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天馬) 시승기
기차여행을 퍽 좋아하는 편이 아닌 나는 유독 서울 청량리에서 출발하여 강릉 (江陵)까지 가는 노선을 무척 좋아한다. 청량리에서 출발한 기차는 충청북도 제 천(堤川)에서 태백선 (太白線)으로 선로(線路)를 바꿔 타고 가다 강원도 태백(太 白)에서 다시 영동선(嶺東線)으로 갈아 타고 강릉까지 간다. 그 환상의 철길은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니 직접 타보는 수 밖에 없다.
서울서 강릉 까지 영동고속도로(嶺東高速道路)를 승용차로 달리면 3시간 안팎 으로 갈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6시간 넘게 걸리는 이 노선을 선호(選好)하는 까 닭은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곳에 보고 싶은 임들이 계시고 조국(祖國)의 산하(山 河)를 가장 깊고 자세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 노선을 서너번 다녀 보았지만 눈내리는 날 이 노선을 달려보기는 처음이다. 먼저는 너무 늦어 설경을 보지 못했다.
부모님과 천지신명(天地神明) 그리고 삼신할미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않 는다. 봄에 기차를 타면 하늘을 제외한 지상의 만물(萬物)은 초록으로 채색되어 금방 졸리거나 무료하기 짝이 없다. 그나마 산하(山河)가 오색물감으로 치장한 가을에는 시선을 어디다 둘지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명경지수(明鏡止水)를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백설이 만건곤(滿乾坤)할 때 심산유곡(深山幽谷)을 달리는 철마(鐵馬)는 큰 위 안이 된다. 물론 경부(京釜)나 호남(湖南) 평야를 내달리는 철마들도 있지만 역 시 강원도 산악(山岳) 지역을 나는 듯 구름 위를 달리는 철마가 가장 사랑스럽다. 평야를 내달리는 철마는 금방 눈을 피곤하게 만들거나 자장가를 불러주는 일 밖 에 다른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무료한 시간을 주전부리로 달래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었다. 아침 6시경 신정(新正) 연휴라 늦잠을 자고 있는 아내는 나의 성화에 마지 못해 일어나 무작정 나를 따라 나섰다. 나는 어디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따라 오기만 하라고 말했다. 전철 편으로 청량리에 도착하자 아내는 그제야 나의 행 선지를 짐작하는 눈치였다. 며칠 전부터 나는 정동진(正東津)과 강릉 이야기를 꺼냈었다.
아내는 12월 31일 밤차를 타고 정동진 행을 고집했지만 나는 아내의 말을 못 들은 척 했다. 새해 첫 날의 정동진은 모래알 보다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우 리가 탄 열차 안은 대부분 삼사 십대 여인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사람이 구름처 럼 몰리는 장소에 나는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병적 증상을 가지고 있다. 열 차가 청량리를 출발하자 나는 아내와 카페가 설치된 칸으로 이 동했다.
이미 우리처럼 아침 잠을 설친 사람들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시원한 설경(雪 景)을 바라보며 허기진 속을 달래고 있었다. 기차를 타기 전까지 시큰둥했던 아 내는 내가 간단한 먹거리와 시원한 음료수를 사가지 오자 그 제야 얼굴이 풀어졌 다. 열차는 제천까지 이렇다 할 진경(眞景)을 보여주지 못했다. 나는 멍청한 표정 으로 창 밖을 내다 보았고 아내는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영동지방의 기상 뉴스 를 미리 살펴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다.
늘을 나는 천마(天馬)로 변신해 있었다. 이때부터 철마 잔등에 올라탄 승객(乘客) 들은 졸지에 하늘을 나는 신선(神仙)이 된다. 천마는 골짜기를 헤집고 준령(峻嶺) 을 넘어 하늘과 땅을 오르내리며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승객들 정신을 혼 미(昏迷)하게 만들었다.
천마가 백설로 뒤덮인 설산(雪山)의 계속을 달릴 때면 하얀 눈보라를 일으키는 데 천마 맨 뒤 칸에 탄 승객들은 그 장관을 보고 한참 동안 입을 다물지 못한다. 계속 이어지는 비경(秘境)에 승객들의 찬탄(讚嘆)은 도를 넘어 졸도하는 이가 있 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철마가 영월(寧越) 고을을 지나갈 때 나는 지난 늦가을 다녀온 청령포(靑玲浦)가 생각났다.
이미 수 차례 다년 온 곳이지만 갈 때 마다 나는 임의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난 가을에는 붉게 타오르는 단풍으로 여느 때보다 더 우울했다. 조국의 산하를 뒤 덮은 단풍이 마치 임의 깊은 원한(怨恨)을 보는 것 같았다. 나는 청령포를 나오 며 단종의 사형(死刑)을 집행하고 돌아오는 금부도사(禁府都事) 왕방연의 시를 몇번이고 읊조리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돌려야 했다.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는 동안 나는 카메라를 들고 천마 잔등에서 내려 조국 산하의 폐부(肺腑)를 유심 히 살피며 설국(雪國)을 렌즈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내는 혹시 내가 천마 발 굽에 채여 나가 떨어질까 봐 따라 내려서 얼른 천마 잔등에 오르라고 채근하였다. 만약 아내의 제의대로 어젯밤에 야간 열차를 탔더라면 나는 두고 두고 크게 후회 할 뻔 했다.
