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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포교사단 서울지역단 원문보기 글쓴이: 원경 윤병구
불탑에 대한 고찰
사찰문화해설포교팀 제5회 공동학습 자료
편집 : 원경 윤 병 구
Ⅰ. 머리 말
우리가 흔히 탑은 ‘탑파(塔婆)’의 준말이다. 탑파는 인도에서 스투파(率堵婆)라고 하고, 미얀마에서는 “파고다”라고 한다. stupa는 신골(身骨)을 담고 토석(土石)을 쌓아 올린 불신골(佛身骨, 眞身舍利)을 봉안하는 묘(墓)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탑파란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축조물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가 구시나가라(Kusinagara)에서 열반한 후 그의 제자들은 유해를 당시 사회의 풍속에 따라 다비(茶毘:火葬)하였다. 이때 인도의 여덟 나라에서 그의 사리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이 일어나게 되자, 도로나(徒盧那)의 의견에 따라 사리를 똑같이 나누어 각기 큰 네거리에 탑을 세우니, 이를 ‘사리팔분(舍利八分)’이라고 한다. 사리신앙과 불탑은 이때부터 시작되어, 민중들은 사리탑에 참배하거나 향과 꽃을 바치며 예배하고 마음을 깨끗하며 이익과 안락을 얻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불탑 신앙의 발생과 확대 전파는 물론 그 구조의 내용과 종류 그리고 장식 등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분량이 좀 많다고 느껴지나 불교미술에 대한 높고 깊은 회원님들의 수준을 감안하여 전반적으로 정리하는 수준으로 기술해 본다.
Ⅱ. 불탑 신앙의 발생과 확대 전파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지 100년이 지나 인도 아소카왕(서기전 273∼232)은 불사리를 안치한 8대탑을 발굴하여 불사리를 다시 8만4000으로 나누어 전국에 널리 사리탑을 세우면서 불교를 크게 전파되었다.
탑을 세우는 의식은 인도에서 비롯되었고, 최초의 탑은 반구형(半球形)을 이루어 마치 분묘(墳墓)와 같은 모양을 보이고 있다. 이는 문화와 언어가 다른 중국에 전래되면서 인도식의 단순한 추모물을 넘어서 기념물의 의미가지 포함된 신령함을 높이기 위하여 목조 누각의 형태를 갖춘 중국식 목탑으로 변하였다. 이러한 누각형태는 수직적인 층에서는 홀수이고 수평적인 각에 있어서는 짝수라는 것이 원칙이기에 구조가 사각삼층 이거나 사각오층, 또는 팔각구층 등과 같이 정립되었다. 그 목탑 양식은 중국에서는 점차 전탑으로 변했으나, 우리나라 삼국시대에는 목탑이 유행하다가, 차츰 한국식의 석탑형식으로 변하였다.
사원은 탑의 배치형식에 따라 크게는 탑이 금당과 일직선상에 놓여있으면 일탑식 가람배치(백제지역 사찰), 두 탑이 좌우에 대칭으로 배치되면 쌍탑식(신라지역 사찰), 그리고 하나의 탑에 금당 3개있을 경우에는 1탑 3금당식(고구려지역 사찰)으로 나눌 수 있다. 처음 사리의 묘로 세워진 탑은 예배의 주 대상이 되다가 그 후 500년 뒤에 불상이 예배대상으로 출현하자 불상과 같이 동등하게 병립하였다가, 불상이 불교신앙의 주체로 존숭 받게 되기부터는 금당이 주(主)가 되고 탑은 종(從)이 되는 사원형식으로 변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올 당시에는 대개 금당이 주가 되는 사원형식이 들어 왔기에 탑 보다는 금당이 훨씬 중요시 된 것은 사실이지만, 사리신앙도 중요시 되었기에, 신라시대 까지는 탑이 사원의 구성요소에 필수 요건이 되었다. 그후 통일신라 말부터 특히 산지가람에서는 탑이 없는 배치가 나타나다가, 고려 이후 조선시대에서는 탑이 사원에서 아예 자취를 감추거나 외곽지대로 밀려나는 경우가 되었다.
불교에서 사원을 건립하는 목적은 불교의 예배 대상으로서 탑을 세우고 불상을 봉안하여 이 탑과 불상에 예배하기 위한 것이었다. 탑은 불교의 교주인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하였고, 불상은 직접 그를 향하여 예배를 올리는 대상이었다.
