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월에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
시집와서 가끔 병원에 입원하실 때 외엔 늘 함께 살았기 때문에
퇴근하면서 병원에 계신 간호사에게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들으며,
황급히 병원으로 가다가 이십여 분 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화상으로 들었을 때도,
그 뒤로 가족들이 모여 장례를 치르고
12월이면 5개월이 되어 가는데 아직도 집안 곳곳에 남아 있는
어머님 흔적으로 아직도 살아계신 것 같다.
매일 퇴근 때면 늘 앉아 계시던 의자에 어머님이 계시지 않다는 것
끼니마다 어머님 드실 음식을 해야 했던 분주했던 나의 일상이
어느덧 느슨해졌다는 것,
살아생전 어머님은 다양한 친목계며
동네 분들과 친목이 좋으셔서
활동이 많으셨었다.
크고 작은 행사 때마다 어머님 친구분들과 친목회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던 기억
시집와서 얼마 안 돼 퇴행성 관절로 잠시 외출이 힘드셨을 땐
밖에서 만났던 분들이 매일 같이 집으로 찾아오셔서
나는 매일 어머님 손님들을 대접해야 했었던 기억도 있다.
어머님께선 참 많이 오랫동안 편찮으셨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가지고 계셨던 병명을 나열하자면 거의 종합병원 수준,
많이 편찮으신 상황에도 어머님께선 살아생전에 가족들과 함께 살다.
죽음을 맞이하고 싶으셨던 소망이 있으셨었다.
삼 년 주기로 양쪽 다리 고관절 수술로 거동이 불편하셨었고,
삼십여 년 동안 같이 살면서 수 없이 병원에 입원하고 퇴원하셨지만
다행히 가족들에게 심각한 치매 증상은 안보이고 돌아가셨던 것
어머님께서 평소 지키고 싶었던 자존심이 버티게 해준 느낌이다.
직장 다니며 편찮으신 어머님들 보살펴야 했던 나는
요즘 갑자기 생긴 자유와 여유로움에 내 삶이 아닌 삶을 사는 것 같다.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올해 초 내가 환갑이 되면서 나도 나이 먹는데 점점 더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님을 보살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며 시작했었는데
사람 사는 일이 참 앞을 모른다더니
어머님께서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 몰랐었다.
주변에 부모님을 여의신 분들이 살아계실 때 잘하라는 말
음식을 하다가 이 음식 어머님 좋아하셨었는데
입맛 없다 하실 때 간장게장을 드리면 맛있다고 드셨던
어머님 얼굴이 떠오른다.….
살아 있는 사람은 돌아가신 분과 묻어 두었던 추억을 꺼내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나의 삽십여년 결혼 생활에 전부를 차지했던 어머님과 추억이
문득 문득 떠오르는걸 보면,
해마다 김장을 끝내고 나면 우리 집 마지막 가족 행사였던 어머님 생신
어머님 생신 때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고 추웠었다.
지금 12월 얼마 전 돌아가시고 어머님 생신을 맞이했다.
살아계신 분 생신을 함께 하는 것과 돌아가신 첫해 맞이하는 어머님 생신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계실 때 의무감으로 모셨던 것이 늘 마음에 걸리는 나,
돌아가신 후 더 잘 돌봐드릴 걸 후회가 된다.
난 오늘도 어머님이 많이 보고 싶다.
첫댓글 하경님~
정말 수고 많이 하셨네요.
이십여년전의
저를 보는 것 같아서 더욱 공감이 갑니다.
한동안
허전함에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좋은 일의 끝은 있답니다.
복 받으실거예요^^
토닥토닥~^^♡
페이지님도
그리하여 복 많이 받고 계시구요~🧚♀️🧚♀️🧚♀️
천사들이세요
내부모도 아닌
부모를 모시고 수발하신분들
모두에게 토닥토닥~👍👍💕💕
페이지님 감사합니다.
허전함은 생각보다 오래갈것 같아요..
"토닥토닥" 위로가 되네요..^^
@정 아 앗,이 댓글이 하경님인줄...
이제 하경님 댓글 보고
요거이 내사랑 정아님 댓글인것을 알았으니,
예전에 반짝 반짝
넘치던 그 총기가 다 워디로 간건지 원...
