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오빠. 오빠와는 약속했었죠? 혹 제가 코지 씨를 만난다거나 코지 씨에 대해 알게 된 일이 있다면 제일 먼저 알려 주기로. 지금 그 약속을 지킵니다. 코지 씨는 아직 엔젤로써의 이름을 받지 않은 상태이겠죠? 아마 그의 두 번째 이름이 요한일 겁니다. 그러니 요한이란 자를 천당에서 아는 이가 없었던 거겠죠. 코지 씨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니까요. 하지만 코지 씨를 만나고 보니 저도 그가 누군가를 죽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그러니 코지 씨에게 가서 사실을 확인하세요. 그럼 라파엘 오빠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과연. 라파엘이 당황할 만도 하군.”
“그럴 수가.”
편지의 내용에 카타리나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그녀는 서둘러 그 옆에 있는 코지에게서 온 편지를 들어 읽기 시작했다.
‘라파엘. 난 지금부터 인간의 왕에게 메이시안을 공격하라고 전해야 한다. 그것이 나에게 주어진 명령이야. 이제는 돌이킬 수 없어. 그런데도 내가 왜 여기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쓰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많은 목숨이 사라질 거란 생각이 드니까 갑자기 망설여 져……. 라파엘……. 염치 없다는 건 알아……. 그렇지만……. 도와 줘…….’
“돌이킬 수 없다는 부분까지만 읽었던 거군. 그 바보는.”
“라파엘…….”
“그래서? 당신은 어떡할 거죠?”
침울해 있는 카타리나를 보며 고르만이 물었다.
“그렇게 물으셔도……. 역시 천당에 돌아가야 하려나…….”
“할 일 없으면 당분간 여기서 미카엘의 간호나 도와 주시죠?”
“역시 아직 안 일어난 건가요?”
“쉽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 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그 전에 할 일이 없다뇨! 제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데!”
“바쁘면 말고요.”
“아뇨! 할게요! 미카엘 방은요?”
“복도 맨 끝입니다.”
“약이나 잘 좀 지으세요! 참. 그리고 너희들 카이리한테 안부 좀 전해 줘.”
“네.”
제니와 제프가 동시에 대답하자 카타리나는 웃었고 그 옆의 고르만이 눈에 띄었는지 갑자기 정색을 하고는 문을 세게 열고 일부러 발에 힘을 주며 방에서 나갔다.
“너희는 어쩔 셈이냐?”
“키치 마을에 가야 해요.”
고르만이 묻자 제니가 답하였다.
“호? 거기서 합류하기로 한 거냐?”
“네.”
“그럼 서두르는 게 좋겠구나.”
“네?”
“그 근방은 메이지스트주의자들이 많은 곳이니 말이다.”
“그건 클로라 마을 부근이 아니었습니까?”
“맞다. 하지만 키치 마을까지도 퍼졌단 거다.”
“메이지스트주의자? 나쁜 거야?”
듣고 있던 제프가 물었다.
“너 바보야? 메이지스트주의자. 즉, 메이지스트 우월 주의자들이야. 그들은 메이지스트들을 우월한 종족이라고 생각하고 인간들을 철저히 배척해.”
“그게 왜? 아-”
“휴머니스트에겐 더 심해. 그들은 헤프를 매우 싫어한다고!”
“하지만 휴머니스트라는 걸 알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는 거 아냐?”
“한가지 있다. 종족을 구별 지을 수 있는 방법이.”
이번에는 고르만이 제프의 질문에 답하였다.
“뭔데요?”
“트랜스포터들이 다니는 통로. 우리는 다른 이름으로 익스클루시브, 줄여서 익스라고 부른다.”
“익스클루시브…….”
“그래. ‘전용’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메이지스트만이 그 통로를 이용할 수 있단 말이다.”
“하지만! 확실히 그렇다면 왜 저희가 인간의 위협을 걱정해야 하는 거죠? 메이시안으로 올 통로는 그 하나밖에 없잖아요!”
“메이지스트나 정령이 함께 있다면 인간의 피를 가진 자도 익스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럼 그 구별 짓는 방법이란…….”
“익스를 이용한 거다. 구조를 바꿔 메이시안에서 바로 다시 메이시안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서 그 통로를 통해 다시 돌아오는 자만을 메이지스트로 인정하는 거다.”
“만약……. 인간의 피를 가진 자가 홀로 익스에 들어가면 어떻게 됩니까?”
“죽는다.”
“당신은…….”
“이제 두 번째 만남인데 혹시 기억이 나?”
“두 번째?”
“성공한 건가. 그의 주문은…….”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기억을 봉인한 걸 말씀하시는 거에요?”
“알고 있었어?”
“고르만 씨가…….”
“고르만이?”
“네…….”
카이리는 천리 다리를 건너기 전 고르만과의 얘기를 떠올렸다.
“아버지를 아시는 건가요?”
“니 아버지를 모르는 자는 아마 없을 거다.”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워낙 인상 깊은 놈이었으니까.”
