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길과 여행길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다녀오고.
인생에는 되돌아오는 길이 없습니다.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블레드 호수의 고요한 아침을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호수 위로 햇살이 번져갈 때, 그 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조금 전의 물결도, 그 위를 스쳐간 새 한 마리의 날갯짓도
다시는 같은 모습으로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처럼 말입니다.
되돌릴 수 없는 길
인생은 한 번 출발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기차와 같습니다.
살면서 수없이 다시...
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만,
사실 우리의 삶에는 되돌아오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뿐이고, 그 길 위에서
후회와 아쉬움, 그리고 그리움을 마주할 뿐입니다.
블레드 성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걸을 때,
처음 몇 발짝은 설렘으로 가득하지만
뒤돌아 내려오는 발걸음에는 묘한 슬픔이 스며듭니다.
올라가는 동안의 풍경과 마음가짐은
결코 다시 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텅 빈 가슴, 그리고 다시 채우는 일
여행 중에도, 인생에서도
가끔은 까닭 없이 뭔가 잃어버린 것만 같은 마음이 듭니다.
블레드 호수의 작은 섬, 성 마리아 교회 앞에서
울리던 종소리가 사라진 후 남은 적막처럼,
내 마음속도 텅 비어버린 듯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빈자리가 있기에 우리는 다시 채울 수 있습니다.
텅 빈 가슴에 새로운 사람, 새로운 풍경, 새로운 꿈을 담을 수 있는 것이죠.
여행은 그렇게 우리를 끊임없이 채워주고,
또 그만큼 비워내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빈손으로 떠나며 남길 것
갓 태어난 아기의 작은 손은 세상의 모든 것을 움켜쥐려 하지만,
마지막 길을 떠나는 이의 손은 고요히 펴져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결국 두고 가야만 하는 것이기에,
빈손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의 진실입니다.
블레드 호수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나의 여행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이 풍경을 있는 그대로 마음에 새기자.
그리고 내가 세상에 남길 것은
내가 움켜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건네준 작은 따뜻함이 되기를.
삶의 숨결 소리를 들으며
인생은 짧습니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또 다른 얼굴로 찾아오지만,
오늘의 나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 순간을 더욱 소중히 껴안아야 합니다.
블레드 호수를 천천히 도는 작은 보트를 타며,
나는 잔잔한 물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마치 누군가의 숨결처럼 느껴지는 그 물결은
삶이 나에게 속삭이는 듯했습니다.
되돌아올 수 없기에, 지금을 살아라.
그리고 떠날 때에는 빈손으로, 그러나 후회 없이 떠나라.
여행과 인생, 그리고 나
여행길은 인생길을 닮았습니다.
두 길 모두 가는 길만 있을 뿐, 돌아오는 길은 없습니다.
다만,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 기억이 내 안에 살아 있듯이
내 인생의 길에서도 누군가의 따뜻한 미소,
내가 남긴 작은 발자국이
다른 사람의 삶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나는 블레드 호수에서 작은 다짐을 했습니다.
더 베풀며 살자.
그리고 떠날 때, 내 마음 속 호수에는 따뜻한 파문만 남기자
그렇게 인생도, 여행도
되돌아올 수 없기에 더욱 아름다운 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