골을 사실상 만들어냈다. 이천수가 전북의 페널티지역 왼쪽에서 전북 수비수 3명을 제치며 드리블 돌파를 시도했고 수비수와 경쟁하는 가운데 흘러나온 공을 우성용이 정확한 왼발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역전골에 이바지한 이천수 선수의 복귀를 환영합니다”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 곳곳에 울려 퍼졌다. 4만 3천여 수용규모에 고작 4천여 명의 팬들이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이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로 스타의 복귀를 반겼다.
울산 선수들은 의도적으로 공을 이천수 쪽으로 집중했다. 이천수의 복귀전 골을 돕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정경호는 노마크인 우성용 대신 이천수에게 패스를 고집하다 우성용의 원 망섞인 몸짓을 봐야 했다. 정경호는 “(이)천수나 나나 빠르기 때문에 호흡이 잘 맞는다. 천수가 오랜만에 출전했고 훈련을 정말 열심히 했기 때문에 복귀전 골을 통해서 그동안의 아픔을 조금은 털어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며 패스를 집중했던 까닭을 설명했다.
이천수의 골 욕심은 대단했다. 우성용과 최전방 투톱을 이룬 가운데 상대 수비가 빈틈을 보이면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헤집고 들어가 직접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후반 22분에는 오른쪽 공간을 파고들던 이종민에게 패스하지 않고 드리블을 고집하다 상대 수비수에게 공을 빼앗기기도 했다. 추가골은 터지지 않았지만 이천수의 가세로 힘을 얻은 울산은 올시즌들어 가장 빠른 공수전환 능력을 보였다. 공격수가 골 욕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평소의 이천수답지 않게 개인플레이를 고집하면서까지 골을 넣으려 했던 사연은 무엇일까. 아마도 심판 폭언에 따른 징계와 2월 7일 그리스전 직후 K리그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던 최근의 분위기를 바꿔 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심의 종료 휘슬이 울리고 이천수는 평소와는 다른 차분한 자세로 인터뷰에 응했다. “역전골에 이바지했고 팀 승리에 보탬이 된 것 같아 기쁘다. 그동안 6경기를 못 뛰었기 때문에 오늘 경기를 통해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골을 꼭 넣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그가 말한 골이란 아마도 속죄의 의미였을 것이다.
K리그 비하한 적 없다?
K리그 비하로까지 확대된 이천수의 돌출 발언은 한국축구대표팀이 그리스와 A매치를 마치고 귀국한 2월 8일 인천국제공항에서 터져 나왔다. 올 겨울 이적시장을 통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위건 어슬레틱행이 유력할 것으로 보였던 이천수는 유럽행이 끝내 좌절되자 심한 가슴앓이를 하다 “울산 구단이 7월 유럽행을 문서로 보장하지 않는다면 팀에 복귀하지 않고 6개월을 그냥 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천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했다지만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평소 “K리그를 사랑해주세요”라고 노래를 부르던 이천수였기에 팬들은 그의 이중성에 엄청난 비난을 쏟아냈다.
그러나 이천수는 3월 17일 전북전 직후 인터뷰를 통해서 “K리그를 비하한 적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다음날 울산 클럽하우스에서 가진 SPORTS2.0과의 인터뷰에서도 이천수는 “K리그를 무시한 적도 없고 내가 그런 말을 할 위치에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안타깝다. 차라리 J리그라면 최근 국제대회 성적이 좋지 않은 그들의 전력을 예로 들어 언제라도 비하할 수 있고 무시할 수 있다”며 예의 당돌함을 나타냈다.
어찌된 사연일까. 사실 이천수는 K리그를 직접적으로 깎아 내리지는 않았다. 그는 단지 “K리그에서 6개월을 쉴 수도 있다”는 하나의 가능성을 꺼내 들었을 뿐이다. “울산에서 유럽행을 보장하지 않는다면”이란 앞부분 발언에는 그가 그토록 원했던 유럽 진출의 간절함과 소속팀 울산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녹아들어 있다. 이천수는 앞부분이 소홀히 다뤄지고 별생각 없이 얘기한 뒷부분이 필요 이상으로 강조됐다며 아쉬워했다.
