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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뽑기의 위험성 새해가 되면 많은 교회들에서 송구영신예배후에 말씀뽑기를 한다. 언제 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수는 없지만 .. 하는것의 취지는 아마도 그 말씀이라도 한해동안 붙잡고 믿음 생활 잘하라는 것이겠지만 ... 그러나 그것이 성도들에게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지....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지 ... 기도해보고 하시는 일인지 ....과연 성경적인 일인지...의문이 간다. 처음엔 나도 그냥 좋게 생각했었다. 대부분 위로와 격려의 내용들이었기에 특별히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 그러나 이것이 얼마나 위험스러운 일인지...염려스러운 마음이 든다. . 그이유 첫번째 년초에 내가 간 미용실원장님과 파마하며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믿는 사람임을 알게 되자 나에게 물었다 . 시편 41편1~3절 말씀을 아느냐고 무슨 뜻이냐고.. 왜 그러냐고 묻자 그 말씀이 새해에 뽑은 말씀이었다는 것이었다. 내용은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 2 여호와께서 저를 보호하사 살게 하시리니 저가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저를 그 원수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3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 "
문제는 그분 아들이 25살의 청년으로 백혈병에 걸려 투병중이었기에... 온 가족들과 전 교인들이 그 말씀 뽑은 것을 보고 다들 기뻐하고 축하하면서 하나님께서 고쳐주실거라고 했고 본인도 그 말씀을 병실벽에 붙여 놓고 기뻐하며 기도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후 갑자기 병세가 나빠져 사망했다는 것이다. 장례치른지 이제 한 달이 채 안되었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간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분명히 고쳐 주신다고 하셨는데 왜 죽었느냐는 것이었다. 이말을 듣고 정말 기가 막히고 이런일들을 하는 목사님들에게 화가났다. 이분이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던 분이라 그래도 하나님을 떠나지않고 일하면서 그 슬픔을 잊으려 미용실 문을 열었다는 것이었다. 여러가지 말씀으로 위로를 해드리긴 했지만... 신앙생활 얼마 안된 분이었다면 어떻게 됬을까?
그이유 두번째 나의 경우다. 내가 뽑은 말씀은 신명기8장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 '재물얻을 능'을 주셨다는 말씀에 올해 내가 취직을 하게 될려나? 돈벌일이 있을려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몸이 약한데도 불구하고 일할만한 체력이 안됨에도 불구하고 ... '재물얻을 능을 주셨다'는 말씀을 붙잡고...말씀에 의지하여..믿는자에게 능치 못함이없다는 등등의 말씀을 붙잡고...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한 억지 적용이라 생각되지만) 취직을 하려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이력서를 내보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해를 보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뽑은 말씀에 매이게 된다는 것이고 ...해석이 제각각... 제나름대로 하게 된다는 것이고..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목사님들이 "예언기도 받으러 다니지말라! 직통계시는 신비주의고 잘못된 것이다" 라고 하시면서 왜 그와 비슷한 일을 하시는지...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하게 된다. 말씀뽑기
교회들이 당장 버려야 할 일들 중 하나는 '송구영신 말씀뽑기'이다.
'뽑기'라는 말이 보여 주듯이,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징크스를 갖게 하고, 믿음을 질 낮은 미신으로 만드는 일이다. 또한 은연중에 이 말씀은 내 것, 저 말씀은 네 것, 하는 식이 되어 모든 말씀을 새겨야 하는 성도가 할 만한 일이 아니다. 뽑아 보니 절묘하게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해도 마찬가지다.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그 빛을 비추기 때문에 신기할 것이 하나도 없다.
나도 오래 전에 몇 번 이런 책갈피를 받아 보았는데, 그중 두 번이 욥의 친구들의 개념 없는 독설 속에 나오는 듣기 좋은 철학이었다. 아주 좋게 들리는 그 세 친구의 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빌닷의 말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이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좋은 뜻이면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면 되지 뭘 따지느냐고도 한다. 그러나 성경에는 마귀의 이야기도 있고 사람의 이야기도 있으며, 그런 이야기들 중에는 좋아 보이는 이야기도 있다. 그걸 지키고 따라가면 안 된다. 우리의 교리적 지침은 신약 성도에게 주시는 바울 서신서 위주의 가르침이며, 나머지는 교훈과 배움을 위해 주신 것이다.
