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교회력대로 우리교회는 5월7일 어린이주일로 5월14일 어버이주일 21일은 부부주일 5월28일은 성령강림주일로 지키게 됩니다. 가정의 달 첫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한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족 모두 다 함께 예배드리는 아름다운 천국가정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온지 139년이 지났기에 믿음의 가정이라면 부모 자녀 손자 증손자 대를 잇는 4-5세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은 이젠 자연스러워 졌습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을 믿는 신앙유산을 후손에게 계승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2년 전 TV 프로 ‘유퀴즈’에 ‘독립유공자 5대손 데이비드 린튼’변호사가 출현하여 알게 된 것인데 너무 감동적이여서 소개하고 싶습니다. 데이비드 린튼 변호사(한국명: 인대위)는 128년 전 한국에 오신 선교사의 후손입니다. 1895년 미국 유진벨 선교사가 조선 땅 호남지역에 복음의 첫 발을 내 딛고 그의 후손이 5대 째 살고 있는데 순천 목포 광주지역에 교회를 개척하고, 병원과 학교를 세우고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독립운동을 도왔으며, 광복 후에는 기전학교에 있었던 일본 신사자리를 철거하고 공중화장실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자신들의 성을 ‘인’씨로 바꾸웠는데 “인돈” “인휴” “인요한” 출현한 데이비드 린튼은 “인대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방송을 보신 분들이 댓글을 달았는데 정말 “한국 사람보다 더 한국을 사랑합니다.” 방송을 보면서 참으로 마음이 훈훈했습니다.
린튼 신앙가문의 3대 선교사였던 인휴(휴 린튼)선교사는 순천에서 평생 농어촌 선교와 의료사역을 하시다 교통사고가 났는데, 앰뷸런스가 없어 광주까지 택시로 가시다 돌아가셨습니다. 정말! 몸과 물질 시간을 아낌없이 5대 째 한국 땅에서 섬긴 데이비드 린튼 가정이야말로 낯선 타향 한국에서 살면서 신앙유산을 물러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은 대단하지 않습니까?
유산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부모로부터 받은 몸 자체가 유산입니다. 잘생겼든 못생겼든, 그 자체가 벌써 귀한 유산이지요 우리 얼굴모습이 다른 사람보다 못하다고 이리저리 뜯어고치다가 망가지지 않습니까! 유산이기에 그냥 두어야 합니다. 건강도 그래요 나이 들면 영양제 안 먹은 사람이 없어요 황집사님 심방 갔더니 침대위에 약봉지가 수북이 쌓였드라구요 우리는 건강 챙기기를 유튜브를 보고 별 것인 줄 알고 따라 합니다. 의학서적에서 말하는 결론은 건강은 85%가 유전이라고 합니다. 소중하게 지켜야 할 내 몸이지만 건강하게 태어난 사람은 건강하다는 겁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몸의 유산 중에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것입니다.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 그 속에 다 있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하나님말씀대로 살고자 합니다.
십계명중 제1계명은......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유일신 하나님 섬길 것을 명령하시면서 부록으로 주신 말씀이 출20:5-6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율법을 지켜 행하면 내가 네 후손에게 수천 대까지 복을 주리라, 수천 대까지.’ 그런가하면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고 율법을 거역하면 삼사 대까지 벌을 주리라. 저주가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배로운 유산으로 붙들고 삽니다.
창세기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지만 이스라엘역사가 시작되는 조상의 뿌리가 창12장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12아들이 자손을 번성하여 이스라엘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신앙을 계승했습니다. 그만큼 저들은 철저한 선민의식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철저한 신본주의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교육은 철저한 쉐마교육으로 신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하나님이시니...... 오직 하나님입니다. 이 혈통의 뿌리가 다윗에게로 이어지고 예수님에게까지 신앙유산으로 이어가지 않습니까?
마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계보(족보)라....... 그러면 오늘 우리는 누구를 믿습니까? 하나님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한 사람이라면 그 집안에 신앙의 뿌리요 계보로 이어가야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족보에 민감합니다. 그래서 해남김씨 광산김씨 김해김씨 이름 있는 종친들이 모여 뼈대를 이루어가며 조상의 이름을 빛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쁘다고 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이제는 땅의 족보가 아닌 하늘의 족보를 잘 보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 내가 누구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자라고 고백하는 신앙의 혈통을 중요하게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의 자녀들이 신앙유산을 잊지말아야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사도바울이 순교직전에 마지막 남기고 싶은 목회이야기가 있는데 죽기 전에 전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언이지요 성도여러분!! 내가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꼭! 전해주고 싶은 자식들을 불러서 유언을 남깁니다.
