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산행기(세걸산-정령치)
지난 3월말부터 진행해온 고향집 공사 일로 다른 일은 전혀 신경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연속되어 이번 산행도 참가 신청을 하지 않았었는데, 대자연의 맑은 기운을 쏘이며 지친 심신을 달래려고 산행 출발지인 교대역으로 나갔다.
작년에 여러 가지 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불현 듯 향수가 커지면서 고향집을 마련해두고 싶어졌다. 고교 졸업 후 서울로 떠나온 이후 고향에는 아무런 터전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건지산 인근의 태어난 곳은 농사를 지으며 살던 작은 동네였는데 전주역을 옮길 때 백제대로를 내고 구획정리사업을 하면서 추억이 깃든 산천이 모두 개발지로 변하여 지금은 전북대 의대가 자리 잡고 있다. 그처럼 고향산천이 사라진 가운데 가끔 내려갈 때면 앞산과 더껜 연 못 등 어렸을 적 다니던 길을 걸으며 회상에 잠기곤 했었다.
집을 산 후 부담이 되어 계약금만 손해보고 파기할 생각으로 통보까지 했는데 매도인이 잔금으로 전세를 살겠다고 해서 진행했는데 공사비가 예상을 훨씬 초과되어 여기저기서 융자로 자금을 마련하느라 애를 먹게 되었고 공사비를 줄이려고 직접 일을 하다 보니 과로에 만신창이가 된 듯 했다. 어제는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들러 치료를 받았는데 의사가 산에 가면 무리라고 만류하는 것을 억지로 산행에 나선 것이다. 몸이 좀 무리가 가더라도 자연의 기운을 쏘이면서 심신을 추스르고 싶었다.
이번 산행지는 지리산 주능선에서 조금 떨어져 펼쳐 있는 고리봉-세걸산 능선인데, 특히 지리산의 전체 산세를 조망할 수 있는 코스이다.
조금 일찍 교대역에 도착하여 차에 오르니 두어 분이 먼저 나와 계셨다. 길가 편의점에 들러 식수 등을 준비하다 보니 일행이 속속 도착하여 인사를 나누며 차에 올랐다. 그동안 운행을 수고해준 이학규 기사가 개인 사정으로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며 새로 나온 버스 기사 분을 소개해 주었다.
7시 교대역을 출발했다. 피곤하여 눈을 붙이며 가다 금산랜드 휴게소에서 들러 잠시 쉬고 갔다. 다시 잠을 자다 차창 밖을 보니 남원시 인월면에 접어들어 있었다. 길가 논에 여기 저기 막 모내기를 해 놓은 모습이 보였다. 주변산은 무성한 생명의 기운이 번지고 흰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진 느낌을 주었다. 마른 가지에 돋아난 새 싹들은 왕성한 기세로 무성해지면서 짙푸러지고 있었다. 올해는 유난히 이르게 기온이 달아올라서 일찍 여름철 날씨가 찾아 왔다. 소나무의 묵은 잎과 새 순들이 갖가지 초록색 스펙트럼을 이루고 있었다. 시리게 맑은 파란 하늘아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기온이 달아오르며 나른한 느낌도 풍겼다. 하지만 들녘 풍경은 이제 막 농사가 한창 시작되는 분위기였다.
10시 54분 버스가 전라북도학생교육원 근처에 도착했다. 다른 팀의 일행들도 막 버스에서 내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산길로 조금 올라가다 보니 좌측에 규모가 큰 교육원이 나타났다. 산행에 나선 사람들이 마치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듯 모두 그 곳에 들러 용무를 보며 산행채비를 하고 있었다.
11시 10분 산행을 시작했다. 숲기운이 상큼했다. 좌측에 백두대간 생태교육장 건물이 보였다. 요 몇 년 새 대중의 백두대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진 느낌이다.
