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살롱은 누구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토론장이자 새로운 정보의 유통 공간이었습니다. 칼럼을 통해 조금이나마 여러분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다양한 토론거리를 제시하고 싶습니다. 트윈스 살롱이 열정적인 LG 팬들과의 소통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현재 LG 트윈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선수는 단연 박용택이다.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LG 트윈스 구단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미디어데이 행사에 구단 대표로 참석할 마땅한 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내정된 '캡틴' 류제국과 함께 양상문 감독의 좌우에 포진할 나머지 한 명을 고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미디어데이는 개막 직전 팬들에게 공식 인사를 전하는 의미있는 자리다. 자연히 각 구단은 간판선수를 내세워 팬들에게 시즌을 앞둔 각오를 다지게 마련이다. 바꿔 말해 선수에게 미디어데이 참석은 '팀의 얼굴'로 인정을 받았다는 영예라고도 할 수 있다.
후보는 여럿 있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참석이 여의치 않았다. 먼저 9번 이병규는 1군에서의 입지가 불안한 상황이었다. 지난해 주인공 7번 이병규와 우규민의 2년 연속 참석은 식상하다. 정성훈은 워낙 나서는 것을 싫어한다. 봉중근과 오지환은 재활 중이었다. 입담꾼 이진영마저 2차 드래프트를 통해 kt로 떠난 터였다.
고민 끝에 LG가 류제국의 짝으로 미디어데이에 출전(?)시킨 선수는 박용택이었다. 결국 또 그였다. 현존 LG의 최고 인기 선수. 팀 내 유니폼 판매 톱랭커. 과장을 보태 수백가지 별명을 가진 LG 팬들의 친구같은 존재. 9번 이병규와 더불어 등장만으로도 잠실구장을 뜨겁게 달굴 수 있는 사나이.
◆ 언제까지 박용택인가
LG 구단 관계자에 따르면 박용택 역시 처음에는 미디어데이 참석을 고사했다. 다른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사정을 전해듣고 다시 한 번 LG의 얼굴이 되기로 했다. 사실 인지도, 말솜씨, 기량 등을 종합해보면 LG 내에서 박용택만큼 미디어데이에 어울릴 선수도 없다.
반대로 생각해 보자. 박용택을 뛰어넘는 인물이 아직 LG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2002년에 데뷔한 1979년생의 선수가 아직까지 팀의 간판스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LG 팬들에게는 슬픈 말이 될 수도 있겠지만, 올해 한국 나이로 38살이 된 박용택이 앞으로 10년 이상 현역 생활을 지속할 순 없는 일이다.
한두 해 전부터 'LG에 스타가 없다'는 말이 구단 안팎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해 '미래의 스타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언젠가 박용택과 9번 이병규가 유니폼을 벗게 될 때, 그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존재감을 가진 선수가 아직은 LG에 없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스타성을 갖춘 정성훈은 엄밀히 따져 LG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아니다.
양상문 감독도 LG에 새로운 스타가 탄생하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가장 스타가 되기 유리한 선수는 홈런타자이며, LG는 홈런을 치기 어려운 잠실구장을 홈으로 쓰고 있기 때문에 스타 탄생에 불리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그런 양 감독의 모습에서 안타까움과 함께 앞으로 LG를 이끌 스타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 스타군단 LG의 마지막 적통 박용택
LG는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스타 구단이었다. 프로야구의 인기가 최절정에 달했던 1990년대 중반. LG 선수들을 빼놓고는 프로야구의 인기를 설명하기 어려웠다. 지금은 익숙하고도 많아졌지만, 여성팬들을 야구장으로 불러모으기 시작한 것도 LG 선수들이었다.
스타도 넘쳐났다. 늘푸른 소나무처럼 마운드를 지키던 '노송' 김용수. 갈기머리를 휘날리며 타자들을 윽박지르던 '야생마' 이상훈. 1994년 돌풍을 일으킨 '신인 3총사' 서용빈과 유지현, 김재현. 호타준족의 전형 '적토마' 이병규까지. 그냥 스타가 아닌 슈퍼스타들이 끊이지 않았다.
LG 프랜차이즈 스타 계보의 마지막 주자가 바로 박용택이다. 서용빈, 유지현, 김재현의 쇠락기가 시작되자 박용택이 등장해 절묘하게 바톤터치가 이루어졌다. 그 중간에서 이병규가 가교 역할을 했다. 이병규는 일본 주니치로 잠시 팀을 옮기기도 했지만, 박용택은 LG의 '10년 암흑기'를 오롯이 함께 하며 LG의 간판 스타로 굳건히 자리잡았다.
박용택과 같은 시대를 보낸 LG의 스타들은 많았다. 그러나 슈퍼스타는 없었다. LG의 열광적인 팬덤은 왠만한 1군 선수들을 모조리 스타로 만들어버릴 정도다. 그러나 슈퍼스타는 그렇게 탄생하지 않는다. LG 팬들의 인기만이 아닌, 전체 야구 팬들의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슈퍼스타가 될 수 있다.
