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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CRYSTAL님
주 안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님은 요한복음 3장 1-15절에서 예수께서 니고데모와 가진 대화에서의 한 부분인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에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에서의 ‘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 이것에 대한 몇 가지 견해인 ‘세례’(침례)인가?, 아니면 ‘말씀’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가? 라고 말입니다.
님이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된 것은, 이 '물'과 관련하여서 말해지고 있는 여러 견해, 곧 세례, 말씀, 기타의 견해가 있음으로 인해서 그 혼란함으로 말미암아 도대체 어느 것이 올바른 것이며, 맞는 것인지를 알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리오니 님이 궁금해 하는 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님이 말한 바와 같이 이 ‘물’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세 가지의 견해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씩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는, 물과 성령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라고 보아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중생케 한다는 견해입니다. 이렇게 ‘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는 새 것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 이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생각과 사상,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심어주어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한다는(렘 32:39-41; 겔 36:26), 곧 하나님은 사람이 거듭나는 일을 자신의 도≪道 ; 하나님의 말씀, 또는 진리의 복음≫를 우리 마음 안에 심어주어서 하신다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 근거로는 사도 베드로가 한 말을 듭니다.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벧전 2:23).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마음에 심어 거듭나게 하시는 일은 성령의 주권적 사역에 의해서 되어지므로, 그래서 성령으로 나는 거듭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마음에 심어 그 말씀에 순종케 하심에 의해서 하시는 일이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는 견해를 갖습니다. 이 견해에 의하면,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으며”,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의 진리를 좇아서 성령으로 다시 태어남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으며 또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라는 이해를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에서의 ‘물’을 ‘세례’라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렇게 물을 세례라고 보는 것은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에게서 일어나는 것인데 이는 성령으로 나는 것인 ‘성령세례’로 되어지는 것으로 이것을 보여주는 표징(표적)의 역할을 하는 것이 세례요한이 행한 ‘물세례’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물’이 ‘성령’과 대비적으로 말씀되어지고 있는 것은 성령이 하시는 사역이 이것의 표징인 ‘물세례’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거듭나기 이전의 사람인 옛사람, 곧 육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에서입니다. 육에서 난 것은 육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처음 사람의 육을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난 것인 영으로 새로 태어나게 하여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게 하신다고 이해합니다. 이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일인 표징인 물로 세례를 베푸심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날마다 있는 것이며, 그래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것에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게 하시는 생명의 출생을 날마다 겪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물’을 ‘세례’라고 이해하는 견해를 갖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에서의 ’물‘을 구약성경에서 종종 그랬듯이 내면적 정결케 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타락한 부패한 죄를 씻어 정결케 함으로 새생명을 소유케 하시는 사역은 성령이 하신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랬을 때에 ’물‘과 ’성령의 관계를 ‘물 그리고 성령’으로의 각각 독립적인 것으로가 아닌 ‘물, 곧 성령’으로 이해합니다. 그것은 ‘물과 성령으로’에서 사용되고 있는 접속사에 해당하는 ‘~과’는 주로 ‘그리고’에 해당하나, 여기서는 ‘곧’의 의미로 쓰여진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랬을 때에 ‘물’과 ‘성령’을 대등한 것으로, 또는 동의적 개념으로의 의미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출생의 신적 집행자는 성령이신데, 성령께서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일을 죄 씻음의 사역에 의해서, 그래서 죄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생명에 대해서는 산 자가 되게 하신 것에서 이해하는 견해를 갖습니다.
