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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마리아.
♧ 영희의 간증 - 내가 노래를 지었어요, 한 번 들어보실래요 ♧
영희는 남편을 청부살인하고
수 차례에 걸쳐 시어머니마저 살해하려고 했던 여자 사형수 였다.
내가 서울 구치소에 처음으로 발령을 받아 왔을 때,
신우회원들 중에서 누군가가
‘여사(女舍)에 수용되어 있는 사형수 중에
영희를 꼭 만나서 신앙 상담을 해달라’
는 부탁을 했다.
그 회원은 영희라는 이 죄수가
구치소 안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성령 충만한 삶을 살고 있으며
신앙에 대한 열심히 누구보다 특심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는 설명을 곁들여 가면서 극구 칭찬을 했다.
여사 사무실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영희는 나이에 비해 참 앳되 보였다.
단발머리를 한 채 내 앞에 앉아 있는 얼굴이 너무 밝아서
사형수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언제부터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꺼 ?”
“살인죄로 체포되어 처음 성동구치소에 수용되었을 때였어요.
끔찍한 죄를 짓고 붙잡혀 들어와 있으니 모든 것이 절망뿐이었지요.
그래서 자나 깨나 ‘죽어 버려야겠다’ 는 생각뿐이었답니다.
그러니 직원님들 속을 얼마나 썩였겠어요 ?”
생글거리던 얼굴이 조금 심각한 표정으로 변한다.
“그 곳에 김정자 부장님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아마 예전에 하나님을 믿었나 본데,
그 당시에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으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도 그분이 늘 제게 관심을 가지고 위로해 주시곤 했는데,
제가 기회만 생기면 자살하려고 하는 것을 눈치 채신 듯했어요.”
“아, 김정자 주임.... 나도 잘 압니더. 이젠 승진을 해서 주임이 됐습니더.”
김 주임을 나도 잘 안다니까 금새 신명이 난 영희는 달변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식구통으로 성경책을 한 권 불쑥 넣어 주시면서
‘영희야, 너 이거 읽어보고 정신차려.
쓸 데 없는 생각은 아예 버려야 한다. 알았지 ?’
하고는 제 손을 잡고 토닥이시는 거예요.”
“........”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넘겼어요.
그딴 성경책, 읽어보나마나 다 그렇고 그런 소리 쓰여 있을 텐데 ....
오로지 제 관심은 ‘어떻게 죽어 버리나’ 하는 것밖에 없었거든요.”
“자살하려는 시도는 해봤습니꺼 ?”
영희가 까르르 웃었다.
나는 내가 말을 잘못 했나 싶어 흠칫했다.
“근데요, 장로님. 자살한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구요.
마음은 분명히 독하게 먹었는데
막상 죽으려니까 왜 그리 걸리는 게 많은지.
‘내일 죽자!’ 하고 하루가 지나가고
‘내일은 틀림 없다!’ 하고 또 하루가 지나가고....
나중엔 제가 생각해도 참 우습더라구요.”
또 까르르 웃는다.
전혀 가식 없는 표정과 웃음이었다.
“어느 날인가, 허탈한 마음으로 방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았다가
문득 성경책을 집어 들었어요.
그런데..... 그 성경책을 집어들고 펼치는 순간,
어디선가 강렬한 삶의 욕구가 치밀어 오르는 거예요 !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손에 땀이 줄줄 흐르도록 성경책을 꽉 잡고 참 많이도 울었어요.”
조금 전까지 밝게 웃던 그녀의 눈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나는 눈을 어디에 고정시킬지 몰라 당황해 하며
영희의 어깨 너머에 있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찬 겨울 바람이 앙상한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내 가슴 속에는 화로같이 뜨거운 감사가 피어났다.
“그때부터 정말 신명나게 성경을 읽었어요.
죽으려고 마음 먹었던 여자가 무엇을 못하겠어요 ?
하나님께서 은혜를 쏟아부어 주시는데 감당을 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저는 특별한 은사를 받았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그 날 부를 찬송가를 정하면 종일토록 그 찬송만 불렀지요.
하루 종일 한 찬송을 200번에서 300번 정도 부르는 거예요.
그러면 정말 놀라운 일이 생겼어요.
찬송가의 가사와 곡조 하나하나가 기막힌 은혜로 저를 감싸오는 거예요.
저는 찬송부르는 내내 울곤 했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크게 깨닫게 하시는지 !
성경을 읽을 때도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걸 알고 난 후부턴
성경책에 ‘사랑’ 이라는 말만 나와도 그냥 울어댔어요.”
