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드레이크의 항해경로
프란시스 드레이크 경(Sir Francis Drake,c.1540 - 1596)은
지구를 일주한 최초의 영국인이자 해적이었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탐험가들에게는 그 업적외에 또한
어두운 면이 가끔 있다는 사실은 쉽게 잊혀진다.
드레이크는 데본(Devon)에서 태어나 일찌기 뱃생활을 시작하여
기니(Guinea)와 서인도 제도를 항해하였다.
1567년에는 그의 친척인 죤 호킨스(John Hawkins)의 노예선단을
지휘하였으나 1568년 귀항 도중에 멕시코에서 스페인 함대의
습격으로 거액의 이익금과 3척을 제외한 나머지 선박들을
잃어버렸다.
약탈당한 재화들을 만회해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힌 드레이크는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사략(私掠)허가증(privateer's license)을
받고 1572년에 출항하였다.
그는 카리브해상의 파나마 지협(Panama Isthmus)에서 처음으로
성공적인 대약탈을 하였고, 그 곳에서 그는 태평양을 목격한
최초의 영국인이 되었다.
그는 많은 부와 명성을 가지고 영국으로 돌아왔다.
1577년에는 스페인 소유의 신세계 태평양 연안으로 향하면서
영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남아메리카 남단의 마젤란 해협
(the Straits of Magellan)을 통과했다.
이 시기쯤에 그는 그의 배의 선명을 골든 힌드(Golden Hind)호로
변경하였다.
태평양에서 그의 선단은 강력한 폭풍을 만나서 한척은 파괴되었고
다른 한척은 영국으로 회항하였지만 드레이크의 배는 홀로 북쪽으로
계속 항해하였다.
그는 오늘날의 워싱턴주(Washington state)까지 올라갔으나
대서양으로 넘어가는 항로는 찾을 수 없어서 태평양쪽으로
향하였다.
그는 몰루카스(Moluccas), 셀레베스(Celebes), 자바(Java)와
희망봉(Cape of Good Hope)을 거쳐서 진기한 보물들과 함께
지구를 일주한 최초의 영국인이라는 영예를 가지고 1580년 11월에
영국으로 돌아왔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해적 드레이크의 인도를 요구하는 스페인과의
관계 악화를 두려워하여 드레이크의 업적들을 인정하는데
소극적이었지만 그것으로 스페인을 달랠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영국인들의 여망에 부응해서 여왕이 직접 골든 힌드호에 승선해서
드레이크에게 기사 작위(Sir)를 서임하였다.
1585년에는 서인도 제도와 플로리다 해안의 스페인령 도시들을
약탈하였다.
귀국 항해시에는 감자, 담배와 함께, 캐롤라이나 해안 바깥 쪽에 있는
로우노크(Roanoke) 섬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던 이주민들을 태웠다.
1587년에 드레이크는 스페인의 카디즈(Cadiz)항으로 가서 영국과의
해전에 대비하기 위해 집결중이던 30척의 스페인 선박들을 파괴하였으며
1588년에는 영국 함대의 부제독(vice admiral)이 되어 스페인의
무적함대(the Armada)를 격파하였다.
1595년에 호킨스와 함께한 그의 마지막 항해는 서인도 제도 쪽이었다.
이 때 스페인은 그의 약탈에 대비해서 전투태세를 갖추었으며
그의 모험은 재앙이 되었다.
드레이크는 포르토벨로(Portobelo) 외항에서 이질에 걸려
1596년 초에 죽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mysterius/80013841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