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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에 관한 논쟁 12:13~17
13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부활에 관한 논쟁 12:18~27
18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19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20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21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22 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23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2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26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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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예수님 말씀을 책잡으려는 사람들이 그분께 세금 문제에 관해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십니다. ‘자식 없이 죽은 칠 형제와 한 아내’에 관한 사두개인들의 질문에는 그들의 오해를 지적하시며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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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에 관한 논쟁 12:13~17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바리새인과 헤롯당 사람들을 보냅니다.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이 옳은가?”라는 질문에 ‘옳다’고 하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매국노로 단죄하고, ‘옳지 않다’고 하면 헤롯당 사람들이 반역자로 몰아 로마 당국에 고발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로마 동전인 데나리온에 새겨진 형상과 글이 누구의 것인지 반문하십니다. 데나리온 앞면에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형상과 ‘티베리우스 황제, 신의 아들’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들이 ‘가이사의 것’이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17절)라고 하십니다. 세상 권력도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기에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 더 깊은 묵상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성도는 납세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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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에 관한 논쟁 12:18~27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모세의 수혼법(신 25:5)을 근거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자식 없이 죽은 일곱 형제가 차례로 한 여자와 결혼했다면, ‘부활 때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라는 것입니다(19~23절). 예수님은 부활 이후 우리 몸은 천사와 같아서 결혼 개념이 없어진다고 하시며, 성경 말씀에 대한 그들의 오해를 깨우치십니다. 모세 오경에 나오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26절; 출 3:6)라는 말씀은 ‘현재 시제’입니다. 이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과거에 죽었지만, 하나님 안에서 ‘지금 살아 있음’을 의미합니다.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하나님 능력을 불신하는 행위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부활 이후 우리 몸은 어떤 존재와 같아지나요?
내가 그동안 하나님을 오해하고 성경을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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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
‘선택적 지각’이란 사람들이 저마다의 욕구, 경험, 개인적인 특성에 따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만을 수용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현상이다. 도쿄대 명예 교수인 요로 다케시는 「바보의 벽」에서 이 선택적 지각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각자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듣는 현상을 그가 ‘바보의 벽’이라고 표현한 것은 참 적절하다.
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제대로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 세계관이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막 4:24)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듣는 것이 곧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나타낸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들을 때 마음속에 숨겨 놓은 것들을 가지고 듣기 때문이다. 자신 안에 있는 사랑과 미움, 편견과 선입견, 원한과 혐오감이 다른 사람의 말을 이해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구미와 마음에 맞는 말씀만을 선택해 논리를 짜 맞추려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 그 자체의 논리 앞에 내 심리를 무릎 꿇게 하는 것이 참된 이해요 순종이다. 믿음은 나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대한 확신을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위대하지 않은, 선한 그리스도인을 찾습니다 / 이재훈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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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마가복음 12장 24절
현실 문제를 극복하고 바른 소망을 품으려면 성경과 하나님 능력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고,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믿느냐가 신앙생활의 모습을 결정합니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몰랐다'라는 이유로 준엄한 심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을 바르게 알고 믿는 것은 오늘을 살아갈 힘이며, 미래를 향한 안전하고 확실한 소망입니다.
성경 공부의 목적은 주님을 더욱 경외하고, 그분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 리로이 아임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온전히 알지 못하는 제 미련한 모습을 용서해 주소서. 제 인생과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며, 지혜롭게 구별해 마땅히 드릴 것을 드리게 하소서. 지금부터 영원까지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며 말씀을 겸손히 배우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462 생명 진리 은혜 되신)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당시 사회에서 딜레마이며 미묘한 문제인 로마에 대한 과세 문제를 갖고 질문공세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의 옛 풍습인 계대 결혼의 극단적인 예를 통해서 부활이 없음을 예수님께 논증하며 그러한 믿음을 조롱하고자 하는 내용입니다. 본문의 예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예수님을 공격하기 위해 창작된 것입니다. 