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원화단 原花團
* 흰 민들레의 특징
꽃 빛깔이 하얀 민들레는 동양에만 있다.
노란 민들레는 서양 민들레다.
토종 土種 민들레 중에도 간혹 노란 민들레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서양민들레다.
노란 토종과 서양민들레의 구별 區別은
꽃받침이 꽃을 감싸면서 위로 향하면 토종이고,
꽃과 반대 방향으로 꽃받침이 땅을 향하여 아래로 뒤집어져 있으면 서양민들레다.
서양 西洋의 노란 민들레가 한국 전쟁 때 군수물자에 묻어 들어와 민들레의 상징이 되었다.
흰 민들레는 수정 受精이 까탈스럽다.
먼저, 자가수분 自家受粉이 안된다.
반드시 타가수분 他家受粉으로만 꽃씨가 형성된다.
그런데 또, 서양의 노란 민들레의 꽃가루로는 수분이 안 된다.
반드시 같은 종족인 하얀 민들레의 다른 이웃 꽃가루여야만 한다.
자가수분은 거부하면서도 필히 같은 종족의 다른,
흰 민들레 꽃가루만이 수분되는 고집이 센 독특 獨特한 꽃이다.
그럼 노란 서양 민들레는?
아무거나 가리지 않는다.
자가수분도 가능하고, 흰 민들레 꽃가루로도 수분이 되고, 다 된다.
종족 분별력도 없고, 자가. 타가수분 구별할 필요가 없다.
더구나 노란 꽃잎은 적외선 赤外線을 발산하여 멀리 있는 벌과 나비를 가까이 오도록
유혹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다른 일반 꽃에 비해 키가 작은 만큼, 그 댓가로 발산 發散시키는 적외석.
적외선이 벌과 나비를 유혹하는 능력은 엄청나다.
노란 민들레의 번식력.
홀씨(포자 胞子)가 되어 바람을 타고, 멀리까지 퍼뜨리는 세 확장력 勢 擴張力은 대단하다.
키가 큰 교목 喬木이 없는 햇볕이 잘 드는 양지 陽地라면, 땅의 척박 瘠薄을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나 지천 至賤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토종 흰 민들레의 입지 立地는 갈수록 좁아지고 보기가 귀해진다.
요즘은 미색 米色 민들레도 눈에 띈다.
노란 민들레가 하얀 민들레의 꽃가루를 받아 수정된 혼혈 混血 트기 민들레다.
민들레의 생존 기간, 수명 壽命은 2년 반이다.
초원의 원화단은 그렇게 선우와 소왕 小王들의 각 깃발을 앞세워 무리를 지어 초원을 한 바퀴 돌았다.
나비가 초원의 꽃을 찾아다니듯이 초원 곳곳에 흩어져 있는 부족들을 찾아다니며, 같은 동족인 부족 간에 필요한 단결 명분 團結 名分과 그 당위성 當爲性을 설명하고, 젊은이들을 징병 徵兵하며 초원을 순회하였다.
그동안 이종족 異種族인 후한군을 등에 업고, 초원을 장악하였던 불순 不純한 남 흉노 세력을, 불세출 不世出의 뛰어난 무용 武勇을 발휘하여, 고비사막 남쪽으로 몰아내어 버린, 묵황야차의 명성 名聲을 익히 듣고 있었던, 부족장 대부분은 기꺼이 동조 찬성하며 적극적으로 협조를 하였다.
석 달 동안 초원을 순회하는 동안, 자발적으로 병사로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3천 명이나 되었다.
대부분이 묵황야차 이중부의 뛰어난 무용과 위명에 감복 받아 자원 自願한 것이다.
묵황 야차의 뛰어난 무용 武勇과 남 흉노를 초원에서 몰아낸 무위 武威와 전공 戰功 소식이 바람을 타고
초원 곳곳을 누비고 있었다.
호도 선우는 순회 巡廻 결과에 상당히 고무 鼓舞적인 표정을 짓더니,
호탕 浩蕩하게 웃으며 3 천 병사를 모두 묵황야차 이중부가 거느리도록 하였다.
이중부도 이제 소왕의 지위 地位에 오를 만한 전공과 명성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보름 후에는 1천여 명의 젊은이들이 더 모여들었다.
4 천여 명의 병력이 형성되자, 호도 선우는 이중부에게 정식으로 소왕의 직위를 내렸다.
묵황야차 소왕 이중부는 지금까지 생사고락 生死苦樂을 함께한
사로국 출신 장수 손우지, 정돌식, 설담비와 서누리를 천부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런데 병사 수는 4천 명이 넘어도 대부분이 신병 新兵이라 正規軍으로 육성시키려면 상당한 시일이 요구되었다.
모두를 초원 생활에 익숙하므로 승마술과 궁술은 나무랄 데가 없었으나, 접근전에 필요한 격투기나 창술이 부족하였으며, 군영을 형성하고 진영 이동시 단체로 행군하는 요령과 방법이 서툴렀다.
사로국 출신들도, 개개인 일신의 무용 武勇은 일당 一當 열 명을 상대할 정도의 엄청난 무술 고수들이나
제식 훈련 制式訓練은 받은 적이 없어, 지휘관으로서는 큰 약점이 되고 있었다.
원계획은 사로국과의 연락책을 담당할 임무로 훈련을 받았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천부장이란
고위직을 담당하는 임무가 막중한 지휘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박지형 역시 개인적인 무예 실력은 적수를 찾기 어려웠으나, 단체가 움직이는 제식훈련은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중부는 조선하의 수련동기생 중에서 통솔력이 좋다고 소문 난, 일궁 고발후와
처남 妻男이 되는 위지율을 초빙하여 제식 훈련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보름간을 고생하였으나 큰 진전이 없어 보였다.
중부는 조선하 박달촌에서 수련할 때, 병서 兵書를 열심히 공부하지 못하였음을 뼈저리게 후회하였다.
물론 그때는 어린 나이에 무예 수련에 집중하느라 심신이 피곤하여, 병법은 포기하다시피 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후회막급이다.
한편,
중부는 막북무쌍 한준과의 대결이 매번 백중지세 伯仲之勢임을 실감 實感하고,
다음 대결을 염두에 두고 묵황도에 특별한 기능을 추가시켜 본다.
묵황도의 두꺼운 등 앞과 중간 부분에 창 자루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 만큼의 둥근 원을 만들어
‘』형’ 形 모양으로 홈을 3개 파놓았다.
-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