물론 일출(日出)을 보고자 하는 아내와 금수강산의 깊은 곳을 보고 싶어 하는 나 의 열망이 다르기는 하지만 결국 아내가 나의 뜻을 존중해 준데 대해 크게 고마워 하였다. 천마가 사북을 떠나 다시 날개를 펼치자 분명히 두 눈을 뜨고도 나는 환상 (幻想)을 봐야 했다. 산등성이를 달리는 천마의 발걸음에 나는 무척 신이나서 계속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며 휘바람을 불어댔다. 늘 묵직한 표정을 짓던 내가 어린아 이 처럼 기분이 들떠있자 아내는 신기한 듯 나를 바라보았다.
내 앞뒤에 앉아있던 다른 승객들은 나의 계속되는 카메라 셔터소리에 밖을 내다 보며 덩달아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댔다. 눈이 내리는 구간을 달릴 때 나는 독한 술 에 취한 듯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함박눈을 온 몸으로 맞으며 천마는 구불구불한 하늘 철로(鐵路)를 잘도 달렸다. 철길 옆으로 서 있는 나무는 모두 크 리스마스트리 같았다. 나의 환호성에 아내도 어느새 탄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었다. 나는 천마가 중심을 잃고 한쪽으로 기울어 넘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지만 백두대간(白頭大幹)의 품을 빠져 나올 때까지 나의 걱정은 한낮 기우(杞 憂)였음을 알았다. 나는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믿지 못할 정도로 환상적이고 신 비한 비경(秘境)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이게 혹시 꿈이 아닌지 허벅지를 꼬집어 보기도 하였다.
나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아내에게 얼른 카페 열차에 가서 캔맥주를 사오라고 부탁하였다. 권주가(勸酒歌)는 없더라도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를 보 면서 어찌 그냥 있을 수 있는가. 천마는 고맙게도 절경(絶景) 펼쳐진 구간에서는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승객들 가슴을 설레게 해주었다. 터널을 들어갈 때면 끝 없는 지옥(地獄)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되다가 이내 환한 설경이 나오면 막혔던 숨이 터져 나왔다.
나는 혼자 몽환적 절경을 즐기는 것은 죄악(罪惡)이라고 생각하여 쉼 없이 카메 라 셔터를 눌러댔다. 아내는 나의 광적(狂的)인 행동에 자주 주위 둘러보며 다른 사람들에게 미안해 하는 눈치였다. 나는 이 절경을 두고 잠을 자는 승객들에게 도리어 속으로 화를 내고 있었다. 물론 일년에 수백 번 넘게 보따리를 이고 이 노 선을 달리는 사람도 있을 테고, 다급한 일로 철마 잔등에 탄 사람들도 있으리라.
고 나와 눈을 치우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나는 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 하여 카메라를 내리고 손을 흔들어 고개를 끄덕이며 ‘수고가 많다’는 뜻을 전했 다. 천마가 준령을 내려와 정동진쯤 왔을 때 다시 평범한 철마(鐵馬)로 변하였다. 탁 트인 겨울 바다가 시야에 들어왔다.
늘 여름 바다만 봐온 나는 금방이라도 새로운 사랑이 생겨날 것 같은 겨울바다 풍경에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있었다. 동해용왕(東海龍王)이 낯선 사내에게 손짓 을 하고 있었지만 차마 철마의 잔등 에서 뛰어 내릴 수 없었다. 하얀 포말이 뽀얗 게 부서질 때마다 승객들은 또 오른편 차창으로 몰려들어 탄성을 자아냈다. 겨 울바다를 보며 환호하는 승객들은 소풍가는 소년, 소녀들 같았다.
하얀 모래, 길게 이어진 백사장, 파도, 바닷새, 눈이 시린 겨 울 바다, 함박눈, 감 미로운 음악, 술, 여인들. 나는 술 한 모금에 취하고, 여인들 의 진한 분 냄새에 취 하고, 겨울 바다에 취해 강릉에 도착할 때까지 비몽사몽간에 혼몽(昏夢)한 상태를 유지해야 했다. 비록 길지않은 6시간이지만 나는 조국의 지기(地氣)가 살아있고 맥박이 힘차게 뛰고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며, 자칫 놓칠 뻔한 비경들을 보 면서 한반도(韓半島)에 태어났음을 천지신명(天地神明)에게 감사하였다.
차림을 한 서울여인네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여인네들 얼굴에 이상하게도 하 나같이 함박꽃이 피어 있었는데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거려야 했다. 대개가 삼삼오오로 함께 나들이 온 친구나 직장 동료 같아 보였다. 6시간 동 안 철마 등에 앉아왔지만 여인들은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았다.
철마는 제 소임을 다 했다는 듯 6시간 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 며 곧 다시 보자고 하였다. 나와 아내는 강릉역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허씨(許 氏) 성을 가진 두 임이 보고 싶어 얼른 택시를 잡아 타고 초당동(草堂洞)으로 서둘 러 떠났다.
- 창작일 : 2011.1.1. 15:00 강릉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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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랑방 원문보기 글쓴이: 여강 최재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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