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가 혼돈된 날씨였는지? 제주도에서는 이런 날들을 꽤 자주 목격할 듯 합니다. 겨울치고는 높은 기온, 먹구름, 거의 60-70도 각도의 빗줄기, 그런 각도를 만들어내는 강한 바람, 뿌려대는 비가 무색한 반짝이는 햇살, 파란하늘과 뭉개뭉개 솜사탕 구름, 미친듯 불어대는 돌풍성 바람, 안개 그리고 무지개. 또 뭐가 있었던가?
분명 뭐가 더 있었을 수시로 바뀐 날씨였고 그 잠깐 사이 선명하게 나타났던 무지개를 잡아냈으니 큰 행운입니다. 심지어 돌풍성 센 바람 덕분에 갑자기 선명하게 한라산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것 또한 장관이었습니다.
비를 예측할 수 없으니 오늘은 다소 먼길을 달려 중문관광단지까지 왔습니다.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식물들 이름이 너무 궁금해서 혹시나하고 여미지식물원까지 왔는데 제주도 생태와는 거의 상관없는 식물들의 전시라서 먼길의 보람은 대폭 삭감됩니다. 그냥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는 것이 훨씬 나을 듯 합니다. 입장료대비 가지말라고 말리고 싶은 곳이 여미지식물원입니다.
완이가 기침이 심해 오늘은 여미지식물원 둘러보고 걷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열도 없고 컨디션도 전혀 문제가 없어보이는데, 기침은 좀 많이 합니다. 어젯밤부터 기침약과 재채기약까지 먹였지만 아무래도 한바탕 증세를 치루어야 할 듯 합니다. 하긴 그 동안 무리를 하긴 했지요.
그래도 차만 타면 바닥에 떨어진 것부터 주워먹기, 오름에 가면 낙엽씹어대기, 옷섶 빨아대기 등 호흡기 건강에 문제가 되는 행동을 수시로 하니 환절기가 겹치면 한바탕 병치레 행사는 당연한 듯 싶습니다.
여미지식물원은 태균이에게도 꽤 지루했나봅니다. 몇 군데는 보지도 않고 막 지나칩니다. 완이는 유난히 귀도 더 막아대고 걸음도 주춤주춤, 고도의 불안행동을 보이는 것보니 지루함+뛰쳐나가고싶음의 표현인 듯 합니다. 그래도 참고 전시관은 모두 돌았으니 기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야외활동에 준이는 빠졌습니다. 힘으로 밀어붙여 샤워나 옷갈아입기 등을 하기에 이제 버거운 시간들이 오는 듯 합니다. 자기방에 누워서 안간다고 버티는데 제가 어째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사실 집에 그냥 놔두는게 벌이 아니고 오히려 녀석을 편하게 해주는 보상이 될 것같아 두렵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7시쯤 돌아오니 녀석 후회하는 표정 하나없이 아무 생각없이 집에 있는 시간을 즐기고 있었던 분위기가 역력해 속상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자폐청년들이 점차 방콕족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자꾸 팬티 속으로 집어넣는 손길은 너무 혐오스러워서 지켜보기도 민망합니다. 제 자식이 아니면 참으로 근접하기 어려운 문제가 바로 이런 것 아닐까 합니다.
집에 도착하자 완이가 준이랑 똑같은 모양새로 앉더니 팬티 속에 손을 집어넣습니다. 우려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점이 우려되서 완이를 예정된 날짜보다 일찍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부모가 1월말까지는 봐달라고 하니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솔직하게 걱정되는 부분도 다 전해주었으니 부모의 선택을 존중해야 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무겁습니다.
준이나 완이나 버려진 아이들 같아 마음 한켠에 무거운 돌이 하나 얹혀집니다.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왜 버리겠냐마는 우리 아이들은 뭔가 좋아질 방법들을 고민하고 적용하지 않는 한 그게 곧 버려진 셈이기도 합니다. 특수한 상황은 특수한 노력이 필요하기에 특수한 것에 대한 인지를 하지 않는 한 특수한 상황은 더 악화되는 경향은 어쩔 수 없습니다. 준이는 그나마도 아예 사라져버렸으니 감당해 줄 사람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엄마는 오히려 더 악화시키고, 최근에 급격히 나빠진 상황의 주범이기도 합니다. 준이가 하는 수 없이 집에 머무는 날이 되면 가정도우미 선생이 너무 힘들어합니다. 어디 한 군데 갈 곳없이 집안에서만 있어야하는 모자가 너무 싸운다고 합니다. 싸우는 것도 아니죠... 엄마가 일방적으로 퍼붓고 미워하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고...
오늘도 완이에게 단어 하나라도 더 인지하도록 단어 열심히 들려주었습니다. 이미 완이도 발성근육 조절 뇌신경이 거의 퇴화되서 이것도 문제지만, 알아듣는 단어수도 너무 적어서 그래도 의미를 아는 것 위주로 단어듣기 훈련은 지속적으로 해주어야 하는데, 이것저것 모두 걱정만 될 뿐입니다. 풀어가야 할 것들이 족히 10년은 시간을 요하기에 꼭 포기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저녁약 챙겨 서슴없이 2층으로 올라가버리는 태균이, 적응력 하나는 정말 끝내줍니다. 2층에서 하루 지냈을 뿐인데 편했나 봅니다. 진작에 분리해줄 것을... 준이를 분리해주려다가 결국 태균이가 분리되어 버렸네요.
어떻게해야 준이가 바뀔 수 있을까요? 작정하고 이뻐하고 사랑을 표현하면 잠시 딸려오는 듯 하다가 갑자기 아니야! 싫어! 하면서 몸으로 버티면 모든 게 무너져 버립니다. 이제껏 크게 혼내거나 대립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생각도 해보지만 근본적으로 애착을 느끼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애착이 있어야 애착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는데... 그게 없으니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입니다. 그 만큼 시각처리의 어려움은 애착형성에 엄청난 타격을 줍니다.
가지고 있던 경기약 한 병도 거의 절반이상 먹여서 그 다음은 어떻게 하나 또걱정! 경기약 먹고 두통과 편마비는 언제 그랬냐는듯 사라졌는데... 좀더 먹여야 할텐데 막막하네요. 자기를 걱정하는 유일하고도 마지막 사람을 준이야 알 길이 없겠지만 준이의 운명은 그걸 느껴야 하는데 녀석, 왜 이리 청개구리인지. 웃는 얼굴은 참 잘 생겼습니다.
첫댓글 겨울 날씨를 겪고 훌쩍 성장하길 바래 봅니다. 대표님도 감기 비켜가길 ~~지치지 마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