곧 자녀가 없이 죽어 버린 7형제에 관한 이야기를 꾸며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리어 그들에게 부활에 대한 바른 가르침을 주십니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 계대 결혼의 근거인 모세의 율법을 가지고 사두개인들이 그리스도께 도전한 말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주로 제사장과 상류계급 출신인 유대의 귀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로마와 협력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모세 오경 말고는 성경을 인정하지 않기에, 즉 예언서나 시가서 그리고 역사서들을 거부한 관계로 매우 편협한 신학적 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갖고 있었던 사후세계에 대한 지식은 매우 빈약한 것입니다. 사후에도 결혼이 다시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부활한 사람들은 결혼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다만 천사와 같이 불멸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논박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실제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살아 있다는 말씀으로, 이는 부활에 대한 강력한 선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 죽은 하나님이 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세오경으로 부활을 부정하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모세 오경에 근거해 부활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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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 바리새인과 헤롯당원이 예수님을 책잡으려고 던진 질문입니다. ‘책잡는다’는 말은 덫을 가지고 짐승을 생포할 때 쓰는 용어로, 그리스도를 사로잡으려고 함정을 판 것을 말합니다. 당시 세금은 오늘 날의 세금과는 조금 다릅니다. 본문의 세금은 유대인이 해마다 로마 정부에 바치는 인두세를 말하는 것으로, 이는 이스라엘이 로마에 정복되었음을 시인하는 것이므로 그들로서는 달갑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이 던진 질문은 빠져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정치적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적이기에 예수그리스도를 궁지에 몰아넣는 탁월한 수단이 된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야 한다고 하면 로마의 과세를 인정하는 격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대중적 지지를 얻고 있는 유대 민족주의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 되어, 주님은 많은 지지자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뿐만 아니라 민족의 배반자라는 오점을 남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고 답변을 하게 되면 그것은 로마에게 항거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로마에 반역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므로 로마 정부로 하여금 즉시 처벌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게 됩니다. 결국 세금을 내라고 하면 유대인들의 지지를 잃게 되고,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로마의 정치범으로 몰리게 되는 외통수에 걸리는 것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 예수님의 거침없는 답변입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선포입니다. 사실 가이사의 것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으니, 그도 단지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이 다 하나님 것일진대 다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다만 유대민족의 안위를 위하여 ‘가이사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했을 뿐입니다. 주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나눌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결국 모두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라는 촉구입니다. 국가도 개인도, 하늘도 땅도, 육신도 영혼도 모두 다입니다.
이 귀한 진리의 말씀은 우리의 뿌리 깊은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단서와 다름이 없습니다. 마치 캄캄한 밤바다를 비추는 등댓불처럼 말입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항상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 쉼 없이 찾아오는 염려, 걱정, 근심이 바로 치솟는 파도이며, 욕망이라는 폭풍이며 캄캄한 바다인 것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 두려움과 욕망을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더 깊은 구렁텅이에 빠져들어 허우적거릴 뿐이지요. 우리가 우리 마음의 주인인 이상 결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마음의 왕좌에 스스로 앉아 있을 때 두려움과 욕망이 우리를 삼켜 캄캄한 밤바다를 끊임없이 표류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러나 드디어 등댓불이 비춥니다. 우리에게 희소식이 들려옵니다.
‘속지 마라. 인생의 주인은 네가 아니다. 주인의 자리를 내 드려라. 바로 네 삶을 주관하시는 그 분께!’ 절망의 밤바다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들려오는 음성입니다. 이제 갈등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방황할 필요도 없습니다. 인생의 주권이 늘 불안하고 두려움에 떠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평강과 자유는 바로 그곳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네 주인은 누구냐? 네 몸을 주장하시는 분은 누구냐? 네 생각과 사고를 관장하시는 본은 누구냐?’ 우리의 삶 속에서 평생 던져야 할 질문인 것 같습니다. ‘주님’이라는 뜻 안에 ‘주인’이라는 의미가 깊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한 순간도 잊지 않는 우리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둘째도 셋째도 그렇게 하여 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막12:18~23)
사실 이 질문은 부활이 없다고 믿는 사두개인들이 부활이 있다고 믿는 바리새인들과 논쟁할 때 즐겨 사용하던 질문이었습니다 이 질문만 하면 바리새인들은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고, 그때마다 사두개인들은 자기들이 옳다는 것이 증명 되었다며 승리에 도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명쾌하게 그들의 무지를 드러내셨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막12:24~27)
사실 지금도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면서, 합리적 과학적 사고를 추구하며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사두개인들 같은 자들이 많습니다 또한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면서, 덮어 놓고 그냥 믿는 근본주의적 사고를 추구하며 스스로 믿음이 좋다고 자부하는 바리새인들 같은 자들도 많습니다 사실 현대교회에는 이런 자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말만 많고 능력은 없는 자들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고전4:19)
만약 누구든지 이들의 사상을 따른다면 진리에 대해 크게 오해하게 되고, 그 오해의 결과로 돌이킬 수 없는 멸망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신 것입니다
"오직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마16:11)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기 원합니다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렘16:21)
또한 성경을 깨달아 알기 원합니다
"깨달아 알라"(단8:17)
사두개파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고 현실의 삶에서만 만족을 찾으려는 지극히 세상적인 자들이었으므로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을 무시하고 죄로부터 구원을 갈망하는 마음도 경시했습니다.
