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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참담한 실상
1. BBC 기자의 '북한 잠입 취재기
2. 북한경제 실상과 향후전망
3. 북한 경제 참담한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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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BC 기자의 '북한 잠입 취재기
BBC 기자의 '북한 잠입 취재' 직접 보니…
촬영팀이 찍은 북한 시내의 단조로운 모습 인상적
존 스위니 "북한이 군사대국이란 말 실감 안 났다
201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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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북한경제 실상과 향후전망
-자력에 의한 회생 불가와 외부지원에 의한 변화 가능성-
경제학 박사 신 승 철, 한양대 교수/국방부 정책자문위원
Ⅰ. 쇠퇴과정과 그 원인
북한경제는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한국경제에 뒤지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침체상태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80년대의 쇠퇴과정을 거쳐 90년대에는 경제 후퇴가 가속화되어 왔다.
경제 쇠퇴의 근본원인은 사회주의 자체가 갖고 있는 체제상의 결함이나 모순 또는 김일성 주체사상이 갖고 있는 정책상의 과오나 과욕에 있었다.
사회주의의 기본원리는 다음 도표와 같다.
공급(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해 계획적이고 정책적인 과도한 목표를 설정해 놓고 수요(소비)는 생존선상에서 억제시키는 평등한 배급제도를 택하여 왔다. 일의 성과와는 관계없이 똑같은 몫이 돌아오기 때문에 열심히 일할 아무런 유인(誘因)이 없었다. 그저 무사안일주의적으로 모험도 없고 보상도 바라지 않는(no risk, no reward) 그러한 사회에서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타율적으로 움직이는 기계적인 인간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모든 생산수단은 국·공유이며 사유는 인정되지 않으며 심지어는 직업선택의 자유도 없고 적성이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배치되는 곳에서 일만 하도록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자급자족적인 폐쇄사회 내에서 자력갱생만을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사회주의는 전체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켜야만 했고 인간의 본능적 욕구마저 억압함으로써 삶의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사회였었다.
특히 북한은 한국에 뒤지기 시작하자 뒤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엄청난 무리수를 두기 시작하였다. 대내적으로는 각종 대형 이벤트(event) 사업을 전개하여 막대한 물자와 인원을 동원하면서 외화를 낭비하였고 대외적으로도 UN외교를 위해 군소 약소국가들을 지원하는 국력의 소모가 엄청났었다.
이와 같이 경제가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의해 운영되어 왔으며 90년대에 들어와서는 NPT 탈퇴와 핵개발사업 전개 그리고 화생방무기 생산이나 미사일 개발·발사 실험 등 군사논리로까지 확대 운영되어 왔다. 또한 계속되는 수해와 냉해 또는 가뭄으로 식량난이 가중되었고 김일성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정정(政情)의 불안사태가 표출되기에 이르렀다.
북한경제의 쇠퇴 또는 후퇴는 체제상의 모순이나 정책상의 결함으로 야기되었으나 또한 인재(人災)와 천재(天災)에 의한 복합적인 요인의 산물이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남북한 간의 분단의 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Ⅱ. 경제실상과 운영실태
북한경제의 규모는 한국과 대비하여 GNP상으로 80년대에는 1:5였으나 ’90년 초에는 1:12로 반감하였고 90년대 말에도 또다시 반감하여 1:25라는 엄청난 격차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격차는 앞으로 더욱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경제의 실상은 다음 표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1)
북한경제는 부족(shortage)현상과 낮은 수준(low-level) 그리고 열악한 상태(worst standard)라는 3중적인 낙후상태로 인하여 경제상태가 침체에서 쇠퇴로 그리고 후퇴의 길을 내닫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북한 정권의 특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 정권은 정치적으로 강성대국(强盛大國)을, 경제적으로는 중화학공업 우선 육성을, 그리고 군사적으로는 핵전력화를 기도하고 있다. 말하자면 한 손으로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의 정치체제가 일당일가(一黨一家)의 독재정치이며 가부장적인 왕조의 성격을 띤 신정체제(神政體制)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이다.
북한경제의 운영주체는 형식상으로는 정무원(政務院)에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정무원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며 당(黨)과 군(軍) 그리고 김정일의 39호실(편집자 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의 대외자금 관리부서)이 그 운영주체이다.
당은 5호 관리소라는 기관을 통하여 독자적인 농장과 기업을 운영하면서 당간부(nomenklatura)들의 호화생활을 뒷받침하여왔고 「달러」 벌이사업을 하는 한편, 하급당에 이르면서 관할구역에 있는 생산기업을 관장하여 대중수탈을 일삼아 오고 있다.
군은 국방위원회 산하에 제2경제위원회를 두고 군수산업과 핵전력(核戰力)사업을 주관하면서 자금, 물자 및 인력동원의 최우선권을 유지하여 왔다.
특히 김정일은 일찍부터 39호실을 두고 후계자 구축자금을 마련하여 왔고 김일성 사후에는 자신의 정권기반 강화를 위한 자금조달을 지속하여 왔다. 특히 군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막대한 외자가 필요하였고 때문에 외화벌이가 될 만한 사업을 모두 독점하는 거대한 재벌의 형태로 군림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북한경제를 움직이는 사공이 많기 때문에 처음부터 필연적으로 붕괴되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식량난으로 인한 생활고와 아사자 증가현상이 정권차원의 위기라기보다는 진정한 위기는 제한된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내부적 대립, 즉 마찰과 갈등에 있다고 보고 있다.
