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왕국 - 아틀란티스(Atlantis) 대륙의 미스테리 플라톤이 《크리티아스》와 《티마이오스》에서 전설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BC 9500년 아틀란티스 대륙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지브롤터 해협)의 바깥쪽 대해(大海) 가운데 펼쳐져 있었다. 이 대륙은 포세이돈(그리스 신화의 海神)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그의 아내 클레이토와의 사이에 태어난 10명의 아들이 각지를 통치하고 있었다. 수도는 금 ·은 ·오리하르콘(대륙 특산의 귀금속)으로 뒤덮인 왕궁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설비와 건물을 갖춘 3개의 육환대(陸環帶)와 바닷물을 끌어들인 3개의 클리크대(帶)가 동심원상으로 에워싸고 있는 도시였다. 풍부한 산물과 주변의 여러 나라에서 들어오는 무역품이나 전리품은 대륙을 크게 번영하게 하였으나 어느날 심한 지진과 화산활동으로 하루 밤낮 사이에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아틀란티스 대륙의 전설은 중세 후기 이후의 대서양 탐험과, 나아가서는 아메리카 대륙 발견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전설의 섬 아틸란티스에 대하여
오늘날에도 이 대륙의 실재를 증명하려는 학자들이 있어, 대서양 중앙해령의 일부인 카나리아제도나 아조레스제도 등의 화산섬이 이 대륙의 일부라거나, 이들 제도의 동식물이 유럽이나 아메리카의 동식물과 닮았다거나, 아메리카 대륙의 고대문명 ‘아스테크 문화’는 살아남은 아틀란티스인(人)이 만들었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지질학적으로 확인되어가고 있는 대륙이동설에 의하면, 구미대륙은 원래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하지만 당시는 인류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의 일이어서 아틀란티스 대륙의 존재를 부정할 자료는 되지 못한다. 1965년 에게해(海) 남부에 있는 화산섬 테라에 근접한 바닷속에서 가라앉은 고대 성곽(城郭)이 발견되어, 그것이 아틀란티스의 도시가 아닌가 주목되었다. 이러한 전설을 소재로 한 소설로는 P.브누아의 《아틀란티스》(1919), C.도일의 《말라코트 해연(海淵)》(1929) 등이 있다.
세상에 처음으로 알린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기원전 428~348)이다. 그가 기원전 355년 에 쓴 『대화편』은 아틀란티스에 관한 최초의 기록인 동시에 유일한 기록이며,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발간된 5천여 종의 아틀란티스 관련 서적들은 예외없이 그 기록을 연구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대화편』에는 당시 지중해 일대에 전해지던 아틀란티스의 전설이 19가지 항목에 걸쳐 매우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여기서 잠시 그 내용을 확인해보자.
━어디에 있었을까?
"지중해의 서쪽 바다에 리비아와 소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더 큰 거대한 땅이 있었다. 그곳엔 리비아와 이집트와 유럽의 티레니아 근처까지 점령하여 다스리던 강력한 왕국이 있었다."
위 문장은 플라톤이 남긴 기록을 오늘날의 지명으로 바꾸어 옮긴 것이다. 지중해의 서쪽 바다는 당연히 대서양을 의미한다. 리비아는 지중해 남쪽의 북아프리카를, 그리고 소아시아는 지중해 북동쪽의 터키 지역을 가리킨다.
그 두 지역을 합친 것보다 더 컸다면 아틀라티스의 면적은 거의 오세아니아 대륙에 버금갈 정도 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동쪽의 유럽 대륙뿐 아니라 서쪽의 아메리카 대륙과도 충분히 왕래가 가능했을 것이다.『대화편』에도 "당시엔 아틀란티스를 거쳐 바다 반대편의 대륙까지 갈 수 있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아틀란티스라는 이름은 왜 붙었을까?
아틀란티스의 전설은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지중해 일대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중심 무대임을 감안할 때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대화편』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그곳은 신들이 토지를 나누어 분배할 ?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몫으로 주어진 땅이었다.포세이돈은 장남인 아틀라스를 그곳의 첫번째 왕으로 임명했으며,'아틀란티스'라는 왕국의 이름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왕국의 이름만 그런 게 아니다.'대서양'을 뜻하는 영어 '아틀란틱(Atlantic)'역시 아틀라스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왜 멸망했을까?
