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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 56:9-12
제목 : 지도자의 타락
서론
고금역사(고금역사)를 막론하고 지도자가 타락하여 망하지 아니한 나라가 없고 가장이 타락하고 가정이 망하지 아니한 사례가 없으며 종교지도자들이 타락하고 그 종교가 망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여하간 지도자의 타락은 그 사회의 장래성이 없다는 것을 알리는 적신호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유대나라가 망하는데는 하루 아침에 갑자기 망한 것이 아니고 지도자의 타락과 백성들의 타락 때문이었습니다.(렘 5:30-31). 오늘의 사회도 지도층의 도덕성이 결여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1.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습니다.
본문 10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하였습니다. 소경은 육적 소경이 있고 영적 소경이 있습니다. 육적 소경은 세상 것을 보지 못하고 영적소경은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보지 못하니까 국민들을 바로 인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벨론의침략에 대한 사전 준비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침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조선왕조 500년사를 보아도 그렇고 일제 36년사를 보아도 그러하며 6·25동란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지도자들의 보는 눈이 일반 국민들보다는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 결국 나라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2. 바른 말을 못하였습니다.
본문 10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하였습니다. 지도자가 바른 말을 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바른 말을 할 수 없는 시대가 온다면 이는 망하기 일보 직전입니다. 특히 주의 종들이 바른 말을 할 수 없다면 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타의든 자의든 바른 말을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었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 4:3-4). 그렇게 되다 보면 국가의 기강도 서지 않고 질서도 없고 법도 그 사명을 다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국 바른 말을 할 수 없는 사회는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3. 욕심을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본문 11-12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沒覺, 무지하여 깨달음이 없음)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쯕 먹자 내일도 오늘 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하였습니다. 욕심은 패망의 근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저자는 말하기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15). 진정한 지도자는 사리사욕을 버려야 합니다. 성경에서 모범적인 지도자를 손꼽으라고 한다면 물질에 욕심이 없는 사무엘을 들을 수 있고 명예에 욕심이 없는 세례요한을 들을 수 있으며 음욕이 없는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그와 같은 면에서는 초월한 사람들입니다.
결론
지도자의 타락은 국가적인 타락이요 가정적인 타락이며 민족적인 타락입니다. 그 결과는 망하는 것 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교지도자들이나 정치지도자들은 모든 면에서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국민들이 잘 살 수 있습니다. 바벨론이 망하는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들이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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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 57:14-21
제목 :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
서론
하나님께서 어디에 계시느냐는 것은 수수께끼와 같은 질문이어서 이 질문에 정확하게 대답하기가 어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 아니계신 곳이 없음) 무소부지(無所不知, 모르는 것이 없음), 그리고 무소불능(無所不能, 능통하지 않는 것이 없음)하신 분이시지만 그러나 특별히 계시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1. 높은 보좌에 계십니다.
본문 15 "지존무상(至存無上, 더할 수 없이 존귀하고 높음)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 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하였습니다. 이는 높은 보좌에 계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역대하 저자는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거하시리이까"(대하 6:18) 하였습니다. 이는 높으신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만든 성전에만 계시게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시편 저자는 말하기를 "여호와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도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시 113:4-5) 하였습니다. 이는 하늘의 보좌에 계시는 지존무상하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2. 거룩한 곳에 계십니다.
본문 15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하였습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부정과 불의에서 떠난 상태에서 신성하고 구별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말입니다. 거룩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인간들은 의롭다 인정을 받고 거룩하다고 취급을 받는 것 뿐 입니다. 자연인 상태로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불결합니다. 그래서 수아 사람 빌닷은 말하기를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치 못하거든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욥 25:4-6). 이는 더러운 인생들과 함께 계실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러운 인생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고 하였습니다(출 33:20).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한 곳에만 계시는 분입니다.
3. 통회하는 자의 마음에 계십니다.
본문 15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시고 거룩한 곳에만 계시는 분이시지만 회개하는 자의 마음을 거룩한 곳으로 여기시고통회하는 자의 마음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통회하는 자"라는 말은 죄로 인하여 마음이 아파서 심히 고통을 느끼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와같이 죄 때문에 마음 아파하면서 회개하는 자들의 마음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영을 위하여 근심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와 같은 근심으로 인하여 진정한 회개를 이루는 동기부여가 되는 것입니다(고후 7:9-11). 여하간 하나님은 통회하는 자의 마음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저자는 말하기를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시 34:18, 51:17) 하였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 높으시고 거룩하셔서 높고 거룩한 곳에만 계시는 것이 원칙인데 죄인들이 회개하고 겸손하게 살며는 그와 같은 자들과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더욱 철저하게 회개하고 구별되게 살아서(고후 7:1) 주님과 늘 동행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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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 58:13-14
제목 : 안식일을 법대로 지키면
서론
구약시대에 안식일을 지키는 법과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법과 신약시대에 주일을 지키는 방법이 약간씩은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안식일을 지키는 방법은 일을 하지 않고 음식을 만들지 않으며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고 예배 드리는 일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출 34 :21, 민 15:32, 35, 민 28:9-25). 유대인들은 율법적인 안식일을 지켰으며 신약의 주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일을 지킬 것을 말합니다(골 2 :16-17).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습니다만 즐거움으로 안식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1. 오락을 행치 말아야 합니다.