한편 강단에서는 욥의 친구들처럼 말하고 행동하면 하나님의 책망을 듣는다고 가르치니... 말씀뽑기용 구절들을 좀 신중하게라도 고르든지 해야 하는데, 참으로 답답하다. 아무리 좋은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도, 자기가 은혜 받고 묵상한 것도 아닌데 아무거나 눈감고 하나 무작위로 뽑아 1년 동안 좌우명으로 삼는다는 것은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할 성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아침에 딱 펼쳐서 눈에 들어오는 말씀을 그날 내게 주시는 것으로 삼는 식의 미신적인 일은 이제 버려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펼치는 경우, 창세기나 계시록은 양쪽 끝이라 잘 안 펼치게 되는데... 그래서 만날 욥기만 보는 건가??
기독교인들의 신년운세 `말씀뽑기`
하나님의 뜻을 알려는 기독교인들의 열망이 종종 미신을 만들어 낸다.
- 부천 소정교회-
"말씀 뽑기"는 엄청난 죄입니다
말씀 뽑기, 주관하는 자나 행하는 자, 엄청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어제 두 업체로부터 홍보물이 담긴 우편물을 받았습니다. 그 내용물은 일명 “말씀 뽑기 홍보물”이었습니다.
“말씀 뽑기” 이런 말이 한국교회에 있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또한 이런 단어를 입에 담는 것조차 불쾌합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는 송구영신 예배 시에 일명 “말씀 뽑기”를 하고 있습니다. 거의 10여 년 동안 동료들과 강단에서 하지 말자고 외쳤지만 해마다 그 규모는 더욱 커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연말이 되면 여러 업체들로부터 말씀 뽑기 홍보물이 날아들고 연초가 되면 몇몇 성도들의 성경책과 벽에 걸린 액자에서 올해의 말씀이라는 제목의 성구들을 보게 됩니다.
애꿎은 업체들만 제게 욕을 먹고 있지만 사실은 돈을 목적으로 설립된 업체들보다는 그 업체들이 연말이 되면 엄청난 홍보비를 들여 그 짓을 하게 한 목회자들에게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 행위는 몇 가지 면에서 엄청난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는 이 일을 행하는 자들은 거짓 선지자라는 사실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되어 있다는 말은 이 일을 행하는 목사들은 주님께서 하시지도 않은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하지도 않은 말씀이란 성경에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그 개인에게 그 해에 주신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니 그 말씀 뿐 아니라 66권의 모든 말씀이 그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 중에 일부, 300구절 이내의 기복적인 말씀을 뽑아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행위자체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은 우리의 기준에서 좋고 달콤한 말씀 뿐 아니라 책망의 말씀도, 때로는 심판의 말씀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매 순간 당신의 백성에게 말씀하길 원하시는 것이 있음에도 한해의 주어진 말씀을 받아든 많은 순진한 성도들의 귀를 막아버리는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기도도, 더 이상의 말씀 읽기도, 더 이상의 성경 묵상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직 업체나 담임목사가 임의로 선택해서 통에 넣은 말씀을 뽑아들고 그것을 붙들고 일 년을 살 뿐입니다. 마치 연초에 점집에서 받은 점괘를 붙들고 사는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만드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일은 성도에게도, 교회에도, 그리고 이 일을 행하는 목사에게도 유익이 없습니다. 오직 사탄만을 유익하게 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이들은 각 성도에게 말씀하시는 성령을 멸시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말씀 뽑기를 정당화하는 사람들의 말에는 구약의 제비뽑기를 들어 정당성을 확보하려고 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제비뽑기는 말 그대로 구약적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제비뽑기가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은 사도행전 1장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을 때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없습니다. 그 후에도 제비뽑기를 했는데 기록을 안 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6장을 보면 일곱 집사를 뽑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때는 제비뽑기하지 않습니다. 사도보다 집사가 중요하지 않아서 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두 사건의 중간에 놓여진 한 사건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2장의 성령 강림 사건입니다.