오늘 기록된 형제의 죽음에 대해 대를 잇게 하는 ‘계대 결혼법’은 신명기 25장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자녀를 낳지 못하고 죽은 형제의 아내는 같은 집안의 형제와 결혼하게 하여 자녀를 낳아 족보에서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보존시키려는 의도인데 이를 이용하여 사두개인들은 이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일곱 형제의 죽음’이라는
억지스러운 이야기로 각색하여 예수님의 신앙적 수준을 가늠하고 부활에 대해 조롱하려고 한 것입니다.
부활할 때 결국 7형제와 모두 동침한 그 여인은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라는 질문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부정하고 현실 세계의 연장보다 더 나을 것이 없을 것이라는 냉소를 포함한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부정하는 부활 후 영원한 삶은 이 땅에서 자신은 죽고 대를 이어야 하는 그런 유한한 삶에서 벗어나고 이 세상에서의 그 결혼이 더 이상 필요 없이 모두가 주님의 신부로 살아가는 것이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그토록 신봉하는 모세 5경에서 동시에 존재하듯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언급하심으로 이 땅에서는 제한받고 있는 그 시간을 창조하시고 그 시간 너머에 계신 존재와 함께 하게 될 것임도 알려주십니다.
이 땅에서 그분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믿음의 눈으로 보고 주어진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며 그 구원을 노래하는 주님의 제자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3-15절 서로 반목하던 민족주의자 바리새인과 로마 권력의 하수인인 헤롯당이 공동의 적인 예수님을 무너뜨리기 위해 손을 잡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무엇을 답하더라도 걸릴 수밖에 없는 완벽한 덫을 준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이미 간파하시고 지혜로운 답변으로 그들을 침묵하게 하십니다. 우리도 진리의 지식으로 단단히 무장할 때 진리를 해하는 대적의 공격에 맞설 수 있습니다.
16,17절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며 그들의 소유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런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기초 위에, 우리는 소유를 정당하고 적절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공동체의 한 일원으로서 우리 앞에 놓인 의무를 다하는 것이 옳습니다. 다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8-27절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글을 통해 부활을 믿는 이들의 오류를 지적하려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모세의 글로(출 3:6) 그들의 무지와 오해를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이 죽은 족장들의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신 것 자체가 그들이 죽어 사라진 것이 아닌 증거라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의 육신은 죽었지만,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장차 죽은 자의 부활이 있을 때 새로운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이 사실을 몸소 증명하셨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이자, 우리 믿음의 정수입니다(고전 15:12-20).
기도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이들의 악한 계략을 간파하고 맞설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 신앙의 기초를 잘 세우는 것입니다(13~17절).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고 교묘하게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질문합니다. 긍정적 답변이든 부정적 답변이든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의 반발과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속임수를 아시고 데나리온을 가져오게 하신 후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17절)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통로이고, 국가는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교회는 세상 나라를 세워 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국가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사회사업을 하거나 정치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복음 안에 거하고 복음을 힘써 전하는 일에 더 많이 집중해야 하는 곳입니다. 한 나라가 세운 법을 따르는 것 역시 나라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법과 질서를 더 잘 지켜야 합니다.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이중장부를 쓴다거나,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는 편법도 쓰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목회자 역시 한 나라의 국민답게 정당하게 세금도 내야 합니다. 신앙의 기초는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세상 질서의 기본을 잘 지켜 나아가는 것입니다.
❝부활의 능력을 소망하는 삶❞
영광스러운 부활의 날을 고대하는 인생이라면 먼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 부활의 날을 고대하는 삶의 자세는 무엇입니까?
➲ 하나님의 능력에 집중하는 삶이어야 합니다(18~25절).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에 이어 사두개인들까지 예수님을 음해하고자 찾아와서 모세 율법에 기록된 수혼 제도를 언급하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사상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여인이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방지하고, 홀로 남은 미망인을 보살피기 위한 수혼 제도의 극단적인 예를 들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습니다.
사두개인은 부활이 없다고 믿은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부활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그들은 무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은 향하여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24절)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25절)... 사람은 부활 후 천사처럼 영광스럽고 영원한 새 생명을 얻게 될 것인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부활의 능력을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면 보통 내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과 연관 지어서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능력을 내 자신의 시각에서 제한적으로 적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분명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더 나아가 내 자신의 죽은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이보다 더한 능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하고, 승진을 하고, 바라고 원했던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심지어는 죽을병에서 고침을 받은 것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백하며 간증할 수 있지만, 궁극적인 하나님의 능력은 죽은 나의 몸이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활의 약속을 이루실 하나님의 능력에 나의 삶이 집중되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삶의 환경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부활을 이루실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본다면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의 날을 고대하는 삶은 부활의 능력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는 삶입니다.
