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1세의 어두운 면을 까발려보자!
*특이한 역사 생각나는거 있으면 알려주세요!
*이렇게 글쓰는것도 재미나는군요 ㅎ
글재주가 없고 오타가 많으니 지적 많이해주시길
(간지나게 시작한다!)
서론-우리가 잘아는 리처드왕을 생각해보자.
주로 십자군전쟁영웅,기사도왕 등등
멋진 내용들이 많다.
로빈후드책에서도 리처드 1세는 멋지게 나온다,
물론 멋진왕이었던건 맞지만 그리 기사적이지는 않는다.
-리처드가 누구냐?-
부친:헨리 2세,잉글랜드 왕
모친:아키텐의 엘레아노르
생애:1157년 ~ 1199년
일단 그의 왕이 되기전 상황을 보면
왕비이자 모친인 엘레아노르가 헨리 2세에게서
배신감(헨리 2세는 엘레아노르말고 다른여자들을 더좋아했다{하렘!})을 느끼고 아들들을 부추겨서
반란을 유도시켰다.하지만 헨리 2세는 막강했고
엘레아노르는 도피하다가 잡히게된다.
모친이 잡히자 모친의 사랑을 가장 많이받은
리처드가 모친을 구하기위해서라는(효자?) 명목으로 지속적인 전쟁을 하게되고,결국 필리프 2세의 지원을 받은 리처드군에게 밀리던 헨리 2세는 믿던 존의 배신이 곂쳐서 결국 최후를 숲에서 쓸쓸히 맞히했다.
그리고 리처드는 아버지를 뒤를 이어 플랫지넛트 왕조 2대왕으로 즉위한다. 그리고 엘레아노르가 풀려났는데, 이 대단한 여장부 엘레아노르가 있었기에 리처드가 깽판을 쳐도 커버가 됬었다.
-3차 십자군 원정,사자가 날뛰다-
리처드 1세는 왕도 됬으니 목표는 하나였다.
바로 십자군원정군 수장이 되는것이다.
일단 아버지가 모은 재산과 직책을 팔고 돈을 모아
군대를 이끌고 필리프 2세와 같이 시실이에서 모여서 가게 된다.여기서부터 틀어진개
서로 선봉을 하겠다고 깽판을 쳐서 준비기간만 1년이 더늘어났다.어찌어찌하여 1191년,드디어 출발을 하게된다.
십자군연합은 소아시아를 거쳐서 아크레에서 집결
이슬람군을 격파했다.근데 여기서 필리프 2세는
병이 났고 현실주의자였던 필리프는 병을 핑계로 프랑스로 돌아간다(그리고 영국을 쳐때린다).
프랑스가 없어도 리처드는 잘해내갔다.
아르수프에서도 승리를 거두고 점령하고 요파에서도 승리를 쟁취했다.
하지만 예루살렘에는 가지못했고
리처드의 과격한행동은 연합체였던 십자군에
큰 타격을 줘버린다. 그런 일화를 보면 이러하다.
리처드는 전투에 앞서 기발한 제안을 했다.
적의 진지에 누가 먼저 깃발을 꽂을 수 있는지 내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리처드는 누구보다도 먼저 자신이 깃발을 꽂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전투가 시작되자 가장 먼저 깃발을 꽂은 사람은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5세였다. 당황한 리처드는 이에 승복하지 않고, 고지에 꽂힌 오스트리아 공의 깃발을 찢는 모욕을 감행했다. 이를 지켜보던 각국 지도자들은 리처드의 행동에 고개를 저었다. 더욱이 분노한 레오폴트 5세는 “언젠가 기회가 오면 반드시 복수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고국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렇게 개판이 되버린 연합군은 리처드가
예루살렘왕국의 왕을 자기의 부하인 뤼지냥을 세우려했으나,이미 연합군은 몬페라토의 코라도를 정해두었던 상황이였고,여기서 리처드가 코라도를 암살시키는데 이것이 들통났고 이사실에 분개한 제후들은 십자군을 포기하고 십자군은 와해됬다
리처드는 어떻게해서든 혼자서라도 예루살렘이 가고싶었고 1년간의 노력을 감행했으나....