1) 産銀보고서, 「남북한 산업구조의 비교」, 1995.
Ⅲ. 경제난의 여파
북한경제는 그 기본틀(fundamentals)이 취약하여 자력(自力)에 의한 회생(回生)은 불가한 실정이다. 공장가동률의 저하와 농업기반의 파괴로 생산기반이 붕괴과정에 놓여 있고 일반주민들은 작업시간의 단축으로 인한 소득감소로 생활환경이 악화됨으로써 생계에 위협을 받고 있다. 1990년 이후 계속되어 온 장기간의 「마이너스」(minus) 성장과 무역규모의 축소(1998년 수입 8.8억 달러, 수출 5.6억 달러) 등으로 국가 파산상태에 이르고 있다. 즉 생산 소비 고용 소득 성장 교역 등 경제 전반에 걸쳐 하락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북한의 경제상태를 도식화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북한경제가 회생불능 상태에 놓이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체제적이고 정책적인 복합 요인에 의한 것이다. 체제적으로는 비효율성(inefficiency)과 경직성(rigidity) 그리고 구조적인 불균형으로 인한 병목현상(bottle- neck)과 걸림돌(obstacle)이 내재(內在)하고 있다. 정책적인 원인으로는 제한된 개방·개혁정책과 정치 및 군사논리에 의한 외화 낭비적이고 전시효과적인 대형사업 전개 그리고 이로 인한 만성적인 부족(shortage)과 빈곤상태 등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단기적인 경제상태의 악화가 중·장기적으로 누적되면서 종국에 가서는 자력에 의한 회생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난의 악화는 북한 내부에 일파만파(一波萬波)의 심대한 파급효과를 끼치고 있다. 사회주의가 가장 큰 장점으로 자랑하는 3철제도2)(3 iron system)의 붕괴로 주민들의 불평불만이 높아지고 있고 주체사상이나 붉은 기사상에 대한 신뢰감 상실과 체제나 정권에 대한 좌절감으로 탈북자가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3)
주민들은 스스로 자기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상명하복(上命下服)에서 벗어나 지하(地下)경제와 문화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이로 인해 한편으로는 중앙통제력이 약화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심화되어 가고 있다. 이와 같이 경제난이 악화되면 될수록 단기적으로는 정권에 대한 이반(離反)현상이 나타나고 중·장기적으로는 이것이 누적되면서 종국에는 정권과 체제의 붕괴 조짐으로 표출될 것이다.
경제회생의 불가성과 경제난의 여파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2) 3鐵제도란 ①iron chair, ②iron wage, ③iron rice bowl, 즉 평생 일자리와 그에 따른 보수로 생활이 보장된다는 사회주의적 사회보장제도를 말한다.
3) 폐쇄사회에서는 체제에 대한 개혁의 희망이 보일 때는 반발·저항하지만 절망적이고 더 이상 삶의 희망이 없다고 판단될 때에는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을 시도한다.
Ⅳ. 당면한 딜레마(dilemma)
북한이 이러한 역량을 겪게 된 것은 시대흐름에 역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경제적 악화와 외교적 고립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북한은 현상유지냐? 아니면 현상타파냐? 라는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전자를 고집하고 있다. 경제회생이냐? 군사력 강화냐?라는 이율배반(二律背反)적 입장에서 양자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미·일과의 관계개선이냐? 남북한 간의 교류·협력이냐?라는 중대 고비에서 원친근공(遠親近功), 즉 이민족을 가깝게 하고 동민족을 멀리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 체제와 정책노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최대한의 외부지원을 획득하여 경제를 회복시키는 한편 군사력도 강화하고 나아가서 미국과 일본에 접근하여 한국을 고립시키겠다는 속셈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①현상을 유지하면서 외부지원을 얼마나 얻을 수 있겠는가? ②외부의 지원 없이 경제회생이 가능한 것인가? ③경제회생 없이 강성대국이나 핵전력화가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북한 정권을 지탱해 주는 두 기둥이 있다. 그 하나는 개혁·개방을 최소한 정권유지 범위에서만 실시하고 「우리식 사회주의」를 고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핵전력화, 즉 핵개발 화생방무기 생산 및 중·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함으로써 벼랑끝 외교의 카드로 활용하는 것이다.
외부지원 또는 미·일과의 관계개선 그리고 서방과의 교류·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대량살상무기(WMD: Weapons of Mass Destruction) 개발이나 생산 및 실험을 중단 또는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개혁과 개방정책을 실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국제무대에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곧 북한 정권 지탱의 두 기둥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렇다면 적어도 WMD를 유지하면서 개혁·개방정책을 기피하거나 또는 WMD를 포기하면서 개혁·개방정책을 단행하거나 양자택일의 길만이 남아 있다. 현재로서는 어느 쪽을 선택하든 북한 정권과 체제는 현 위기를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따라서 양쪽 노선을 모두 유지하면서 적당히 조절하고 타협하는 자세를 지금까지 취하여 왔다. 그 결과의 산물이 곧 제3차 7개년계획(1987~1993)의 실패였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4년(1994~1997)간의 사회주의 건설의 조정기를 설정하게 되었다. 조정기의 정책으로 농업 제1주의(식량증산), 경공업 제1주의(공산품 증산) 그리고 무역 제1주의(외화획득 증대)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그 성과가 부진하여 조정기간을 계속 연장시키고 있고 제4차 7개년계획은 윤곽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Ⅴ. 경제회생의 지렛대(leverage)
북한경제의 회생은 대내적이고 주관적인 요인과 대외적이고 객관적인 두 가지 요인이 상승작용(synergy effect)을 할 때에 한해서만 가능하다.