본문 13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하였습니다. 그 날은 육체적으로 오락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날은 육체적으로 오락을 인하여 즐기는데 목적이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날입니다. 그런데 주일을 잘못 이해하고 오락이나 하는 날로 알고 있다면 이는 하나님의 날을 잘못 이해하고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배를 드리는 날을 즐기는 날로 보내기 때문입니다.
2.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3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날이라 하여 이(그)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하였습니다. 이는 영적 유익에 관계가 없고 복음과 사랑에 관계가 없는 쓸데 없는 말은 하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락을 즐기고 세속적인 이야기로 일관하면 본래의 안식일의 뜻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멀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사사로운 잡담을 하지 아니하면 영적인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주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본문 14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잘 지키면 그들을 높은 곳에 두시고 야곱의 업으로 기르신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안식일을 잘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손해보는 일이 얼고 잘못되는 일이 없어서 국가적으로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이미 얻은 가나안 땅도 보존하여주신다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즉 안식일을 잘 지키면 개인도 국가도 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오늘의 주일도 오락을 행치 말고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며 그 날을 하나님의 존귀한 성일로 알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선한 일을 하게 되면 주 안에서 큰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그런데 오늘날은 주일을 너무나도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습니다. 이 날이 여호와의 존귀한 날이라는 마음도 없고 오락을 금해야 하겠다는 조심성도 없고 사사로운 즉 신앙에 유익 없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하겠다는 노력이 보이지 아니하며 하루를 주의 날로 아는 것보다는 몇차례 예배드리는 시간에만 관심을 가지고 오전 11시 한번 그리고 밤 예배는 오후 2-3시에 드리면 하루를 거룩히 지켰다고 잘못 알고 있는 점들도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여하간 주의 날 하루를 거록히 지켰다고 잘못 알고 있는 점들도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여하간 주의 날 하루를 잘 지켜서 진정한 기쁨을 맛보고 복을 받는 주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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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 59:1-8
제목 : 죄 때문에
서론
죄는 사람을 괴롭게 하고 인류의 행복을 파괴합니다. 잠언저자는 말하기를 "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 14:34)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고통은 오직 죄 때문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미워해야 되는 이유가 충분한 것입니다. 아담의 죄로 인하여 전 인류가 사망과 저주와 고통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받는 고통도 죄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하고 책임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1. 기도가 상달되지 아니합니다.
본문 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서 저자는 말하기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5) 하였습니다. 이는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귀가 먹어서가 아니고 인간들의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너희 허물이 이러한 일들을 물리쳤고 너희 죄가 너희에게 오는 좋은 것을 막았느니라"(렘 5:25)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모두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를 멀리하고 미워해야 합니다.
2. 황폐와 착멸이 있을 뿐입니다.
본문 7 "그 발은 행악하기에 빠르고 무죄한 피를 흘리기에 신속하며그 사상은 죄악의 사상이라 황폐와 파멸이 그 길에 끼쳤으며" 하였습니다. 악한 사상을 가지고 악행을 서슴치 아니하고 신속하게 행하는 철면피와 같은 짓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악인들이 사는 곳에는 황폐와 파멸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악인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하여 남을 해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불모지지(不毛之地, 초목이 나지 않는 거친 땅)와 같이 황폐하여 결국에는 파멸로 치닫는 것입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저주와 죽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야생동물이 사나워지고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에는 파멸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멀리 하라는 것입니다.
3. 평강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본문 8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의 행하는 곳에는 공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니라" 하였습니다. 이는 남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어디서나 평강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짓을 지어내어 남을 해롭게 하는 곳에 어떻게 평강이 있겠습니까. 있을 수가 없지요. 남을 사랑하고 용서하며 이해하고 양보하는 곳에는 은혜와 평강이 있지만 이해도 없고 양보도 없으며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만 모여 사는 곳이라면 결코 평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평강이 없는 것은 오직 죄 때문입니다. 그래서 죄를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결론
전 세계 인류가 죄 때문에 고생을 해도 이만 저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범죄는 마땅히 추방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응답을 받으며 평안이 깃들어 행복하게 사는 환경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죄를 멀리하면틀림 없이 말씀대로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