2002년 이후 LG가 번번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미래의 스타가 될 싹들도 하나둘 시들어갔다. 넥센 히어로즈를 거쳐 미네소타 트윈스에 입단해 빅리그에서 홈런포를 펑펑 쏘아올리고 있는 박병호, 트레이드를 통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한 뒤 전혀 다른 선수가 된 정의윤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 외에도 LG에서는 박용택의 뒤를 이을 예비 스타들이 제대로 꽃망울을 터뜨리지 못했다.
박용택의 뒤를 이을 '차세대 미스터 LG'가 필요하다.
◆ 현재 LG의 스타 기상도
그렇다면 현재 LG를 대표할 수 있는 선수는 누가 있을까. 투수 중에서는 봉중근과 이동현, 류제국, 우규민 등을 꼽을 수 있다. 야수 중에서는 7번 이병규와 오지환이 거론된다. 그러나 냉정히 말해 이들은 슈퍼스타라고 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일단 굵직한 타이틀을 따낸 경험이 없다. 류제국이 2012년 승률왕을 차지한 것이 전부다. 봉중근과 이동현은 구원왕과 홀드왕 경쟁에서 패했고, 나머지 선수들은 타이틀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골든글러브 수상 경력 또한 아직 없다.
반면 박용택은 2005년 도루왕과 득점왕, 2009년 타격왕(물론 논란도 있었고, 훗날 박용택이 사과도 했다) 등 리그 톱의 자리에 선 적이 있다. 9번 이병규 역시 3년 전(2013년)까지만 해도 '최고령 타격왕'이라는 걸출한 타이틀을 가져갔다. 골든글러브도 박용택은 3회, 이병규는 7회 수상했다.
류제국(33)과 7번 이병규(33), 우규민(31)은 이미 30대에 접어든지 오래다. 나이를 고려하면 이들이 현 시점에서 슈퍼스타로 급성장을 보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 결국 박용택의 후계자는 20대 젊은 피들 중에서 찾아봐야 한다.
◆ '스타 출신' 서용빈 코치의 당부
수려한 외모에 빈틈없는 1루 수비, 클러치 능력을 갖춘 타격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서용빈. 그는 1994년 신인 최초로 사이클링히트를 작성했고, 그 해 골든글러브까지 품에 안았던 LG의 레전드급 인물이다. 현재는 LG의 1군 타격 코치를 맡고 있다.
서 코치는 최근 LG의 스타 기근을 묻는 말에 짐짓 무거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과거를 떠올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땐 겁없이 뛰었다"고 말했다. 이는 현재 가르치고 있는 제자들에게 해주고 있는 말이기도 했다.
서 코치가 젊은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은 '저돌성'이다. 젊은 시절 겁없이 부딪혀야 발전도 가능하고, 스타로 성장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서 코치는 "젊어서 좋은게 무엇인가. 저돌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것은 베테랑들은 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스타 탄생 가능성에 대해서는 책임감과 함께 자신감도 내비쳤다. 서 코치는 "지금 있는 젊은 선수들 중에서 나와야 한다. 나올 것이다"라며 "새로운 스타를 길러내는 것이 코칭스태프의 역할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 무엇이 스타를 만드는가
다시 미디어데이로 화면을 돌려보자. 박용택은 '차세대 미스터 LG'를 꼽아달라는 말에 "오지환이 나보다 좋은 성적을 남겨야 한다"고 답했다. 류제국은 "안익훈이 (박)용택이형의 뒤를 이어 안타를 많이 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꼭 오지환과 안익훈이 아니라도 좋다. 누구라도 박용택을 뛰어넘을 선수들이 LG 내에서 나와야 한다. 프로야구 전체적으로 스타 기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지금, 최고 인기구단으로 꼽히는 LG에서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다면 리그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오지환은 젊은 LG 선수들 중 스타성, 발전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수들 각자의 노력이다. 전임 김기태 감독도 어린 선수들에게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슈퍼스타를 목표로 삼으라"고 말했다. 입단 당시의 지명 순서보다 입단 후의 노력 여부에 의해 야구인생의 성패가 갈린 예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구단의 방향 설정, 시스템 확립도 중요하다. LG를 떠나 성공의 꽃을 피운 유망주들의 이야기는 지겨울 정도다. 지난 실패를 거울 삼아야 한다는 말도 마찬가지. 다행히 최근 LG는 양상문 감독과 구단의 뜻이 일치해 새로운 팀 컬러를 세워나가고 있는듯 하다.
올 시즌 1군 전력 중에는 새로운 스타가 될 싹들이 보인다. 양석환과 정주현, 채은성은 돌아가면서 끝내기타를 날렸다. 이형종은 탁월한 야구 센스를 자랑하며 투수에서 타자로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임정우는 새로운 마무리 투수로 연착륙 중이며, 이준형과 이승현도 기대 이상의 성장세다.
스타는 프로 스포츠를 지탱하는 근간이다. 떠나는 스타의 빈자리를 새로운 스타가 채우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프로야구, 그리고 구단의 인기를 유지할 수 있다. 과연 LG는 내년시즌 미디어데이에 누굴 대표 선수로 내보내게 될까. "미디어데이는 처음이지?"라고 말해줄 수 있는 선수가 나와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