대내적으로 개혁과 개방정책을 실시하지 않고서는 대외적으로 경제회생에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지원과 협력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현재 실시하고 있는 개방정책은 대외정보차단의 장벽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에 국한되어 있다. 그것도 밖에서 들어오는 것만 허용되고 있고 밖으로 나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일방통행적인 것이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제한된 특정지역, 즉 자유경제 무역지대라는 곳에만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개혁정책은 체제 및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시행되고 있다. 지정된 장소, 즉 농민시장이나 또는 도시의 특정시장에서의 상행위가 허용된다. 텃밭이나 뙈기밭에서의 개인영농에 의한 농산물 생산이나 또는 개인의 재능에 의한 수제(手製) 공산품 생산이 용인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이나 러시아 또는 일본이나 한국과의 밀무역이나 상행위도 묵인되고 있다. 그 결과 지하(地下)경제와 지하문화가 밑으로부터 서서히 돋아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개선 그리고 경제적 지원과 교류 및 협력을 중시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는 정권보장과 평화협정체결 그리고 경제제재 조치의 해제를 위해 핵 및 미사일 카드를 활용하면서 줄다리기 협상을 지속하고 있다. 일본과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피해배상과 남북분단이나 한국전쟁에 의한 피해보상(북한 요구 예상액은 약 200억 달러로 추정) 그리고 조총련 재산의 북한 반출의 허용 등을 놓고 국교정상화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동족이 아닌 미국이나 일본은 이러한 모든 것을 국익(國益)차원에서 또는 동북아시아의 안보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북한은 한국과의 교류·협력을 기피하고 매우 꺼리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과의 접촉이 확대되면 될수록 북한 내부의 치부(恥部)가 노출되고, 체제경쟁에서의 패배를 자인(自認)하게 되며 나아가서는 대남경제 종속화를 통한 흡수통일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남북한 간에 진행되고 있는 교류와 협력도 경제적 통일 연합전선4)에 의한 이간 및 분리술책을 지향하는 것이다.
4) 경제적 통일 연합전선이란 정부와 민간기업 간에 또는 친북적인 실향민 기업인과 그렇지 않은 기업인 간에 쐐기를 박는 이간책을 말한다.
Ⅵ. 지탱요인과 향후전망
북한은 최근 경제난 타개를 위해 천리마 운동을 재개하고 자력갱생(自力更生)을 시도하는 4대 주요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①대규모 농지정리사업, ②도로와 발전소 건설 및 공장가동률 높이기 사업, ③외부지원 획득사업, ④외래물자(서양문물) 반입 경계 사업이 그것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서방(특히 美·日) 인사 및 한국의 비정치적 경제인사의 방북허용 등으로 북한 내부사정을 외부세계에 노출시키고 있다. 또한 점차 총보다는 대화 쪽으로, 대화에 있어서도 평화와 안보보다는 경제지원 쪽에 큰 비중을 두고 협상을 한다.
이와 같은 엄청난 변화가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는데 그것은 곧 북한경제가 외부의 지원 없이는 더 이상 지탱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가 인식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종전까지는 주로 중국에 의한 지원이 북한을 연명시켜 왔으나 이제는 서방으로부터의 지원이 중국지원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미국은 ’98~’99년도의 식량 110만톤(3.8억불)과 원유 50만톤을 지원함으로써 대북한 지원의 50%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우리 한국도 점차 북한에 대한 외화(外貨) 공급원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지난 1년 6개월간 6,000여 명이 북한을 방문하였고 8,000만불에 달하는 식량 및 비료를 제공하였고 금강산 관광으로 1.8억 달러를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공개할 수 없는 자금도 억(億)불대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북한을 지탱하고 있는 요인들이 내부적으로 첫째는 밑으로부터(bottom up)의 반체적인 요소가 움트고 있고 위로부터(top down)도 유연한 자세변화가 나타남으로써 서서히 약화되어 가고 있다. 둘째는 이러한 내부적 변화가 외부로부터의 충격, 즉 북한의 연착륙(soft-landing)이나 또는 부드러운 붕괴(soft-crashing)를 이끌어 내려는 대북지원에 의해서 더욱 빨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러한 여러 가지 현상으로 미루어 볼 때 북한 정권도 종국에는 시류에 편승하지 않을 수 없고 내압(內壓)과 외압(外壓)으로 개혁과 개방정책을 시행하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중세 봉건주의적 독재사회가 상업 및 공업도시의 발달로 인한 자본가의 등장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밑으로부터의 혁명으로 붕괴되었듯이 북한의 공산독재 사회도 서서히 내부적 모순으로 인해 붕괴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러한 내적 붕괴를 당하기보다는 대남도발이라는 제2의 한국전쟁을 감행할는지도 모를 일이다.5)
더군다나 최근에는 협상과 도발이 선택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항상(恒常)적 상황이 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대미협상과 대남협상도 동시(同時)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북한이 취하고 있는 정책의 이중성(二重性) 또는 모호성(ambiva- lance)으로 미루어 보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은 한편으로 군사력 강화, 대남도발 지속 그리고 전쟁준비시설 등 한반도의 긴장을 조성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KEDO사업, 금강산 관광사업 그리고 경협사업 등 한국인의 북한 왕래 및 체류인원을 증대시키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 전략이 앞으로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 관심 깊게 지켜 보아야 할 것이다.
