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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雨傘)이야기
우산(雨傘)은 인간이 오래도록 사용해 온 도구로 비교적
그 원시적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들 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다.
지금은 구조나 색깔이 다양한 여러 종류의 우산(雨傘)이 사용되고 있지만,
아마도 원시시대에는 잎이 넓은 풀잎이나 나뭇가지 등이
우산 노릇을 했을 성 싶고,
조금 씩 발달한 형태의 우산이 차례로 등장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산은 어린 시절부터 내가 보아 온 종류만 해도 꽤 여럿이었다.
우산이라기보다는 우의에 가까웠던 도롱이에서부터,
그냥 머리에 쓰는 널따랗게 생긴 삿갓우산,
어른들의 갓 위에 쓰고 다니던 기름먹인 작은 종이 갓우산이 있었고,
어려서부터 보아 온 보통 우산형태인 대나무 우산살에
한지를 발라 들기름을 먹인, 한 번 접어지는 대나무우산도 있었다.
그리고 또 지팡이처럼 동그랗게 반원으로 생긴 손잡이가 달린,
철재 우산살에 헝겊을 씌운 대표적인 우산인 양산(洋傘)이 있었다.
또한 그런 종류로 그 무렵 여자들이 받쳐 들던 양산(陽傘)중에는
고급 천으로 만들어지고, 방수카바를 씌우면
우천 시에도 우산으로 쓸 수 있도록 고안된 양용우산(兩用雨傘)까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현대적인 형태의 접이식 우산들을
통 털어 양산(洋傘)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여하튼 그 각양각색의 우산들도 아주 가까운 현대에 와서는
(우리 세대가 살아오며 보고 있는 동안에도)
두 번 접는 우산이 등장하여 장우산(長雨傘)에 비해 휴대가 편해졌고,
그리고 다시 세 번씩이나 접을 수 있어서 휴대하기가 더욱 편리해진
짤막한 형태로까지 발달을 거듭해 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아예 생긴 그대로 양산이나 우산으로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색상과 소재를 사용한 기능성양용우산(機能性兩用雨傘)까지도 흔해졌다.
물론 우리세대가 태어나기 훨씬 전인,
수백 년 전부터도 이미 현대적인 형태의 우산이 존재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몇 세기전의 서양화가들 그림 속에서도, 귀 부인들이 들고 있는 양산(陽傘)이
지금의 현대식 우산과 꼭 닮아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현대식으로 접는 형태의 우산은 1700년대에 영국인에 의해
발명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우리 조선시대에도 여성들이 삿갓모양의 작은 해 가리개를 양산으로 쓰거나,
대나무로 살과 대를 만들어 기름먹인 한지를 씌워
그것을 폈다 접었다 할 수 있는 현대식 우산으로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사극(史劇)이나 민화(民畵)를 볼 수가 있다.
비록 그것들이 양산(陽傘)으로 표현되고 있을지라도,
우천(雨天) 시에는 우산으로 사용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 속의 지체 높은 왕들의 행차에서도
일산(日傘)이라 불리는, 해를 가리는 우산의 형태를 볼 수가 있다.
전문적인 고증이 이루어졌을지는 알 수 없겠으나,
우산이나 그 비슷한 도구들을 사용했던 시대는,
아마도 천년이상의 오래 전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아야할 것 같다.
그것들 역시 양산(陽傘)으로 사용되기도 했을 것이고,
우천이 되면 당연히 우산 노릇도 했을 것이다.
근년에 들어서는,
장마철이 따로 없이 하절기에 부쩍 비가 잦아져,
걸핏하면 궂은날이 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 어느 집 현관에나 하절기 내도록
그 우산 한 두 개쯤이 나와 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우산들은 대부분 식구 수대로 하나 씩 주인이 있어서,
제 각기 제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게 보통이다.
지금 세상에야 널린 게 우산이고 우산 때문에 크게 신경 쓸 일도 없게 되었지만,
우리가 자라던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참으로 귀한 게 우산이었고,
그 우산으로 인해서 울고 웃는 일도 흔히 있었다.
