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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란
1. 직지의 명칭
청주 흥덕사에서 1377년에 금속활자로 간행한 책의 이름은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이 책의 이름을 줄여서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 「직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주최한 ’책’ 전시회에 「직지심경」이라 소개되면서 한때 잘못 불리기도 하였다.
불교에서 ’경(經)’은 불교경전을 뜻하는 것이다. 이 책은 엄밀한 의미에서 불경이 아니므로 「직지심경」은 잘못된 표현이다. 여기에서는 판심제에 나타나는 가장 간략한 책의 이름으로 「직지」라고 부른다.
2. 직지의 편저자
「직지」를 편저한 백운화상의 호는 백운이고, 법명은 경한(景閑, 1298∼1374)이다. 백운은 1298년(충열왕 24)에 전라북도 정읍에서 출생하였다. 1351년(충정왕 3, 54세) 5월에 중국 호주의 석옥선사에게 불법을 구하였다. 석옥선사로부터 「불조직지심체요절」 1권을 전해 받고 불도를 닦아, 1353년(공민왕 2, 56세) 정월에 마음을 밝혀 불도를 체득하였다. 또한 백운은 인도의 고승 지공화상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 후에 황해도 해주의 안국사와 신광사 등에서 주지를 지내고, 후진 양성에 힘쓰다 1372년(공민왕 21, 75세)에 성불산 성불사에서 145가(家)의 법어를 가려 상·하 두권으로 「직지」를 편집하여 저술하였으며, 1374년(공민왕 23, 77세)에 여주 취암사에서 입적하셨다.
3. 직지의 체제와 내용
「직지」의 체제는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흥덕사에서 간행된 금속활자본은 현재 상권은 전하지 않고, 하권 1책(총 38장)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전하고 있다. 취암사에서 간행된 「직지」 목판본은 상·하권이 완전한 1책으로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및 영광 불갑사에 소장하고 있다. 금속활자본만으로는 알 수 없는 체제나 내용을 목판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직지」는 석옥선사가 전해준 「불조직지심체요절」에 「선문염송」과 「치문경훈」 등에서 그 내용을 보완하고 과거 7불과 인도 28조사, 중국 110선사 등 145가의 법어를 가려 뽑아 307편에 이르는 게·송·찬·가·명·서·법어·문답 등을 수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선사로는 유일하게 신라 대령선사가 하권에 수록되어 있다. 「직지」의 중심 주제는 <직지심체>로 <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불도를 깨닫는 명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참선을 통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르게 볼 때, 그 마음의 본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4. 직지를 간행한 사람
「직지」를 1377년에 청주목 밖에 있는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하여 배포하는데 연화문인 석찬, 달잠, 시주 비구니 묘덕이라는 간행 기록이 있다. 석찬은 「백운화상어록」 상·하권을 모아서 기록한 백운화상의 수행비서격인 시자였다. 특히 비구니 묘덕은 흥덕사 금속활자본과 취암사 목판본의 「직지」 간행에 모두 관여한 인물이다. 석찬과 달잠은 모두 백운화상의 제자로서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펴기 위해 묘덕의 시주를 받아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직지」를 간행하게 되었다.
5. 직지의 프랑스 소장 경위
「직지」는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소장되어 있다. 그 경위는 1886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후 초대 주한대리공사로 부임한 꼴랭 드 쁠랑시(Collin de Plancy, 1853∼1922)가 우리나라에 근무하면서 고서 및 각종 문화재를 수집하였는데, 그 속에 「직지」가 포함되었던 것이다. 「직지」의 수집경로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으나,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 1865∼1935)이 1901년에 저술한 「조선서지」의 보유판에 게재된 것으로 보아 1900년경에는 이미 수집되었으며, 1911년 드루오호텔에서 경매되었다. 쁠랑시가 우리나라에서 수집해간 대부분의 고서는 모교인 동양어학교에 기증하였다. 그러나 금속활자본 「직지」는 앙리 베베르(Henri Vever, 1854∼1943)가 180프랑에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가, 1950년경에 그의 유언에 따라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증되었다.
6. 직지의 재발견
「직지」는 1901년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 1865∼1935)이 저술한 「조선서지」보유판에 수록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실물과 내용은 확인되지 않다가 1972년 "세계 도서의 해(International Book Year)"를 기념하기 위한 ’책’ 전시회에 출품됨으로써 세계에 주목을 받게 되었다. 「직지」의 간행 장소인 청주 흥덕사도 1985년 청주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됨으로써 오늘날의 청주 흥덕구 운천동 866번지임이 확인되었다. 이를 계기로 1986년 충청북도 주최로 열린 <청주 흥덕사지 학술회의>를 통해 흥덕사가 학계에 인정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1992년에는 흥덕사 터의 정비와 함께 청주고인쇄박물관을 개관하였다. 2000년에는 「직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2000청주인쇄출판박람회"를 개최하였으며, 200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직지」를 등재시킴으로써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공인 받게 되었다.
내가 한국에 있을때
직지문화연구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2001년 유네스코지정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으나
청주에서 찍었다는 기록은 있으나
원본이 한국에 없고 35000여자의
금속활자도 하나도 발견이 되지않았고
직지를찍었다는 흥덕사지도
분명치 않다.
문제는 그 원본이되는
필사본을
직지의 편저자인 백운화상이
절강성 호주지방에서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고
백운화상이 10년이상
양자강 주변에서 수행하였다는
기록이 백운화상어록에
나와있다.
도대체
직지와 중국대륙과는
무슨관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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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인본이 있다는건 진본이 있었다는 증거아니겠습니까? 거기부터 우리의 할 일인거 같습니다. 도울 일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직지심체요절의 필사본은 절강성 호주지역에서 가져왔습니다.~~
절강성 호주지역은 중국최초의 붓을 만든 고향이고 조선전기까지 안평대군에게
까지 영향을 끼친 조맹부선생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직지의 판본이 조먕부선생의 서체의 영향을 받았다고합니다~~
절강성 호주지역을 방문하고 나서 깜짝놀랐습니다.~~
멋진 도시였습니다.~~
도울일은 앞으로 제가 올리는 글을 유심히 보시면 중국을 이해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되실 것이고
직지를 찾는데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