5) 신승철 “북한 붕괴론과 남북간 전쟁론의 양 시각”,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중소연구”, 1997년 가을(제21권 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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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북한 경제 참담한 실상
나는 평범한 탈북자일 뿐이다. 다만 일반 탈북자와는 다르게 북한에서 50년을 살면서 북한 사람들 2천만이 먹고 쓰고 사는 모든 것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무역회사를 지휘하던 경공업성 대외사업부 소속으로 공산권 국가들이 허물어지던 80년대 말부터 세계 여러 나라들을 많이 다녔기 때문에 체험을 통해 북한이 과연 개혁ㆍ개방에 들어갈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북한에서 김정일이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이 고민을 이기지 못 해 북한을 탈출한 사람이다. 중앙기관에서 경제를 전담하다 나왔기 때문에 북한 경제를 좀 알고, 김정일과 직접 친하지는 않지만 경제부문 중앙에서 일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는 좀 더 알 수 있었고, 북한의 정치가 정책적으로 어떻게 변하는지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이러한 입장에서 나는 북한에서 뭐가 필요하고, 경제가 왜 무너졌고, 일어설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해.. 단호하게 말한다.
김정일은 북한 경제 붕괴 원인이 3가지라고 말한다.
첫째는 미 제국주의자와 남조선 괴뢰도당이 침략하겠다고 위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동구라파 사회주의 나라가 무너지면서 사회시장이 무너져서 교역이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셋째로는 지구에 닥친 재난 때문에(수해. 화재)이라는 것이다..이렇게 3가지라고 인민들에게 교육, 교양하고 있다. 난 북한에서 왔다고 해서 특별히 김정일 정권을 매도하거나 이 정권을 찬양하지 않는다. 순수 경제적 측면에서 고찰해서 얘기하겠다.
경제가 무너졌으면 우선 자기로부터 원인을 찾아야 된다. 바깥에서 찾으려 하면 결국 고칠 것을 고치지 못하게 된다. 한 마디로 북한은 경제 붕괴 원인을 바깥에서 찾기 때문에 영원히 일어설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일부에서는 북한이 경제개혁조치를 했기 때문에 시장 경제 쪽으로 발전한다고 말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말은 경제개혁이라고 하지만 개혁ㆍ개방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혁과 개방은 함께 이뤄지는 것. 북한은 개혁만 하려하지 개방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경제개혁은 불가능하다.
1. 원자재 공급
공장에 자치권을 줘도 해외와 연계되지 않는다. 나는 수출수입 부문을 맡아 봤기 때문에 잘 안다. 북한은 원자재가 정말 부족하다. 남조선에서 김정일에게 준 돈은 전부 핵폭탄을 만들었고, 홍콩 등에서의 임가공을 통해 내각 직속 대성총국이 벌어들이는 돈은 김정일 일가의 개인금고로 들어간다. 그런가 하면 은하총국에서 벌어들이는 임가공 무역의 이익은 100% 신발 원료 사는데 들어간다. 92년~93년 북한 사람들은 신발이 없어 농민들은 짚신을 삼아 신고 길을 다녔다....김일성이 이 얘기를 듣고“내가 살아 있으면서 인민들에게 신발도 못 신켜...”라고 통탄했다. 그래서 국가적으로 모여 토론한 결과 은하총국(피복가공 전문)의 수입은 100% 모두 신발 원료를 구입한다는 방침이 결정되었다.
북한은 거의 모든 공산품 원료를 100%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것이 일부 있다. 철광석, 아연, 그리고 열량이 낮은 석탄 등이 그 것이다. 그러나 석탄은 지난 날 큰물로 갱도가 모두 침수됐기 때문에 과거의 1/3 밖에 생산 못하고 있다. 그래서 전력이 태부족이다. 설탕도 없다. 김정일 생일 외에는 사탕도 구경 못할 지경이다. (예전에는 쿠바에서 사탕가루를 얻었었다).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경제가 일어설 전망이 없다
2. 전력
북한은 100% 전력에 의존하는 동력체계를 가지고 있다. 공장은 물론 농촌 수도까지 100% 전기화되었다. 지금은 필요 전기량의 40% 밖에 전기를 생산하지 못한다. 그 전기를 한다. 때문에 원료가 수입됐다 해도 생산을 못하는 실이다. 농촌의 우물도 다 메우고 전동기 달아서 수도관을 만들었지만 전기가 없어서 관이 다 썩어 파괴되어 있는 상태다. 그래서 우물을 다시 파거나 빗물을 받아먹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니까, 난방이 되지 않아서 집안에서 얼어 죽는 사람이 생기고. 평양의 고층건물, 엘리베이터 가동이 불가능해져서 사람들이 출퇴근에 애를 먹는다..30~40층에서 뺑뺑 돌아 내려오면 지상에 내려 왔을 때는 도대체 동서남북 방향을 분간하지 못해 내가 어디로 출근해야 할지도 헷갈리는 상황이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30-40층을 쉬엄쉬엄 걸어서 올라가는 데 엄청난 시간을 써야 한다....