그러나 묘하게도 그 우산이란 게, 비가 오는 동안에는 요긴하게 쓰고 다니며
소중히 다루다가도, 비만 개이고 나면 언제냐는 듯
소홀해지기 마련인 것이 바로 우산인 것이다. 그
래서 사람들은 버스나 전철에, 혹은 어딘가 들렸던 장소에,
무심코 두고 다니게 되는 일도 다반사인 것이다.
시골태생으로 여섯 남매 중 다섯 째였던 나는,
195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녔고
그 시절에는 주로 그 삿갓형태를 한 우산을 쓰고 다녔었다.
그것은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촘촘히 가로 세로 엮어
둥근 우산형태의 틀을 만들고,
그 틀 위에 한지를 겹으로 발라서 말린 다음,
다시 그 위에 박쥐날개를 닮은 검정색 문양을 규칙적으로 붙여 놓은 후,
들기름을 잔뜩 먹여서 아주 견고하게 하게 만들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 삿갓우산은 튼튼하고 실용적이긴 했으나,
내 또래의 어린 아이들이 그걸 머리에 쓰고 다니기에는 무겁고 불편했다.
그래서 모두들 접이식양산(洋傘)을 가지고 싶어 했지만,
나 같은 보통 아이들에게는 꿈같은 얘기였다.
나는 십리길이 훨씬 넘는 먼 길을 걸어서 통학하느라,
걸핏하면 비를 만나 남의 집 추녀 밑이나
포플러가로수 밑에 서서 비를 피하기도 했지만,
충충한 날씨에 곧 비가 올 기미가 보여도 미리 삿갓을 쓰고 다니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또래 아이들처럼 읍내에 사는 부잣집 아이들이
양산을 가지고 다니는 걸 늘 부러워했던 터였다.
그런 어느 날, 내게도 드디어 살이 한 개 부러지기는 했어도,
헝겊을 씌운 검정색 우산의 차지가 왔다.
당시 읍내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누님으로부터
쓰시던 우산을 물려받게 된 것이었다. 누님이 새로 사신 양산(陽傘)은,
바로 비오는 날에도 방수카바를 씌워 우산으로도 쓰던,
그런 양용양산(兩用洋傘)이었던 덕분이었다.
나는 뛸 듯이 기뻐했다.
교실의 내 책상에까지 가지고 가서 기대놓을 수도 있고,
하교시간에 제 삿갓을 찾아서 북새통을 이루는 아이들 틈에서
난리를 칠 필요도 없게 되었다.
또 비가 올 기미만 보이면 미리 우산을 가지고 우쭐거리며 다닐 수도 있었다.
그런 사실에 나는 흡사 내가 딴 사람이라도 된 듯 착각마저 일으켰었다.
살 부러진 헝겊우산 하나가, 그토록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에 와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기도 하지만,
당시로서는 그럴 만도 한 것이,
그런 양산(洋傘)을 가지고 다니는 아이들은 여든 명이 넘었던
반 아이들 중에서도 대여섯 명에 불과할 정도였던 것이다.
나는 선생님이신(읍내의 다른 학교이긴 했지만) 누님을 둔
행복하고 선택받은(?) 아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그러한 행복을 그리 오래도록 누리지는 못했다.
하루는 비오는 날에, 그 우산을 쓰고 자랑스럽게(?) 학교에 갔었다.
물론 빗물을 뿌리고 나서 내 책상에 우산을 기대어 놓았으며,
하교시간에도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분명 내 자랑스러운(?)우산을 들고 학교를 나왔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 올 때는 비가 그치고 햇빛이 나는 개인날씨가 되어 있었다.
나는 여니 때처럼 아이들과 어울려 웃고 장난치며 시장 골목을 지나왔다.
또 지나는 길에 당시 사범학교 교정에 있었던,
수백 년이나 된 은행나무 그늘에서 맞수 또래 아이와 씨름도 했었다.