지금 바울이 그런 심정입니다. 1-2 말씀을 보면 바울이 누구를 부르고 있습니까? 2절 말씀에 보면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를 부르고 있습니다..... 딤전 1:2절에는 디모데를 얼마나 애착을 가졌는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 이렇게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영적 아버지로써 아들인 디모데를 부르고 있어요 바울과 디모데는 육체적으로 피가 섞여있는 그런 관계는 아닙니다. 복음 안에서 믿음 안에서 낳은 자녀이기에 이렇게 부른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제가 우리청년들을 부를 때 아들 민규야 금호야 부르는 것은 믿음의 아들 이기에 이렇게 부른 것입니다. 그만큼 바울이 아들 같은 디모데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곧 세상을 떠나야 할 그런 형편이기에 자신이 해야 할 복음전도 사역을 누가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입장에서는 누구를 후계자로 삼을까 고민했던 바울의 모습이 역역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도하는데 3절에 보니까..... 내가 밤 낮 간구 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기도를 하는데 누구를 생각하고 있었는가 하면 디모데를 후계자로 세워 복음전하는 동역자로 선택하고 싶어 기도했어요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던 갖습니다.
사실 바울에게는 위대한 동역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나바, 실라가 있었습니다. 마가 누가 있었습니다. 브리스길라 아굴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바울은 그 중에 누구를 선택했습니까? 어린 디모데를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수수께끼와 같은 일입니다. 초대교회는 복음의 사역이 처음 시작되면서 전파될 때에 기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만 죽은 자를 살린 것이 아닙니다. 바울도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예수님만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도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보고 내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했을 때 일어났습니다.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주의 종들이 가는 곳마다 일어났습니다. 빌립 같은 사람은 성령이 들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다 읽어봐도 디모데는 하나도 그런 극적인 체험과 기적의 역사가 없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처럼 극적으로 변화된 모습도 없고 병든 자를 낫게 하였다는 것도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바울이 후계자를 세운다면 마땅히 다메섹에서 극적인 체험을 한 자신과 같은 사람을 세워야 할 터인데 평범하디 평범한 디모데를 선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극적인 변화의 사건은 없었고 병을 고치는 은사도 없지만 아주 중요한 것이 있었는데 3대째 내려오는 신앙유산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있는 신앙유산이 매우 중요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후계자로 세운 것입니다.
읽은 본문 말씀 행16:1 디모데 출생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헬라 땅 루스드라(행 16:1)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땅에서 태어나지 않고 이방나라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이스 엣이름 헬라는 당시 발전한 도시지만 세속도시였는데 아버지가 헬라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디모데 아버지는 세속의 도시문화를 배경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들 디모데에게 헬라문화를 주입시켜 그 기준안에서 성공의 방법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반면에 디모데의 어머니는 정통 유대인이었고 경건한 유일 신앙을 가진 어머니였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경건한 하나님의 신앙을 주입시키려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는 고민이 많았어요...... 아버지를 따라 세속적인 길을 가면 당장은 쉽고 재미도 있고 편했을 것입니다. 젊은이의 취향에도 맞습니다. 그렇지만 대신 경건이나 신앙은 포기해야 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어머니의 문화를 따르자면 당장은 어렵습니다. 세상 친구들도 멀리해야 합니다. 취미도 오락도 현실의 상당부분을 포기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젊은이로서 아주 힘든 일입니다. 이렇게 두 문화 사이에 끼어서 디모데는 상당히 갈등하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이런 디모데를 보면서 오늘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우리 젊은이들의 모형이기도합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을 지키지만 마음에 아무 갈등 없이 와서 앉아있는 젊은이가 있다면 참 행복한 일입니다.
오늘 젊은이들 가운데 내일은 주일이니 예배드리기 위해서 토요일 밤 즐거움을 포기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가는 젊은이들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오늘의 문화는 이들을 그렇게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끊임없이 유혹하고 흔들어 놓습니다.....그래서 오늘 교회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나와 앉아 있는 젊은이들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아주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디모데는 어떠습니까? 이런 고민들을 안고 있었지만 디모데를 위한 끊임없는 격려와 세상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셨던 신앙의 멘토역활을 하셨던 분이계셨습니다. 그는 바로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였습니다.
3-5절...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는 세속적인 유혹들이 있었지만 어머님 외 할머니가 믿었던 전통적인 신앙을 보고 자라온 것입니다. 그래! 세상에서 보는 것들이 아무리 좋아보여도 하나님을 부르며 회당에서 예배드리는 것이 세상에 그 어떤 가치 있는 것보다 귀한 일이지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어요 그래서 디모데는 자기 방법대로 살지 않고 외할머니 어머님의 신앙을 어깨넘어 배우며 성장한 것입니다. ........ 디모데가 할머니로 통해 어머님을 통해 배운 신앙을 무엇입니까?
1. 청결한 양심입니다.
3절을 다함께 읽습니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양심은 인간에게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아무리 영리한 짐승도 양심은 없습니다. 양심은 선악을 분별하고 자신을 살피며 삶을 감시하는 기능입니다. 양심을 따라 사는 것이 바로 자신을 관리하고 사는 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향하여 칭찬하기를 양심도 양심이지만 청결한 양심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착한마음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착한 양심을 가지고 사는가? 점검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양심을 버리면 믿음도 파괴되고 맙니다. 믿음과 양심은 수례의 두 바퀴와 같습니다. 바퀴 어느 한 쪽이 고장 나면 굴러가지 못하듯이 믿음과 양심이 바르지 못한 사람을 가르켜 딤전4:2....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화인(火印) 이란 불도장으로 찍혀서 감각이 마비된 것을 말합니다. 즉 선악간의 감각이 화인맞은 양심은 파선된 것입니다. 이 사회는 갈수록 혼란해 지고 양심의 기능이 고장 나 있는 것 같습니다.
