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권세”입니다.
다니엘서는 이스라엘이 멸망하여 바벨론에 포로 생활하던 중에도 이방 땅에서 신앙을 지키며 뿌리를 이어가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난의 시기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되고 있어 포로생활이 끝나고 돌아가게 될 것,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어질 것을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한 말씀입니다. 특히 본문은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보여준 환상인데 한 번만 읽어봐도 누구를 말씀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인자 같은 이’, ‘구름을 타고 옴’,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은 이’, ‘모든 이들의 섬김을 받는 이’,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권세를 가진 이’를 말합니다. 누굴까요? 예수님이십니다.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과 모든 이들의 섬김을 받는 것으로 보아 예수님의 초림이 아니라 재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셔서 고난당하고 죽음 당하는 것을 많이 기록했다면 다니엘서는 이후에 재림하실 예수님과 세상 끝날, 즉 종말에 일어날 일들을 많이 기록했습니다. 다니엘서는 요한 계시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서는 구약의 계시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은 아니고 ‘권세’라는 단어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라고 했는데 예수님에게 어떤 권세가 있었는지, 또한 그러한 권세를 가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통해 은혜 받길 원합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의 권세를 알아야 하는가 하면 그 권세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 권세를 가졌으니 그런 일을 하는 것이고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보니 그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은 잘 안 부르지만 이전에 복음성가 중에 “예수님 찬양”이라는 곡이 있었습니다. 3절은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내 권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권세가 또한 우리의 권세이기에 예수님의 권세를 알아야 합니다. 그 권세를 알고 우리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가 있습니다. 할렐루야! 이 권세도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권세인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요즘 계속 해병대 뉴스가 나오는데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지요? 한 번 자녀는 영원한 자녀입니다.
성경에 예수님과 관계없는 권세도 나옵니다. 어둠의 권세, 공중의 권세 잡은 자, 음부의 권세, 사망 권세 등입니다. 이러한 권세를 잡은 자는 사단 마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사단의 머리, 즉 권세를 깨트리시고 멸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단의 권세 아래 있지 않고 예수님의 권세 아래 있으면 됩니다. 사단에게 순종하지 않고 예수님께 순종하면 됩니다. 예수님의 권세 아래로 나와서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는 빛의 자녀입니다. 사단의 지배를 받는 어둠의 자녀가 아니라 예수님의 지배를 받는 빛의 자녀가 되길 축복합니다.
어둠 가운데에 빛 되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둠을 사랑하므로 빛으로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도둑이 경찰서 근처에 안 가는 것과 같습니다.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요12:35).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의 빛입니다. 어둠을 밝히는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더 이상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은 아버지께로부터 모든 권세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십자가의 죽음까지 순종한 아들에게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심판의 권세도 주셨습니다. 마28:19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이입니다. 어떤 권세들입니까? 어둠의 권세가 아니라 빛의 권세입니다. 사망 권세가 아니라 생명의 권세입니다. 살리는 권세입니다.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요17:2), 심판하는 권세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에 이러한 권세를 다 증거했습니다. 어떤 권세들입니까?
1.먼저 죄를 사하는 권세입니다. 한 중풍병자가 친구들에 의해 침상에 누인 채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심히 불편해합니다.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사한다는 말인가? 저가 하나님인가? 하나님을 모독하는도다!’라고 비난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 라고 하는 것과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라고 반문하시고 다시 말씀합니다. 마9:6이하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죄를 사하는 권세! 분명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하나님만이 갖는 권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권세를 사용했습니다. 이 권세가 있음을 증거했습니다. 중풍병자가 일어나 걸어가는 것을 통해 그의 죄 문제도 해결되었다는 것을, 외적인 현상을 통해 내적인 변화도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것은 먼저 그가 죄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죄가 있으면서 남의 죄를 사해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런 일이 한 번만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끌려 온 여인에게도 사람들은 모두 돌을 들었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노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마라” 이 여인의 죄를 사해주신,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향유 옥합을 깨트려 주님의 발을 씻는 여인을 향해 사람들은 모두 손가락질 할 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눅7:47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처럼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권세를 오용하거나 남용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영원한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할렐루야!
2.또한 악한 영을 제압하는 권세가 예수님에게 있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수많은 귀신 들린 자들이 나왔습니다. 거라사인 지역에 군대 귀신 들려 무덤에 살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다고 했습니다. 안식일에 몸이 꼬부라진 여인은 18년 동안 귀신에 붙잡혀 있었다고 했습니다. 간질병에 걸린 아들은 귀신이 자주 불에도 들어가게 하고 물에도 빠뜨린다고 했습니다. 이런 자들이 예수님을 만나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자유하게 되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 속에 역사하던 악한 영들을 제압하고 쫒아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 눌린 자를 놓아주고 묶인 자들을 풀어주셨습니다. 히2:14,15입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하나님의 아들이 오심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요일3:8).
예수님은 사탄을 멸하시고 우리를 놓아주셨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시고 풀어놓아 다니게 했던 것처럼!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사탄의 힘을 빌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방했습니다만 예수님은 단호했습니다.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쫒아내면 그의 나라가 어찌 서겠느냐?”,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마12:29)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악한 영을 제압할 권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병을 고치는 권세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에 일어난 이적들의 3분의 2가량이 병든 자를 고치고 치료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는 막1:34에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의사인 누가는 눅5:17에서 또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이처럼 악한 영들을 제압하고 병을 고치는 하나님의 능력, 권세가 예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할렐루야!
3.그리고 예수님에게 천국 문을 열고 닫는 권세가 있습니다. 계3:7에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이사야 22장 22절에도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천국 문의 열쇠를 가지신 분입니다. 천국 문을 열고 닫을 권세가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천국문은 죄인에게는 열려지지 않습니다. 죄인이 들어갈 수 없는 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천국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양의 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는 그 문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지 않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문은 지금도 열려 있습니다. 구원의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4.끝으로 복을 명할 권세가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마10:12에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니 뿌리까지 말랐습니다. 예수님은 복을 명할 권세가 있고 저주할 수 있는 권세도 가진 분입니다. 곧 심판할 권세를 가진 분입니다. 눅12:5에 말씀합니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이러한 권세가 증거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됩니다. 이 권세 중에 하나만 가졌어도 하나님의 아들로 증거 받을 수 있는데 예수님은 모든 권세와 권능을 다 가졌습니다. 제목대로 소멸되지 않는 영원한 권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가지신 권세와 권능을 제자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요20:23). 제자들을 각 고을로 전도하러 보내면서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쫒아내며”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막16:17). “나를 따르는 자들은 나의 한 일을 할 것이요 이보다 더 큰일도 하리라”라고 했습니다(요14:12).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내 이름으로 복을 빌고 평안을 빌라고 했습니다. 내 이름으로 병을 고치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악한 영들과 가난과 저주에 묶여 있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권세 있는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통해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