성령이 강림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뜻을 제비뽑기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하시고 난 후에는 더 이상 제비뽑기를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우리 속에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26절에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24절은 두 사람을 놓고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바 되어..... 보이시옵소서”라고 했고 6장 3절에서는 사도들이 형제들에게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고 한 것입니다.
“말씀 뽑기”는 각 성도들을 감동하시고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멸시한 것입니다. 그분은 성경 66권, 1189장, 31,173절의 말씀을 통해서 다양하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도 안에서 일하는 주님의 사역을 억누르고 오직 연초에 뽑은 그 말씀의 지배 아래 성도를 묶어두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목사들 스스로 자신의 영적 권위와 말씀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말씀 뽑기로 인해 상처받은 사례들이 종종 올라옵니다. 그 중에 일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필명 “샤이니”라는 분의 글입니다. 연초에 내가 간 미용실원장님과 파마하며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믿는 사람임을 알게 되자 나에게 물었다. 시편 41편1~3절 말씀을 아느냐고 무슨 뜻이냐고......, 왜 그러냐고 묻자 그 말씀이 새해에 뽑은 말씀이었다는 것이었다.
내용은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저를 보호하사 살게 하시리니 저가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저를 그 원수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
문제는 그분 아들이 25살의 청년으로 백혈병에 걸려 투병 중이었기에.... 온 가족들과 전 교인들이 그 말씀 뽑은 것을 보고 다들 기뻐하고 축하하면서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이라고 했고 본인도 그 말씀을 병실 벽에 붙여놓고 기뻐하며 기도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후 갑자기 병세가 나빠져 사망했다는 것이다. 장례 치룬지 이제 한 달이 채 안되었는데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이 분명히 고쳐 주신다고 하셨는데 왜 죽었느냐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정말 기가 막히고 이런 일들을 하는 목사들에게 화가 났다. 이분이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왔던 분이라 그래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일하면서 그 슬픔을 잊으려 미용실 문을 열었다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말씀으로 위로를 해드리긴 했지만...신앙생활 얼마 안 된 분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두 번째는, 나의 경우다. 내가 뽑은 말씀은 신명기8장18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재물 얻을 능”을 주셨다는 말씀에 올해 내가 취직을 하게 되려나? 돈 벌 일이 있으려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몸이 약한데도 불구하고 일 할만 한 체력이 안 됨에도 불구하고 “재물 얻을 능을 주셨다”는 말씀을 붙잡고 말씀에 의지하여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는 등등의 말씀을 붙잡고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한 억지적용이라 생각되지만) 취직을 하려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이력서를 내보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한해를 보냈다.
문제는 이렇게 뽑은 말씀에 매이게 된다는 것이고 해석이 제 각각 제 나름대로 하게 된다는 것이고 혼란에 빠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목사님들이 함부로 "예언기도 받으러 다니지 말라! 직통계시는 신비주의고 잘못된 것이다"라고 하면서 왜 그와 비슷한 일은 태연히 하고 있는지, 새벽마다 눈물로 기도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 행위를 신년의 덕담차원에서, 그리고 송구영신 예배 시 이벤트 차원에서 한다고 하지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신 말씀에 따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교회에서 한다고 할지라도 믿음이 있다면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고대에 소위 “개전점”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신에게 제사한 후, 자기들이 사용하던 경전을 아무 곳이나 펴서 어떤 명령이 나오면, 그것을 신의 뜻이라고 하고 그것을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미신적인 습관이 중세시대에도 이어져 성경을 놓고 기도한 후에 아무 곳이나 펴 읽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짓을 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일본 신사에서 행하는 일명 “복 뽑기”를 하여 나무에 걸어두는 행위나 “새 점”을 치는 행위나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성도 여러분, 그 일에 참여하지 마십시오. 혹시나 이 일은 진행하던 목사님들은 더 이상 죄를 짓지 마시오. 복음적이지 않은 모든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죄입니다. 그것이 설령 누군가에게 유익했다하더라도 성경적이지 않다면 그만 하셔야 합니다. 꿩 잡는 것이 매라고 은혜만 되면 된다는 식의 행위는 이제 그만하셔야 합니다.
