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여름이었던 것 같네요... 공중전화 박스 옆에서 이천수라는 축구 선수 한 명을 보았습니다. 아는 형과 벤취에 앉아 담소를 나누던 중 그를 발견하고 제가 농담 삼아 그 형에게 얘기를 건넸죠.
"형, 이천수다. 싸인 좀 받아 오지?"
"그래? 근데 어디다가 받지?"
"형 이 티셔츠 안 비싼 거면 여기다 받아."
"뭐야... 아깝잖아."
"이럴 때 모험을 거는 거야. 혹시 알아 세계적인 선수로 커 나갈지?"
"그래?"
순진한 성격의 그 형은 이천수 선수에게 다가가서 싸인을 부탁했습니다. 선배로 보이는 듯한 한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던 이천수 선수는 싸인 요청을 굉장히 반가워 하며 어디다 싸인을 할 지 물어 보더군요. 그리고, 형이 티셔츠에 싸인을 해 달라고 하자 옆에 있는 형에게 싸인을 잘 할 수 있도록 티셔츠를 좀 잡아 달라고 부탁하면서 정성스레 싸인을 해 주었습니다. 형은 싸인을 받아 오면서 그러더군요...
"야, 근데 그 정도로 잘해?"
"아니... 미안해 형... 내가 좀 오버했지."
"뭐?"
"내가 요전에 몇 번 가서 공 차는 거도 직접 봤는데, 사람들 얘기하는 것 보다는 별로인 것 같더라구..."
"...."
"...."
적어도 그랬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당시의 이천수는 세계적인 선수로 커 나갈 거라는 기대를 가지게 하는 선수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수차례 훈련장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한 그의 모습은 예전에 소름 돋을 정도로 놀랄 만한 재능을 보여 준 윤정환 선수나 고종수 선수 같은 천재의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도의 재능은 그때까지 충분히 보아 왔으며 이미 그정도 기량을 가지고 대학 축구에 들어온 선수들이 그저 그런 선수가 되어 졸업하는 경우를 많이 겪어 왔기에 그 역시 그러한 선수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나 프로가 아닌 대학을 택한 그의 모습에서 몇 년 후 최태욱이라는 당대의 라이벌 공격수를 따라잡기 어려우리라는 예측 또한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딱 3년이 흘렀네요... 그 때도 햇볕이 따갑던 여름의 시작이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저의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죠. 지난 수년간 이천수라는 놀라운 선수의 발전을 보면서 저는 한 가지 잊고 있었던 사실을 계속해서 곱씹었습니다.
"천재는 99퍼센트의 땀과 1퍼센트의 영감으로 구성된다."
우리는 스포츠를 볼 때 항상 천재를 기다리곤 합니다.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실력으로 갑자기 나타나서 모든 것을 다 이루어 내는 영웅같은 존재들 말입니다. 우리가 꿈 속에서 원하던 플레이를 그라운드에서 보여주고, 승리라는 영광의 이름에서 찬란하게 빛나며, 부진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불운이라는 것만이 존재할 수 있는... 자신의 실력, 그 자체로는 어느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가 나타나 주기를 바랍니다.
우리 나라의 축구팬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차범근 같은 축구 선수가 언제쯤 다시 나올 수 있을까..."
그렇습니다. 항상 사람들은 스타를 기다리고, 그들은 자라나는 어린 선수들에게서 그 천재성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보여지는 재능에서 가능성을 찾고 다시 또 실망하고, 그리고 그가 천재가 되지 못한 이유를 다시 찾아나가는 지루한 과정을 반복합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내 눈으로 확인했던 엄청난 재능. 윤정환의 살아 움직이는 패스와 도저히 인간의 발이라고 볼 수 없는 고종수의 정확한 킥, 이관우의 볼 센스와 이동국의 날카로운 움직임. 항상 그들에게 기대하고 또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깨달은 것은 저의 욕심이었습니다. 항상 그들에게 천재가 되기만을 강요하고, 그렇지 못했을 때 아쉬워하는 저와 같은 팬들이 다시 그들에게 상처를 주고... 제 자신이 우습더군요. 천재에 목말라하는 모습이란... 언젠가 차붐과 같은 스타가 다시 나올 것이라는 환상은 내가 그들의 재능을 보고 너는 재능이 있으니까 천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때는 몰랐기 때문입니다.
