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2022. 12. 16. 금요일.
하루 내내 날씨는 영하권이라고 하는데도 낮에는 햇볕이 떴다.
햇볕이 나오면 덜 추운 것 같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추운 겨울철 1월 태생인데도 추위를 유난히 더 탔다.
지금도 손발이 냉혈이라서 무심코 손발을 스칠 적마다 나도 깜짝 놀란다.
* 특히나 잘 때 두 손을 아랫배에 올리면 왜그리 손이 차겁던지... 아랫배는 온기가 있어서 언 손을 녹인다.
이런 이유로(춥다는 핑게) 요즘 열흘이 넘도록 아파트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 채 방안에서만 맴돈다.
오늘도 방안에서 머물면서 컴퓨터를 켜서 사이버 세상에서 노닌다.
어제 쓴 일기를 퍼서 여기에 올린다.
글감으로 삼으려고....
빗돌에 한글로 새긴 이름은 하나뿐 ....
1.
오늘은 2022. 12. 15. 목요일.
오후에 하늘이 흐리고, 눈발이 날린다. 겨울이다.
'한자를 덜 쓰자'는 뜻으로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한 독자의 댓글이 연거푸 올랐다.
우리말에는 한자가 많이 들어 있기에 중국 한자말 없이는 언어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나는 맞다라고 수긍하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우리말과 우리글자가 100% 중국 한자말과 한자로만 되어 있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옛날 우리나라 글자(한글)가 없었을 때에는 중국 한자를 빌려서 글을 썼지만 세종대왕이 1443년에 만들고, 1446년에 널리 알린 훈민정음(한글)이 있기에 지금은 한자보다는 한글로 글을 쓴다.
나는 1960년 봄 초등학교 시절에 대전으로 전학을 갔다.
대전에서 알아주던 돌집손자, 돌집아들이었기에 나는 한문쟁이 영감들이 벼루에 먹을 갈아서 붓으로 한자를 써서 빗돌에 붙인 뒤에 쇠꼬챙이(정)로 글자를 쪼아서 글자를 새기는 것을 숱하게 보고 자랐다.
나는 수염이 긴 친할아버지한테 붙잡혀서, 말총갓을 쓰고 도포자락을 휘두르는 한문쟁이 영감한테서 붓으로 한자를 쓰는 법을 익혔다. 왜그리 어렵기만 한 붓글씨이었던지. 중학교 시절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나는 붓으로 쓰는 한자 공부를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나한테 강요하지 않았다.
내 고향 보령시에는 남포오석(藍浦烏石)이 나오는 곳이기에 수많은 돌공장이 있었다.
나도 숱하게 돌을 보면서 자랐다.
충남 보령시 남포면 용머리 앞바다에서는 바닷속에서는 썰물때마다 돌을 파 올려서 밀물 때에는 배에 실어서 육지로 나왔다.
쑥 빛깔이 나는 애석(艾石)이다. 지금은 바닷속에서 애석을 깨내지 않는다.
내륙지방으로 들어가면 가면 성주면 성주산 등이 나온다. 탄광지대이기에 검은 오석과 청석(靑石)이 숱하게 나온다.
2022년 지금도 오석을 캐낸다. 오석으로 빗돌을 만든다. 내 친척 인척들도 예전에는 석재산업에 일했고, 또 주변의 사람들도 엉청나게 많게 석공일을 했다.
나는 돌문화가 거리가 먼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자연스럽게 돌문화에서 멀어졌으며, 또한 중국 한자에서도 멀어졌다.
수십 년이 흘러간 뒤인 지금도 나는 이왕하면 어려운 중국 한자 대신에 우리나라 글자인 한글로 글을 쓰려고 한다.
현행 80,000개의 한자 가운데 과연 내가 몇 개나 알까? 별로 없을 게다.
구태여 알고 싶지도 않다.
하나의 예다.
오래 전.. 내 고향 외가가 있는 바닷가는 남포방조제로 바다를 막아서 논경지를 만들었다. 섬(최고운 유적지 : 보령시 남포면 월전리)이었던 곳이 육지로 드러났다.
그 섬에는 신라말 당나라 유학자인 고운 최치원에 대한 전설이 서린 곳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리는 빗돌을 세웠다. 당연히 찬조자의 이름도 별도의 빗돌에 새겼다. 나도 경주최씨의 후손이라서 찬조금을 냈고, 내 이름도 새겼다.
많은 이름 가운데 한글로 '된 이름은 오로지 하나. '최윤환'이다.
나 혼자만 한글로 썼고, 나머지 분들은 모두 한자로 새겼다.
한자 한문 실력이 없는 나로서는 한자로 된 이름들을 대부분 읽지 못한다.