이 비 복음적인 행위를 더 이상 하지도, 참여하지 맙시다. 그렇게 행하는 것이 비 복음적 행위로 부패하고 세속적으로 흐르는 교회의 작금의 행태를 막는 작지만 큰 실천입니다. 또한 이글에 동의하시면 이글의 내용을 주변과 나누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황규관 목사
송구영신예배의 ‘성경말씀뽑기’, 무엇이 문제인가?
김영완 / 부산외대 교목실장
송구영신예배가 언젠가부터 한국교회에 당연한 교회행사로 자리를 잡아오더니, 최근에 와서는 송구영신예배에 ‘성경뽑기’(혹은 ‘말씀받기’) 순서를 가지는 교회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를 행하는 교회의 담임목사는 ‘성경구절을 뽑아서 그 말씀을 따라 새해를 시작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인가? 오히려 은혜롭지 않은가?’라는 입장에서 이를 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결코 단순하게 은혜로운 일로만 생각하고 넘어가서는 안 될 심각한 문제점들이 있다.
우선,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성경뽑기’에서 주어진 성경구절이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교인들로 믿게 하는 것이다. 대개 코팅이 되어 있는 성경구절을 보면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어있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냐는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새해를 시작하는 나에게 주신 말씀이냐는 것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인간(목사)이 성경 전체에서 성경 몇 구절을 선정해놓고 교인들로 뽑게 한 것이 어떻게 하나님이 내게 주신 말씀이 될 수 있겠는가? 아주 특별한 경우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으로라도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지 않는다. 성경뽑기에서 주어진 말씀은 목사가 인위적으로 성경 몇 구절을 정해서 교인들에게 하나씩 선물한 것에 불과하다.
둘째로, ‘성경뽑기’의 문제점은 무속적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왜 하필이면 송구영신예배에 ‘성경뽑기’를 하는가? 일반적으로 교회가 다른 행사에서는 행하지 않는 ‘성경뽑기’를 송구영신예배 시간에 하는 것은 ‘새해를 맞이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이는 마치 세상 사람들이 신년 초에 토정비결을 보는 것을 연상하게 하는데 과연 심리적으로 전혀 유사성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면 감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토정비결을 연관시킨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억지주장이라고 펄쩍 뛰는 목사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교인들이 그러한 심리적 선을 분명히 그을 수 있을 만큼 성숙한 자들인가? 많은 기독교인들이 점쟁이를 찾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목사들은 이러한 무속적 경향의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셋째로, ‘성경뽑기’의 문제점을 든다면 신비주의적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이전의 신비주의자들과 종교개혁 이후의 경건주의자들은 성경을 해석할 때 소위 ‘경건주의적(devotional) 해석방법’을 사용하였다. 이들은 하나님께서는 성경으로부터 그 날의 결정에 대해 지시하시고 인도하신다고 믿고, 그들의 생활과 어떤 결정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특수한 지시를 발견할 것을 기대하고 성경을 읽어나간다. 그러다보니 성경을 인위적으로 해석하고 잘못 적용하게 되고 교리에서 벗어나는 과오를 범하게 되었다. 이는 오늘날 소위 큐티(Quiet Time)를 통해서도 범할 수 있는 잘못이다. 하나님께서는 신구약 성경 전체로 우리를 인도하시지 단편적인 말씀으로 족집게처럼 지시하시지는 않는다. ‘성경뽑기’에서는 이러한 신비주의적 경향의 위험성이 있다.
