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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가 올 때에
마태복음 25:31-46
요즘 은행은 돈을 계수기에 넣고 셉니다. 대부분의 돈이 계수기를 거쳐 나옵니다만 가끔 계수기를 거치지 못하는 돈이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분별이 안 되지만 정밀하게 검사해보면 위조 지패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분별하기 어려워도 정밀한 기계는 가짜를 가려냅니다. 그런데 요즘은 가짜도 너무 잘 만들어 계수기도 가려내지 못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 가운데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가짜 성도도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가짜 성도인지 잘 분간이 안됩니다. 어쩌면 가짜 성도가 진짜 성도보다 신앙생활을 더 잘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앞에서는 가짜 성도는 분명하게 들어 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구원받고 천국가기 위해서입니다. 천국 가는 것만 아니면 예수를 믿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행16:31). 분명히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들어갑니다. 이 말씀은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믿고 예수를 믿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진리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교회 다니고 예수 믿었던 사람이 천국 문 앞에서 ‘너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어, 저 지옥불로 들어가라’고 하신다면 어쩌겠습니까? 그때는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되돌아보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가짜 성도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구원을 얻는 믿음은 무엇보다도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동정녀에게서 나신 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동정녀 탄생은 예수님의 죄 없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가지신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이 아닌 예수는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시지만 자기 백성의 죄를 대신 지시고 대속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죽음에서 살아나신 부활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로 올라 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세상에 오실 재림을 믿어야 합니다.
31절에 ‘인자가 올 때에’란 바로 예수님의 재림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에 죽으심, 부활과 승천은 이미 역사적인 사실로 다 이루어 졌습니다. 그러나 재림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고 기다립니다. 언제 오실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를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지만 재림은 죄인을 심판하시기 위해 오실 것 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주로 오실 것입니다. 다시 오시는 날에 모든 천사와 함께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민족을 모으실 것입니다. 아담 이후 죽었던 모든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서, 그때까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자들과 함께 예수님 앞에 모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같이 의인과 악인으로 구분하실 것 입니다. 의인은 오른편으로, 악인은 왼편으로 나누실 것 입니다. 그리고 오른편 의인들을 향하여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고 하실 것입니다(34). 그러면 의인들은 기뻐 뛰며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천국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왼편에 악인들을 향하여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실 것입니다(41). 그러면 그들은 예수님께 ‘우리는 예수를 잘 믿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오른편에 있는 의인들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보다 우리가 더 열심히 믿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는 내게 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시며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실 것입니다. 이것을 인류의 최후의 심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의인과 악인이 어떻게 구분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귀신 섬기고 우상 섬긴 자들이야 의심할 것 없지만 예수를 잘 믿었던 사람들 가운데서도 악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의인도 악인도 예수를 믿었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고 예배도 드렸고 직분도 맡아 열심히 섬겼습니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가는 데 있어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저주받은 자들아 지옥불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의인과 악인의 구분을 어떻게 하시는 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고, 한 번도 주일 예배에 빠진 일 없고, 세례도 받았고, 직분을 맡아 봉사도 많이 했다고 해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천국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최후의 심판 날에 무서운 진노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양과 염소가 한 우리 안에서 목자의 돌봄을 받았던 것처럼 교회안에도 의인도 악인도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섬기며 봉사를 합니다. 예배도 드리고 헌금도 바치고 열심히 섬깁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는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의인과 악인으로 구분하실 것입니다. 함께 믿음 생활을 하였지만 의인과 악인으로 나누이게 될 것입니다. 그럼 의인과 악인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의인은 양과 같이 순진하고, 악인은 염소 같이 잘 떠받고 괴롭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목사를 괴롭히고 성도를 험담하고 교회를 시끄럽게 하는 사람이 염소와 같은 악인이라고 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은 덕은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악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형제라도 혈액형이 다르듯이 예수를 믿는 믿음이 각각 다릅니다. 똑 같이 예배를 드리지만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느냐에 따라 예배다운 예배가 될 수 있고, 예배가 아닌 예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섬기며 봉사하는 것도 사람마다 의미가 다를 수 있습니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것도 진심으로 도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이 봉사활동 했다는 증명서를 학교에 제출하기 위한 봉사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진짜 섬김입니까? 예수 믿는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의인과 악인의 차이를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차이는 ‘공궤’와 ‘공양’입니다. 37절에 “음식을 대접하고”란 말씀이 개역성경에는 “공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44절에 “공양”이라고 했습니다. ‘공궤’와 ‘공양’을 국어사전에 찾아보니까 ‘음식을 대접하고 섬기는 것’으로 둘 다 아주 흡사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 ‘공궤’와 ‘공양’은 의인과 악인으로 구분되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 성경에는 둘 다 ‘接待’로 기록되어 있지만, 영어 성경에는 ‘공궤’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으로, ‘공양’은 ‘섬기는 일’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개정판 성경은 음식을 대접하는 것’으로 번역했지만 제 생각은 ‘공궤’라는 말이 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 ‘공궤’와 ‘공양’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그 차이는, 같은 일을 하고서도 ‘우리가 언제 그런 것을 하였나이까’(37)와 ‘우리가 언제 그런 것을 하지 아니하더이까’(44)라는 말에서 알 수 있습니다. ‘공궤’는 자신이 한 것을 자랑하지 않는 것이고, ‘공양’은 자신이 한 것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의인들에게 ‘네가 그렇게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는 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공궤’입니다. 