➲ 제자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이어야 합니다(26~27절).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질문에 대응하여 모세 오경에서 그 대답을 이끌어 내십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26절)..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며 하신 말씀입니다.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과거에 속하는 죽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47절)께서 예수님을 죽음으로부터 일으키시사 새 생명의 창조자가 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활에 대한 바른 이해와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요, 참 제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겁하게 도망쳤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부활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았을 때, 증인의 삶을 살아갔을 뿐만 아니라 순교의 자리까지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당당하지 못한 이유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부활이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듯 육체의 부활의 아침을 기다릴 뿐만 아니라 바르게 이해하고, 믿어 부활을 가르치고, 전하는 제자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1.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13-17절)
오늘도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몇 사람을 보내어서 예수님을 곤란하게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세금에 대하여 질문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대하여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온전한 마음으로 구별하여 드려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하나님께 참되게 드려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울러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대하여 가지는 책임에 대하여 함께 말씀하신 것입니다. 천국의 시민권을 가졌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누구보다도 이 땅의 의무를 성실하게 행할 것도 함께 말씀하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내게 주어진 영육간의 의무에 충실한 작인가?
2.말씀을 오해하지 말라(18-27절)
사두개인들은 자신들이 모세오경에서 명확하게 부활에 대하여 나오지 않기 때문에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므로 모세의 율법에 나오는 계대결혼제도와 모순되기 때문에 부활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 앞에서 자신들의 무지만 드러낸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그들이 천국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자신들이 유리한대로 해석하고 이해하려고 하다가 천국을 오해한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도 부활을 부정하려는 생격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한 사두개인들과 같은 잘못에 빠져서는 안될 것입니다. 말씀은 나의 생각이 아니라 말씀이 의미하는 그대로 바르게 이해하여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말씀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하기를 힘쓰는 자인가?
지혜로운 답변(12:15~17)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지를 묻는 것은 예수님을 진퇴양난에 빠뜨릴 수 있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만 하십니다.
이는 불의한 자들이 놓은 덫에 걸려들지 않는 현명한 답입니다. 사실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은 나눌 수가 없습니다.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하기 바라십니다. 가이사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을 사용하는 사람은 로마 제국에 속한 백성으로서 세금을 내야겠지만,
가이사가 원하는 대로 그를 신으로 숭배해서는 안 됩니다. 성도는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하든
세상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며,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이 데나리온의 형상을 확인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신 의도가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의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내 맘대로 사용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이것은 내 것이고 저것은 주님 것’이라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완악함이 제게는 없는지요?
재능, 재물, 시간 등 제게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며
제 욕심 버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 뜻대로 사용하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요약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상속자를 세우려고 7형제가 차례로 같은 여자를 아내로 취했다면
부활 때 그녀는 누구 아내냐고 질문합니다. 주님은 사람이 부활할 때는 결혼도 안 하고 천사들과 같으며,
하나님은 죽은 자가 아닌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답하십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부활이 없다는 사두개인(12:18~23)
바리새인에 이어서 사두개인이 질문합니다. 바리새인이 성경 해석에 몰두하는 것만큼이나 사두개인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일에 집착합니다. 특히모세 오경을 중시하며 그 안에 있는 내용만 믿음의 근거로 삼습니다.
그래서 모세 오경에 직접 나오지 않는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반면에 바리새인을 비롯한 다른 유대인은 부활을 믿고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부활에 대해 어떤 입장을 밝히시든 유대인의 어느 한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사두개인은 모세 오경 중 신명기 25장 5~6절에 기록된 ‘형사취수’(兄死娶嫂)
제도를 근거로 난해한 질문을 만들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 합니다.
질문하는 내용만큼, 질문하는 의도도 잘못된 것입니다.
- 묵상 질문: 사두개인이 예수님께 어려운 질문을 한 의도는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정말 궁금해서가 아니라, 상대에게 무안을 주거나 내 지식을 자랑하려고 어
떤 질문을 한 적이 있나요?