1999년 저는 부평고등학교의 돌풍을 주도한 이천수와 최태욱이라는 두 명의 공격수의 플레이를 처음 보았습니다. 솔직히 당시 저의 느낌으로는 이천수라는 선수보다는 최태욱이라는 선수의 재능이 더 커다랗게 다가왔습니다. 이천수 선수보다 더 단단해 보이는 체구와 더 뛰어난 스피드... 적어도 천재가 되기에는 최태욱 선수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더욱 어울려 보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최태욱이 동료 박용호와 함께 안양으로 향할 때 홀로 고려대로 진학하는 이천수를 보며 솔직히 그의 발전에 대한 기대를 접었습니다. 대학 레벨에서 그는 최고의 선수로 활약했지만 눈에 띄는 기량의 발전을 보기란 힘들었습니다. 물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여러 선배들을 제치고 그라운드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자체가 그리 대단하게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경기를 자주 보긴 했지만 어차피 그가 그라운드에서 가장 잘 뛰는 선수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는 특별히 달라 보일 것이 없었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에도 이미 K리그에서 왠만한 경험을 다 치룬 고종수에 비해 적어도 기량에 있어서는 모자란 부분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해외 진출을 위해 이탈리아로 테스트를 받으러 가서 절반의 실패(?)를 거두고 오더니 울산으로의 입단을 결정했고, 2002년 월드컵이 다가오면서 그에게 히딩크와 함께 훈련할 기회들이 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그것은 하나의 기회에 불과했습니다. 왜냐하면 히딩크가 당시 이천수의 기량보다는 그의 가능성을 더욱 높게 산 부분이 다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를 국가 대표 레벨의 경기에서 볼 기회가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참 이상한 점은 한 경기, 한 경기를 볼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그의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더니 어느샌가 선발로 나오는 평가전이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까지 들어갔습니다. 이천수 선수의 기량은 2000년 당시의 그의 모습과 비교해 보았을 때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었고, 중요한 것은 그 발전이 하루가 다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에게 대학 무대를 벗어나 경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 그는 이미 그 경쟁을 즐기고 있었고, 거기서 이기기 위해 투쟁하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월드컵이 끝났을 때 그는 이미 국내 탑 클래스의 선수로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의 발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까지 제가 보아 온 선수 중 한 시즌동안 가장 커다란 폭의 기량 상승을 보이며 지난 시즌 K리그 최고의 신인으로 우뚝 섰습니다. 이미 수없는 베테랑 공격수들을 경험한 국내 수비수들도 그에게 농락당하기 시작했으며, 국가대표팀에서도 가장 중요한 공격 옵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마침내 천재를 보았습니다. 제가 포기했던 천재가 제 앞에 서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찢어진 눈매와 욕심 가득찬 얼굴, 거침 없이 뱉어내는 인터뷰와 과장된 폼잡기 등으로 인해 처음부터 곱게 보지는 않았던 그의 모습에서 저는 만들어져 가는 천재를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사실, 정말 천재는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더 강한 놈들의 우리에 던져졌을 때 살아남는 법을 이미 몸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근성, 그의 노력이었습니다.
이천수 선수의 근성과 오기에 대해서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합니다. 술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하지요. 실제 이천수 선수가 부평고에 입단했던 당시에 이천수 선수는 최태욱 선수나 박용호 선수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선수였다고 합니다. 키도 작았고, 무엇보다 이미 당대 중학 최고의 선수라고 할 수 있었던 최태욱이나 박용호에 비해서 이천수 선수의 기량이 모자랐다는 것이 주위의 얘기입니다. 감독 교체와 함께 이천수 선수에게 출전의 기회가 주어졌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사실 이천수 선수가 최태욱 선수만 보고 공을 찼고, 그러면서 실력이 늘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더 가슴에 와 닿더군요. 이천수 선수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이 점일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근성 말입니다. 주위의 선수들은 이러한 이천수 선수의 오기에 놀란다고 하더군요. 5대5 미니게임에서도 이천수 선수에게는 패배가 용납되지 않는다고 하니까요... 실제로 이러한 근성 때문에 생긴 일화들이 굉장히 많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부평고 임종헌 감독님한테 혼났던 날은 밤에 감독 욕을 하면서 공을 찼다는 둥, 미니게임에서 지면 악수도 안 한다는 둥, 고종수 선수가 신발 정리 시킨 거에 복수한다고 밤에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둥... 그렇지만 결국 죽어도 지고는 못사는 이천수 선수의 성격은 노력이라는 선물을 불러올 수 밖에 없었고, 그 속에서 그는 발전했습니다.
