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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 조선사 연구회
 
 
 
카페 게시글
역사토론방(출처있는글) 고려(高麗) 국명의 근원은...궐리(闕里)일 듯 합니다...공자,노나라,훈누(흉노),주루친(녀진)과 관계가 많은 명칭입니다.
홍진영 추천 0 조회 492 11.01.27 02:10 댓글 1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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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1.27 11:24

    첫댓글 옛 국명(國名) 연구에 시간을 보내시는군요... 자료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11.01.27 11:29

    "궐리지"(闕里誌)는 1905년 을사년에 "목판본" 초판으로 발행되었다고 하는데... 목판본이 나오기 이전에 "필사본"이 있었나요? 궁금하네요...
    "동국궐리지"(東國闕里誌)라는 책도 있는데요... 똑같은 것을 가리키나요???

  • 11.01.27 11:42

    "동국궐리지"(東國闕里誌)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니까.....

    목판본. 2권 1책. 1839년(헌종 5년) 정조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공자의 방계후손 공명렬(孔明烈)이 편찬했다.
    궐리(闕里)는 중국 산둥성[山東省] 취푸[曲阜]에 있는 공자의 유지(遺址)이며, 동국궐리는 수원부(水原府) 화성(華城)에 있던 공자의 63세손 공서린(孔瑞麟)이 강학(講學)하던 곳이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 11.01.27 12:28

    1905년 "목판본"의 "궐리지"(闕里誌)의 경우에는.....

    충청북도 魯城에 있는 闕里祠의 沿革과 孔子와 관련된 기록들을 모아 편집한 책이다. 본서의 체제는 중국에서 편찬된 闕里祠의 체제를 따르고 있다.
    저자 李燮宰의 생몰년이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본서의 내용을 보면, <序文>에서는 "孔子의 祠堂인 闕里祠는 천하에 널리 있고, 조선에도 魯城과 華城 두 곳에 闕里祠가 있다"라고 하면서,
    孔子가 東夷의 지역에 살기를 원했고, 東夷는 곧 朝鮮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선에 闕里祠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출처=규장각한국학연구원]

  • 11.01.27 12:31

    여기서, 조선(朝鮮)의 노성(魯城)과 화성(華城)에도 궐리사(闕里祠)가 있다고 하네요.....
    노성(魯城)과 화성(華城)은 중원(中原) 대륙(大陸)의 지명(地名)인가요???

  • 11.01.27 15:00

    궐리(闕里)
    ① 중국 산동성(山東省) 서남부의 곡부현(曲阜縣)에 있는 공자(孔子)의 출생지로 그의 가묘(家廟), 사당(祠堂) 등이 있음. 공자의 사당을 뜻하기도 함.
    ② 공자(孔子)를 의미함.
    [출처=네이버 용어사전]

  • 11.01.27 15:05

    전교하기를, "천변(天變)이 자주 일므로 옥(獄)의 죄수들을 소방(疏放)하고 싶은데, 경(卿)들의 생각은 어떠한가?"하매,
    박원종(朴元宗)이 아뢰기를, "신 등이 의계(議啓)하려 하였는데, 이제 상교(上敎)를 듣고 보니 지당하십니다"하고,
    또한 <궐리지(闕里誌)>의 중국판(中國版) 8권을 올리며 아뢰기를,
    "신이 연경(燕京)에 갔을 때 구득한 것으로 공자(孔子)의 전후 사적을 실은 것인데, 우리 나라에는 없는 것이므로 올립니다"하니,
    털요[毛褥] 한 벌을 내리도록 명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우리 나라에 없는 책을 올리므로 하찮은 것이지만 상으로 주는 것이다"하였다.
    [출처=<조선왕조실록>, 중종 4년(1509년) 윤9월 25일]

  • 11.01.27 15:13

    경기(京畿) 유학(幼學) 김태식(金泰植) 등이 수원(水原) 궐리사(闕里祠)의 제사를 다시 복구할 것을 상소하니,
    비답하기를, "이미 철거한 이상 다시 세우는 것은 사체(事體)로 볼 때 온당치 못하다"하였다.
    [출처=<조선왕조실록>, 고종 21년(1884년) 2월 4일]

  • 11.01.27 15:17

    여기서, 수원(水原) 궐리사(闕里祠)는 곧 화성(華城) 궐리사(闕里祠)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 11.01.27 15:18

    노성(魯城) 유학(幼學) 김재정(金在正) 등이 노성(魯城) 궐리사(闕里祠)의 제향을 복구시키기를 상소하니,
    비답하기를, "이미 철거하였는데 다시 세운다면 어찌 사체(事體)에 어긋나지 않겠는가? 그대들은 물러가서 학업을 연마하라"하였다.
    [출처=<조선왕조실록>, 고종 21년(1884년) 2월 13일], [출처=http://sillok.history.go.kr/main/main.jsp]

  • 11.02.20 04:11

    우리말에 "결례를 범했습니다" 그러면 예의에 벗어난 짓을 했을때 입니다. 하지만 말을 자세히 보면...
    "결레"+범하다(침략하다)" 입니다. 즉 "결레"를 침략하면 나쁘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결례"라는 말이 그 어원은 홍진영님처럼 "궐례"로 보고, 이것은 고려라고 생각합니다.
    즉 대대로 "고려를 침략하는 것은 나쁜놈들이 하는 짓"이라는 것을 언어화 시킨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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