이러한 견해에 있어서 어느 것이나 그 이해의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방적으로 어느 것의 견해를 무시할 것은 아닙니다. ‘중생’의 교리를 이야기할 때 세 가지 견해 모두를 가지고 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요한복음 3:1-15에서의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에서의 ‘그 물’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에서는 중생의 교리의 근거로 삼을 수 있는 성경 구절 모두를 가지고 모두다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이 본문에서 예수께서 말씀해주시고자 하신 그 의도에서의 의미 파악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첫 번째의 견해는 중생의 교리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성령의 사역과의 관계성에서 사도 베드로가 그가 쓴 베드로전서와의 연관에서 설명해 나갈 수는 있습니다만, 요한복음 3장에서의 예수께서 니고데모와 가진 대화에서는 그 지지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가 한 말에서의 의도인 중생의 수단으로써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서 ‘물’을 예수께서 사용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두 견해에서 어느 하나일텐데, 사실 두 번째의 견해와 마지막 견해는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견해가 아닌 같은 이해를 가진 것으로 그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예수께서 니고데모와 가진 대화의 내용으로 가 보아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물’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말은 그냥 ‘물’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만, 성경 원문에서 이 말이 사용되고 있는 유래를 보면요 ‘비오다’는 말에서 쓰였습니다. 특히 이 말은 ‘소나기 비’, 그러니까 소나기성의 비가 오는, 소나기처럼 마치 물 붓듯이 부으신 것에 의한 ‘물’이라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이러한 물로 관련하여서 성경에서 말씀되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것은 ‘성령’을 주실 것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서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요엘 2:28-29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神)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神)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신(神), 곧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그들이 이것이 임함으로 인한 복을 누릴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인데 그것은 32절에서 보게 되는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신약 시대에 오순절 날에 있은 성령강림 직후 사도 베드로에 의해서 성령 강림 예언 성취로 증거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될 것과 관련하여 다시 태어날 것, 곧 거듭나야 할 것의 가르침으로 주신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에서의 ‘물’은 요엘서의 성령 강림 예언의 근거에 의해서 말씀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요엘 선지자에게 예언하게 하신 하나님의 신이신 성령을 소나기 비 오게 하듯이 그렇게 하늘에서 물 부으시듯이 쏟아 부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난 모든 각 사람에게 성령의 임하심이 있으며, 그래서 그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물과 성령으로’는 ‘물, 곧 성령으로’라고 봄이 옳아 보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예수의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세례, 그러니까 예수께서 성령으로 베푸시는 세례인 ‘성령세례’를 의미합니다.
그랬을 때에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에서 ‘물’을 ‘세례’로 보는 견해는 예수께서 성령으로 베푸실 세례인 성령세례의 표징(표적)으로서 이며, 그래서 “물과 성령”은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이 경우 ‘물세례’가 의미하는 바를 세례요한이 물세례를 베풀었던 의미에서 보게 됩니다. 그것은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 12)가 의미하는 바인, 자신의 뒤에 오시는 그리스도에 의해서 죄에 쏟아지는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의 심판이 있을 것이기에 세례요한은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단지 물로 세례를 주는 것에서 그 사실을 증거할 수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세례요한이 증거한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큰 능력의 임하심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 성취에 의해서 마치 소나기 비를 쏟아 부어주시듯이 하여 몸 전체로 받게 하시는데 이는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자신과 ‘연합’시킴으로써 하십니다. 이것이 세례의 본질적 의미인데 예수님은 그렇게 된 그들을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린 피에로 이끌고 가서 자신과 함께 죄에 대해서는 못 박힌 자가 되게 하여 죽고 하나님의 생명에 대해서는 산 자로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임하심에 있게 하십니다.