끝으로 ‘성경뽑기’의 문제점은 성경 어디에도 이러한 일을 행하도 좋다고 뒷받침해 주는 가르침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행할 때 반드시 거쳐야 할 일이 있는데 ‘이것이 과연 성경적인가?’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필자가 찾아보기로는 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전혀 없다.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만 잠언 16장 33절의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근거로 드는 목사가 있다면 그는 성경해석원리를 새롭게 배워야 할 것이다. 성경에 근거가 없는 일을 심각하게 고민해 보지도 않고 단지 은혜롭지 않느냐는 논리로 이 일을 행한다면 성경말씀에 대한 기본자세가 잘못된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교회 분위기를 살리는 이벤트용으로 사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말씀을 맺으면서 덧붙인다면 오늘날 교인들의 무지는 목사의 무지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이다. 성장하는 교회가 하면 다 옳은 것이고, 무분별하게 인본주의 방법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는 교인들은 말씀에 무지할 수밖에 없고 이단들이 설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목사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구약의 사사시대는 사람들이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았듯이 오늘날 목사들도 소견에 옳은 대로 목회하는 목사가 너무 많다. 그러니 교인들은 영적 무지에 빠지고, 이단들은 설쳐 되며 양떼들을 미혹하고 있는 것이다. 용서를 구하면서 좀 자극적인 표현을 하자면 ‘꼼수 부리는 목회’ 그만 두고 ‘신학이 있는 목회’가 되었으면 한다. 교회가 회복되려면 교리와 교회법을 통하여 교회를 개혁했듯이 교리를 가르치고 성경적 교회로 회복되어야 하겠다.
말씀 뽑기, 이제 그만하면 안될까요? -진민용-
십계명의 제 첫 계명이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 때문에 기독교인은 철저히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으려 할 뿐 아니라 타 종교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우상'으로 규정합니다. 심지어는 '신년운세'나 '띠로 보는 오늘의 운세' 같은 경우에도 매우 비성경적이라는 이유로 배척합니다. 그리고 '점치는 무당'이나 '점'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들에서 연말, 즉 매년 12월 31일 밤만 되면 '신년운세'를 봅니다. 일명 '송구영신' 예배를 통해서 입니다. 이 '송구영신' 예배는 12월 31일 11시부터 1월 1일 새벽 1시 정도까지 행해지는데,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예배와 기도로 준비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예배에서 새해를 출발하면서 '하나님이 새해에 나에게 주신 말씀'을 뽑습니다.
혹시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그 방법을 말씀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신년을 앞두고 나에게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해주실까 궁금하겠지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성경구절 제비뽑기'입니다. 성경의 내용 중 일부 구절을 적은 쪽지들을 만들어 놓고 교인들에게 하나씩 뽑게 합니다. 거기에는 '성경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 교인들은 '이 말씀이 새해에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 또는 말씀이구나'라고 믿습니다.
1. 누가 성경을 마음대로 골라 뽑을 권한을 가졌습니까?
성경책 분량은 1800쪽 가량 됩니다. 성경 전체는 총 1189장으로 돼 있으며 무려 5만 4240절로 돼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실시하는 '뽑기'에서는 이 많은 분량의 내용이 전부 동등하게 선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내용들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한 구절이 있을까요? 아마 기독교인이라면 성경 전체를 오직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있는데 '덜' 중요한 구절이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내용의 방대함 때문에 어떤 이들은 평생 성경을 한 번도 완독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이 중에 골라서 쪽지를 만드는 작업을 교회에서는 하게 됩니다. 즉 '제비'를 만드는 작업이겠지요.