그리고 시장골목에 있었던 헌책 가게로 가
새로 나온 만화세계(당시의 어린이월간잡지)도 한권 빌리고,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나는 집으로 와서도 내가 어딘가에서 우산을 놓고 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후에 내가 잃어버린 우산을 생각해 낸 것은,
불행하게도 다시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아침 학교 갈 시간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마루 밑에 놓여있어야 할 내 우산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당황해서 울고불고 했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잃어버린 우산이 운다고 나오니?
그러게 제 물건은 잃어버리지 않도록 스스로 잘 챙겼어야지,
울기만 하면 어쩔래? 삿갓이라도 쓰고 빨리 학교나 가렴.”
울어대는 나보다도 사실은 어머니가 더 서운해 하시는 눈치셨지만,
어머니는 다시는 더 아무 말씀도 않으셨다.
물론 나는 다시 삿갓 신세가 되었고,
아주 오래도록 잃어버린 우산에 대한 자책과
안타까운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내게 있어서 우산이란,
그냥 우산만이 아닌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가진 그 무엇이었고,
나는 우산 챙기기에 유별난 사람이 돼 있었다.
나중에 엉성한 대나무살에 비닐을 씌운,
엔간한 바람만 불어도 훌렁 젖혀지고 마는,
그런 일회용 우산이 나왔을 때도,
못쓰게 망가지기 전까지는 결코 잃어버리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직장을 오가는 버스나 전철에서도,
퇴근길 중간에 모임이 있어 술자리를 다녔어도,
나는 결코 우산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었다.
고백컨대 나는 직장에 가지고 다니던 가방은 두어 번 어딘가에서 잃어버리고
경을 친 일이 있었지만,
우산만은 결코 손에서 놓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한번 장만하면, 보통 십 년씩은 가지고 다녔으며,
내 손에 온 우산은 모두 정들어,
헝겊이 낡거나 살이 부러져 못쓰도록 망가져도 쉬 버리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는,
그 세월 덕택에 나도 이제 그 귀한 우산을 두 개 씩이나 가질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됐다.
그것들 중 하나는 짤막하게 삼단으로 접을 수 있어
휴대에 편리한 짤막이우산(나는 그렇게 불렀다)으로,
외출 시의 비상용 우산이고,
또 하나는 우천 시 산책길에 주로 사용하는 우산대가 굵고
튼튼하게 생긴 장우산(長雨傘)이었다.
장우산은 보통우산 보다 크고 넓어 엔간한 소나기가 내려도 쓰고 다니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였으며,
물론 둘 다 오래도록 사용해 온 내게 정든 우산인 것이다.
그날도 사흘째 비가 그치지 않고 부슬거리던 참이라,
아침산책을 나서다가 나는 내 장우산을 찾았다.
그러나 현관에 둔 것 같은 우산이 보이지를 않는 것이었다.
한참을 이리저리 생각하며 찾아보아도 역시 보이지 않아 당혹스러웠다.
나이 들어선지 이즈음에는 들었던 물건도 손에서 놓으면
그만 잊어버리기 십상이고,
가끔은 잘 아는 사람을 마주보면서도 그 이름이 가물거려
당황하게 되는 일조차 있었다.
그래서 외출 시에는,
들고 다녀야 할 소지품도 아예 숄더백에 넣어 어깨에메고 다니는 처지가 돼버린 것이다.
찾고 있는 우산도 혹시
어디 다른 데에 두고 오지 않았나 하고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다행히도 이내, 전날 오후에 안경 수리를 하러 갔다가
동네 안경점에 두고 온 사실을 기억해 냈다.
그래서 두고 온 우산이야 다시 찾아 을 수 있겠거니 하며,
신발장 서랍 속에 든 내 외출용 짤막이우산(?)을 꺼내 쓰고 산책길을 나서게 되었다.
