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 부는 한국바람
( 라이 따이한에 관심을 갖자)
얼마 전 베트남 수도 하노이(河內)를 다녀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지만, 공관개설전인 1994년 방문했을 때와는 너무나 달랐다. 당시에는 공항활주로가 모래바닥에 공항청사도 시골 간이역 같았는데, 지금은 포장된 활주로에 청사도 인천 국제청사를 축소한 모형으로 신축하였다. 시내로 들어오는 포장된 고속화 도로와 신도시 건설, 오토바이 물결, 11월 APEC 개최 준비 등으로 시내가 활기를 띠고 있었다.
그리고 괄목할 것은 공항청사에 설치된 텔레비전이 삼성 제품이었고, 시내를 관통하는 3.1키로의 최대 다리 탁농교(昇龍橋) 교각 양쪽에 182개에는 LG 선전 간판이 설치되어있었고, 내가 머문 대우호텔도 우리가 지어 운영하는 국제수준의 최고급 호텔이었다. 1996년 개관 후 3명의 우리대통령과, 후진타오, 장쩌민, 푸틴, 고이즈미, 클린턴 대통령이 투숙하였다.
그리고 참빛그룹에서 하노이 근교에 골프장을 건설 중이며, 현재 약 8500여개의 한국 기업이 베트남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시내에 다니는 대부분의 버스와 추럭은 한국산이었으며, 휴대전화(Mobile Phone)도 한국산 SK 제품이 최고 인기라 하였다. 안내원에 의하면 하노이에도 한류 열풍으로 지금도 여러 방송에 한국프로를 방영하고 있고,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팬이 급속도로 증가하였으며, 얼마 전 세계야구 대회에서도 한국 팬이 많았다. 하노이는 수년전만 하여도 한국을 적대시하였지만 지금은 호의적이며, 많은 베트남 청년들이 한국에 근로자와 유학생으로 가고 있다. 하노이에도 지금 한국바람이 여러 곳에서 불고 있으며 한국인으로서 큰 긍지를 느낀다고 하였다.
그러나 최근 한. 베트남 관계가 성숙 될수록 몇 가지 유념할 것도 있다.
첫째는 한국 농촌총각들과 베트남 처녀들의 국제결혼 중가추세에 따른 문제이다. 베트남의 결혼 풍습은 딸을 시집보낼 때 빈손으로 보내고 남자 집에서 딸 친정식구에게 최소한 2-3년을 먹여살려야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에 시집보낼 때도 처녀 집에 2-3년간 일정액의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통상 1년 정도 보내고 중지하기 때문에 새색시가 다시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이점을 잘 알아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
둘째는 라이 따이한(한국계 혼혈아)들의 문제다. 월남전기간 연인원 35만 참가에 전사자 5천명에 달하지만 한국인 2세가 3만여 명에 달한다. 통계에 의하면 대부분 당시 군수물자를 지원하는 민간 용역자들 자식이다. 이들은 지금 나이 30-40세이다. 여기에 최근 현지결혼으로 출생한 2세들도 많다. 그런데 베트남 정부에서는 지금까지 적국의 자제들이라고 군에도 입대 못하게 하고, 직장도 제한하여 정말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최근 나이키 등 일부 한국 기업체에서 취직을 시켜주고, 남부 호지명시 한 목사는 라이 띠이한 1,400여명의 대부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미국 슈퍼볼 하인즈 워드가 29년 만에 어머니 나라 한국을 방문하였다. 지금 워드와 같은 아메라시안(Amerasian)을 포함, 입양아 등 수많은 한국인 2세들이 세계 곳곳에서 주요 자리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보도에 의하면 농어촌 총각 36퍼센트가 외국 신부를 맞고 있으며, 90년대 이후 코시안(Kosian)이 3만여 명에 달하고, 머지않아 10퍼센트를 초과 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현재 불법 체류자를 합한 외국인거주자가 70만 명이 된다고 하니, 한국도 이제 단일 민족보다는 인도, 아랍, 중국, 일본, 아시안의 피가 섞인 혼혈의 나라로 볼 수 있다.
미국, 중국 등 선진국 대부분이 잡종강세의 다민족 국가임을 주시하고 이제 우리도 세계화의 추세에 따라 다민족의 정책을 펴야 할 것으로 본다.
특히 한. 베트남 양국은 조속한 협력을 통해서 라이따이한의 차별을 없애고, 그들이 아버지 나라인 우리나리에 와서도 마음껏 일 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