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지방에 사는 50대 남성이 서울의 한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적이 있었다. 자살의 흔적은 없었다. 돌연사로 추정됐다. 사망 원인을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 단서는 으레 그렇듯 쓰레기통에서 나왔다. 거기서 뜯어진 '비아그라' 포장지가 발견됐다. 그 남성은 오랜만에 서울의 들뜬 모임에 나섰다가 비아그라를 입에 털어 넣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황망한 종말을 맞았다. 허망한 세일즈맨의 죽음이다. 그는 평소에 심장질환을 앓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연말이 되면 비뇨기과 진료실에는 발기부전 치료제를 대량으로 처방해 달라는 '환자'들이 는다. 이들은 예상과 달리 싱싱한 회사원들이다. 의사들이 왜 이리 많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영업 활동을 위한 '선물용'이라고 속내를 털어놓는 '환자'들도 있단다.
중·장년 남성들이 모이는 송년회 장소에서 각종 발기부전 치료제가 단골 경품 메뉴로 떠오른 지 오래다. '비아그라'가 '연말연시 의약품'이 된 것인가. 평소에 신세 진 사람들에게 기운 내시라고 드리는 것이겠지만, 이는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선물이 독약이 될 수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는 의사 진찰을 받고, 먹어도 되는지 확인받고 복용하는 약이다. 평소에 그런 과정을 거쳐 약을 먹던 사람이라면 그나마 괜찮다. 문제는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무심코 약을 집어든 경우다. 한국인은 자기 혈압이 얼마인지 모르고 지내는 사람이 많다. 심장병이 있어도 미처 발견 안 된 '잠재 환자'도 꽤 있다. 심장질환으로 복용하는 약이 어떤 성분인지 숙지하지 못한 이들도 꽤 된다. 그래서 '경품 당첨 비아그라'가 위험한 것이다.
발기부전 치료제가 그림의 떡인 경우가 여럿 있다. 혈압이 매우 높거나, 혈압약을 먹어도 고혈압이 조절되지 않는 사람이 그렇다. '비아그라'는 혈관을 확장시키는 효과를 낸다. 장기간 고혈압 상태로 뇌와 심장 기능을 유지했던 사람이 이 약으로 혈압이 크게 떨어지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협심증 치료제를 복용하는 환자는 대부분 금기대상이다. 심장약의 질산염 성분 등이 '발기제'와 상승 작용을 일으켜 급속한 저혈압을 유발하는 탓이다. 만약 '비아그라' 복용 후 협심증이나 급성 심근경색 증세가 왔다면, 치료제로 질산염 계열 약물을 쓰는 것은 매우 위험하므로 의사에게 반드시 '비아그라' 복용 사실을 알려야 한다.
'비아그라'의 등장은 인류의 문화를 바꿔놨다. 고개 숙인 장년의 성(性) 담론을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려세웠고, 애꿎은 물개의 희생을 줄여놨다. 성범죄 가능 요건에 대한 법적 기준이 바뀌었으며, 노인 성병 증가도 초래했다. 한편에선 성교 중심의 '마초(macho)' 성문화를 더욱 단단하게 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어떤 이들은 남성의 인생을 '약전'(藥前) 세대와 '약후'(藥後) 세대로 나눈다. 이 거룩한 약물을 불경스럽게 경품으로 뿌려서야 하겠는가.
카페 게시글
게시글 본문내용
|
다음검색
댓글
검색 옵션 선택상자
댓글내용선택됨
옵션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