매일처럼 내가 다니는 산책길은,
집에서 과히 멀지 않은 야산을 한 바퀴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지막한 야산에 불과하였지만,
그 야산을 한 바퀴 도는 잘 정비 된 멋진 산책로는
주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꽤 인기 있는 곳이었다.
대략 3km 정도의 산책로가 능선의 굴곡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이어져 있었고,
폭3m 정도의 산책로 바닥은 각기 색깔이 다른 마감재로
반씩 갈라 포장해 놓아 보기에도 좋았다.
산 쪽으로 연한 경계는 직경50cm 정도의 흄관을 타개 놓은 듯 보이는
홈통구조의 우수로가 산책로를 따라 역시 산을 한 바퀴 돌아있고,
반대편은 경사진 언덕에 연해있는 나지막한 시멘트 경계부록이 설치되어 있었다.
내가 이 산책로가 있는 숲 속으로 들어섰을 때는,
한동안 작은 접이우산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굵은 빗줄기가 되어 내리기도 했고,
가늘어 지다가도 이내 소나기처럼 장대비가 되어 내리기도 했다.
그래선지 평소에 붐비던 산책로는 텅 빈 채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그 텅 빈 산책로를 혼자서 절반 쯤 지나고 있을 때였다.
경사를 따라 내리막을 잰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내 앞 침침한 숲속 길에 경계부록을 따라 큰 다람쥐만한 동물이
뿔뿔 거리는 이상한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는 게 보였다.
녀석은 바닥과 경계부록의 모서리 구석을 따라 움직였다.
처음에는 녀석이 산책로에서 흔히 보이는 청설모인가 했지만,
꼬리도 없는 몸뚱이를 뒤뚱거리는 모양세가 아무래도
범상한 동물은 아닌 성 싶었다.
녀석은 별로 서둘지도 않았다.
나는 호기심으로 녀석에게 다가가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털도 없는 삐죽하고 징그러운 주둥이,
그리고 납작한 앞발,
그것을 모았다가 앞을 파헤치듯이 내젖는 동작을 반복해대는 녀석을 보고
나는 단번에 그 정체를 알아냈다.
녀석은 바로두더지였다.
산골마을에 살았던 내 어린 시절에,
다리가 불편하셨던 할아버지가 가꾸시는 텃밭을,
마구 헤집고 다니며 망가뜨리던 바로 그 녀석.
나는 평소에 들썩이며 땅속을 헤집고 다니던 녀석을 본 외에는
그때까지는 한 번도 직접 본적은 없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께서는 늘 텃밭의 할아버지농사를 망쳐놓는 녀석에게
특별한 원한(?)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 할아버지께서 “어디 한번 잡아 보거라”시는 말씀에,
나는 멋모르고 달려들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시키시는 대로 땅속을 헤치며
지나가는 녀석의 앞을 가로막고 작은 삽으로 재빨리 땅을 파 뒤집었다.
그러자 녀석은 배를 드러낸 채 땅위로 뒹굴었다.
순간적이었다.
나는 얼결에 도망가려는 녀석을 놓치지 않으려고
급히 손으로 움켜쥐었다가,
그만 녀석의 날카로운 앞발에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다.
놀라서 놓쳐버린 녀석은 번개처럼 도망쳐 버렸고,
내 손가락에서는 붉은 피가 뻗쳐 나왔다.
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의 큰 상처였다.
그런 기억과 상흔(傷痕)을 갖고 있는 내가,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녀석을 몰라볼 리 없었다.
녀석의 징그러운 주둥이와 그 생김새가 생생한 기억 그대로였다.
내가 다가가 한번 발을 굴러 보이자 녀석은 급히 도망치려 했다.
나는 녀석이 10cm도 채 못 되는 시멘트 경계블록을 쉽게 뛰어넘어
도망가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녀석은 위로는 뛰어오르지 못하고 바닥 쪽을 긁기만 했다.
그것은 땅속만을 헤집고 다니는 녀석의 본능적인 습성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발로 녀석의 앞을 가로막고
산책로 바깥 언덕으로 보내주려고도 시도해 보았다.