“나는 장로지만 영희 자매가 부럽습니더. 우짜믄 그렇게 큰 은혜를 받았습니꺼 ?”
“그뿐이 아니랍니다. 저는 은혜를 많이 받아서 노래도 만들었어요.
곡은 일반 찬양 곡조를 빌었고 가사는 제가 지었지요.
구치소에 들어오는 아줌마들이나 아가씨들은
거의가 화투나 히로뽕 같은 걸 많이 해요.
그래서 그분들을 위해서 노랠 지었지요.
장로님도 한번 들어 보실래요 ?”
갑자기 노래를 들어보겠느냐는 말에 얼떨떨했다.
여자 교도관들이 업무를 보고 있는 여사 사무실에서 갑자기 노래를 하겠다고 하니
머리 속이 얼른 교통정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사에 근무하는 고참 주임을 쳐다보니
괜찮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친근한 눈빛을 보냈다.
“그라믄 어디 한번 들어 보입시더.”
영희가 마주 앉았던 소파에서 일어서더니
조금의 부끄러움이나 주저함도 없이 양손을 가슴께에 올리고
박자에 맞추어 몸을 좌우로 흔들어댄다.
단발한 생머리가 고갯짓을 따라 찰랑찰랑 물결처럼 춤을 춘다.
영희는 노래를 시작했다.
우리 이제 고스톱을 끊어요 (차차차)
캬바레도 끊어요 (차차차)
히로뽕도 끊어요 (차차차)
사이사이 자기 입으로 반주까지 넣어가며
고스톱 치는 모습, 캬바레에서 춤추는 모습,
주사기로 팔뚝에 마약을 맞는 모습까지 흉내내 가면서
발랄하게 춤을 추어댄다.
영희가 춤추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이 여자가 남편을 청부살해하고 시어머니까지 죽이려 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온몸으로 율동하며 노래하는 그녀를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이 바라보며 친밀한 미소를 보내는 것으로 보아
평소에도 귀여움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노래를 부르면 온 방 사람들이 다 울어요."
‘사형선고를 받은 사형수도 저렇게 밝고 희망차게 사는데 우린 이게 뭔가 ?’
하는 생각들이 드나 봐요.
그래서 이 노래가 참 인기에요.
우리나라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도
제가 이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하면
펑펑 울면서 저를 끌어안고 난리를 피운답니다.
성령님께서 그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는 것 같아요.“
그랬다.
정말 성령님께서 영희의 율동과 노래에 임하셨고,
영희의 모든 것과 함께 계셨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여사를 나왔다.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시려고 오셨다는 주님의 음성이
서울구치소 위에서 쩌렁쩌렁 울려나오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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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영희가 지금 사형장으로 올라와 내 앞에 앉아 있다.
조용히 눈을 감은 채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으로....
인정심문이 끝났다.
종교행사를 가지겠느냐는 소장님의 질문에
“네”
하고 짧게 대답하고는 앉은 자세를 고쳐
예배가 끝날 때까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유언을 남기겠습니까 ?”
소장님이 묻자 영희는 고개를 들고
소장님과 단상 위의 사람들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사랑과 긍휼이 가득 담긴 눈빛이었다.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은 수많은 언어들을 쏟아붓는 듯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속히 임하셔서
다시는 저처럼 악한 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없어지고,
이와 같은 무서운 형벌도 사라지는 날이 속히 오기를
하늘나라에 가서도 기도하겠습니다.
악한 사탄에게 속아
이런 엄청남 죄를 저지른 죄인을 용서해주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제가 이 땅을 떠나면,
제 어린 남매는
아버지와 엄마를 다 잃어버린 천애 고아가 되고 말겠지요.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의 어린 것들을 잘 키워주실 줄 믿고
저는 하나님 나라로 갑니다.
제 어린 남매를 생각해서
제가 가진 것들을 전부 가난한 영아원에 보냈으면 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차분한 어조로 유언을 마친 영희의 눈가에 물기가 번졌다.
“영희 자매님, 힘내요. 할렐루야 !”
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내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영희의 눈이 반가움으로 커졌다.
워낙 큰 눈망울이 더 아름답게 보였다.
잠시 나를 바라보던 영희가 큰소리로 외쳤다.
“장로님, 마지막으로 기도 한번 해주세요 !”
영희가 단상을 마주보고 앉아 있었으므로
나는 부득불 단상을 뒤로 한 채 기도해야 했다.
나는 땀에 젖은 두 손을 맞잡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딸이 오늘 짧은 인생속에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죄악으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다다랐으나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죄 사함의 은총을 내리시고....”