플라톤에 의하면 아틀란티스는 '완벽한 국가'였다고 한다.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자원,최강의 군대, 그리고 고도의 문명을 두루 갖춘 이상적이 국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래동안 번영을 누리던 아틀란티스인들은 차츰 타락과 사치에 물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대적인 침략 전쟁에 나서 인근의 거의 모든 국가들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노예로 삼았으며, 지중해에서 유일하게 정복되지 않은 채 버티고 있던 아테네를 장악하기 위해 대규모 함대를 파견하게 된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연합군은 필사적인 저항 끝에 침략군을 물리쳤다. 바로 그 시기에 아틀란티스에는 무시무시한 재앙이 들이닥친다. 신의 형벌이라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그 재앙을 플라톤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국민들의 타락으로 인해 아틀란티스는 끔찍한 저주를 받게 되었다.엄청난 지진과 홍수와 해일이 일어났고, 몹시 무서운 날이 닥쳤다. 단 하루 밤낮 사이엄 대륙은 바다 밑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언제 침몰했을까?
『대화편』의 기록은 아테네의 솔론(기원전 630~560)이 전한 이야기를 플라톤이 그래로 옮겨 놓은 것이다. 솔론은 기원전 6백 년에 이집트를 여행하다가 어느 성직자에게 그 전설을 들었는데, 아틀란티스가 침몰한 건 당시로부터 약 9천 년 전이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아틀란티스의 침몰 시기를 추측해 보자. 일단 기원전 6백 년에 9천 년을 더하면 9천6백 년이 된다. 그리고 지금이 기원후 2천 년이니까 그걸 다시 더하면 1만 1천6백 년이 된다. 즉 아틀란티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 2천 년 전에 바다에 가라앉았다는 얘기다.
아틀란티스는 침몰 전에 1만 3천9백 년간 번성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틀라스가 왕국을 다스리기 시작한 건 2만 5천5백 년 전 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결록적으로, 아틀란티스는 약 1~2만 년 전에 대서양 어딘가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학문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좀처럼 믿기 힘든 아틀란티스의 전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전설 속의 대륙을 찾아 끊임없이 목숨을 건 해저탐사에 나서고 있다. 그들 중에는 고고학자도 있고 인류학자도 있으며 지질학자와 천문학자와 해양학자도 있다. 또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굴꾼들도 있다.
아틀란티스의 멸망과 미노아 문명설
몇몇 학자들은 아틀란티스를 비교적 잘 알려진 미노아 문명과 연관시킨다. 아틀란티스가 곧 미노아 문명의 일부분이라는 관점이다.
아틀란티스의 위치가 크레타섬의 위치와 비슷하고 두 문명간의 풍습이나 전통등도 거의 같다는 주장이 몇몇 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었다.
그러면 이것과 아틀란티스의 멸망과는 어떻게 연관시킬수 있는가?
시기 상으로는 문제가 좀 있지만 기원전 14세기경에 크래타 북쪽 160킬로 지점, 테라섬에서 거대한 화산이 폭발해 크래타를 복구불능의 상태로 만들었다고 한다. 폭발의 규모가 일반적인 화산 폭발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컸다고 한다. 폭발에 의한 진동만으로도 건물이 무너지고 진동에 의한 해일은 북쪽 연안을 강타했으며, 화산폭발과는 필연적으로 그에 필적하는 지진이 발생했다. 섬 전체로 20 cm 이상의 화산재가 쌓이고 하늘의 화산재는 태양빛을 차단하고 모든 생명체가 생명을 잃었다.
어쨌거나 크래타 섬의 화산폭발과 멸망이 아틀란티스의 멸망이라는 구체적 단서는 없으나 폭발의 규모만큼은 컸음은 확실하다.
사라진 왕국 - 아틀란티스(Atlantis) 대륙의 미스테리
(아래의 이야기는 영국의 역사학자, 고고학자인 Peter James의 <The Sunken Kingdom: The Atlantis Mistery Solved> 라는 책에서 발췌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신화의 기원에 접근하는 진지한 학자의 자세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아틀란티스를 최초로 언급한 플라톤과, 이야기의 시초를 제공한 솔론, 그리고 주변 왕국들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 신화가 어디서 유래했는가를 있는가를 밝히고 있다. 근거가 불확실한 신화로부터 새로운 이론을 창조해내는 사이비학자들과, 자료와 합리적 추론을 바탕으로 신화의 유래에 접근하는 과학자는 어떻게 다른가를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이책은 영국의 각종 평론지로부터 극찬을 받은 수작이다.)