녀석 딴엔 급하게 도망치려는 듯 했으나,
역시 산책로 바깥으로 탈출하지는 못했다.
“싹싹” 소리가 나도록 긁어대며 땅속으로 파고들려고 애쓰는 녀석을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저러다가는 도저히 경계불록을 넘어가지는 못할 모양이구나..........”
만약 반대쪽 수로에라도 빠진다면 녀석은 필경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실 산 쪽으로 연해있는 산책로의 한쪽 편은,
직경50cm 정도인 홈통으로 된 수로이고, 약간의 빗물마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군데군데 불규칙한 간격으로 깊은 맨홀이 파져있어
두더지 녀석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다.
맨홀의 깊이는 대략 반길 쯤은 되고, 수로에서 흘러든 상당한 수량의 물이
지하에 매설 된 하수도를 통해서 수km밖의 하천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르긴 하지만
두더지가 살아 날 수는 없을 성 싶었다.
지하에 흐르고 있을 하수도의 수량도 문제려니와,
굶주린 쥐떼와 마주칠 공산도 아주 큰 것이었다.
계속 녀석을 몰고 다니며 궁리를 해 봤지만,
이리저리 피하며 도망만 다니는 녀석을 나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녀석은 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순간 내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받치고 있는 우산을 이용해 보자는 것이었다.
우산을 거꾸로 들고 녀석을 우산으로 떠 담아
산책로 밖으로 내보내자는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훌륭한 착상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나에게는 참으로 곤란하고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우산을 거꾸로 들고 녀석의 앞길을 막고 막 떠 담으려하자,
녀석이 크게 놀란 모양으로 산책로를 가로질러서,
그만 산 쪽으로 나있는 깊은 수로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처음부터 염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었다.
“그냥 두고 지나가 버릴 걸........”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녀석을 위해서 무언가 하지 않으면 녀석은 필경 수로를 탈출하지 못하고,
나의 상상대로 목숨을 잃게 될 게 확실해 보였다.
그렇게 된다면 녀석의 불행한 사고는 나 때문이 되는 것이다.
수로에 빠진 녀석을 내려다보았다.
녀석은 필사적으로 맨홀 쪽을 향해서 내닫고 있었다.
나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래서 급한 대로 우산을 거꾸로 든 채,
수로로 밀어 넣어 맨홀에 빠지기 직전에 가까스로 녀석을 막을 수가 있었다.
수로의 크기보다는 우산이 컸지만,
다행히 약한 우산살에 탄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더지 녀석은 우산에 길이 막히자, 이번에는 돌아서서
반대쪽 오르막길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녀석이 향하고 있는 쪽에도 역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깊은 물이 고여 흐르는 맨홀이 있을 뿐이었다.
나도 다시 녀석을 따라 급히 오르막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고역이었다.
비에 젖고 땀에 젖은 채,
그러기를 몇 차례 하고나니 파김치처럼 지치고 말았다.
온갖 노력 끝에 가까스로 녀석을 떠 올려 산 쪽으로 보내는가 싶었지만,
맹랑하게도 녀석은 스스로 굴러서 다시 수로로 빠져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기도 또 몇 차례였다.
나는 지친 나머지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턱까지 숨이 차올라서 헐떡거렸다.
안 그래도 시원찮던 한쪽 무릎마저 시큰거리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는 할 만큼은 한 거야. 더는 이제 안 되겠어. 네 녀석 맘대로 하렴........”
녀석도 지쳐선지 잠시 한곳에 머물러 있긴 했었다.
그렇지만 녀석은 이내 굼실거리며 수로의 벽을 긁어대기 시작하더니,
다시 아래쪽 맨홀을 향해 내닫기 시작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일어서 절룩거리며 녀석을 따라갔다.
다시 다급해 졌다.
맨홀에 빠져 허우적대며 죽어가는 녀석의 가엾은 모양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저러면 죽고 말거야!”
