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주(28·사진)씨의 소설 <무중력증후군>이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는 제13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소설가 황석영·김인숙씨와 문학평론가 도정일(경희대 명예교수)씨는 지난 9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회의실에서 심사회를 열어, 본심에 오른 세 작품 가운데 <무중력증후군>을 한겨레 문학상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자 고은주씨는 동국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2004년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했다.
본심 심사위원들은 <무중력증후군>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군중의 소외감을 은유와 농담으로 표현하며 소외의 무거움은 가볍게, 상처의 잔혹함은 경쾌하게 그려나간다”고 평가했다.
<한겨레> 창간 20돌을 맞아 상금을 5천만원으로 올린 제13회 한겨레 문학상에는 응모작 183편이 몰렸다. 소설가 박성원·정이현·한강씨와 문학평론가 강유정·심진경·이명원·홍기돈씨 등 예심위원들은 지난달 30일 예심을 통해 <무중력증후군> <세상에서 제일 위로가 되는 습관> <우리는 어쩌면> 세 작품을 본심 대상작으로 올렸다.
제13회 한겨레 문학상 시상식은 7월 초에 열릴 예정이다. 당선작은 7월 초께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달빛에 비춰본 지구의 삶 초점”
‘무중력증후군’으로 한겨레 문학상 수상 고은주씨
한가위 때 편의점 빵보고 영감
‘달의 분화’와 지구의 소동 그려
“여자 박민규? 그런말 들었죠”
고은주씨가 한겨레문학상 당선 소식을 들은 것은 짧은 여행을 다녀와서 서울역에 내린 9일 저녁이었다.
“6일자 신문에서 예심 결과를 다룬 기사를 보고서 거제도로 여행을 갔다 왔어요. 여행하는 동안에는 별 생각 없었는데, 9일 오후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는 긴장이 돼서 책을 읽어도 집중이 안 되더라구요. ‘지금쯤 심사를 하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는 거예요.”
전화를 통해 당선 소식을 듣고 집에 가서 평소처럼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아침에 깨어나자 그제서야 ‘혹시 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심은 통과하지 않을까, 은근히 기대했죠. 하지만 당선까지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어요.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가 고은주씨에게 첫번째 ‘행운’이 찾아온 것은 동국대 문예창작과 졸업반이던 2004년 단편 <피어싱>으로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았을 때였다.
“대학을 졸업한다니까 막막해지더라구요. 학교 친구 및 선후배들과 합평회를 하면서 소설에 대한 꿈을 힘겹게 붙들고 있던 참이었어요. 그러던 차에 대산대학문학상을 받게 되어서 소설을 계속 쓸 용기를 얻었어요.”
그 상을 받은 <피어싱>과 이번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무중력증후군>은 남자 화자를 내세운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심사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의 작가가 남자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제 문장이 다소 여성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여자를 화자로 내세우면 지나치게 감성적인 쪽으로 빠질까 봐 일부러 남자를 택했어요. 쓰다 보니 남자 화자가 보는 여자를 묘사하는 게 의외로 재미있더라구요.”
<무중력증후군>은 모든 면에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스물다섯 살 청년 ‘노시보’를 화자로 등장시킨다. 지루하고 의미 없는 일상을 간신히 견디며 언제나 충격적인 뉴스를 갈구하는 그의 눈앞에 어느 날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하나뿐이어야 할 달이 둘로 늘어난 것이다. 달이 두 개가 되면서 지구는 발칵 뒤집히고 그의 일상에도 문득 활기가 생긴다. 어머니와 형도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친구인 ‘소설가 구보’ 역시 정반대의 캐릭터로 면모를 일신한다. 그런데 둘만으로도 충격적이었던 달의 ‘분화’ 또는 ‘번식’은 세 개로 네 개로, 다시 다섯 개와 여섯 개로 계속 이어진다. 온갖 소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어느덧 사람들이 달의 번식에 익숙해질 즈음, 그것이 사실은 달이 아니라 우주 쓰레기였다는 기사가 나오고, 세상은 다시 원래의 권태와 무기력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달의 분화라는 상상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느 해 한가위 때였어요. 편의점에 갔다가 보름달 빵을 보는데, 문득 ‘편의점에서 달을 판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결국 이런 소설이 되었네요. 요즘 워낙 제목에서부터 달을 앞세운 소설들이 많아서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는 해요. 하지만 제 소설에서 달은 상징일 뿐, 중요한 것은 지구 위의 삶이죠.”
심사 과정에서는 ‘또 하나의 박민규’라는 말도 나왔다. “박민규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제 글이 박민규를 닮았다는 말은 종종 들었어요. 마루야마 겐지와 마르탱 파주를 좋아해요. 언젠가는 카뮈의 <페스트>처럼, 질병을 소재로 인간과 세계의 문제를 다룬 소설을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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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밤세도록 춤추는 ‘빨간구두’ 신을 것
고속철을 타고 300㎞의 속도로 질주한 직후, 당선 소식을 들었다. 몇 초 단위로 과거를 만들어내던 열차는 떠나고, 뜨겁게 달궈진 철로는 숨을 고른다. 차가운 레일 위로 뜨거운 동력을 흘려보내는 열차처럼, 이제 나는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며 달려갈 것이다.
나를 가르쳐주신 두 분의 스승, 이원규 선생님과 장영우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열정있는 모임 해토머리, 또한 늘 곁에서 지켜봐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언제나 든든한 주현 오빠와 사랑하는 가족들이 없었다면 내가 끝없는 산책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를, 그리고 내가 만날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한 글을 쓰겠다는 약속을 보낸다.
내게 있어서 글쓰기란 가출한 ‘빨간구두’를 쫓아가는 것과 같다. 동화 <빨간구두>에서 궁금한 것은 발이 잘린 소녀 카렌의 고루한 결말이 아니다. 발목이 잘려나간 채 지금도 어디선가 춤을 추고 있을 빨간구두의 행보다. 어디선가, 메트로놈처럼 박자를 만드는 빨간구두의 리듬이 들리지 않는가. 나의 구두는 새빨간 화력으로 무장한 채 밤새도록 춤을 출 것이다.
고은주
<당선자 약력>
1980년 서울 출생
동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4년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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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