보통은 목사나 전도사 등이 작업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구절을 넣고 빼고 할 권한을 이들이 가졌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교인들은 이들이 뽑아준 성경구절 중에 골라야 하겠지요.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제외된 성경구절 중에 뽑힌 것보다 중요하지 않은 구절이 없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을 뽑을 때 나름대로 기준을 세우게 되는데, 그 기준은 대체로 '축복'과 관련 있거나, '약속' 또는 '충고' 등으로 정해집니다. 물론 뽑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네 자손이 복되리라' 같은 류의 '축복' 내용을 가장 선호합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이런 식의 구절 뽑기는 매우 인위적으로 성경 내용을 선정함으로써 그 기준이 결코 성경이 제시하는 모든 말씀을 다 담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권위를 목사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2.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데 더 문제
아마 기독교인이라면 욥기 8장 7절의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내용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 용품점에서는 이 내용의 액자도 많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 말씀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약속'으로 이해합니다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욥이 고난을 당할 때 그의 세 친구가 찾아와서 위로를 하는데, 그 중 '빌닷'이라는 친구가 욥을 위로하면서 했던 말이 바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사람에게 이런 용기를 심어주는 것은 아주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 말이 성경에 기록됐다는 사실만으로 마치 "하나님이 욥, 또는 오늘날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잘못 이해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위의 예를 든 것처럼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도 있고 '사람의 말'도 있으며 '사탄의 말' 또한 있습니다. 이런 말들 중에 분별없이 그저 "내용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취사선택한다면 그 또한 성경을 오해하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연말에 실시하는 '구절 뽑기'에서는 대부분 '좋은 내용'만을 골라서 뽑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내용 중에 하나님은 인간에게 '진노의 메시지'와 '저주의 말' 그리고 '심판의 메시지'를 더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심판'과 '진노'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욕심 때문에 일부러 이런 구절은 아예 '뽑기' 에서 제외시켜버립니다. 그래서 '좋은 말', '복 준다는 말' 등만 사용합니다.
어떤 이들은 "새해에 덕담하는데 좋은 말만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하십니다만, 그런 덕담이라면 차라리 목사가 스스로 교인들에게 해 주고 싶은 덕담을 적어서 뽑게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성경은 그런 덕담에 활용하라고 인간에게 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지 않습니까.
3. 성구 뽑기는 교인들을 편협된 신앙으로 빠트릴 위험이 있어
앞서 언급했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좋은 평가만 듣고 싶어 합니다. 이런 욕심을 교회가 성경적인 올바른 판단기준으로 안내하고 교육해도 모자랄 판국에 그런 욕심을 더 조장하고 있다는 데 이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성경 뽑기를 말 안 듣는 자식에게도 부모가 용기를 북돋우기 위해 "잘될거야"라는 말을 하는 것 정도로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그 쪽지를 받아든 교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 성경구절을 "한 해를 살아가는데 지침이 돼 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그 성경내용을 다른 성경 내용보다 더 귀중하게 생각하면서 발생하는 신앙적인 오류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과 일치한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4. 성경을 '신년 운세 점치기'로 사용해서는 안 돼
중세 가톨릭은 라틴어 성경을 번역하지 않고 사제들만 읽으며 교인들을 성경에 문외한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로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가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기치를 내 걸고 일반 교인들을 위해 성경을 독일어로, 또는 영어로 번역했습니다. 한국교회의 이런 이상한 '점치기'는 성경을 모르는 무지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더 이상 성경을 '덕담'으로 사용해서도 안되며 빵에서 건포도만 빼 먹듯, 자신에게 좋고 듣기 좋은 말만 뽑아서 스스로 자위하는 심약한 교인들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는 오히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그 인간의 그 죄악 때문에 숱한 선지자들과 예언자들을 보내서 경고를 했지만 돌이키지 않는 인간의 교만함 때문에 결국에는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에서 죽어버림으로써 인간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신 그 아픈 내용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심오하고 무거운 주제의 성경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점쟁이가 점을 치듯, 몇 구절 뽑아서 그것만 붙들고 1년을 살라고 던져주는 무책임한 일을 중단해야 합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일부 교회는 그 '성경 뽑기' 통 앞에 간혹 '헌금' 통을 놔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헌금봉투에는 어김없이 '새해소원 기도제목'이라는 내용을 기록하게 합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르는 이 같은 관행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해야 할 때가 됐다고 판단합니다.
돈을 받고 면죄부를 팔았던 가톨릭이나 돈을 받고 '성경구절'을 파는 교회나 공히 '개혁의 대상' 임에는 틀림없는 듯합니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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