‘K리그에서 6개월을 쉴 수 있다’ 는 그의 발언은 어찌 보면 하소연에 가까웠다. 이천수는 당시 발언이 보도된 직후 터키에서 전지훈련 중이던 김정남 감독과 전화통화에서 “울산의 국내 훈련이 시작되는 2월 14일 팀에 정상적으로 복귀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천수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팀과 맺은 계약 내용을 따르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그것도 공개 석상에서 밝힌 것은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이다. 이천수는 위건행 추진 과정에서 울산이 책정한 이적료가 높다고 원망했지만 구단으로서는 선수의 가치를 터무니없이 깎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양 LG(현 FC 서울)의 연고선수로 지명됐던 이천수는 2002년 울산에 입단하며 구단으로부터 해외로 진출할 때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는 약속과 함께 이적료의 70%를, 임대일 때에는 기간에 상관없이 임대료 전액을 자신이 갖는 전례없는 계약조건을 이끌어냈다. 이적료는 선수에게 지급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 조건은 이천수가 2003년 7월 350만 달러(약 33억 원)의 이적료로 스페인 레알 소시에다드로 옮길 때 그대로 적용됐다.
또 울산은 이천수가 스페인리그 적응에 애를 먹자 2005년 재영입하면서 2백만 달러의 이적료를 레알 소시에다드에 지불했다. 이천수의 해외진출과 복귀 과정만 놓고 본다면 울산은 손해 본 장사를 했다.
이천수가 K리그를 직접 비하하지는 않았지만 의도는 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천수는 2월 8일 입국 인터뷰에서 “6개월 쉴 수도 있다”고 말한 뒤 곧바로 “2달 쉬면서도 (그리스전에서)1골을 넣지 않았나”라고 덧붙였다. 여기에는 해외 이적이 원만히 성사되리라는 기대로 울산의 전지훈련에 참가하지 않았고 2달가량을 쉬면서도 대표팀에 뽑혀 그리스전에서 결승골까지 터뜨렸으니 K리그쯤은 별 문제 없으리라는 뜻이 깔려있다.
아무리 당돌해도, 솔직함과 진심이 이천수를 이해하는 키워드라고 해도 당시 발언은 적절치 못했다. 덧붙인 말은 어쩌면 6개월 운운한 발언보다도 심각성이 더할지 모른다. 그 말이 이천수의 진심이었다면 오직 K리그만을 바라보며 구슬땀을 쏟는 동료 선수들의 상실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테니까 말이다.
“이천수는 그동안 보통 선수와는 다른 특혜를 누려왔다. 2달을 쉬면서 1골을 넣었다고 했는데 만약 그가 2달을 쉬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스전에서 1골이 아닌 해트트릭을 기록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K리그를 비하했다고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선수의 기본 자세와 마음가짐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어느 축구 기자의 매서운 비판이다.
유럽 진출의 꿈을 잠시 접은 이천수는 오직 울산을 위해 다시 뛰기 시작했다.(사진 김수홍) |
김정남 감독의 특별한 사랑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정남 감독은 자신의 지도철학을 이렇게 밝혔다. “과거에는 나도 엄격한 감독 가운데 한명이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믿음이 강해지면서 많이 변했다. 부드러운 지도자가 된 것 같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줬다. 그 마음을 간직하면서 울산 선수들을 가르치려고 한다. 아직까지 우리 선수들의 발을 씻어주지 못해 부끄럽다.”
3월 18일 울산 서부구장에서 만난 김감독은 한마디로 온화한 덕장이었다. 김감독은 전날 전북전으로 피로가 쌓인 선수들의 회복 훈련을 지휘하며 다음 경기에 대한 구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64살의 나이에도 골대를 직접 나르며 어린 선수들에게 “왜 이리 비실대냐”고 말하는 김감독에게서 K리그 최고령 감독의 이미지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축구에 대한 열정과 제자 사랑만을 느낄 수 있었다.
