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Phnom Penh Post 2012-2-16 (번역) 크메르의 세계
국제재판 고발인측 : "키우 삼판이 크메르루주 정책의 설계자"
‘Blueprint’ for forced lab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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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REUTERS / Mark Peters) 2011년에 법정에 출두했던 키우 삼판의 모습. 그는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서 그다지 많은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 |
기사작성 : Bridget Di Certo
'캄보디아 크메르루즈 국제법정'(ECCC)의 어제(2.15) 공판에서, 민간 당사자 측 변호인들은 발언을 통해, 크메르루즈(Khmer Rouge) 정권에서 국가수반을 지낸 키우 삼판(Khieu Samphan) 피고인이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제시했던 급진적인 경제정책들을 실행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결정들을 내렸다고 말했다.
민간 당사자측 변호인단은 어제 공판에서, 키우 삼판 피고인이 1959년에 제출했던 논문 <캄보디아 경제 및 산업 발전>(Cambodia’s Economy and Industrial Development)이 반-인도주의 범죄로 묘사된 크메르루주 정권의 강제노동 계획에 청사진을 제공했다면서, 이 논문이 인민들을 노예화시키는 데 정치 경제적 근거들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민간 당사자측 변호인인 올리비에 바호냐(Olivier Bahougne) 변호사는 어제 법정 발언을 통해, "[키우 삼판은] 자신의 논문 내용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데 과도한 강박관념을 갖고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검사들과 민간 당사자 측 변호사들은 이번 주 공판에서, 크메르루주가 1975년 4월 17일 프놈펜을 함락시키기 이전의 역사적 정황 및 이어진 도시 인구 강제소개령에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 문서들에 초점을 맞췄다. 이 사안은 '제002호' 사건의 내용들을 세분화시켜 다루는 첫번째 소재판의 주제로서, '제002호' 사건은 현재 생존한 당시 정권의 고위 지도자 3인을 피고인으로 하고 있다.
크메르루주의 다른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키우 삼판은 1950년대에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했다. 그는 그곳에서 급진적인 좌익 학생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간 당사자측 변호인들은 어제 발언에서, 크메르루주의 경제 원칙들은 키우 삼판의 논문 내용을 대단히 많이 반영하고 있다면서, 이 점이 바로 크메르루주의 정책에 "키우 삼판이 높은 강도의 정치적 참여"를 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 당사자측 변호인단이 어제 제시한 시청각 화면들을 보면, 키우 삼판은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공이 크메르루주와 동맹을 맺는 데 자신이 역할을 했다는 점도 주장하고 있다. 키우 삼판은 지식인 출신으로서, 1970년대 이전의 노로돔 시하누크 정부에서도 짧은 기간 각료를 지냈지만, 좌익 성향으로 인해 쫒겨난 바 있다.
키우 삼판 피고인의 변호인단은 공동 검사들이 제시한 문서들에 "중대한" 번역상의 문제가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꽁 삼 온(Kong Sam Onn) 변호사는 "그 문서들의 번역은 노로돔 시하누크 전직 국왕의 명성에 관해 중대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말하고, 번역본 중 1건이 노로돔 시하누크 현 상왕이 1977년에 크메르루주의 고위 지도자들이었던 후 님(Hu Nim)과 호우 유온(Hou Yuon)을 처형토록 명령하는 데 연루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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