그렇다고 하면, 이 경우에서 “물과 성령으로”를 ‘물 그리고 성령으로’라고 보더라도 이것에서 말하게 되는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각각의 독립적인 것이 아니고 ‘물’과 ‘성령’이 서로 연관된 상관성의 관계에서 ‘하나의 세례’에서 다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없다”에서의 또 다른 견해인 ‘물’을 ‘내면적 정결케 함’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도 이것(물을 세례로 보는 견해)과 사실상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안에 부른 자들의 타락한 부패한 죄를 씻어 정결케 함으로 새생명을 소유케 하시는 성령의 사역이라고 보는 것으로 ‘세례’의 의미 안에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제 요한복음 3:1-15 본문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시며 또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에서 ‘물’이 과연 어떤 의미에서 말씀되어진 것인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인류의 구속을 위한 공생애를 갈릴리에서 시작하시는 것으로 그리스도이신 모습을 처음 나타내셨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으며(요 2:1-11), 유월절에 절기를 맞이하여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성전을 정화하시면서 자신이 행하실 메시야 권능의 표적을 증거 하셨습니다(요 2:13-22). 그리고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계시면서 자신을 나타내셔서 증거 하시는 표적으로서 많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많은 사람은 예수님의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표적을 행하신 그 능력을 보고-예수님의 이름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서 단지 표적을 행한 그 능력만 보고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이해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서 얼마 안 있어 예수님을 부인하여 버리고 떠나게 될 것이라는 그들의 마음, 곧 인간의 본성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요 2:23-24).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 또 하나의 중요한 사역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관원이기도 했습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파에 속한 유대인 지도자-산헤드린 공의회의 회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그 동안 행하신 표적을 보고 자기와 몇몇의 동료 바리새인들이 깊이 생각하여 결론 내린 판단을 예수님께 말하고 또한 궁금한 것인 예수님으로부터 예수님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자 해서였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와 한 이야기는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표적을 행하신 것을 보고선 자신들은 표적으로 행해진 기이하고 놀라운 능력 자체나 나타난 현상만을 본 것이 아니라 그 표적에서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하시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표적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니 필연적으로 표적을 행하신 예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생님<선지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하나님이 보내신 선생님으로서 무슨 일을 하시고 계시는 것인지, 선생님이 행하신 표적이 어떤 진리를 말씀하여 주고자 하는 것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행하신 표적을 보았지만 그것을 보고서 예수님께 나아와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진리를 받아 믿으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6:26)라고 지적하신 적도 있듯이 행해진 표적에 의해 나타난 육적인 혜택을 입고자 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표적을 보고서 표적을 행하셨을 때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자기들<유대인>의 선생, 곧 선지자로 보내셨을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라는 의문의 궁금증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어 무엇인가를 자신들에게 말씀해 주고자 하는 어떤 계시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자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고 그와 함께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인 하나님 나라에 대해 말씀의 시작을 끄집어내신 것입니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참으로 난감해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의 질문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습니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듭나야 한다”는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니고데모가 지금까지 알고 있어 온 것은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은 모태에서입니다. 어머니의 복중에 잉태하여 있다가 출생하는 것이 사람의 태어남입니다. 그래서 니고데모가 알고 있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있는 유대인은 그렇게 해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들에게서는 공식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사람이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유대인으로 있는 것으로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듭나야 한다'는 의도는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는 것에서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은 위로부터 오는 '물과 성령으로' 있게 될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니고데모와 그리고 그를 존경하며 따르는 유대인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잘못된 ‘천국관’(天國觀)을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의 질문에 ‘거듭남’과 ‘하나님 나라’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물과 성령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듭나지 않으면, 곧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에서의 ‘물과 성령’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듭난다’는 것과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과는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를 보며, 그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오직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보며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며,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사람은 바람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으나 바람 부는 소리는 듣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성령의 주권적 능력으로서 되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입니다. 바람은 온 사방에서 임의로 붑니다. 그 바람이 부는 것을 사람은 그 소리를 들어서 압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서 불어오는 것이며 또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런 신비한 것이지만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큰 능력이 작용되고 있습니다. 그처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성령의 주권적 능력에 의해서 되어지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해주시는 것에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육에서 난 육의 사람에게서 있는 일이 아니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영적인 사람에게서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듭나는 것은 성령에 관한 문제이지 니고데모가 생각하고 있는 대로 육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물과 성령으로의 거듭남은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들어가는 것은 전혀 기이한 일이 아닙니다(참조 요1:12-13). 하지만 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참으로 기이히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도무지 그 신비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아직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듭남의 진리, 곧 하나님 나라와 거듭남의 관계가 다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다시 질문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일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거 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 증거를 받지 아니하는 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라고 하면 예수님이 지금까지 니고데모에게 해 준 말씀을 통해서 메시야가 하시는 일을 이해하여야 할 것이며, 그래서 메시야가 자신의 나라, 곧 하나님 나라를 자기 백성에게 세워 나가시는 일을 하시기 위해 어떤 일을 당하실 것인지에로 관심의 초점이 가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하늘 일로서 하늘에서 내려 온 자를 통해서만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민수기 21:9에 있는 놋뱀 사건을 들어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는 말씀을 들어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하실 것인가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서 하시는 말씀이 이것입니다.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세상을 구원하려고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생명의 빛입니다. 그런데 그를 믿지 않는 것은 빛보다는 어두움을 더욱 사랑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그들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하나님의 의)를 좇는 자는 빛으로 나아갑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행하고 있으심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십니다.