산 자의 하나님(12:24~27)
예수님은 부활의 개념을 잘못 이해하는 사두개인에게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지적하십니다. 그들이 성경을 제대로 알았다면 성경에 나오는 부활을 믿었을 것이고,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다면
전능하신 그분의 능력으로 부활이 가능함을 믿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두개인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모세 오경의 기록을 근거로 그들의 무지를 드러내십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신 것(출 3:6)은 그들이 육신의 죽음을 겪었지만
여전히 살아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죽은 자도 새롭게 다시 살리실 수 있는 전능자입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은 부활에 대한 사두개인의 잘못된 생각을 어떻게 바로잡아 주시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이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내게 어떤 위로와 소망을 주나요?
오늘의 기도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듣지 못해 기갈이 있는 이 시대를 불쌍히 여기소서.
말씀 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며 매일 QT를 통해
저와 이웃과 세상을 향한 주님 마음을 더 깊이 알아 가게 하소서.
이번에는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었다.(13)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은 사실 원수같이 생각하는 집단인데
예수님을 잡으려는 악한 일에는 원수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려고 하는구나.
착하고 선하고 좋은 일에는 우리편 네당 하면서 헐뜻고 싸우고 하면서
악하고 나쁜 일에는 일치하고 협력하는 것이 아이러니이다.
로마황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않습니까?(14)
우리가 바쳐야 합니까? 바치지 말아야 합니까?(15)라고 질문한다.
어느쪽으로 대답을 해도 예수님이 곤경에 빠지는 질문이다.
세금을 내어야 한다고 하면
로마의 통치 아래에 있는 유대인의 입장에서는 비애국자요 매국노라는 이야기를
바리새인으로 부터 듣게 되어 있고
세금을 내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
로마 황제를 대신해서 통치하고 있는 헤롯왕조를 지지하는 파당인
헤롯당에게 가이사에 대한 반역이라는 오해를 사게 되어 있는 질문이다.
이 모든 상황을 꽤뚫어 보시는 예수님이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라 하신다.(15)
그리고 초상과 글이 누구의 것이냐?(16) 라고 물으신다.
로마 황제 가이사의 것입니다(16) 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이 기가막히는 명답을 말씀해 주신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17)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 평소에 원수같이 지내던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가이사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의 문제로 찾아 왔었다.
예수님은 가아시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라는
명답을 말씀해 주셨다.
오늘은 또다른 종교적 정치적 권력 집단이였던 사두개인이 예수님께 와서 묻는다.(18)
사두개인은 내세와 부활을 믿지 않고, 영적인 세계와, 천사의 존재도 믿지 않는
지극히 현세적인 부유한 지도층 지배 계급이였다.
단지 모세오경만을 인정하는 지극히 현세적인 종파의 사람들이였다.
자신이 부활에 대해서 믿지를 않기 때문에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어서 예수님께 물어 본다.
질문의 근거는 모세의 율법이 기록된 신명기 25장 성경에서 찾아 온다.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거든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찌니라(19) 하셨는데
칠 형제가 있었는데(20) 일곱이 다 후사가 없이 죽었고(22)
최후에 여자도 죽었습니다.(22)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을 당하여 살아날 때에
그 중에 뉘 아내가 되리이까?(23)라고 소설을 쓰면서 질문을 했다.
참 황당한 질문이다.
예수님이 이 질문에 대하여 몇 가지 대답을 해 주신다.
1.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24)
2.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시집도 가지 않는다.(25)
3. 우리 몸은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아 진다.(25)
4.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못했느냐?(26)
5.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다.(27)
신앙에서 부활에 대해서는 양보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성경에는 수도 없을 만큼 부활에 대한 예언과 증언이 있다.
예수님 자신의 증언 뿐만이 아니라 수 많은 목격자의 증언이 있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완성이다.
성경되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활에 대하여 오해하는 무리가 있는 모양이다.
왜 그런가?
첫째는 성경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24)
힘써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을 알자.
둘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24)
힘써 하나님을 알자.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는데 방해되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혹시 부모와의 관계에서 왜곡으로 인해서 하나님에 대한 왜곡이 없게 하옵소서.
당신의 성품에 대하여 깊이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모르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는 모습이 있습니다.
주님의 깊은 사랑에 주님의 깊은 관심에 위탁합니다.
내가 바쁜 것 때문에 하나님도 바쁠거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신음소리에도 귀 기울려 주시는 주님, 흐르는 눈물도 보아 주시는 주님을 기억합니다.
요구해도 들어 주지 않으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회개하고 주님을 신뢰합니다. 주님을 의지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변치않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날마다 당신의 성품을 더욱 알아가게 하옵소서.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주님의 지혜와 그 사랑을 알고 깨닫는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주신 말씀으로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의 충만하심으로 세상을 이기며 담대한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의 백성들에게도 구원의 기쁜 소식이 전해지도록 인도하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도록
선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