김감독은 매를 들기보다는 사랑으로 선수단을 이끈다. 김감독이 이천수를 대하는 방식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다른 선수보다 더 아끼고 돌봐주며 감싸고 있다.
김감독은 “(이)천수를 보면 어떻게 그런 특별한 재능을 갖고 태어났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며 “2005년 스페인에서 돌아왔을 때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었다. 방황했고 자신에 대한 실망이 컸다. 천수에게 ‘잘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격려했다. 믿음을 갖고 좌절하지 말라고 했다. 그 덕분인지 천수는 금세 정상으로 돌아왔고 2005년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이천수의 2005년 시즌 활약은 대단했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결정전을 포함해 후기리그 14경기에서 7골 5도움을 올렸다. 인천과 벌인 챔피언결정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울산을 9년 만에 K리그 정상으로 이끌었다. 당시 돌풍을 일으켰던 인천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다룬 영화 <비상>에서는 이천수가 악역이다. 이 영화를 본 일부 팬들이 이천수에게 ‘대마왕’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장외룡 인천 감독과 인천 선수들이 영화의 주인공이니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인천의 골문에 3골을 꽂아 넣은 이천수가 원망스러울 만하다.
이천수는 김감독의 특별한 사랑에 감사하고 있다. 이천수는 “복귀전을 앞둔 느낌이 어땠나”라는 질문에 “앞선 경기에서 골이 터지지 않아 감독님의 고민이 컸다. 나도 나지만 감독님의 고심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님이 내게 배려를 많이 하는 것은 모든 분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며 “경기에서 이기면 딴 선수들이 민망할 정도로 천수 때문에 이겼다고 하신다. 2005년 우승 때도 그랬다(웃음)”고 덧붙였다.
김감독의 특별한 제자 사랑이 과잉보호라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과잉보호 속에 오냐오냐하며 키운 아이들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법이다. 유럽행 좌절에 따른 실망감이 아무리 컸더라도 “팀에 복귀하지 않겠다”는 이천수의 돌출 발언에는 이 같은 요인이 조금은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김현석 울산 2군 코치는 “(이)천수의 경기력이나 훈련 자세는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성실하다. 단지 경기장 밖에서 튀는 것 같다. 말을 조심했어야지”라며 “나는 2군 코치다. 감독님이 계신데 1군 선수에게 뭐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내 성격 같아서는 확…”이라며 말을 아꼈다.
김감독은 축구선수는 실력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신조를 갖고 있다. 이천수의 발언이 축구계에 파문을 일으켰지만 김감독은 크게 야단치지는 않은 모양이다. 김감독은 “(이)천수가 워낙 당돌하다보니 주위에서 오해가 많이 생긴다. 천수가 6개월간 뛰지 않겠다고 했을 때 우리 팀은 터키에서 전지훈련 중이었다. 천수가 팀에 합류한 뒤에도 특별한 말은 하지 않았다. 단지 ‘경기장에서 네 능력을 보여주라’고만 했다”고 말했다.
이천수는 올시즌 울산의 최전방 공격수로 활약할 것으로 보인다. 이천수는 징계가 풀린 뒤 첫 경기인 전북전을 앞두고 김감독에게 출전 의사를 내비쳤다. 목근육 통증이 가시지 않았지만 훈련에 충실했던 터라 경기력에 큰 문제는 없었다. 김감독은 이천수를 후반 교체 멤버로 브라질 출신 외국인 선수 호세 대신 최전방 공격수로 투입했다.
3월 18일 울산 서부구장에서 만난 이천수에게 윙이 아닌 최전방 공격수로 뛴 배경을 물으니 “(최전방 공격수로 뛰고 싶다고)감독님께 얘기했다. 올시즌에는 골 욕심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최전방 공격수로 뛰나”라고 다시 물으니 이천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답했다. “감독님께 이미 얘기했다.”