따라서 탑과 불상은 가장 뛰어난 불교미술로서 한국의 고대미술을 대표하게 되었다. 특히 탑의 조성은 무한한 공덕을 쌓을 수 있다는 공덕사상과 탑을 도는 수행을 해도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대승 수도 사상 때문에 크게 유행되게 되었다. “법원주림”에 보면 조탑(造塔)을 하는 뜻은 사람이 훌륭하게 되고 진리를 쌓고 은혜를 갚기 위함이며, 탑을 도는 수행을 하면 단정한 몸과 좋은 음성을 얻고 천상에 태어나서 왕후의 집에 태어나며 마침내 열반의 도를 얻는 공덕을 쌓게 된다는 것이다.
Ⅲ. 불탑의 구조와 종류 그리고 장식
1. 불탑의 배치 형식
탑은 절에서 배치하는 기준에 따라 사원의 형식이 달라졌다. 배치는 처음에는 탑이 절의 중심으로 주 존적으로 배치되다가, 그 후 불상을 봉안한 금당과 같은 비중으로 배치되었고, 셋째로 금당에 완전히 종속적인 위치로 배치되는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대부분 세 번째 배치를 취하고 있는데, 금당 앞에 1탑만 배치하거나 좌우 대칭으로 쌍탑을 배치한 형식이 대분이다.
또한 인도에서는 탑을 조성할 때 탑 주위를 난간으로 두르고 동서남북의 4문을 설치하였으나, 우리나라는 보통 담 또는 회랑을 두르고 문을 설치하였다.
2. 불탑 구조의 양태
탑 자체의 구조는 인도의 “산치 탑”처럼 복발 탑일 때와 목탑이나 석탑 등 중충 탑일 경우에 따라 다르며, 탑의 재료나 형식에 따라서 다양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크게 보면 공통적으로 기초가 되는 기단부와 중심부인 탑신부 그리고 꼭지를 장식하는 탑두부인 상륜부 등의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층 탑의 경우도 탑신부가 중층으로 이루어지며 전탑, 목탑, 석탑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석탑은 크게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으며, 기본적으로 목조 누각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의 중층 탑의 대표적인 석탑을 예로 들어 그 구조를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가. 기단부
흔히 2층으로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아래에 있는 것을 1층기단 또는 하층기단이라 하며, 위에 있는 기단을 2층기단 또는 상층기단이라 부른다. 기둥은 각각 5, 4주(柱) 등 다양하게 만들어 진다. 우리나라 석탑의 경우 버팀기둥 수에 다라 연대가 결정된다. 또한 사리장치가 기단 밑에 장치되기도 하는데, 특히 목탑이나 전탑에 이용되고 있다.
나. 탑신부
탑신부는 지붕의 기와선을 상징하는 우동과 건축의 포작을 나타내는 층받침을 합하여 목조건물의 지붕을 하나의 층(옥개석)으로 볼 때 그 층수가 보통 3,5,7,9,11,13층 등 대부분 홀수의 중충으로 구성된다. 생명의 수를 상징하는 이 수는 7이 중심이며 3,5,7,9 등은 죽음과 새로운 생명, 즉 영생을 기리는 상징적인 수로 중요시 되고 있는데, 특히 사리탑에는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2층탑이나 10층탑 등의 짝수도 있다. 석가·다보 병존을 뜻하는 2층탑(불국사 다보탑), 원각이나 화엄사상의 완수사상인 10을 상징하는 10층탑(경천사지 10층석탑, 원각사지 10층석탑) 등 불교의 사상이나 진리를 상징하는 탑은 그에 알맞은 짝수 탑도 조성했다.
탑신에서 편년을 알 수 있는 부분은 옥개석 받침(屋石)인데, 통일 신라 초(7,8세기)에는 5단, 신라 하대(9세기) 때는 4단,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3단이 유행했음으로 이에 따라 편년을 알아볼 수도 있다.
심주 또는 찰주(刹柱)라는 기둥은 목탑일 경우에는 중심부를 관통하면서 상륜부까지 계속되지만, 석탑일 경우에는 상륜부에만 표현된다. 중층의 탑신은 3층집이나 5층집과 같은 것으로, 목탑처럼 내부가 공간으로 된 것과 석탑처럼 완전히 막힌 경우가 있다.
다. 상륜부
복발탑인 경우에는 복발 위와 평두와 산개 · 찰주 등을 상륜부라 부르는데, 이것이 중층 탑으로 변하면서 매우 화려한 모양으로 바뀐다. 즉 중층 탑인 경우 복발 탑의 기단 복발과 평두·산개는 물론이고 그 위에 갖가지 장식들이 더 첨가된 것인 상륜부가 된다. 이는 금속이나 돌로 매우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원칙이나, 그 모양은 각 탑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들의 명칭도 옛 문서에 따라 다르며, 또한 학자에 따라서도 약간씩 다르다.