문제는 물이 올라가야 하는데 이것이 문제다. 정부의 중앙부서인 우리 부서에서도 지도원들이 출근할 때는 20kg, 어떤 이는 30kg 짜리 통을 들고 출근. 중앙기관에만 공급되는 수도 물을 받아서 책상 밑에다 놔뒀다 이것을 등에 지고 퇴근하여 30-40층을 걸어 올라가서 이 물로 식수와 양치질만 해결한다. 이렇게 되니까 화장실이 문제다. 그래서 소변은 그냥 변기에서 해결하지만 대변은 베란다에 흙을 퍼다가 펴놓고 대변을 본 뒤 고양이처럼 흙으로 덮어놓는다... 개중에 양심 없는 사람들은 베란다에서 밖으로 던져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아파트 밑을 걸어가다가는 난 데 없이 똥 덩이 벼락을 맞는 일도 있을 지경이다...
년 중 2월 16일(김정일 생일), 4월15일(김일성 생일)이 되면 외국인이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공장 가동을 전부 중단하고 가정에 전력공급을 하라는 특별지시가 내려온다. 그렇게 되면 세상이 달라진다. 전기가 들어왔을 때 밥을 먹는 것이 얼마나 꿀맛인지 여러분들은 모를 것이다...평소에는 석유도 없어 폐유를 얻어다가 등잔불을 피우기 때문에 한 시간만 폐유를 태우면 온 집안이 새까맣게 돼버린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이 2월 16일이 매달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다.
결국 공장을 돌리지 못하니까 경제를 살리지 못한다. 앞으로도 살리지 못한다. 계속 저렇게 나가다 보면 외부, 남한의 지원이 있어야 경제를 살릴 텐데 봉쇄정책하고 핵을 만든다고 하면 누가 지원하겠는가. 경제는 김정일이 살아있는 한 북한 경제는 일어서지 못한다.
3. 7.1 경제개선조치
어떤 이들은 북한이 개혁ㆍ개방으로 전진한 것으로 얘기하면서 그쪽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소위 7.1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단순히 경제난에서 인민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만들어놓은 김정일의 제스쳐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나온 발단은 2001년 10월 김정일이(당시 나는 체코에 있었다) 내각의 경제일꾼들을 모아 경제일꾼협의회를 열고 거기서 새로운 경제조치, 경제체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경제관리 방법만을 바꾸는 내용을 논의.“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 제일 고민인 것이 경제관리 문제로 인하여 아직도 경제는 제 궤도에 올라서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데서 비롯되었다. 북한 경제파탄의 원인은 사실은 경제관리가 아니라 경제체제에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은 경제관리가 문제라고 지적한 것이다.
소위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첫 번째 조치로 상품가격을 올렸다. 그런데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는 사회주의 경제에 맞게 절대 생필품의 가격만은 올리지 못하도록 했었다. 대중소비품은 가격을 계속 떨구고, TV 등은 가격을 크게 올리는 것이 북한의 가격책정원칙이었던 것이다. 이 같은 가격정책은 어떤 측면에서는 민중중심의 나라에서 인민들에게는 좋게 맞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경제관리에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은 상품가격을 수십배, 수백배로 대폭 올렸다. 그리고 두 번째 조치로 노동자/사무원/군인들의 노임을 10배~30배 올렸다. 이렇게 해놓고는 만세를 불렀다. 세 번째 개선조치가 경제관리 방법을 바꾼 것인데...
북한의 경제 관리체제는 당초에는 지배인 위주 체제였던 것을 소위 대안의 사업체계라고 해서 당 위원회가 틀어쥐고 지배인을 참모장으로 하는 체제가 되어 있었다...경제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대부분인 지배인들에게는 권한을 주지 않고 무식한 당 일꾼들이 하다 보니 인사 사업을 뇌물과 안면주의로 처리하게 되었다. 기술자가 아니라 필요 없는 사람들이 경제를 운용하게 한 것이다.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그러던 것을 지배인 위주 관리제도로 일부 되돌려 놓은 것이다. 인사사업도 노동자까지는 지배인이 하도록 만들고 생산도 국가가 지정해준 지표 70%를 제외한 나머지는 생산지표를 지배인이 마음대로 정해서 노동자를 벌어 먹이기 위한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준 것이다. 대폭 양보가 된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자체 가격 설정의 권한도 주었다. 법령도 바꿔 물물교환 판례도 일부 바꾸었다.
이렇게 해놓고 북한은 만세를 불렀다. 모든 당 위원회에 대해 “우리를 살려준 김정일 위원장에게 감사편지를 보내자”는 중앙당의 지령이 내려올 정도였다. 그래서 나도 체코 대사관에서 맘에도 없는 지지 토론을 하고 박수까지 받았다. 전 세계 각 대사관에서는 귀한 외화를 들여 김정일에게 감사편지를 보냈다. 이러노라고 북한에서는 공무원들도 보기 힘든 값비싼 A4용지를 수백만 장 중국에서 달러로 사다가 감사편지 용지로 쓰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경제관리 개선조치는 되지 않는 것이었다. 왜 안 되는가? 우선 상품가격 올리고 노임 올린 것부터 얘기해보자. 돈이라는 옛날에는 금쪽을 담보로 은행에 잡혀놓고 지폐를 찍어 금 1g에 돈이 얼마다...라고 했었다. 금태환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이제는 상품적 담보로 돈을 생산한다. 자기나라 상품생산 능력에 따라 돈을 찍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은 상품 생산적 담보는 계속 떨어지는데 돈을 많이 찍어 노임을 지불했다. 잘 되려면 상품이 소비돼 나가면 그 돈이 국가로 들어오고, 그 돈으로 국가는 생산을 해서 돈이 돌아야 하는 것이다. 상품이 없으니 몽땅 중국/일본에서 밀거래로 들여와 장마당에서 거래되는 것이 오늘 북한경제의 현실이다.