2007년 K리그와 유럽진출
이천수가 울산에서 차지하는 전술적 비중은 매우 높다. 전북전을 통해 우성용과 호흡을 맞춘 이천수는 특유의 리듬을 살려 상대의 공간을 효과적으로 파고들었다. 이천수의 동선을 따라 상대 수비수가 끌려오면 우성용은 자신의 장점인 제공력을 강화할 수 있다. 울산의 왼쪽 날개 정경호는 이천수와 위치를 자주 바꿔가며 상대 수비를 더욱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김감독이 전북전에서 이천수를 최전방 공격수로 투입한 데에는 선수의 요청뿐 아니라 당시의 경기 상황 그리고 팀 전술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김감독은 전북전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이)천수는 측면이나 공격형 미드필더뿐만 아니라 최전방 공격수로도 뛸 수 있다. 경기 상황과 상대팀을 고려해 다양한 위치에서 뛰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적인 복귀전을 치른 이천수는 확실한 목표의식이 생겼다. 그는 “주위 분들한테 혼도 났고 스스로 반성을 많이 했다. 어제(3월 17일) 전북전에 교체 투입될 때에는 대기심에게 ‘이제는 말없이 경기만 하겠다’고 정중히 사과드리고 그라운드로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이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었고 ‘모든 원인은 내게 있다’라는 답을 찾았다. 그동안 징계 때문에 경기에 나갈 수 없어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복귀전을 치르고 앞으로 내가 뛸 수 있는 경기가 많다고 생각하니 숨통이 트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번만큼은 진심으로 반성했다는 말이다. 이천수는 유럽행에 대한 생각도 내비쳤다. 이천수는 “유럽에서 뛰는 내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지울 수 없는 아픈 과거가 가슴을 콕콕 찌른다. 지나간 얘기지만 에스파뇰과 치른 데뷔전에서 내가 기록한 어시스트가 골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또 코바체비치가 마지막 순간에 공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스페인에서 결과가 혹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며 지난 일을 회상했다.
한국선수로는 처음으로 스페인 무대에 진출한 이천수는 레알 소시에다드 유니폼을 입고 2003년 8월 30일 에스파뇰과 가진 데뷔전에서 맹활약하며 장밋빛 꿈에 부풀었다. 이천수는 당시 경기에서 1어시스트를 기록했는데 팀 동료 다르코 코바체비치가 마지막 순간 공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도움이 아닌 골을 기록할 수도 있었다.
아쉽게도 데뷔전 골을 놓친 이천수는 이후 터키 대표팀 공격수인 니하트 카베시와 벌인 팀내 경쟁에서 뒤처졌고 현지적응에 실패하며 긴 슬럼프를 겪어야 했다. 이듬해 임대된 누만시아에서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2005년 여름 울산으로 쓸쓸히 복귀했다.
이천수는 울산 복귀를 결정하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게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고 말했다. 이천수는 “내가 스페인 무대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앞으로 후배들이 스페인에 진출하는 데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며 지난 일에 대한 아쉬움을 곱씹었다. 뼈가 저미도록 아픈 과거가 있었던 만큼 지난겨울 위건행에 대한 열망이 간절했다. 이천수는 “위건 이적이 진행될 때는 ‘한 번 제대로 해보자’란 생각이 강했다. 뜻대로 안 되니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천수는 유럽행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 여전히 K리그에 대한 사랑을 내비쳤고 국내 무대의 활약을 바탕으로 유럽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성공만큼 실패의 느낌도 중요한 것 같다. 그래야 여유가 생기고 준비를 차근차근 할 수 있다. 조급해 하지 않겠다. 먼저 올시즌 울산에서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증명할 것이다. 유럽진출은 그 이후의 일이다. 차분히 기다리겠다.”
SPORTS2.0 제 44호(발행일 03월 26일) 기사
김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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