어쩌면 내 생각이 틀렸고,
녀석에게 신이 가르쳐 준 기상천외(奇想天外)한
생존수단이 있었을지도 몰랐지만,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랬다.
나는 다시 우산으로 녀석의 앞길을 막고 처음처럼
녀석을 우산으로 떠 올려 볼 궁리를 했다.
그러면서 다시 위로, 다시 아래로, 헐떡거리며 녀석을 따라 뛰어 다녔다.
그러던 중에,
녀석도 나도 둘 다 지쳐서 쓰러질 지경에 이르렀을 무렵,
드디어 나는 녀석을 거꾸로 든 우산으로 가까스로 떠 올릴 수가 있었다.
참으로 다행스러웠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방법이었지만 처음에는 전혀 생각해 내지 못했다.
번번이 스스로 우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녀석을 담아내는 방법은,
녀석을 우산에 떠 올리자마자 우산을 아래위로 흔들어 정신없도록
까불러 대는 방법이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최후에,
그것도 서로가 지칠 대로 지친다음에야 비로소 터득한 방법이었다.
나는 그 녀석을 까불러대는 방법으로 가까스로 우산에 떠 올려서
경계불록 너머로 안전하게 내려놓을 수가 있었다.
그리도 애를 태우던 녀석은,
수풀 속으로 내려놓자 곧 바로 땅을 헤집고 사라져 가 버렸다.
녀석을 수풀 속으로 놓아 준 나는,
기진맥진하여 땅바닥에 주저앉아 헐떡거렸다.
녀석과의 한바탕 긴 씨름도 어처구니없이 거짓말처럼 끝이 난 것이었다.
턱에 찬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우산을 들여다보니,
그것은 이제 더는 우산이라 불리며 제 구실을 하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우산살은 반 이상이 부러져
용수철이 있는 접이 부분의 철사가 퉁겨 져 나와 있고,
제대로 접어질지도 의심스러웠다.
조심스레 하나하나 접어보다 말고,
그냥 헝겊과 부러진 우산살을 함께 뭉쳐서 끈을 돌려 단추를 채울 수는 있었다.
그러나 우산대는 이리저리 휘고 뒤틀려
짤막하게 밀어 넣을 수가 없어 조립이 불가능했다.
“이 무슨 체람! 나도 참 한심하기는..........”
생각해 보면 그랬다.
어저께 비가 내리지 않았거나 안경점에 장우산을 두고 오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장우산을 가지고 산책을 나왔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 큰 장우산으로는 수로에 빠진 두더지 녀석을
담아 올릴 걸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녀석은 왜 하필이면 오늘 내 눈에 띈 것일까?
땅을 들썩이며 지나가는 녀석이나 그 흔적은 여러 번 봐 왔지만,
정작 녀석을 직접 만나게 된 것은 평생에 단 두 차례 뿐이 아닌가?
어린 시절에 녀석과 처음 만났을 때는 녀석이 내 손가락을 다치게 했었고,
반세기나 지나서 두 번째로 만난 이번의 녀석은 내 우산을 망가뜨리고 말았다.
망가져버린 우산은 또 나에게 어떤 우산인가?
십년도 더 지난 어느 날, 출근하는 나에게 아내가
“가지고 다니는 우산이 너무 낡아 보여서 하나 샀어요.”
하며 내밀어 준 바로 그 우산이 아닌가?
나는 신기할 정도로 작고 앙증맞아 보이던 이 우산을,
그로부터 십년이 훨씬 넘도록 애지중지하며 정들여 왔었다.
그리고 퇴직 후에도 비가 올 기미만 보이면
언제나 내 외출용 숄더백에 넣고 다녔다.
그것은 내 숄더백 속에서 살짝 지퍼가 열린 틈으로,
귀엽게 생긴 손잡이를 얼굴처럼 내밀었으며,
그 끝에 묶어 둔 헝겊 우산케이스는 리본처럼 나풀거렸다.
오랜 세월을 나와 함께 해 왔던, 나에게는 특별한 우산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더는 그것이 나의 짤막이우산(?)일 수가 없게 돼버린 것이다.