국가의 돈이 개인업자들에게 넘어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운동화를 생산하는데 국가운영의 돈이 없으니까 노임을 운동화로 주는 일이 생겼다. 장마당에 나가서 팔아서 살라는 것이다. 장사꾼들이 몽땅 돈을 벌어 국가은행에 저금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에게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 화폐개혁을 해서 주지 않는 것) 땅에다 묻어놓고 산다. 이런 관계로 한 석 달 지나니까 실제 노임을 주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북한 돈의 30%가 화교들을 통해 중국으로 건너가고 있다. 90년도 화폐교환 때 (극비로 했다가 3~4시간 전에 발표하고 단행) 중국에 건너간 돈을 물 먹이기 위한 것이다. 그때 중국 교포들이 두만강 가에서 화폐를 불사르고 물에 띄워버리며 반항한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북한 사람들도 절대 저금하지 않는다. 30%는 중국에, 40%는 북한 사람들 수중(개인집에)에 있다.
공장 관리방법은 개혁을 시켰지만 돈이 돌지 않으니까 지배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공장을 돌릴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되니까 공장 지배인이 필요 없는 일꾼을 싹 내보냈다... 예를 들어 내가 150명 데리고 있는 공장 지배인이라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 없는 것이다. 원료하고 자재만 있으면 노동자 몇 명이면 공장은 돌아간다... 그렇게 되니까 필요 없는 일꾼들을 전부 내쫓았고 그러다보니 실업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게 되었다. 7.1조치를 취하면서 뒤따를 실업자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되니 북한 땅에는 도둑질, 강도, 이혼 등이 발생하여 사회가 무질서해졌다. 시장이 형성되기 전에 공장이 돌아야 한다. 공장이 돌지 않는데 장마당이 성해서는 망가지는 것이다. 상품은 몽땅 중국산이다. 장마당에서 도는 것이 신발, 속옷, 생필품, 먹을 것 등이다. 그러니 북한의 돈이 계속 중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돈 뿐 아니라 북한의 자원들(농수산물 등)도 중국으로 빠져 나간다, 그나마 자체 생산된 파철, 동, 아연 등도 모두 중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러니까 국가경제는 점점 하락하고 장마당만 활성화되고 있다. 북한 장마당은 중국 상품을 파는 장마당이다. 북한에서 지금 자체 생산하는 것은 신발뿐이다. 경공업 공장 도는 것은 신발공장 하나뿐이다.
그 동안 북한에서는 내 생각에는 500만 명이 죽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은 300만 명이라고 한다..남한에서는 말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다...너무 많이 죽으니까 관을 짜서 묻을 수가 없다. 북한에는 장례식장도 없고 하니 관을 짜서 묻는 사람은 5% 정도에 불과하다. 휘발유도 전기도 없으니 관을 짤래야 짤 수도 없다. 그래서 공장/기업소마다 뚜껑도 없는 철관을 만들어서(1~1.5mm) 자고 나면 죽은 사람이 몇 십 명씩 되니까...철관을 싣고 가서...사람을 싸지도 못한다..한 자동차에 시체 서너 구씩을 실어 공동묘지로 간다. 등불도 못 켜니까 화장도 못 해..몽땅 산에다 묻는데 철관에 뚜껑도 없이 실어가서는 구덩이를 파고 시신만 내려놓고 철관은 도로 가져가는 것이다. 매일 철관에 사람을 담아 묻는 것이 일과다. 아마 후에 피눈물의 역사를 볼 수 있을 것이다...그때 가면 내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굶어죽은 사람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이 많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모두 역전으로 몰려들었다. 96년 97년에는 정말 길거리에서 발길에 차이는 시체를 넘어 다녔다. 특히 역전 공터에서 그랬었다..겨울 아침이었는데 의자에 앉았다 죽은 사람이 드글드글했었다...이런 사망자들의 시체는 대개 철도역 뒷산에 구덩이를 파고 집단으로 묻었다. 기차간에서 죽는 사람도 많았다. 기차가 역에 도착하면 이 시체들을 내려놓고 간다. 이런 시체는 군 행정위원회 사람들이 달구지 하나를 끌고 나와서...시체만 치워주는 늙은이들이 있다. 달구지에 실어 역전 뒷산의 구덩이를 파서 밀어 넣었다. 구덩이가 다 찰 때까지 그냥 열어 놓고 계속 시체를 밀어 넣었고 구덩이가 다 차면 메우고 다른 구덩이를 팠다.
[Q. (배성동) 봉분을 해줍니까? 내가 몇 해 전 평양에서 묘향산까지 갔다 오는 고속도로에서 보니 양 옆으로 묘지를 볼 수 없었다. 안내하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다 있다고 하더라.]
[A. (김태산) 재작년엔가 고속도로 주변에 봉분과 비석을 해 놓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고속도로를 가던 김정일이 이것을 보고 아름다운 이 강산의 풍토가 망가진다고 해서 전부 없애 버렸다.]
