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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모살(謀殺) 8회
이튿날 오후, 서문경은 다시 풍노파를 찾아갔다.
사정이야 어찌 됐건 좌우간 이병아를 장죽산에게 빼앗긴 꼴이어서 서문경은 분하고 자존심이 상해 도저히 그대로 모르는 척 할
수가 없었다.
생각한 끝에 그는 기어이 그녀를 도로 빼앗아 와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그래서 우선 풍노파를 시켜 수춘이를 불러내어 이병아
와 장죽산이 결혼까지 하게 된 경위를 좀더 자세히 캐물어보고 그들 부부의 사이가 현재 어떤지도 알아본 후에 다음 계략을 강구
하기로 했던 것이다.
사자가로 가는 도중에 서문경은 문득 왕파 생각이 떠올랐다. 수춘이를 왕파의 찻집으로 불러내면 되겠구나 싶었다. 그 집 안방이
어느 모로나 풍노파의 집보다는 나을 게 아닌가 말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이번 일에도 그 늙은 너구리같은 노파를 끌어들여야지
하고 생각했다.
다시 서문경이 찾아오자 풍노파는 어제보다 한결 더 굳어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필경 무슨 일이 벌어지는구나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수춘이를 좀 왕파의 찻집으로 불러내 달라는 부탁과 함께 돈까지 몇 푼
손에 쥐어주자 고맙고 황송해서
“예 예, 그러지요. 그곳에 가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곧 수춘이를 그곳으로 데리고 갈테니까요”
하고 허리를 굽실거렸다. 그리고 서둘러 장죽산 의원을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서문경은 오래간만에 왕파의 찻집을 찾아갔다.
왕파는 무송이 동경에서 돌아와 형 무대의 죽음에 대해서 의혹을 가지는 듯 자기를 찾아와 이것저것 캐묻고 간 뒤 곧 가게를 처닫
아 버리고 어디론지 잠적을 했다가 무송이 붙들려 매주 땅으로 귀향을 갔다는 소문을 듣자 곧 돌아와서 다시 가게 문을 열고 잠시
볼일 있어서 시골의 친척집에라도 다녀온 것처럼 멀쩡한 얼굴로 장사를 계속했던 것이다.
무대를 독살하고서 반금련을 자기소실로 들여앉힌 뒤로 서문경은 왕파의 찻집 앞을 지나간 일은 더러 있어도 가게 안에 발을 들
여놓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어쩐지 기분이 꺼림칙했던 것이다.
살인 공범자의 가게이니 그럴 수 밖에....
그러나 이제 꽤 세월도 흘렀고 또 분통터지는 일 때문에 들르는 터이니 싫고 좋고 할 것도 없이 서문경은 성큼 가게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어머나, 서문 어른. 이거 어찌된 일입니까?
얼굴도 잊어버릴 뻔했지 뭐예요”
마침 혼자서 파리를 날리고 있던 왕파는 불쑥 들어서는 서문경을 보자 놀라 가슴이 철렁하면서도 늙은 너구리답게 얼굴에 웃음까
지 살짝 떠올리며 반기는 척한다.
“할멈, 오래간만이구려. 허허허...”
서문경도 반가운 듯이 웃는다.
살인 공범자 사이의 혐오감과 친밀감이 뒤섞인 그런 묘한 웃음이라고나 할까.
金甁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