나의 이런 일들은 과연 우연(偶然)일까, 아니면 필연(必然)이었을까?
세상에는 결코 우연이란 건 있을 수 없고,
우연처럼 보이는 일일지라도 반드시 인과(因果)에 의한
필연이라고도 하던데.......
혹시라도 내 이 하찮은 범부(凡夫)의 삶이,
억겁(億劫)을 이어 온 윤회(輪廻)의 고리 어딘가에서,
두더지 녀석에게나 망가진 우산에조차도,
내 인과의 빗(債務)이 못다 푼 셈으로 남아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한 갑자 남짓 살아 온,
그저 고상하지도 내 세울 것도 없었던 내 삶의 괘도위에,
미리부터 녀석들이 올라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리석고 부질없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나는 그만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허헛! 우산이야 요즘 세상에 널린 우산일 뿐이고, 두더지는 그냥 두더지일 뿐이지
무슨.......
찜통더위를 한여름 겪고 나서 내가 실성이라도 한 게야! 허허허.......”
나는 산책로 바닥에 주저앉은 채, 다시 망가진 우산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궂은 날이면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지천으로 팔고 다니는 대략 그와 모양이 비슷한,
그런 흔한 장사꾼들의 우산을 떠 올려 보았으나,
어쩐지 그런 우산과 다시 쉽게 정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월간지 게재
첫댓글 수필 재미있게 잘읽고 갑니다~~
문맥이 매끄럽네요
긴 글에 머물러 주시니 고맙습니다.
덕보님, 참 오랫만입니다.
우산이야기 속에 위험에 빠진 두더지를 살려 주셨네요.
모든게 귀했던 시절의 우산과
우산에 담긴 이야기도 많지요.
우산으로 두더지를 구했다는 이야기는
첨입니다.
좀 자주 오셔서 좋은 이야기 들려주시면
감사하지요.
무더운 여름철 건강 잘 챙기셔요.
콩꽃님
덕보를 기억해 주시고 긴글에 머물러주시니
고맙습니다.
모쪼록 강건하시고 늘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허헛! 우산이야 요즘 세상에 널린 우산일 뿐이고, 두더지는 그냥 두더지일 뿐이지
무슨.......
이렇게 글 썼었어도 저는 다 압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라고 그 두더지가, 그 두더지의 가족들이.
그리고 지금에는 두더지의 자손들이 전설 이야기처럼 이어져 내려올 겁니다.
두더지는 엄청나게 많아도 그날의 두더지한테는 하나뿐인 생명이지요.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한 자신의 생명이었을 겁니다.
하나뿐인 것이기에..
글 좋습니다.
우산 하나인데도 많은 것을 보여주는군요.
곰내님 길고 어수선한 글에 머물러 주시니 고맙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법도리님 고맙습니다.
우산에 관한 추억담을 보니
저도 우산에 관한 추억에
잠겨보았습니다
곱고 정겨운 글입니다^^
조은설님 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이다님
긴글에 머물러주시고
공감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와
아침 책 한권 읽은 이 기분이
어찌이리도 기쁘단 말인가요.
잘 읽었습니다.
요즘 우산 양산은
성능이 좋아서
보턴 누르면 펼처지고
보턴 누르면 접혀지며
3단 접힘 우산이나 양산은
손 안에 쏘옥 들어와서
휴대하기에도
간단하고 좋답니다.
저도 행여 잃어버릴까 싶어서
항상 비닐커버를 챙겨 가방속에
모셔둡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지루하셨을텐데.....
님께서는
그래도 진솔한 제 고백을 들어주셨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석촌님 고맙습니다.
우산에대해 다시한번 고마움을 전해봅니다..
애고 이누메 우산 목에걸든지 해야지 ㅎㅎ
지존님 고맙습니다.
여러 번 잃어버린 기억이 있으시군요...ㅎㅎ
@덕보 선배님 남자들은수없이 잃어버리잖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