그런데 장대에 달려 높이 들려진 놋뱀과 같이 예수께서도 십자가에 달려 높이 들려지는 일을 당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일을 통해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에 있는 자마다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에서의 ‘물’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해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물과 성령으로’라야 되어지는 것임을 말씀하시면서, 이것을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시면서 이를 성령의 주권적 사역으로 설명해 나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며, 이것은 땅의 일이 아닌 하늘의 일이라고 하시면서 장대에 달린 놋뱀 사건을 들어서 예수께서도 높이 들려야 할 것이라고 하며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내용의 전개에서 ‘물’을 독자적으로 말씀하신 바가 없으며, ‘물과 성령으로’ 말씀하셨고, 이것은 ‘물’과 ‘성령’ 각각이 지닌 독립적인 의미에서가 아닌 ‘물과 성령’을 하나로 해서 이것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거듭남의 진리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물과 성령’은 ‘성령’ 하나의 용어로 말씀되고 있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에서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또는 ‘성령으로 난 사람’으로 말입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여기서의 예수님이 말씀하신 ‘물’의 의미는 이와 함께 말씀하신 ‘성령’에 의하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물’ 그 자체로서는 독자적인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이라는 말이 있음으로 해서 ‘물’이라는 말이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에서의 ‘물과 성령’은 ‘물 곧 성령’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랬을 때에 ‘물’은 비로소 의미를 지니며 또한 ‘물’이 지니는 의미는 구약성경에서의 예언에 의한 연관성에서 비로소 살아납니다. 그것은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하나님의 신(神)을 부어주시겠다고 한 표현인 “내가 …부어주리니”(욜 2:28)가 하나님께서 물을 쏟아 붓듯이 붓는 것을 의미하는 것에서 하나님의 신, 곧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께로부터 물이 끊이지 않고 쏟아져 내리는 것과 같이 계속해서 주어질 것인데, 이것이 만민에게<모든 육체에> 부어져 그들에게 임함으로 하나님의 신(영)이신 성령께서 그들을 거듭나게 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에서 볼 때도 ‘물’은 곧 ‘성령(의 부어주심)’과 가장 잘 부합됩니다.
해서 말입니다. 요한복음 3:5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에서의 ‘물’이 본문에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있어서는, 다시 말해서 요한복음 3:5에서의 ‘물’이 본문의 내용에서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서는 그 직접적인 답변은 ‘성령’, 또는 ‘성령의 부어주심(성령세례)’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 ‘물’이 지닌 의미가 본문의 내용과의 연관에서 무엇인지를 말할 수 있는가 할 때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시는 일은 구약 예언에 의해서 있는 일인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심(성령세례)으로 성령께서 임하여 거듭나게 하시는 주권적 사역에 의해서 되어지며 이것에서 일어나게 되는 성령의 사역이 있는 사실에서 볼 때 앞에서 언급한 여러 견해에서 보게 되는 ‘세례’와 함께 ‘이것(세례)이 하는 일’의 설명을 수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구약 예언의 성취로 있게 될 예수님이 베푸시는 성령세례에 의해서 모든 믿는 자들의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과 한몸이 됨으로써 그분으로부터 공급되는 믿음의 은혜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로 믿어 죄 사함을 얻고 영생을 얻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나라를 보며 그분과 함께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모두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주의 진리의 말씀이 님과 함께 하며,
그래서 님이 진리 안에 있으며,
진리와 함께 기동(起動)하실 것을,
그리고
주 안에서 평안하실 것을 빕니다.
첫댓글 목사님의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한다는 질문의 답변을통하여
많은 양식으로 다가옴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사랑하사
하나님의 천국백성을 만들고 세우시려고 이처럼 사랑해주신 하나님
아버지앞에 경배를드리며 또 감사하며 우리 모두에게 함께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능력이 함께하시며 항상 주님안에서 평안하십시오
원어성경에는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많은 신학자들의 성경해석과 주석들은 어떻게 설명하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목사님의 답글 감사합니다...주님의 사랑에 다시 한번 감격과 감동이 다가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