작년 아시안게임 태국과의 3-4위전에서 우승이 좌절된 선수들이 힘없이 뛰어다닐 때 이천수 선수는 경기장에서 동분 서주 뛰어 다니더군요. 그 때 느꼈습니다. 저 선수는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요...
사람들이 저에게 이천수가 어떤 점에서 뛰어나냐고 물어보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뛰어난 선수입니다. 스피드, 킥, 수비력, 체력, 타고난 볼센스와 경기를 읽는 시야까지... 하지만 그가 뛰어난 선수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의 타고난 근성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가진 근성은 그를 어디까지 발전시킬 수 있을 지 알 수 없는 무한한 에너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바로 그를 천재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요즘 저는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차범근이라는 선수가 가졌던 재능, 때맞추어 찾아 왔던 기회. 하지만 그만의 근성과 노력이 없었다면 그가 그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었을까요?
저는 지금 천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제 기회를 맞았습니다. 제가 그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는 그가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그보다 더 강해지려는 본능적인 근성을 가진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 강한 자들이 버티고 있는 곳에 그를 떠나 보내면서 행복한 웃음으로 이별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업그레이드 되서 돌아올 그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3년 전 공중 전화 박스에서 티셔츠에 싸인을 받을 때 형에게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혹시 알아 세계적인 선수로 커 나갈지?"
지금 같은 상황이 온다면 저는 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와는 다른 의미의 얘기가 되겠죠. 왜냐하면 이제 저는 유럽에서의 그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타고난 재능을 가진 축구 선수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만큼의 재능을 가진 선수들은 또 있습니다. 다만 그가 남들과 다르게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보다 뛰어난 집중력과 근성, 그리고 그것들이 뭉쳐진 열정과 노력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에게 축구 선수 이천수에 대한 신뢰를 만들었습니다.
천재는 99퍼센트의 땀과 1퍼센트의 영감으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그 노력으로 빚어지고 있는 또 한 명의 천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첫댓글 아직까진..최태욱이 더잘해요...그리고 이천수는 노력과 집념의 천재인것 같습니다..
ㅎㅎ 저님 최태욱은 개발입니다....올스타전때도 보셨다시피 센터링 개발이에여...그런크로스는처음입니다 글고 말도안돼는소리하지마세여 같은윙으로써 히딩크가 왜 이천수를 뽑아겠습니까?ㅎㅎ 왜 스폐인에서 데려가셨는지 아시나여? ㅎㅎ 스폐인이 아무나 가는데가 아닙니다!
선수비하하는말은하지마세요..ㅡㅡ 개발이라두..우리보단잘하니까요..
올스타전 가서봤는데 최태욱 진짜 잘했었습니다.... 그리고 멋진글 잘읽었습니다~~^^
솔직히 최태욱이 이천수를 앞선다는건 심하게 오바요.... 차라리 차두리가 낫겠네요... 경기장에서 당연 빠른선수가 잘해보이기도 하죠...
솔직히 이천수 스타일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축구팬의 입장으로서 그가 얼마나 더 성장해가는지 지켜보는 것도 큰 기쁨이라 할 수 있겠죠...어쨌든 꼭 라리가에서 성공하길...
젤 바보같은말.. 개발이라두 우리보단 잘하니깐요... 그럼 못하면 축구선수요?? 바보아냐... -_-;;
이천수 말만 안하면 좋은데
말만 안하면 몇년 뒤에는 피구 저리가라야-_- 그리고 최태욱이 잘하긴 해도 혀천수보다 잘한다는건 인정할수 없so
이천수가 최태욱 보다는 잘하는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