3. 불탑 조성에 따른 분류
가. 불탑의 재료와 형태
1) 불탑의 재료에 따른 구분
인도에서는 벽돌로 된 전탑이 유행했지만, 금·은·동·유리·수정·나무·돌 등 다양한 재료로 탑을 만들 수 있다고 불경 “근본설유부니타나 및 마하승지율”에 기록되어 있는데, 실제로 갖가지 재료로 만들어진 탑들이 많이 남아 있다.
가) 벽돌 탑
인도나 중국에서 많이 만들어졌다. 이는 해당 지역이 벽돌 재료인 흙이 풍부했기 때문이다. 그 예로 서안의 대안탑 소안탑, 하남성의 숭악사 15층전탑 등이 있다.
우리나라는 간다라 지방에서 애용하던 모전석의 탑과 중국 전탑의 영향을 받은 모전석탑(634년 분황사 탑)이 최초로 만들어 졌고, 그 후 순 벽돌 탑은 통일신라시기 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전탑의 경우 안동 전 법흥사지 전탑, 조탑동 전탑, 청도 매전동 불영사 폐 전탑, 운문사 폐 전탑, 울산 농소면 폐 전탑 등이 있는데, 안동지역에 치우친 것은 안동지역의 화강암은 석탑으로는 적당하지 않고 오히려 퇴적암층에 양질의 뻘이 있는 지질적 특징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나) 나무 탑
목탑은 인도에서는 드물게 만들어 졌으나, 중국과 일본에서 크게 성행하였다. 중국 건축 특색은 바로 나무를 주재료로 많이 지었는데, 목탑은 실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 예로 북위 “영령사 9층목탑”은 높이가 무려 150m나 되는 거대하고 웅장한 탑이다. 일본에서는 화산이 분출한 지역임으로 석탑이나 전탑을 조성할 적당한 재료가 많지 않았기에 지진 등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목탑이 발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의 선덕여왕 때 세워진 높이 80m의 “황룡사 9층목탑”이 가장 대표적인 것이며, 이것은 중국의 영령사 9층목탑을 염두에 두고 조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망덕사의 목쌍탑도 유명하였으며, 그리고 백제나 고구려에도 목탑이 많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것으로는 법주사 팔상전과 쌍봉사 대웅전 등이 있다.
다) 돌 탑
우리나라는 양질의 화강암이 풍부하게 생산되기에 웅장하고 아름다운 석탑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석탑은 우리나라 탑의 대명사처럼 인식되어 오고 있다. 현재에도 부여 정림사 5층석탑, 익산 미륵사 석탑, 분황사 모전탑을 위시해서 감은사 동서쌍탑, 나원리 5층석탑, 황복사 3층석탑, 불국사 동서쌍탑, 실상사 동서 3층석탑 등 많이 남아 있다.
라) 금속제 탑
금, 은, 동, 철 등으로 만든 조그만 탑들도 많이 만들어 졌다. 특히 동으로 만든 것은 많이 남아 있는데, 이에는 상당히 큰 탑도 있다. 이들은 모두 정교하게 만들어 졌기 때문에 공예적인 성격이 농후하다.
마) 기 타
수정이나 은으로 된 이른바 옥탑(玉塔)과 흙으로 된 니소탑(泥塑塔) 등이 많이 있는데, 니소탑은 탑 속에 넣은 작은 탑인 경우가 많으며 이런 작은 탑들 중에는 돌로 된 것도 상당수 된다.
2) 불탑 조성의 형태
탑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복발 탑, 둘째 중층 탑, 셋째 특이형 탑으로 나눌 수 있다.
가) 복발 탑
인도 탑의 초기 형태이다. 탑신이 마치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탑신 밑은 기단부이며, 탑신 위는 네모꼴의 석감(石龕) 즉 평두를 얹고 그 위에 산개를 안치하는데, 모양은 약간씩 다르다. 탑 주위에는 난간을 돌리고 사방에 문을 설치하며, 탑 앞에는 기둥을 세워 그 위에 코끼리나 사자 같은 동물상을 얹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신라 고분과 매우 흡사한 모양으로 신라고분에 상륜부를 안치한다면 거의 복발 탑과 같은 모양이 될 것이다. 이처럼 고분은 인도 복발 탑의 영향을 다소 받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나) 중층 탑
다층건물의 모양을 탑에 이용한 것으로 짐작되며, 탑신의 모양은 다층 건물과 흡사하다. 중국의 기념비적인 탑에서 유래한 목탑에서부터 다층탑이 크게 성행한 것으로 생각되며, 이것이 다층 전탑을 발생시켰고, 우리나라에서는 다층석탑으로 변화되었다.