이슬람에도 먼치킨인 살라딘이 리처드를 저지시킨다. (십자군을 겪으면서 사자심이라는 별명을 얻은 리처드를 상대한다는건 대단한거다)
결국 의미없는 싸움아 됬다는걸 안 리처드는
1192년 살라딘과 조약을 체결한다.
내용을 보면
-아크레와 그일대는 십자군이 계속 보유한다.
-기독교인의 성지순례를 허락한다.
이것으로 만족한 리처드는 3년간의 긴 여정을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가려했다.....
-갑작스러운 1년간의 구금-
배니스를 거쳐서 해로로 가려했던 리처드는 해로가 폭풍우로 막혔다는걸 알자 어쩔수없이 오스트리아 영지를 통과하기로 한다. 근데 오스트리아 공작 레오폴트 5세는 '깃발사건'으로 리처드를 싫어했었고 자기영지를 지난다는 소식에 부하들을 시켜서 도나우강인근에서 잡아버린다
(크킹에서 가장 짜증나는거중 하나)
레오폴트는 신롬황제 하인리히 6에게 리처드를 넘겼고 하인리히도 리처드의 행동에 기분이 좋지못했고 리처드를 이용해 프랑스지방 영향력도 늘릴참으로 15만 마르크(노르망디공작령을 만 마르크에 강매했다는걸 봐선..... ㅎㄷㄷ)라는
거대한 액수의 보석금을 요구하는데
이걸 모친 엘레아노르가 가서 돈주고 리처드를 풀어주었는데 15만 마르크라는 돈덕에 리처드는 거지가 됬고 존이 깽판을 친덕에 왕권도 약해진상태였다. 결국 왕권 강화를 위해서 썯던왕관 한번 더쓰고 위신을 올릴려고 프랑스로 나가서 존이 트롤한 영지를 되찾으려고 전쟁을 벌인다.
-프랑스와의 전쟁,그리고 가장 더러운 죽음-
4년간 필리프 2세를 괴롭히면서 천천히 빼앗긴 영토를 되찾아가던 리처드는 사소한 다툼이 생긴다.
리모주 자작의 영지에서 한 농부가 황금을 발견했다. 리처드가 자작에게 황금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요구하자 자작은 그의 요구를 묵살했다. 무시를 당한 리처드는 병사를 동원해 샬뤼에 있는 자작의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참 병사를 지휘하고 있던 리처드의 어깨에 화살이 박혔다. 리처드는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속해서 병사들을 지휘하여 성을 함락시켰다. 그러다가 어깨에 입은 상처가 악화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리처드는 1199년 4월 자신의 야전 막사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사망은 후대에 남긴 이름에 걸맞게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것이 아니고 하찮은 재물을 탐하다가 자초한 죽음이었다.
여기서 알수 있는건 십자군이나 프랑스전쟁이나
전투에서는 영웅일지 몰라도 그의 행적은 기사도랑은 거리가 멀다. 그는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서 나라는 생각도 안한채 전쟁을 계속해다녔고
비기사도적인 행동을 했음에도 그의 전투실적과
풍모등 그런 겉모습이 그를 커버하게 되고
후일애 쓰인 소설에서도 리처드를 미화시키면서
우리가 아는 리처드가 탄생한다.
이것이 어찌보면 우리가 자주말하는 역사왜곡이기도 하다. 어째건 리처드는 전사했고 그는 전쟁전쟁거리느라 아이가 없었고 왕위는
바보왕 존에게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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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음 역사에 관심있는 것은 물론 좋습니다만은 어떤 자료를 바탕으로 글을 쓰셨는지도 밝히시면 더욱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물에 대한 대략적인 일대기라면 몰라도 한 인물에 대한 재평가는 만만찮은 작업이 들어가는 부분이므로 당대 자료는 물론이고 근래의 학설 또한 같이 교차검증하며 서술하는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 리처드영웅미화는 조금 알려진사실이라서 가져왔습니다.
제가 본것으로도 리처드가 영웅으로 미화됬다 라고 설명하더군요.
물론 자료가 부족하지 않았을지 싶습니드
다음에는 제대로 어떤참고글인지
적겠습니다
3차 십자군....크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