한글을 아는 초등학생이라면 한자는 몰라도 한글로 쓴 '최윤환'만큼은 읽을 게다.
우리말과 우리글자가 있는데도 구태여 어려운 외국어로 말하고 글 써야 하는지는 의문스럽다.
나는 학교에서 영어를 배웠고, 영어시험이 있는 국가시험도 치뤘고, 영어가 필요로 해서 쉰살까지도 영어 관련 기관에 다니면서 공부하고, 또한 외국인과도 솰라솰라했다. 퇴직한 지 오래된 지금은 나는 영어를 거의 모른다., 사용하지 않기에.
어디 영어뿐이랴. 고등학교 대학시절에는 독일어도 배웠고, 대학시절에는 일본어도 3년간 익혔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 이런 외국어가 나한테 필요로 할까?
직장에 다닐 때에는 수출허가담당자였기에 외국어인 영어를 반드시 해야 했다.
하지만 보직을 바꿨고, 퇴직한 뒤 오래되는 지금에는 그저 우리말과 우리글이나 제대로 했으면 싶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날마다 인터넷 뉴스를 검색해서 한글로 쓴 뉴스를 읽고, 개인카페에서는 회원들이 올린 글을 읽는다.
물론 나도 자판기를 눌러서 한글로 생활글을 쓴다. 그냥 다다닥하면서 자판기를 누르면 한글로 된 글이 줄줄이 이어진다.
그만큼 나한테는 우리말과 우리글이 익숙하다는 뜻이다.
우리 삶을 우리말과 우리글자로 쓰고 싶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는 생각으로 우리 것을 더 많이 존중하며 사랑했으면 싶다.
또한 한국적인 것을 외국으로 전파하고, 더 많이 수출했으면 싶다. 우리 문화이기에.
잠시 쉰다.
한꺼번에 다다닥했다.
오탈자는 나중에 고쳐야 할 듯.
1.
오후에 모르는 핸드폰 문자가 왔다. 전호번호 앞 숫자로서는 내 고향 지역의 전화번호이다.
아내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거니 충남 보령지방 국세청이다. 2022년 부동산 종합세는12월 31일까지 납기 기한이란다. 지방국세청에서 서울로 고지서를 보내면 이를 받아서 은행에 납부해야겠다.
나는 세금을 많이 내자는 생각을 지녔다.
그만큼 재산이 많아야 하고, 국가와 정부는 그 세금으로 국가와 사회에 관한 정책을 보다 안전하게, 골고루 운영할 게다.
나 역시 다달이 연금을 받고 살아야 하기에 국가재정이 든든했으면 싶다.
* 올해 지방국세청에서 우수 납세자에 대한 상품권 추천에 나도 당첨되어서 지방상품권 10만원어치를 받았다.
보령시 웅천농협 마트에서 식자재를 사서 잘 먹었다.
내 주소지는 시골에 있다.
텃밭농사를 짓다가 함께 살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참 처자식이 있는 서울로 올라왔더니만 매사가 불편하다.
하나의 예다. 시골 주소지로 우편물이 배달되기에...
이런 폐단을 알기에 시골 읍내에서 사는 사촌동생이 이따금씩 나한테 고향 소식을 알려주기에 그나마 다행이다.
다시 내려가고 싶다.
또다시 시골마을에서 살고 싶다.
마을회관을 둘러싼 텃밭 세 자리에 가득 찬 키 큰 나무들을 얼추 베어내서 정리하고는 키 작은 나무와 꽃을 피우는 작은 풀 종류를 키우고 싶다.
나는 건달 농사꾼, 엉터리 농사꾼, 새내기 농사꾼이 되어서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싶다. 내가 농사를 다시 짓는다면 대부분은 산약초, 화초들일 게다.
꽃나무 묘목도 사서 심고....
서낭댕이 앞 선산에도 둥굴레 등 야생화를 잔뜩 심고 싶다.
둥굴레 뿌리는 맛있는 반찬이 되고, 끓여서 먹으면 달콤한 차가 된다.
산말랭이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면 멀리서도 보이는 대천해수욕장, 원산도....이하 섬들이 줄줄이 이어질 게다.
갯바람도 넘어오고....
1.
아침에 아파트 방과 거실을 빗자루로 쓸고, 물걸레질을 한 뒤에 수돗가에서 고구마를 씻었다.
찬물에 씻었더니만 손이 무척이나 시렵다.
그래도 고구마를 삶아서 먹고 싶은 생각으로 꾹 참았다.
오후에 고구마를 삶아서 쪘다.
가스렌지 불을 켠 뒤 23분간 지켜보았다.
젓가락으로 콕콕 쑤셔서 고구마가 얼마쯤 삶아졌는지를 확인했고,
덜 익었는데도 불을 껐다. 냄비 안의 뜨거운 수증기로 고구마를 더 삶을 수 있기에.