잠시 후 숲길로 접어들었다. 큰 나무 숲 그늘이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개울에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길을 오르며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에게 세걸산 방향을 물으니 우측 편에 있다고 하는데 가고 있는 길의 방향이 다른 것 같아 앞서 가고 있는 조회장에게 예기했다.
뒤에 오던 다른 일행이 자신들은 바래봉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일행을 기다려 우측으로 임도를 따라 갔다. 앞에 보이는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소나무의 짙은 청록색과 무성해지는 새 순의 연두빛깔 등이 싱그러운 신록의 기운을 발하고 있었다.
가다보니 생활관에서 올라오는 길이 나타났다. 거기서 직선거리로는 0.6km 밖에 되지 않았다. 좌측으로 세동치 이정표를 향해 올랐다. 기다보니 길이 점차 가팔라지고 있었다.
12시 36분 세동치에 도착했다. 세동치는 바래봉부터 정령치휴게소로 이어지는 능선 상에 위치하여 거기서부터는 이동이 수월할 것 같았다. 세동치에서 세걸산은 0.3km 거리에 있고 정령치까지는 4.3km이었다.
잠시 후 세걸산쪽으로 가다 앞 봉우리에 올라 일행을 기다렸다. 조회장이 그 곳에서 식사를 하자고 했다. 그 주변 그늘이 안성맞춤인데 다른 팀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잠시 후 몇 분의 우리 일행이 올라왔다. 백인철 건축사에게 세걸산에 먼저 올라 스케치를 하고 있겠다고 말하고 앞으로 나갔다.
12시 57분 세걸산에 올랐다. 지리산 주 산세가 광활하게 펼쳐 보였다. 날씨가 맑아서 좌측으로부터 천왕봉, 명선봉, 토끼봉, 반야봉, 노고단, 만복대 등 지리산의 주요 봉우리들이 뚜렷이 보였다. 앞에는 그 광경을 사진으로 담아 실제 경관의 봉우리들을 써 놓아서 쉽게 찾을 수 있게 해 놓았다. 광활한 산세로 이루어진 지리산은 예로부터 지리산은 우리 강산의 영산(靈山)이요 어진 산으로 알려져 왔다. 노고단 등에 포장도로를 내어 논란이 있긴 했지만 그 광활한 품은 그래도 원시적인 자연의 체취를 간직하고 있다. 그 깊고 너른 자연의 품을 대하니 근래 겪은 마음의 피로가 다 씻겨나가는 듯 했다.
그 광경을 스케치하다보니 일행들이 올라왔다. 사람들이 그곳에 오르자마자 모두 저절로 감탄사를 내었다. 오늘은 가족친지와 함께 온 회원들이 많아서 더 즐거운 분위기였다.
1시 55분 정령치를 향해 출발했다. 외길이라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지나치며 시간이 지체되었다. 길은 바위가 박힌 너덜 길에 약간 굴곡이 있어 걷기가 조금 터벅거렸지만 지나면서 계속해 지리산의 너른 산세가 조망되어 눈 맛은 시원스러웠다.
3시 26분 고리봉에 올랐다. 거기서도 주변이 훤히 보였다. 거기서 정령치가 지척에 보였다.
3시 45분 정령치로 내려왔다. 점심을 제대로 먹지 않아서 시장기가 느껴졌다. 주차장 옆에 생태 이동로 설치를 위한 터널공사를 하고 있었다.
4시 40분 정령치를 출발했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굽어 도느라 버스가 조심스레 운행했다. 5시 4분 식당에 도착했다. 주문한 산채 비빔밥 등이 상차림이 되어 있었다. 회원들이 이구동성으로 맛이 좋다며 즐겁게 식사를 했다.
6시 서울로 향했다. 한여름으로 접어드는 계절이라 아직 해가 밝았다. 서울까지 먼 거리인데 다행히 막히지 않아서 9시 30분 양재역에 도착해 귀가했다.
(20160515)
첫댓글 이번처럼 버스에서 조용하게 온것도 정말 오래간 만이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