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연중 제 9주간 목요일
2티모테오 2,8-15 마르 12,28ㄱㄷ-34
+찬미예수님
좋아하는 시 중에,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이 시를 조용히 읽고 있으면 우리가 흔히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감이
비단 나에게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듭니다.
실제로 우리는 가족이 있음에도 친구와 이웃이 있음에도
문득문득 인간적인 고독감 혹은 외로움에 잠기곤 합니다.
그런데 이 감정을 이겨내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자기만을 생각하고 타인에게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행동을 기피하는 사회에서
외로움은 감당하기 힘든 짐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보면, 40년 이상 장기 복역을 한 죄수가 가석방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감옥 생활을 하다 세상에 나온 그는 해방감을 느끼기는커녕
교도소 밖의 낯선 환경에, 심한 고독과 소외감을 느끼게 됩니다.
세상이 변하고 환경이 변한 것도 당황스러운 일이지만 그에게 가장 큰 충격이었던 것은
자신을 믿고 인정해 주던 동료 죄수들과의 만남이 단절됨으로써, 세상에 홀로 내 버려졌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숙소에서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맙니다.
이처럼 고독에 휩싸여 헤어 나오지 못할 때 사람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고독이라는 것이 항상 이렇게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많은 성인들이 고독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고독을 이기지 못했던 죄수와 성인들의 차이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어디서 찾고 있었는가에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죄수의 행복은 동료들과의 우정이었습니다.
즉 자신을 알고 인정해 주는 이웃 사랑만이 삶의 활력소였던 것입니다.
일생동안 끊임없이 이러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언젠가는 사라질 신기루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한 율법학자는 예수님께,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 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이 질문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계명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고 답변하십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진정으로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이중 계명이 모두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범을 다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감정은 십자가 여정을 앞두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는 장면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이제 곧 제자들은 당신을 모른 척 할 것이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게 될 상황.
그리고 그 와중에 십자가에 못 박혀 조롱거리가 되어야할 상황에서
예수님은 극심한 고독과 외로움에 피땀까지 흘리며 몸서리치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괴로움이 극복될 수 있는 이유는 오늘 복음의 “사랑의 이중계명” 때문 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고 이를 신뢰하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
당신의 희생이 모든 인류의 구원을 가져오게 되리라는 <이웃에 대한 사랑>.
이 두 가지가 충족됨으로써 예수님은 묵묵히 고난의 여정을 걸어가시게 되고
결국 죽음을 쳐 이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외롭고 고독한 여정에 있을 때, 혹은 그 밖의 힘들고 지치는 길 위에 놓여
있을 때 우리는 반드시 홀로 됨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주변 이웃들을 향한 사랑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이 모두가 함께 할 때 우리의 삶은 활력을 되찾게 되고 더욱 아름답게 빛나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게 되며 그것은 곧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지만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
허울뿐인 사랑 혹은 자신의 필요에 대한 이기적인 사랑에 그칠 뿐입니다.
오늘 미사 중에 다시금 오늘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하느님과 사랑과 이웃 사랑을
균형 있게 실천해 나갈 것을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이를 우리가 성실히 이행한다면 주님께서는 삶의 끝에서,
오늘 복음의 따뜻하고 인자한 음성을 마침내 들려주실 것입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아멘.
서울대교구 방종우 야고보 신부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아멘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