다) 특이형 탑
(1) 다보 탑
법화경 다보품에 보이는 다보탑에서 유래한 것으로, 초기에는 3층이었다가 후에는 2층탑에 화려한 장엄을 더한 아름다운 탑으로 꾸며졌다. 우리나라 불국사 2층 다보탑은 가장 유명하다.
(2) 보협인 탑
탑 속에 보협인다라니경을 봉안한 특이한 탑인데, 중국 오월왕 전홍숙(錢弘淑)이 8만 4,000탑을 주조해서 널리 유포했다 하며, 중국이나 일본에는 이런 형태의 탑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천안시에서 발견된 석탑의 한 예만 있을 뿐이다.
(3) 주탑(柱塔)
“십송률”과 같은 경전에 언급되고 있지만, 어떤 모양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우리나라는 경주 백률사 뒤편에서 나온 돌기둥의 사방에 탑을 조각한 것이 주탑(柱塔)의 범주에 속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 불광사 공양탑과 유사한 형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4. 불탑 안에 넣는 보물
탑에는 여러 가지 보물이 봉안된다. 원래는 부처님 사리 즉 신골(身骨)만을 봉안 하였지만 신골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사리 이외에도 머리칼, 손·발톱, 이(齒牙)는 물론 법사리(法舍利)인 불경과 법신사리(法身舍利)인 깨끗한 모래·수정·금·은·등의 보배들까지 봉안한다. 사리는 작은 병이나 함에 넣고, 이 병을 다시 내함과 외함에 차례로 넣어 사리공(舍利孔)에 봉안한다.
가. 사리(舍利)
중국에서는 음역하여 “실리라(室利羅라 불렀고, 뜻으로 번역하여 “신골(身骨), 골(骨)”로 불렀다. 이것은 부처님의 신체를 화장하고 난 나머지 뼈를 말한다. 그러므로 후대의 탑에서 나오는 아주 단단한 것은 진신사리가 아니라 법신사리라고 본다.
나. 법신사리(法身舍利)
한정된 진신사리 대신, 수정·유리·모래와 같은 보배를 작은 알처럼 만들어 탑에 봉안했는데, 이것을 법신사리라 한다.
다. 법사리(法舍利)
사리와 함께 또는 사리 대신에 불경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처님의 법이 씌어 있는 불경을 넣기 때문에, 사리 대신 법사리로 생각했던 것 같다. 가장 많이 넣은 불경은 법화경(法華經),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 보협인다라니경(寶篋印陀羅尼經), 무구정광다라니경(無垢淨光陀羅尼經), 존승다라니경(尊勝陀羅尼經) 등이 있다.
특히 무구정광다라니경을 넣을 때는 99개의 작은 탑을 함께 봉안하는 경우가 많으며 황복사 탑, 동화사 탑, 선림원지 3층석탑, 등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탑의 기단부에는 십이지장상, 팔부중상, 사천왕상 등이 장식된다.
십이지장상은 보통 탑 기단 중석의 각 면을 삼등분하고 한 구획에 하나씩 양각하는데, 인신수두(人身獸頭)의 모습에 법의를 걸치고 있는 형태가 많다. 십이신장상은 약사여래의 12대원(大願)을 수행하는 신장으로서 불법을 수호하는 기능을 한다. 일예로서 예천 개심사터 오층석탑, 영양 화천동 삼층석탑, 현일동 삼층석탑, 구례 화엄사 서오층석탑 등이 있다.
이밖에도 비천상(의성 관덕동 삼층석탑의 기단부)이나, 불·보살상(여주 신륵사 다층석탑의 용·구름 문양, 함양 승안사터 삼층석탑) 등이 장식되기도 한다.
탑의 한 층은 몸돌과 지붕돌로 구성되며, 몸돌에는 인왕상과 사천왕상, 화불, 보살상 등이 새겨진다.
1) 인왕상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의 동서남북을 관장하는 천왕이다. 동방에는 지국천, 서방에는 광목천, 남방에는 증장천, 북방에는 다문천이라 불리는 천왕이다.
실례로서는 화엄사 서오층석탑,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 승안사터 삼층석탑, 영양 화천동 삼층석탑과 현일동 삼층석탑 등에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탑신부 위쪽부터 상륜부가 전개되는데, 상륜이라는 말은 수연(水烟) 밑에 있는 구중원륜(九重圓輪) 또는 보륜(寶輪)의 딴 이름이다.
자현스님 저, 사찰의 상징세계 상 · 하, 불광출판사, 2012.
목경찬 저, 사찰 어느 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조계종출판사, 2010.
허 균 저, 사찰 100미 100선 상 · 하, 불교신문사, 2007.
허 균 저, 사찰 장식 그 빛나는 상징세계, 돌베게, 200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탑,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