그러나 ‘네가 그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니까 ‘우리가 어느 때에 그렇게 하지 아니하더이까’라고 말하는 것이 ‘공양’입니다. ‘공궤’는 예수님께서 인정하시지만, ‘공양’은 예수님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공궤’를 한 사람은 왜 ‘우리는 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말했습니까? 그것은 이미 받은 은혜와 축복이 너무나 크고 많기 때문에 내가 한 것은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공궤’는 이미 받은 것을 감사하는 마음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었으니 그 은혜가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섬기는 것입니다. 아무리 섬기고 받쳐도 받은 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한 것을 자랑할 수 없어서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였나이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공양’을 한 사람은 왜 ‘우리가 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했습니까? 받은 것이 없고 앞으로 받기 위해 하는 일이므로 자신들이 한 것을 낱낱이 기억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이미 은혜와 축복을 받은 것도 감사할 줄 모르고 구원받기 위해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은 것 하나라도 잊지 않고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알아주지 않으니까 ‘우리가 언제 그런 것을 하지 아니하더이까?’, ‘내가 한 것을 왜 몰라주시느냐’고 반문을 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궤’는 예수님께 한 것이고, ‘공양’은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40절에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 이니라”고 하셨지만 45절에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 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공궤’는 예수님께 하는 것이고, ‘공양’은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살펴보면 ‘공궤’보다 ‘공양’ 쪽이 더 가깝다 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늘의 성도들이 ‘공궤’를 합니까? 아니면 ‘공양’을 합니까? 어느 쪽입니까? 많은 교회들이 ‘공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많이 바치면 많은 복을 받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복 받으려고 열심히 섬깁니다. 교회도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둔다’는 말씀을 인용하여 많이 바치면 30배, 60배, 100배로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구원 받기 위해 예수를 잘 믿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와 같은 ‘공양’은 이방종교의 신앙입니다. 대표적인 종교가 불교입니다. 불교는 부처에게 바치는 것을 비롯해서 거지에게 밥 할 술 주는 것까지도 ‘공양’이라고 합니다. 절간 짖는데 기왓장 하나를 사도 자신의 이름만으로는 한이 차지 않아 온 아들 며느리 손자 이름을 기왓장에다 지워지지 않는 메직으로 크게 새겨둡니다. 불쌍한 사람 도와주면 몇 배가 돌아온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이방종교의 ‘공양’ 신앙이 교회 안에까지도 들어왔습니다. 어떤 분은 축복기도 할 때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나게 해 주십사’ 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아멘’, 좋아합니다. 이러한 것은 자기를 위해 한 것이기 때문에 ‘공궤’가 될 수 없습니다. ‘공양신앙’은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믿음으로 섬기고 바친 사람은 천국 문 앞에서 쫓겨나게 될 것입니다.
‘공궤’란 단어가 개역성경에는 세 곳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과 사도행전 6:2절에 초대교회 집사들이 공궤를 일삼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상 17:9에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사르밧 과부에게 공궤하게 하였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에게 ‘공궤’ 했습니다. 이렇게 초대교회 집사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하고 베푼 것이나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에게 음식을 대접한 것은 곧 하나님께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의인으로 오른편에 서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오른편에 선 의인들을 향하여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34)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오른 편에 의인들은 기뻐 뛰며 좋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공양했던 자들을 향하여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41)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사탄의 사자들과 함께 지옥불 속으로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 이를 갈며 슬피 울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된 믿음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리 후해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비행기 표가 있스면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행기 표가 있음에도 비행기를 타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인천공항이 개항하기 전 국제선이 김포공항에 있을 때 필립핀 민다나오라고 하는 곳에 3년을 가서 현지인들에게 집회를 인도한 일이 있었습니다. 3년째 해는 혼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마닐라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위해 항공권을 내 밀었던니 이표로는 못탄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 올 때도 이 표로 왔는데 왜 못타냐고 항의를 했지만 결국 그 비행기를 타지 못했습니다. 이미 비행기는 떠났습니다. 저는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오늘 가야 내일 주일 예배를 인도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는 사람도 없는 마닐라 공항에 완전히 국제 미아가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공양신앙 생활하면 천국 갈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 공수포가 될 것입니다. 어쩌면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서 악인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아무리 ‘나는 어려서부터 주일학교도 열심히 다녔고, 집사도 되고 장로로 교회를 잘 섬겼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는 나를 위해 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시며 무서운 심판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잘못되었다면 지금이라도 속히 고쳐서 공궤를 하라고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잘못된 믿음을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잘못된 것을 알고도 고치지 않으면 예수를 믿고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잘못된 믿음을 고쳐서 심판의 날에 오른편에 서는 의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마닐라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지 못했을 때 내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누굴 잡고 뭐라고 말도 할 수 없고, 말 한다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완전 국제 미아가 된 것입니다. 대한항공 직원을 보고 어쩌면 좋으냐고 물었더니 토요일은 필립핀 항공이 부산 가는게 있는데 그것이라도 타겠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부산 간다고 하니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필립핀 항공권을 구입할 때 그것도 자리가 없다고 할까봐 아예 특석을 달라고 했습니다. 비싼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타지 못한 대한항공 비행기 다음으로 2시간 후에 필립핀 항공 비행기를 타고 부산에 도착했을 때 대한항공을 타고 서울로 둘러 오는 것보다 집에는 먼저 왔습니다. 비행기를 타지 못해도 또 다른 비행기를 타고 더 빨리 집에 도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서도 한 번 퇴짜 맞아도 다른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더 이상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자가 오시기 전에 자신의 신앙이 잘 못되었다면 고치도록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예배드린 우리 모두에게는 한 사람이라도 천국 문 앞에서 쫓겨나는 불행한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인자가 오시는 날에 영광의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께로부터 나와 여러분을 향하여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는 말씀을 듣고 기뻐 뛰며 주의 손잡고 천국에 들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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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명의 말씀 고맙읍니다 !
감사합니다.
귀한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