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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신가요? 9월 추석 연휴는 잘 보내고 계신지요?
요즘은 나만을 위해 온전히 쉬는 나 홀로 연휴가 대세라고 하던데요.
저도 집에서 책으로 도망치는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도서명: 어느 멋진 도망
저자: 나상천
* 이 책은 전자도서 플랫폼 밀리의 서재에 있습니다. 전자책과 오디오북 콘텐츠 둘 다 있으니 취향에 맞는 형태로 읽으면 됩니다.
저는 전자도서로 읽었는데, 뒤늦게 오디오북 콘텐츠가 구비되었더라고요. 한 번 더 오디오북으로 읽을까 고민 중입니다.
* 소개글 서평
일단 도서명에 끌렸다. 누구나 한 번쯤 어디론가, 어디로든 도망 가고 싶어지는 때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무릇 ‘도망’이란 멋지지 않다. 겁쟁이, 비겁함, 무능함 등 부정적인 것들이 따라 붙는다.
그런데 이 소설은 《어느 멋진 도망》이라 하지 않는가?
소재는 전 세계적, 아니 지구적인 순례길이 된 스페인 북부의 ‘산티아고 순례길’이란다. 사실 이 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완주하기 힘들다는 것, 이 순례길을 걸은 사람들이 쓴 에세이가 제법 된다는 것 정도가 아는 것에 전부.
하지만 이 책은 수필이 아닌 소설이다. 그래서 왜 인물들이 하필 도망을 쳐도 그 순례길로 갔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까미난떼’ 끝의 순간, 시작되는 길, 그 위에서 만나는 것들 - 《어느 멋진 도망》
소설의 프롤로그는 1년 후의 홍대 작은 골목의 레스토랑 ‘까미난떼(여행자)’에서부터 시작된다. 인물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모종의 사건과 감정을 정리한 후의 일상으로부터 전개되는 것이다.
각 인물들이 우리나라도 아닌 스페인으로 왜 향하게 되었는지, 관광도 아닌 순례길을 택한 이유를 궁금하게 만드는 시작점이다. 소설의 도입부다운 형식이었다.
��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유로 도망쳤다.”
�� 30살의 유튜버 ‘로저’ 본명 박성준의 꿈은 영화 감독이었다. 관련 학과를 졸업했으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조감독 지원에 떨어지고, 시나리오 응모와 단편 영화제에서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일용직 건설 노동자로 일하다 낙상 사고로 병원에서 투병하게 된 아버지, 미용실을 하며 야간 알바까지 뛰는 어머니를 위해 ‘로저 챌린저’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지만, 구독자는 약 1만 명의 불과했다. 이것만으로는 눈덩이처럼 부풀기만 하는 병원비를 감당하기 부족했다.
그런 어느 날, 그에게 모르는 이에게로부터 메시지 하나가 전송된다. 낯 모르는 상대는 ‘게임’을 제안하고 있었다. 33일 동안 800km의 산티아고 술례길을 걸으며 구독자 33만 명을 달성하면 영화 감독의 꿈을 이룰 수 있게 지원하겠다고... 수락만 하면 1억을 선입금하겠다고...
그는 물론 의심했다. 누구일까? 구독자인가? 사기가 아닐까? 신종 보이스피싱일지도? 하루에 만 명씩 구독자를 늘려야 한다는 뜻인데 가능할까? 불가능한 일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가락은 ‘Yes’를 답했다. 왜냐하면, 가만 있는 것보다는 미친 짓이라도 해보는 게 나았으니까.
여담인데, 로저는 그냥 승락만 하고 1억 받은 후 잠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러지 않은 건,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순례길을 택한 게 아닐까?
그렇게 해서 로저는 구독자 가운데 같이 순례길에 오를 동행을 모집했다. 수많은 지원서가 쏟아졌고, 그는 그 가운데서 두 명의 동행을 골랐다.
� 54살 ‘킴스’는 전직 사업가였다. 자수성가로 부와 성공을 거머쥐었으나, 그 반대급부로 아내를 잃고 말았다.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노력했지만, 그 바람에 정작 가족의 건강을 돌보지 못한 것이다. 물론 그 자신의 건강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에게 남은 건 공항장애와 불면증, 아내를 잃은 상실감, 7살의 어린 딸아이였다. 그 딸애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엄마 몫까지 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요리를 해주겠다는 목표로 칼을 들었다.
그는 47세의 나이에 사업가의 길을 벗어나 셰프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7년이 뒤, 어엿한 셰프가 되었다. 여전히 아내를 잃은 슬픔을 간직한 채로...
