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2876]雨順風調 時和年豊(우순풍조 시화년풍)
雨順風調 [우순풍조]
雨(비 우) 順(순할 순) 風(바람 풍) 調(고를 조)
비가 때맞추어 알맞게 내리고 바람이 고르게 분다.
주로 농사짓기에 알맞게 기후가 순조롭고 좋다는 뜻으로 이르는 말이다.
우순풍조(雨順風調)는 원래 기후가 순조롭다는 말이지만,
천하가 태평스럽다는 뜻으로 의미가 확대됐다.
時和年豊 [시화연풍]
時(때 시) 和(화할 화) 年(해 년) 豊(풍년 풍)
시절(時節)이 평화(平和)롭고 해마다 풍년(豐年)이 든다는 뜻으로,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비유(比喩)하는 말이다.
우순풍조(雨順風調)
조선왕조실록 태종 10년(1410) 12월 26일에 이런 기록이 있다.
“임금이 친히 제릉(齊陵)에 제사하고, 거가(車駕)가 성문에 이르니,
소경 여자[盲女]가 길에서 얻어먹고 있었다.
임금이 측연하게 여기어 쌀과 콩을 주게 하고, 환궁하여 탄식하기를
‘중외(中外)에 이와 같은 독질(篤疾)로 굶주리고 추위에 떨며 살 곳을
얻지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니 우순풍조(雨順風調)를 어떻게 이룰 수 있겠는가?’
하고, 유후사(留後司)에 명해 환과고독(鰥寡孤獨)
169인을 연복사(演福寺)에 모아 쌀·콩 1석씩을 주었다.”
여기 나오는 제릉은 태조 이성계의 비 신의왕후 한씨의 능을 말한다.
중외는 나라 안팎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환과고독은 홀아비, 과부, 어리고
부모 없는 사람, 늙고 자식이 없는 사람 등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말한다.
태종은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잘 다스린 임금이었다.
임종할 때 날이 몹시 가문 것을 걱정해 “내 마땅히 옥황상제님께 빌어
한바탕 비가 오게 해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리라”고 하였다.
그 후 태종이 죽자마자 한바탕 비가 내렸고, 태종의 기일이 되면 비가 내려 ‘태종우’
(太宗雨)라 부르게 됐다. 농촌에서는 태종우가 오면 그해에 풍년이 든다고 했다.
시화연풍(時和年豊)
시화연풍(時和年豊)은 시절(時節)이 평화(平和)롭고 해마다 풍년(豐年)이 든다는 뜻으로,
태평성대(太平聖代)를 비유(比喩)하는 말이다.
이 말은 모시정의(毛詩正義) 소아(小雅)편에 나오는
'만물이 성다하고 인민들이 충효하니 시화연풍에 도달한다
(萬物盛多, 人民忠孝, 則時和年豊)'라는
구절(句節)에서 유래(由來)한 말이라고 한다.
또 진서(晉書) 식화지(食貨志)와 송서(宋書) 공림지열전(孔琳之列傳)에는
'천하가 무사하고 시화연풍하니 백성들이 즐겁게 생업에 종사한다
(天下無事 時和年豊 百姓樂業)'라는 구절이 있다.
이 말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도 여러 차례 언급(言及)된다고 한다.
세종실록 30년 조(條)에
"변경의 성식과 군정의 긴급한 일 외에는,
무릇 흥작이 있는 것을 일체 모두 정치하여,
천견에 답하고, 시화연풍한 것을 기다려서 거행하소서"라는 대목이 있고,
(其邊警聲息, 軍情緊急事外, 凡有興作,
一皆停寢, 以答天譴, 待其時和歲豐, 然後擧之)
중종실록 17년 조에는
"조정에 잘못이 없고 백성에 원한이 없으면
자연 시화연풍(時和年豐)하여 재변이 저절로 사라질 것"이라고
(朝廷無闕失, 小民無冤抑, 則自然時和歲豐, 災自弭矣)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시화연풍은 나라가 평안하고
경제가 풍요로운 태평성대를 언급할 때 사용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