아주 먼 옛날 사라졌다는 아틀란티스 대륙의 미스테리는 근 2,400년 동안 학자와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왔다. 이를 처음 언급한 사람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Platon)이다. 그는 <티매우스와 크리티아스 Timaeus and Critias>라는 저서에서 아틀란티스 대륙이 실재했으며 대지진과 홍수의 영향으로 하룻밤 사이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사라졌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의하면 아틀란티스는 지브롤터(Gibraltar) 해협(지중해와 대서양이 만나는 해협)의 서쪽에 있던 섬으로서, 이집트문명보다 훨씬 먼저 존재했으며 대략 10,000년 전쯤에 찬란하게 번창하였는데 당시의 그리스나 다른 나라보다 훨씬 발달한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플라톤의 기록 이후 수많은 학자와 탐험가들이 아틀란티스를 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 대륙의 존재를 믿고 이를 증명할 각종 문헌이나 고고학적 증거를 수집하고 있다. 오늘 날 대서양(Atlantic Ocean: 대서양은 바로 지브롤터 해협의 서쪽이다)이라는 이름이 여기에서 유래된 것을 보면 아틀란티스 대륙이 서양인들에게 끼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이 대륙이 실제로 존재했으리라는 근거는 희박하다. 문제는 플라톤처럼 진실되고 명망있던 사람이 이처럼 엄청난 거짓말을 했겠느냐는 의문이다. 있지도 않은 지역을 언급하고 게다가 우리보다 훨씬 발달된 문명을 지지고 있었다고 사기를 쳤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본래 이 기록은 그리스의 정치가 솔론(Solon)이 이집트를 방문했을 때(기원전 565년경) 수집한 것으로 플라톤의 가계가 이를 보존해 왔다는 것이 플라톤의 주장이다.
1960년대에 학자들이 아틀란티스 대륙의 실재를 지질학적으로 근거없는 가공의 이야기로 배척하자, 소수의 학자들이 아틀란티스 대륙 이야기는 실은 찬란했던 미노스의 크레테 문명(Minoan Crete; 청동기시대)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기원전 1,500년 경 화산섬인 테라(Thera)가 폭발하면서 미노스문명을 멸망시켰으며 이것이 이집트인들에게는 '서쪽'에 있던 왕국이 멸망했다는 전설로 굳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즉, 이 '서쪽'의 왕국이 그리스로 전해지면서 지중해의 서쪽끝으로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집안에 내려오는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진술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추론에는 문제점이 있다. 플라톤은 지진과 해일을 언급했지 테라섬처럼 화산폭발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또한 그리스인들은 이미 크레테 문명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그들의 신화에도 크레테 문명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제우스의 아들로 크레테의 왕이 된 미노스왕, 미노스왕에 의해 미로에 갇힌 그의 아들 미노타우루스의 신화, 미노타우루스를 살해하는 테세우스의 이야기 등이 그것들이다. 따라서 크레테섬의 이야기를 이집트인들로부터 처음 들었다는 이야기는 설득력이 없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미노스문명의 멸망은 테라섬의 폭발과는 무관하다는 증거가 등장한다. 결국 크레테섬과 아틀란티스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 자명해진다.
대부분의 아틀란티스 이론은 신봉자들에 의해 구성되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진짜' 위치를 밝히고 있는데, 브리튼 섬(British Isles)으로부터 그린랜드, 카르타고, 테라섬, 남극대륙 등 다양하다. 아틀란티스를 회의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들의 노력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면 지금부터 영국의 역사학자이며 고고학자인 피터 제임스(Peter James)의 논의를 들어보자. 그는 최근의 저서 가라앉은 왕국: 아틀란티스 미스테리의 해결에서 플라톤의 주장의 근거를 밝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솔론의 아틀란티스 이야기가 이집트와 연관되어 있다는 데 서 출발하고 있다. 당시 인류문명 중 가장 훌륭하고 최고(崔古)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던 이집트인들이 멀리 떨어진 이민족의 역사를 -- 그것도 자신들의 문명보다 월등하고 이미 수천년 전에 존재했었다는 -- 자세히 기록했을 리가 만무하다고 제임스는 주장한다.