그러다 산티아고 술례길에 오를 동행을 모집한다는 유튜브 공지를 보았다. 아내와 함께 걸으려 했던 그 길을, 자신 혼자 걸었던 그 길을... 그는 아내의 몫까지 그 길을 걷고 싶었다.
�� 25살 ‘도로시’ 본명 이지음은 오디션에서 또 떨어졌다. 엄마는 꾸준히 말해왔다. 뮤지션을 꿈꿨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술로 허송세월 보낸 부친이 남긴 기타 ‘토토’를 그만 버리라고...
그러나 도로시는 토토와 함께 버려지는 걸 선택했다. 그녀가 택한 건, ‘싱어송라이터’라는 자신의 꿈이었다. 비록 대중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연거푸 오디션에서 고배를 마시고 있지만...
그녀는 자신의 음악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유튜브 공지에 올라온 산티아고 순례길 일행 모집에 응모했다.
순례자 사무소에서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고, ‘어디서 출발하든 결국 같은 목적지로 향한다’는 의미의 조개 껍데기도 구경했다. 순례자들이 머무는 숙소 ‘알베르게’에서 밤을 보낸 셋은
순례길의 첫발을 내딛었다. 피레네 산맥으로 향하는 오르막부터가 난관이었다.
셋은 그런 행로에서 홀로 걸어가는 21살 ‘권준상’과 얽히게 된다. 사람을 꺼리는 태도, 괜히 경계하는 모습이 어딘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어 보인다.
�� 준상은 본래 무용과 전공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평범하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정석처럼 여자친구와 만나서 알콩달콩 사귀기도 한다. 그러다 연인을 구하고자 했던 행동으로 인해 어떤 사건에 가해자가 되었다. 그는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산티아고 순례길로 도망치고 말았다.
과연, 준상이 얽힌 사건은 무엇일까? 그가 품은 ‘비밀’은 뭘까? 그의 죄책감의 원인은?
그리고 로저, 킴스, 도로시는, 과연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할 수 있을까?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를 내려놓을 수 있을까?
《어느 멋진 도망》 - 방랑자로 와서 도망자가 되었다가 여행자로 떠나는 인생 ‘부엔 까미노’
소설 《어느 멋진 도망》을 읽으며 궁금해서 좀 알아봤는데,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 북서부의 소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길이란다. 이 소도시가 유명한 이유는 꽤나 오랜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1100년 전, 9세기 초, 스페인 갈리시아 지역의 작은 언덕에서 기묘한 현상이 보고된다. 그곳에 별빛이 유난히 밝게 비쳤고, 목동 한 명이 천사로부터 계시를 들었다는 것이다. 바로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이자 사도들 중 최초로 순교당한 야고보의 유해가 묻힌 곳이라고 말이다. 기원 후 44년경, 야고보는 로마제국 시절 유대 지역을 통치하던 왕,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의해 참수형을 당하고 그의 유해는 야고보를 따르던 제자들이 수습해 떠났다고 했다. 바로 그 시신이 안치된 곳이 발견된 것이다. 그곳에 세워진 작은 예배당은 몰려드는 순례자들과 가톨릭의 성지라는 인정을 담은 교황의 책령, 그 밖에 종교적·정치적, 문화적·민족적 상황이 겹치면서 오늘날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런데 왜 ‘야고보 순례길’이 아니라 ‘산티아고 순례길’인가 하면, 야고보를 스페인식 이름으로 번안하면 ‘산티아고(Santiago)’가 된단다.
여하튼, 이제 산티아고 순례길은 종교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뿐 아니라 인생의 기로에 선 방랑자들이 무언가를 얻기 위해 찾는 길이 되었다. 그 길은 이국적인 문화와 아름다운 자연을 위한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중대한 일을 앞두고 도전하는 의식이 되기도 하고, 또 종교적인 신념에 따라 죄 사함을 위한 길이 되기도 하며, 진짜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길이 되기도 한다.
쓰고 보니까 위에 문화 어쩌고, 종교적인 가치관이니 언급하며 적은 게 사실은 죄다 ‘도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삶에서든, 크건 작건 잠시 도망치고 싶은 순간은 있기 마련이다. 일상을 내려놓고 떠나는 것도, 죄책감과 상실을 떨치기 위한 것도, 모종의 일을 회피하고 싶어 무작정 나서는 것도, 전부 ‘도망’이긴 하니까.