그때 갑자기 영희가 큰소리로 다시 외쳤다.
“장로님! 제 머리에 안수해서 기도해 주세요.”
순간 당황했다.
지금까지 누구의 머리에 손을 얹고
정식으로 안수기도를 해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뒷자리에 앉아 계시던 목사님께서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시며
‘그렇게 하라’는 사인을 보내셨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영희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이제 잠시 후면 이 세상에서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사람,
비록 구원받아 하늘나라로 들어가겠지만,
그 전까지는 여자의 몸으로 두려운 현실을 감당해야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인간적인 애처로움이 컸다.
그래서 내 손은 더 떨려왔고 가슴은 떨리는 손보다 더 후들거렸다.
기도를 시작하기도 전에
눈물이 그녀의 정수리 위에 두두둑 떨어져 내렸다.
“하나님. 사랑하는 딸이 주 안에서 얻은 .....”
그 때였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강한 말씀이 솟구쳐 올라왔다.
‘돌아서라 ! 돌아서서 기도하라 !’
저 먼 청송 땅에서 나를 만나주신 주님께서는
긴박한 순간마다 어김없이 내면 깊은 곳에서 성령으로 말씀해 주셨고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그 주님이 지금 사형장 안에서의 이 절박한 순간에
변함없는 은혜를 베푸신 것이다.
‘그렇다. 돌아서서 기도하자.’
나는 영희의 머리에 손을 얹은 채 180도 방향을 바꾸어 섰다.
조금 전까지는 단상이 내 등 뒤에 있고 밧줄이 앞쪽에 있었지만,
이제 돌아서고 나니
밧줄이 내 등 뒤로 가고
나는 영희의 등 쪽에 서서 단상을 정면으로 보고 서게 되었다.
그 상태 그대로 눈을 감은 채 기도했다.
“하나님!”
‘하나님’ 이라는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뜨겁고도 강한 바람 같은 것이
입을 통해서 내 안으로 태산같이 밀려 들어왔고
불 같은 기도의 욕구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위도 깨뜨릴 듯한 담대한 마음이 솟구쳤다.
나는 목청을 다해 기도를 계속했다.
“하나님 ! 사랑하는 이 딸은 살인이라는 엄청난 죄악으로 인하여
이 곳에서 사형의 형벌을 받습니다만,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우리 모두는
이 딸이 지은 죄보다 더 무섭고 큰 죄악들을 가슴에 품고도
그럴 듯한 얼굴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닌지요 !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 절박한 순간에
진정한 죄가 과연 무엇인지
우리 모두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
지금까지 이렇게 크고 담대하게 기도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기도라기보다는 차라리 절규였다.
나는 한 손은 영희의 머리에 얹고
다른 한 손은 앞으로 쑥 내밀어 단상을 향해 마구 흔들고 있었다.
“하나님! 이 사형장에서 누가 더 큰 죄인인가를 깨닫기를 원합니다.
들킨 죄인과 들키지 않은 죄인의 차이일 뿐입니다.
주여 ! 우리 모두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
눈물이 범벅된 채로 기도하던 중에
문득 현실적인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야, 이거 큰 일 났대이. 완전히 괘씸죄에 걸려들겠구마,
저 앞에 앉아 계신 상관들을 향해
우리 모두가 이 사형수와 똑같은 중죄인이라고 고함을 질러댔으니...”
그래도 어쩌랴.
기왕에 시작한 것이고, 더구나 성령님께 붙잡혀 순종했을 따름인데,
오히려 더 배짱이 두둑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뒤이어 놀라운 평화와 기쁨이 나의 영혼을 뒤덮어왔다.
마침내 기도를 마친 후,
단상의 지휘관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런데
단상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내는 그분들의 얼굴에는
비록 겸연쩍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으나
숙연한 감정들을 감추지는 못했다.
세월이 지난 후인 지금도 나는 그 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하나님의 영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그토록 강력하게 감동케하시고
영광을 받으신 일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을까.
그것도 사형장에서 !
영희는 그토록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을 남기고 갔다.
복사꽃같이 해말간 웃음을 남긴 채.....
천박한 인간의 애증에 끼어든 사탄의 간교함에
눈이 멀어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졌으나
지옥의 벼랑 끝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영광의 하늘로 인도하신 하나님이 영희의 아버지가 되셨으므로
우리는 그녀의 목매달림에도 초연할 수가 있었다.
오히려 감사하며 하나님께 노래하고 또 노래 할 뿐이었다.
영희가 하루에도 수 백 번씩 찬송을 부르며 만났던 하나님께.
( 박효진 장로님 간증집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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