토닥여 주시는 우리 정아 천사님.
댓글로 복을 짓고
덕을 쌓고 계시니
어찌 복을 안받으시겠어요.
감사와 사랑을
창으로 내리 비치는 햇살만큼 퍼부어 드리고 싶습니다.
@하경 네
오래 지난 저도
아직도
어머님 앉으시던 그 자리를 가끔 돌아보곤 합니다.
아이들 다 잘 키워주신 감사도 드려야 하는데
그 말씀도 못드렸더라구요.
ㅜㅜ
제 가슴이 찡하니
뭉클합니다
삼십년을 함께하며
수발하고 모시고 사셨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싸우면서 정든다지만
의무감으로든 묵묵히 함께한 세월이
가시고나니 진한 그리움으로
주변 돌아보면
다들 한지붕에서 사는것에 힘들어하는것만
듣고 보고 해서인지
담담히 쓴 글속에 짙은 그리움 감동입니다
수고많으셨구요~~🧣🧣🧣
마음에서 우러나와 모셨던 시간들이 편찮으심이 오래되니
어느덧 의무감으로 움직이는 저를 보게 되었어요..
돌아가시고 나니 그 부분이 제일 마음에 남습니다.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꽃자리님..
시어머님과 사이가 좋았었어요..
저를 그렇게 시집살이 시키지도 않으셨고
어쩌면 직장 다니면서 아이들 키우는 문제에선 제가 도리어 도움을 많이 받았지요..
오늘 아버님을 추억하시는 하루 되시길요..^^
슬픔은 언제나 남은 자의 몫이죠.
지난 시절 시집살이의 추억에 깃든
애환이 진하게 묻어 나오는 듯합니다.
이제 시어머님은 그리움의 향기로~~
부디 '봉봉한 하루' 보내시길~~^^
네 '붕붕한 하루" 보낼게요..
니캉내캉님도 추운날 즐거운 일들만 가득하시길요..
역시 딸이최고라고
저역시 9월에 어머니를 보내드렸는데 ㅎ
딸 같은 며느리가 되고 싶긴 했는데 그러질 못했어요..
9월에 그러셨군요...
돌아가신 후에 더 생각나는것 같아요
네 ~~눈물 흐릅니다. 카페 있는 사람이 ~~
댓글 감사드립니다..^^
저두요
저 일곱나이에 떠나신 우리 어머니..
어머니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함이 있지요..
일찍 여의셨네요..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 크시겠어요..
감사합니다..
정말 칭찬 드립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그런 아내분을 두신
남편분이 얼마나 흡족
하였을가요
저는
부모님에게 불효한
못난 자식 입니다
저도 그렇고 남편도 하느라 했지만 늘 부족했습니다.
돌아가시고 나면 그렇듯 못해드린것만 생각나는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셧네요
빈자리가 가끔은
그립죠???
아마도 당분간은 가끔이 아니라 자주 그리울듯 합니다.
제이정님 감사합니다..^^
삼십여년을 시부모님과
함께하신 하경님
요즘 보기 드문 효부시네요
샌드위치 세대라 가능했을까요
형님네 사정상 육개월 모시면서도
힘들어 했던 제가 후회스럽습니다
삼십년 넘게 모셨던 형님댁이
아닌 잠깐 머물던 저의 집에서
12년 전 평온한 모습으로
천국가신 어머님이십니다
어머님께서 종잇꽃님 댁에 계셨을때가 마음이 편하셨던것 같습니다.
어른을 모신다는 일이 쉽지만은 않죠..
힘든은 짧게 모시나 길게 모시나 다 똑같은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충분히 효부셨네요~
슬픔보다 즐거운일 추억하시고 시어머님게
안녕을 고해야 시어머님도 기분좋게 떠나십니다~
효부라는 말을 들을때가 제일 부끄럽습니다.
좋은 추억 간간히 꺼내면서 어머님을 그리워 하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고인을 추모 하시는 님의 마음이 글에 아름답게 그려져 있군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집안 곳곳에 남아 있는 어머님 흔적을 따라 써본 글이랍니다..
착한 효부 하경님
글에서도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제일 민망한 단어인데 "효부"~~
하경님
착한 마음
복받으실겁니다.
감사합니다..
신미주님도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