물론 일반인이 이 순례길에 오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금 사정이나 건강 문제 등이 있기 때문이다. 800km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하는 거리라고 한다. 솔직히 그 거리 걸을 상상만 해도 암담하고 아득하다. 도전할 엄두가 안 난다. 게다가 순례길 내내 들어갈 경비를 생각하면 자동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젓게 된다. 순례길은 목적지에 도착하면 끝나지만, 그 완주 후에도 인생은 이어진다. 나는 출근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겨우 모은 통장 잔고를 약 한 달 하고도 며칠의 기간에 죄다 휘발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하지만 소설 『어느 멋진 도망』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에 올라보는 경험을 했다. 피레네 산맥의 초반 멋진 자연 풍경을, 그러다 힘겨운 코스에 등반을, 잘못된 방향의 노란 화살표로 인해 길을 잃었을 때의 당황과 혼란을, 불편한 숙소와 벌레 ‘베드버그’로부터 오는 여행의 낭만 아닌 현타를, 용서의 언덕을 올라 철의 십자가 앞에 섰을 때 뭘 용서하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가의 고뇌를, 끝없는 메세타 평원을 걸으며 드넓은 공간에의 해방감과 이 길에 끝이 있는가의 불안감을, 별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 아래에서의 감동을, 산 정상에서 발치에 구름을 두고 섰을 때의 경외감을...
작가 자신이 직접 이 순례길을 걸어본 경험이 있다는데, 진짜 풍경과 묘사가 매우 실감 나게 잘 서술되었다. 여행 에세이나 사진첩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특히 소설 초반에 각 인물들의 답답한 상황과 탁 트인 광활한 평원, 한없이 높은 산맥, 끝없이 펼쳐진 머리 위의 하늘과 아득한 별빛 등 인간이 한없이 작아지는 풍경이 대비되어 극적인 힐링 효과를 선사했던 것 같다.
사실 소설 초반에 각 인물들이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도망’이 절로 떠오르는 것들이었다. 자신의 꿈과 조회수, 돈의 압박 사이에서 갈팡질팡 휘청이는 로저의 상황은 지극히 현실적이라 숨이 턱턱 막혔다. 부모님 잘 모시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되고, 돈 문제로 번뇌하는 부분이 유독 그랬다.
어떤 대목에서는 나와 겹치는 것도 있어서 이입이 잘된 건지도 모르겠다. 돈 모으긴 쉽지 않고, 나중을 생각하면 돈은 많이 벌어둬야 하지만, 실질적인 월급 생각하면 또 요원하고, 그렇다고 마냥 ‘돈! 돈!’ 하면서 살기에는 그건 또 너무 구질구질해 보인다. 가끔 소소하게 여행 갔다 오는 것도, 어쩔 때는 괜한 사치나 부질없는 짓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특히 혼자 간편하게 훌쩍 떠날 수 없는 상황인 나에게는, 괜히 가족들에게 폐만 되는가 여겨질 때 정말 기분이 다운된다. 잠시 벗어나는 행동 자체가 분수에 안 맞는 무언가로 느껴질 때, 자괴감 들고 솔직히 막막하다. ‘도망’도 어떤 부분에서는 사치에 속한다.
꿈과 자존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도로시 역시 짠하긴 마찬가지였다. 사회생활 하다 보면 그와 같은 상황은 수없이 겪기 마련이다.
회사에서 ‘이건 좀 아닌데?’ 싶은 현실성 밥 말아먹은 듯한 요구를 받았을 때, 이런저런 사정에 의해 그냥 순응해버리는 스스로의 모습이 신물이 날 때가 있다. 또 자기계발 운운하는 회사 윗분들 앞에서 ‘말은 참 쉽지!’ 하는 본심을 삼키고 웃으며 침묵할 때, 특출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분이 들 때,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밤잠을 설칠 때도 있다.
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나는 여행 갈 장소를 물색하곤 한다. 혹은 뮤지컬이나 연극을 찾아 헤매곤 한다.
그런데 이제는 이 책을 들게 될 것도 같다. 비록 다 완독했지만, 또 그렇게 특별한 명언이나 격언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섬세한 자연 풍경 묘사와 그 길을 걷는 ‘여행자’들의 교류 모습이 별다른 것 없이도 잠시 쉬어가는 느낌을 주었다. 이들이 선택한 ‘도망’은 평소의 일상에서 벗어나, 내심 정해둔 이정표를 잠시 무시하고, 이국의 길을 걷는 행위를 통해 ‘또 다른 길’을 찾고 다시 ‘자신의 길’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었다. 모여서 함께하고 흩어지기도 했다가, 걷는 여정의 어느 순간부터 ‘같이 걷는 동행’이 되고 저마다의 이야기와 책임과 도망친 이유와 비밀을 알아간다.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한다. 외국의 시인을 시작으로, 무수한 문학가들이 그랬다. 그 길 위에 서 있거나 앞으로 움직이며 걸어가거나 가끔은 뛰어가기도 한다던데, 어쨌든 각자의 길 위에서 그 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생을 마감한다. 인연이 닿으면 같은 길을 갈 수도 있고, 흔하지는 않지만 되돌아갈 수도 있다. 소설 《어느 멋진 도망》은 자신의 길에서 이탈된 방랑자들이 산티아고 술례길로 도망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만남과 인연을 통해 여행자가 되어 다시 각자의 길로 복귀하는 이야기이다. 그 고된 여정으로 무엇이 남는 걸까?
��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도 따라 움직인다.”
걷는다는 건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예전에 회사에서 ‘챌린지 기부 이벤트’를 한 적 있다. 만보기 앱을 설치 후 하루 10,000보를 20일간 빼놓지 않고 걷는다. 그럼 하루에 10,000원이 적립되고, 추후 내가 적립한 액수가 사회공헌 단체에 기부되면서, 회사에서 별도 포상까지 주는 이벤트였다. 당시 열심히 참여해 기부도 하고 상품권도 챙긴 바 있다. 누구는 그 정도야 2시간만 걸으면 금방이라고 하지만, 솔직히 내게는 ‘하루 10,000보’ 채우기가 녹록한 일은 아니었다. 그때 걷는다는 게 마냥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절감했다. 우리나라 길바닥 걷는 것도 힘든데, 소설의 킴스와 로저와 도로시, 그리고 준상, 또 그 외에 무수한 순례자들은 왜 남의 나라, 말도 잘 안 통하고 벌레들이 출몰하는 숙소에 머무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를 혹사시키며 걷기를 자처한 것일까?
내가 각 인물들이 겪은 심적 고통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동질감을 느낄 수는 있어도 완벽하게 공감할 수는 없다. 더구나 준상이 겪은 ‘좀 특별한 사건’을 제외한다면, 다른 세 명의 상실과 부담과 압박은 꽤나 상투적인 종류였다. 어느 정도 그런 부담을 안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도 그들은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고, 그 길을 걷기로 선택했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목적지에 도달해 완주 도장이나 스탬프 같은 걸 획득하면 쾌감과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고. 그것은 때로 인생의 자신감이 되고, 길을 잃었을 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여정이 되며, 걷는다는 행동 자체로 마음이 움직인다고...
솔직히 오랫동안 길을 걷는다고 해서 당장 무념무상이나 안빈낙도 같은 ‘해탈의 경지’에 이를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뭐, 다이어트는 좀 될 수도 있겠지만, 지극히 미비할 것이다. 이건 실제 경험담이다.
하지만 작은 생각의 변화,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했다는 동료 의식은 생길 것 같다. 그런 것들이 모여 어제를 내려놓고, 내일을 살아갈 힘을 구할 수 있게 지지해주는 게 아닐까?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런 동행인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국의 서울로 돌아온 킴스와 로저와 도로시가 서로 만나서 나눈 인사는 간단하다. 다시 보니 좋네요. 든든한 동지가 생겨서 나쁘진 않군요.
준상을 떠나보내며 한 말도 간단하다. 꼭 다시 만나요.
삶이라는 버석거리는 길에서 나이 차이는 좀 많이 나지만, 고된 여정을 함께한 친구가, 동료가 생겼으니, 제법 괜찮은 여행길 아니겠는가.
소설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당신의 길에서도 분명 이런 인연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 뭐, 그까짓 무릎 연골 닳고 발바닥 까진 것 정도야...?
이 소설의 작가 나상천은 유명 K팝 기획자이자 극작가라고 한다. 유명 인사 같은데, 솔직히 누구신지 잘 모른다.
그렇지만 소설은 재미있게 읽었고, 원작을 토대로 내면에는 뮤지컬 ‘까미난떼(여행자)’를 개막할 거라고 한다. 솔직히 잔잔한 구성이고, 인물의 성장 서사도 큰 박진감이 없어서, 과연 ‘캡사이신 맛’에 의한 ‘도파민 중독’에 빠진 감성 세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공연이 될지는 미지수 같다. 그러나 소설의 빼어난 자연 풍경과 이국적인 정취 등을 무대에 잘 녹여낸다면 성공할 가능성은 있을 것도 같다.
좌우간, 잠시간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다면 이 소설을 추천한다. 길을 못 찾고 헤매다가, 도망쳐온 길에서 무수한 인연을 만난 결과, 다시 내 길을 걸어가는 여행자가 되도록 도와주는 가이드북 비슷한 이야기이니까.
어쩌면 이 글을 일고, 이 책을 들게 될 독자들의 ‘독서 여행’이 좋게 마무리되길 바라며 인사로 감상문을 접는다.
�� “올라. 부엔 까미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