끔찍한 살인 사건들을 보면, 부모가 자식을 살인하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이 부지기수입니다.(정인이 사건) 천륜이 양심에 화인을 받았습니다. 왜 이렇게 잔인해 졌을까요? 양심의 기능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했습니다. 신앙은 이런 양심의 기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하나님과의 관계라면, 양심은 인간의 삶의 관계입니다.
디모데는 조상 적부터 하나님을 섬겨온 신앙의 혈통을 잘 물려받았습니다. 청결한 양심 속에 평안이 있습니다. 청결한 양심은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청결한 양심 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고, 영혼이 맑아지며,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도 다음세대 자녀들에게 청결한 양심으로 사는 법을 물려 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2. 거짓 없는 믿음입니다.
5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신앙의 본질은 오직 믿음입니다. 성경의 모든 역사는 믿음이 통로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천국도 오직 믿음으로만 갑니다. 기도도 믿음으로 해야 응답을 받고, 예배도 믿음으로 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시고, 성령께서 임재하십니다. 헌금도 믿음으로 드려야 온전한 제물이 됩니다. 믿음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히11:6....믿음이 없이는 기쁘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칭찬했습니다. 거짓없는 믿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거짓 없는 믿음이란 묵상하면 믿음에도 거짓이 있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짓 속에는 항상 마귀가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거짓된 믿음, 거짓된 마음, 거짓된 인격, 거짓된 삶은 마귀가 먼저 알고,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거짓은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부부 간에도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도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부부 간이라도 신뢰가 깨지면 가정 행복이 무너지게 됩니다. 바울은 아들 같은 디모데를 칭찬할 때 거짓 없는 믿음을 칭찬한 것입니다.
디모데는 이처럼 거짓 없는 믿음의 신앙유산을 외할머니 로이스 그리고 어머님 유니게로 통해 받은 보배로운 믿음의 유산을 디모데 자신에게로 이어지는 3대째로 물려받았습니다.
5절 하반절에....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렇습니다. 디모데는 청결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 에게 물려받은 신앙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좋은 신앙의 혈통을 물려줘야 합니다. 신6: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즉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3대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DNA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나의 신앙이 당대에 끊어져서는 안됩니다.
지난주 금요일 어린이날 겸 어버이날 은혜 외가쪽 가족모임이 약속되어 있어서 다녀왔습 니다. 우천가운데도 가족들이 살아계신 부모님께 효도하고자 모였는데 살펴보니 증손자까지 참석하니까 4대가 모였어요 저녁식사 자리에 모였으면 그냥 음식먹으면 되지요 집안에 목사가 있기에 차를 주차하고 나중에 와서 보니까 분위기가 목사님! 어서와서 기도해 주세요 배고파요 목사 오기만을 가디리고 있는 겁니다. 믿음의 가정에 모습이지요
그런데 성도여러분!! 성경은 너무나 정직하고 솔직합니다. 어두움과 밝은 모습을 있는그대로 어느 가정이든 진솔하게 소개하고 있음을 알고 성경을 보아야합니다. 삼상 2장을 보면 당시 모범을 보여야 할 영적지도자 두 가정이 있었습니다.
한가정은 ...기도로 낳은 아들 한나와 엘가나의 가정, 사무엘이야기입니다. 사무엘을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키웠습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고, 항상 여호와 앞에서 자랐습니다. 사무엘은 엘리제사장도 듣지 못한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사무엘이 믿음으로 자란 결과가 어떤 줄 아십니까? 그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하면 그가 전한 멧세지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삼상4:19) 그만큼 믿음의 유산이 대물림 되었기 때문입 니다.
또 다른 한 가정이 있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자식들입니다.(삼상2:12-16) 이 가정은 신앙을 바로 물려주지 못하여 당대에 끝난 가정입니다.
삼상 2:12을 보면 엘리제사장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제사장의 아들로 자라면서도 믿음으로 양육되지 못 한 것입니다. 두 아들의 죄는 하나님앞에 드려지는 흠 없는 제물을 몰래 훔쳤습니다. 뿐만아니라 회막에서 수종 드는 여인들을 성폭행했습니다. 어찌 하나님께서 모른 척 하시겠습니까?
삼상 2: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삼상2:34... 네 두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한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결국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전쟁터에서 죽고, 엘리 제사장은 그 충격으로 의자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하나님께 엘리제사장을 하루아침에 몰락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고 오는 새대 속에 이런 가정이 있다며 표징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참으로 이 시대에 믿음의 가정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입니다.
어린이주일 우리 가정을 다시 한 번 돌아봅니다. 나로부터 신앙유산이 1세대든 2세대든 반드시 후손들에게 디모데의 가정처럼 하나님을 믿는 신앙유산을 물려주는 복된 가정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