고구마는 뜨거웠을 때 먹는 것이 가장 맛이 있다.
수십 년 전인 그 옛날.
어머니는 뒷방에 생고구마를 가득 채웠다. 트럭으로 실어나를 만큼 많은 고구마.
나중에 커다란 트럭으로 고구마를 팔던 엄니가 생각이 난다.
시골집 부엌 아궁이에 장작을 괘고서 잿불에 고구마를 구워먹던 시절이 이제는 꿈만 같다.
아련한 꿈처럼.....
시골집 울안에는 휘날리는 눈보라.
부엌 안에서 고구마를 구워서 먹으면서 추위를 잊었는데....
지금도 값이 싸면서도 맛있는 고구마.
서울 송파구 잠실새마을시장에서 조금씩 사서 먹는다.
2022. 12. 15. 목요일.
첫댓글
서예는 확실히 한자 사용이 멋졌어요
획을 돌리고 점을 찍고 아주 예술적 인 것 같아요
군고구마 굽는 맥반석 통을 볼 수 없어요
겨울에 한번씩 사 먹곤 했는데요.....
고작 군고구마 사 먹던 추억도 없어지나 봅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붓글씨...
제 초등학교 시절에는... 돌집손자였기에 할아버지 방에는 붓으로 비문을 쓰는 영감탱이들을 숱하게 보았지요.
저도 쇠망치로 쇠못을 때려서 돌팍에 한문 글자를 새겼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고요.
한자를 많이 알 것 현실이었는데도 저는 그냥 우리말이나 제대로 하려고 하지요. 지금도...
한번 말싸움하면? 결코 만만하지는 않을 겁니다. 왜 우리말로 우리글자로 내 생각대로 나타내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울까유?
저 사실은 당뇨병환자인데도 고구마를 무척이나 좋아하지요.
값이 허름하면서 맛이 있고, 뱃속도 든든하니까요.
한글을 사랑하는 최 선생님의 마음과
내 마음과는 일맥상통하구요.
성실히 세금을 내겠다는 마음도
2021년 경기도지사로부터 성실납세자증을 받은 저하고
비스므리하구요.
꽃에 관한 시(봄까치꽃, 민들레, 제비꽃, 원추리꽃, 할미꽃, 토끼풀, 이름도 모르는 풀꽃 등)를 쓰는 저와 야생화를 사랑하는
최 선생님의 마름과도 통하네요.
찐 고구마, 군 고구마를 즐겨 먹는 것도 저하고
같습니다.
최 선생님!
댓글 고맙습니다.
부지런한 박 선생님은..... 경기도지사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군요.
그만큼 몸을 움직이어서 돈을 벌 수 있고, 그 돈이 넉넉하기에 국가와 정부에 세금을 내서 사회가 잘 돌아가게끔 하시는군요.
저도 세금 듬뿍 냈으면 싶습니다.
하늘만큼..
그럴라면 몸이 건강해야 되는데... 자꾸만 등허리가 굽혀지고, 공연히 힘이 빠지는 늙은이가 되어서...
저는 그냥 값이 싸면서도 맛이 있고, 배가 든든한 음식물이면 좋습니다.
이 세상에 맛있는 음식물 종류는 아마도 사람 숫자만큼이나 많다고 봅니다.
세계인구 80억 명이니 음식종류도 80억 개는 될 겁니다.
그 가운데 조금만 제 입맛에 맞고, 제 주머니 사정에 알맞는 음식물이 최고일 겁니다. 저한테는
값이 싸면서도 함께 먹고 마시는 분위기만 좋다면 이게 최고이지요.
네~~지난간 일기 참 재미 있어요.
댓글 고맙습니다.
저한테는 그냥 일기이지요.
그냥 다다닥하면서 자판기를 누르면 그게 글이기에...
항상 장문의 글로 글 좋아 하는 회원님들 즐겁게 해주시는 윤환님 건강 돌보시면서 집필하시길요.
댓글 고맙습니다.
그냥 아무것이나 다다닥....
세종대왕이 1446년에 세상에 널리 알린 훈민정음(한글)이 있기에 그냥 아무것이나 보면서 다다닥하고 글 쓰면(컴퓨터 자판기를 누르면) 되니까요.
글감은 온천지에 가득 찼대요.
예...
건강에 더욱 조심해야겠습니다.
비린내 생선류는 입에 안 대고, 푸성귀만 먹으려고 하니까 이게 걱정이지요.
어린시절에는 서해 갯바다, 강 인근에 살아서 갯것, 생선류를 제법 먹었는데도 제 체질에는 텃밭, 산에서 나오는 푸성귀가 훨씬 좋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