“어디서 만나셨는데요?”
“나와 그는 둘 다 엔젤이 되기 위한 기사단이었다.”
“아…….”
“난 처음에 그 놈이 싫었다. 우린 같은 검 부문이었는데 그는 1위였고 난 2위였지. 당시의 난 지는 것을 매우 싫어했었던 만큼 카인 또한 탐탁지 않았다.”
“당시에 왜요?”
“뭐. 빗나간 얘기지만 난 리어도아 가문의 핏줄이 아니다. 입양 되었지.”
“아…….”
“리어도아 가문의 진짜 아들이 아니었던 탓에 난 모든 면에서 이겨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 관념이 있었고 그래서 카인에게 화풀이를 했었단다.”
“화풀이요?”
“그래. 그를 시기하고 질투해서였지. 허나 우린 곧 친해 졌다.”
“어떻게요?”
“우린 봤거든. 사랑을 하는 자들을.”
“사랑?”
“그래. 그들의 행복한 표정을 우리는 보았다. 그리고 함께 천당에서 나왔지.”
“모든 걸 포기할 만큼 행복해 보였나요?”
“그래. 그들은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들이 누군데요?”
“미카엘과 네리나.”
“원장님 말씀이세요?”
“그래. 확실히 그렇게 되었지…….”
“…….”
“우리의 첫 임무였다. 미카엘을 데리고 오는 것. 아니. 당시의 그의 이름은 다이터였지. 미카엘이란 이름을 계승할 자로써 우린 그를 데려와야 했어.”
“아버지하고요?”
“그래. 그리고 거기서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았다. 우린 그들이 계속 행복했으면 좋겠단 생각에 임무를 버리고 천당을 나왔다.”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명령 위반은 곧 죽음이지. 본래는.”
“…….”
“하지만 카인의 성력은 뛰어 났고 당시의 그는 예언자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신관들이 갖고 있었기에 우리의 처분은 취소되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어요?”
“난 리어도아 가문으로 돌아가 힐러가 되기 위한 수련을 시작했다. 리어도아의 직계 후계자가 천당의 이름을 계승했거든.”
“네? 누군데요?”
“라파엘.”
“라파엘 오빠가…….”
“그렇기에 그 이후 카인과 다이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결국 다이터는 천당에 굴복하여 미카엘의 이름을 계승하였고 카인은 도망치듯 인간계로 갔다고 한다.”
“도망치 듯이요? 무엇으로부터요?”
“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허나 그는 나에게 마지막으로 편지 한 통을 남겼다. 거기에 그는 ‘운명으로부터 도망친다.’고 적었다.”
“운명…….”
“카인은 너의 기억을 봉인했다고 네리나가 그러더구나.”
“아버지께서……. 어째서죠?”
“글쎄다. 그가 말한 운명과 무슨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운명…….”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말해 두마 카이리.”
“네.”
“무슨 일이 있든 너가 어떤 사실을 알게 되든……. 그 둘은 너를 정말로 사랑했단다.”
“네. 알고 있어요. 잘 생각은 안 나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 속이 따뜻해 지는 걸요? 고맙습니다 고르만 씨.”
“고르만 말대로야. 그는 마지막 힘으로 너의 기억을 봉인했어.”
“어째서죠?”
“…….”
“알고 있는 거죠? 어째서 제 기억을!”
“너를 찾고 있는 자가 다 온 듯 하네.”
“네?”
“지금 넌 하고 있던 일이 있지 않아?”
“아……. 나중에……. 나중에 들려 주실 수 있나요?”
“…….”
“왜 아무도……. 말을 해 주지 않는 거에요……. 제 과거라고요!”
“카이리. 그만 가자. 키치 마을로.”
갑작스레 들려 오는 카나의 목소리에 카이리는 주저하는 듯 하다 키치 마을을 향해 뛰어갔다.
“나오지?”
정령의 말에 부스럭 거리며 알렉스가 모습을 보였다.
“카이리를 찾고 있는 것 아니었어?”
“키치 마을에서 만나기로 결정했어.”
“역시 들리는 거군? 내 목소리.”
“…….”
“계약하지 않겠어?”
“거절하겠어.”
“뭐?”
“당신과는 계약하지 않아.”
“코지!”
엄청난 바람과 함께 라파엘이 신의 땅이라 불려 지는 곳에 착륙하였다.
“라……. 라파엘!”
그를 알아본 몇몇의 엔젤들이 당황하여 뒷걸음쳤다.
“코지는. 코지는 어디 있어?”
“인간계로 벌써 떠났다.”
망토를 쓴 자가 나와 라파엘에게 말했다.
“뭐?”
“가 보겠느냐? 통로는 저기 열어 두었다만.”
“가겠어. 이 이상 니 놈들이 코지에게 손을 데는 건 용서치 않아!”
“풋. 마음대로 해보거라.”
라파엘은 그 자의 비웃음 섞인 말에 화가 나면서도 코지가 걱정되어 서둘러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