물론 솔론이 이야기들을 수집했고 플라톤이 이를 그대로 기술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솔론은 이집트 외에도 여러 나라를 여행했다. 특히, 서쪽 아나톨리아 지방(Anatolia: 현재의 터어키)의 리디아(Lydia) 왕국을 여행한 것은 유명하다. 거기에서 그는 역사상 유명한 부자로 알려진 크로수스왕과 우화작가인 이솝 등과 대화를 주고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기에서부터 솔론의 아틀란티스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
아나톨리아 지방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틀라스(Atlas)는 제우스와 올림포스의 신들의 저주를 받아 세상의 끝에서 하늘을 떠받치는 형벌을 받게 된다. 플라톤에 의하면 이 아틀라스가 바로 아틀란티스 왕국의 최초의 왕이라고 한다. 즉, 아틀라스는 그리스의 동쪽 지역에서 살다가 그의 왕국이 멸망하면서 머나먼 서쪽 지역, 즉 세상의 끝에서 하늘을 떠받치는 저주를 받고 아틀란티스로 쫓겨난 것이다. 옛 청동기시대 아나톨리아에 대한 히타이트(Hittite) 문명의 그림과 기록에서도 이러한 그리스인의 개념과 일치하는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바로 여기로부터 아틀라스의 실체가 밝혀진다. 아나톨리아 지방의 신화에 나오는 탄탈루스(Tantalus)가 바로 리디아 식의 아틀라스라고 한다. 탄탈루스 역시 올림포스산을 지나다가 신들의 저주를 받게된다. 호머(Homer: 유명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쓴 그리스의 서사시인)에 의하면 그에게 주어진 형벌은 평생동안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고통받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영어 tantalize의 의미가 도출된다. "보여주면서 감질나게 하다", "애타게 하다" 등!). 또 다른 이야기는 탄탈루스가 바위에 붙어서 평생 그것을 받치도록 처벌받았는데 이 바위가 실제로는 하늘이었다는 것이다. 탄탈루스 역시 아틀라스처럼 어떤 왕국의 왕이었다고 한다. 이 왕국은 매우 화려하고 번창한 도시였다고 한다. 그러나 제우스신의 저주로 그의 도시는 번개에 맞게되고 결국 지진에 의해 호수 속으로 가라앉게 된다. 이 도시의 이름은 탄탈리스(Tantalis)였다. 여기서 우리는 리디아 식의 이야기(탄탈루스 --> 탄탈리스)와 그리스 식의 이야기(아틀라스 --> 아틀란티스)의 유사성을 엿볼 수 있다.
아마도 솔론은 리디아를 여행하면서 탄탈루스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그리스에 전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솔론에서 플라톤의 시기까지 수세대 동안 이야기가 과장되고 왜곡되면서 가라앉은 왕국 아틀란티스의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플라톤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을 뿐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고문서나 여러 민족의 기록들을 보면 탄탈루스의 사라진 왕국은 현재의 에게해안 근처의 항구인 이즈미르(Izmir)로부터 20마일 정도 떨어진 시필루스산 근처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옛 작가들은 탄탈리스가 바로 리디아의 수도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많은 근대의 작가들도 시필루스 근처에 사라진 왕국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터어키를 여행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즈미르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지독한 지진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17세기에도 엄청난 지진이 이곳을 휩쓸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아마도 탄탈리스시는 실존했으며 어느 날 대지진에 의해 와해되면서 호수 속으로 가라앉아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솔론의 입을 통해 그리스로 전해지고 그리스인들은 서쪽 먼 곳 지구의 끝에 존재하다가 갑자기 사라진 아틀란티스 왕국의 신화를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플라톤은 이를 그대로 기록한 것이고 . . .
출처 : web2.kwangju.ac.kr/~jychoe/lecture/atlantis.htm
크레타섬이 아틸란티스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에게문명의 중심 미코노스왕궁
그리스 본토에 아카이아인들이 장악하고 있을때 아카이아손길이 미치지 않는 크레타섬에는 기원전 2천년경부터 문명이 싹트고 있었다. 기원전1600년에서 1500년 크레타는 수백년간 문명의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이때의 궁전이 바로 크노소스궁전이다. 크노소스의 궁전의 미로가 많은 미궁으로 그리스 신화에도 이궁전의 미로에 대해서 나온다.
근래들어 크레타 섬이 아틸란티스의 일부분일지도 모른다는 학설도 있다. 이 학설 은 20세기에 들어 오면서 싹트기 했는데 그이유는 크레타 섬과 북쪽에 있는 산토리니 섬이었다.
크레섬에서 크노소스궁전이 발굴되기 전에 크노소스는 그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궁전에 불과했고 전설의 궁전이였다. 마침내 1900년 영국의 고고학자 에번스는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에서 고대문명의 유적지라고 알려진 곳을 발굴하였다. 작업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 지 않아 큰 건물의 흔적이 나타났고, 드디어 거대한 왕궁 모습이 드러났다. 에번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로의 궁전 크노소스를 마침내 찾아낸 것이다.
크레타 섬은 전성기를 맞은지 기원전 1500년에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기원전 갑자기 들어닥친 거대한 자연재해로인해 (화산폭팔, 지진등으로 추정)파괴되었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리하여 고대 그리스인들도 크레타 섬에 문명이 존재하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에번스는 크레타 섬의 멸망 원인이 지진이라고 생각했으나 증거는 없다
출처 : http://www.cybertravel.co.kr/b_cafe/read.cgi?board=c_history&y_numbe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