나는 어릴 때는 3천리 금수강산에 지하자원도 많고 참 좋은 나라라고 배웠는데, 수출수입분야에서 경제를 전담하면서 보니까 우리나라 자원이 너무 없어 몽땅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데 수출할게 없으니 돈 벌 것도 없고, 수입할건 많은데...그렇게 고민하다 이쪽으로 나올 결심을 하게 되었다...세계 여러 곳을 다니면서 남조선이 발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발전의 바탕이 뭔가...남쪽에는 지하자원도 없고...그래도 북쪽에는 옛날 일본 놈들이 산업기반이라도 세웠는데...그러다 이쪽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남한 땅에서 무얼 가지고 경제를 일으켰는가...유럽이 2,300년에 걸친 발전을 어떻게 2,30년 만에 이뤘는가...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역시 남한에도 자원은 없으나 분석을 해보니 이 땅에는 자원이 인간이로구나. 인간의 두뇌를 가지고 자원으로 인정해주고 이용했기 때문에 일어섰구나. 그렇다면 북한도 똑같은 종족인데 왜 그럴까. 저기는 인간의 두뇌를 얽어매놨고 이 땅은 인간의 두뇌를 확 열어놓은 것이 다른 점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학교를 졸업하면 강제로 직업을 준다. 너는 탄광이다, 너는 협동농장이다, 너는 벌채판이다, 이런 식이다. 이렇게 배정되 직장에서 6개월만 무단결근하면 2년 이하의 교화조치를 받아야 한다. 배급을 받기 위해서라도 강제로 일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힘껏 일할 리 없는 것이다. 적당히 시간만 때우면 배급이 나오고 또 봉급이 나오니까 쓸 데 없이 죽어라고 일할 필요가 없고 시간만 때우려 든다. 자기 적성에 따라 직업을 택해야 하는데 남한에서는 그런 자유를 준 것이고 그래서 일어선 것이다.
북한이 경제를 일으켜 세우겠는가? 저 체제가 계속되는 한 아무리 경제관리 방법을 개선한다 해도 안 된다. 우선 직업 자유를 주고 개방을 해서 문호를 열어놔야 한다. 금년에도 지금부터 보릿고개로 들어서는데, 핵 문제 때문에 바깥 세계로부터의 지원이 막혔지, 자체 생산되는 것 없지, 작년 생산한 것 다 먹었지, 벌써 평양에서도 굶어죽는 사람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들에게 자유를 줘서 통행증 없이 다니게 하고 맘대로 외국에도 건너가게 해놓으면 96~98년에도 국가가 식량 못 줄때 풀어놓고 맘대로 벌어먹으라고 했으면 절대로..300만이 아니라 3만도 굶어죽지 않았을 것이다. 농촌에는 식량이 조금 있었지만 통행증 등으로 갈 수 없게 하니까 식량이 남는 곳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대규모의 아사자가 생긴 것이다...
이럴 때 인민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감시하니까 식량이 있어도 먹지 못하는 것이다. 북조선 사람들도 머저리가 아니다. 풀어만 놔주면 앉아서 당하지 않는다. 못 사는 집에서 개를 기른다 하자. 개는 굶어죽지 않는다...왜냐, 개는 풀어놓으니까 이것저것 주워 먹어서 죽지 않는다. 그런데 이 개를 묶어놓으면 3일이 못가 굶어죽는 것. 아이들 벌어먹이지도 못하는 아버지가 집안 망신이라며 문 닫아걸면 온 가족이 다 굶어죽는 것. 국가도 마찬가지다. 자유만 주면 절대 굶어죽지 않는다.
1996, 1997년에는 땅굴 속에 묻어놓은 식량까지 다 먹었다. 그때는 남한의 군대가 걸어 들어오기만 했어도 됐다. 군대는 전부 영양실조 걸려서 얼마나 죽었는지 모른다. 탈북자들도 같은 말 하겠지만 여러분들은 믿지 않는다. 그런 경제실태가 벌어졌었는데 지금도 또 그렇게 가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은 경제에 관심을 두지 않고 핵에만 몰두하고 있다. 왜 그렇게 하는다...2,3년 내 미국을 남쪽에서 내보내고 남쪽을 깔고 앉아서 먹겠다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북한 경제가 일어서려면, 나는 못 일어선다고 장담하지만, 지금은 개혁ㆍ개방으로 가는 것이 아니다. 김정일은 남조선을 깔고 앉을 때까지 궁여지책으로 시장개혁을 하는 것이다.
4. 개성공단
남북간 교류가 터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지금 이루어지는 교류는 순수한 교류가 아니다. 여기에는 정치적 숨은 칼들이 남북한 양측에 모두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남조선 사람들이다. 남조선은 북한과 언어가 같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흡수가 빠르게 되어 있다. 테이프 하나만 줘도 금방 남조선의 노래를 따라 한다. 제품도 같은 민족이라 한번 보기만 해도 흥분한다. 김정일은 남쪽 사람들 만나는 것을 제일 무서워한다.
개성공단은 2000년 10월에 정주영 씨가 건너가 합의된 것이다. 사실은 그때 북한은 건성으로 대꾸만 한 것이다. 그 뒤 개성공단에 대한 북한의 생각이 달라졌다. 왜 그랬는가. 신의주 특구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북한은 당초 신의주만 하려고 했는데 중국이 양빈을 경제범으로 걸어 채서 무산시켰다. 북한은 아무 소리도 못하고 망신만 당했다. 자존심 강한 북한은 삿대질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니까 부끄러운 마음에 그렇다면 우리 민족끼리 한다면서 개성공단으로 돌아선 것이다. 북한은 신의주 특구 무너지자마자 개성 쪽으로 틀어서 조금 체면을 건졌다. 남쪽이 고와서 한 것이 아니다.
남한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많은 손해를 보면서 개성공단을 유지하는 데 매달려 있다, 처음에는 중소기업들이 북한을 잘 모르니까 벼락 맞은 소고기 뜯어가듯 달려들었다가, 탈북자들의 말을 듣고 이제는 하나 둘 물러서려 하고 있다. 그나마 지금 10여개 중소기업이 개성공단에 들어가고 있는 것은 정부가 기업 자체의 책임이 아니라 북쪽의 책임으로 인한 손해를 볼 경우 얼마까지 보상해준다며 끌어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3개 공장이 돌아가고 있다.
원래 해외자본이 다른 나라에 투자할 때는 3,4 개의 이점이 있게 마련이다. 첫째, 현지에서 원료를 싼값이 구할 수 있다는 것, 둘째, 저렴한 노동력, 세 번째는 생산품을 국내에서 소비하지 않고 현지에서 소비할 수 있는 이점을 노리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 기업이 들어가면 북한에서 원료를 보장받을 수 없다. 중국에서 수입한다 해도 기차가 신의주에서 개성까지 오려면 한주일이 걸릴지 보름이 걸릴지 장담 못한다. 원료자재의 길이 막히는 것이다. 결국 남쪽에서 자동차로 실어 개성까지 가야 한다. 이게 가장 큰 난점이다.
둘째로 동력의 문제다. 전기를 준다고 했는데 지금은 소량의 전력이 공급되지만 앞으로 많은 양이 들어가면, 남한의 비싼 동력을 비싼 값에 선로를 개설해서 들여가 써야 한다. 남쪽에서는 저임금의 노동자를, 지금은 57.5 달러인가 지불을 하는데, 가장 큰 이점으로 생각하지만 여기에도 허점이 있다. 잠시 싼 것은 사실이지만 사장이 마음대로 노동인력을 부리지 못한다. 북한 노동자들은 절대 사장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을 파견한 당 책임자, 청년단체 책임자들에게 종속돼 있다. 노력조달, 연장작업도 못한다. 5.75달러라는 돈도 내가 노동자로서 내가 다 쓰게 되면 사장한테 복종하지만 국가가 개인을 착취하는 경제체제인 북한에서는 5.75달러를 100% 국가가 회수한다.
그러니 사장한테 잘 보일 필요도 없게 된다. 오히려 사장한테 알랑거리다 돈을 더 벌게 되면 조용히 수용소로 가게 된다. 노동자가 일을 못한다고 자를 수도 없다. 내가 체코에 250명을 데리고 나갔는데, 체코 사장이 절대 노동자를 부릴 수 없었다. 어떤 때는 내가 출근하지 말라고 하면 한 명도 출근을 못해 체코 사장 얼굴이 흙빛이 되어야 했다. 공장 사장으로서는 죽어나는 것이다. 협상하자고 하면 무조건 노임을 올리라고 주장한다. 2,3일만 출근 거부하면 결국 노임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금은 공장이 1,2개만 돌아가서 그렇지만, 공장이 늘어나면 북측에서 협상을 요구할 것이다. 북측이“우리를 동족으로 인정하는가, 아니 하는가, 그렇다면 남쪽의 노임은 얼마인가. 우리를 천대하는 것 아닌가?”라고 대들 것이다. 그래서 노임을 100달러로만 올려도 공장에서 이윤날 건 하나도 없게 된다. 지금 남쪽에 온 탈북자들이 대부분 한 기업소에서 견뎌 내지 못한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출근만 하고 배급받으면 끝인데 여기서는 어느 사장이 일 안하고 담배만 피는 노동자에게 돈을 주겠는가. 이것이 사회주의 노동자의 징표다..
개성공단은 달러가 모이는 곳이다. 북한은 가만히 앉아서 사람과 땅만 빌려주고 달러만 따먹게 되는 것이다. 숨겨진 정치적 목적도 있다. 남북 교류를 명목으로 남조선에서 미국을 내보내는 계기로 삼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자본주의 침투 막기 위해서 개성공단 노동자를 성분조사해서 75%를 이주시켰다. 그리고 개성공단에 제대 군인으로서 정신력이 준비된 아이들만 잡아넣고 있다. 앞으로 이들에게 총만 쥐어주면 군인이다. 북한 군대들은 이 세상에 돌아가는 발동기는 다 운전할 수 있고 모든 무장장비를 다 사용할 수 있다. 나도 그렇다. 즉, 개성공단에 나가있는 젊은 노동자들은 총만 주면 다 군대인 셈이다.
개성공단은 성공하지 못한다. 죽어나는 것은 남한 중소기업뿐이고, 상품을 내서 이 나라에 헐값으로 팔면 이 나라 경쟁기업만 줄고 경제만 축나게 될 것이다. 현지에서 팔지 못하고 해외로 수출해야 하는데 자국 내에서 전부 소비해 버리니까, 자국 내 공장들이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도산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남한은 망하는 길로 가는 협력이요 북한은 정치적 패권을 노리는 술수로서 이용하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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