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핸드백
군인들 십자가 넣고 다니던 가방, 허리에 메던 것에서 끈 달아 사용
손에 들거나 어깨에 메고 다니는 작은 가방을 일컬어 ‘핸드백’이라고 부른다. 최근의 핸드백은 단순히 실용적인 용도를 넘어 여성들의 패션용품으로서 그 가치를 더한다. 그런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핸드백은 여성의 맵시보다는 주로 남성들이, 신앙을 위해 사용한 물건이었다.
가방의 기원은 기원전 사냥도구를 담고 다니던 주머니에서 시작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핸드백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는 가방은 11세기경, 바로 십자군전쟁에서 볼 수 있다.
당시 십자군들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떠나면서 늘 몸에 십자가를 지니고 있었다. 가족이나 사제에게 받은 이 십자가는 오늘날 파우치의 형태와 유사한 ‘알모너’(Almoner)라는 가방에 담아 허리에 메고 다녔다.
십자군에게 알모너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고향의 가족을 이어주는 소중한 매개체였다. 그래서 전쟁에 복귀하면서는 전쟁에서 얻은 값진 물건을 알모너에 담아오기도 했다.
알모너는 전쟁 이후 귀족들과 일반인 사이에도 유행하게 됐다. 하지만 더 이상 십자가를 보관하지는 않았고, 주로 남자들은 금전을, 여자들은 향수나 손수건을 넣어 다니는 실용적인 장식품으로 쓰였다.
18세기경 주머니가 달린 남성복이 등장하면서 알모너는 여성의 전유물이 됐다.
19세기에는 허리에 차던 알모너를 손으로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알모너를 손으로 휴대하면서 손잡이나 끈이 달린 가방도 나타났고, 현대적인 개념의 핸드백이 생산돼 오늘날에 이른 것이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튀김
금육 위해 생선 튀겨 먹던 일본 서양선교사들서 유래
튀김은 떡볶이, 순대와 더불어 행인의 군침이 돌게 하는 대표적인 분식 중 하나다. 길거리 포장마차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튀김은 흔히 일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인지 ‘덴푸라’(天ぷら)라는 일본식 이름도 낯설지 않다.
사실 ‘덴푸라’는 라틴어 ‘콰트오르 템포라’(quatuor tempora)에서 온 말이다. 그것도 음식이름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계절’이라는 뜻이다. 해산물이나 채소를 튀긴 음식이 사계절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유는 금육을 지키던 교회문화 때문이다.
일본이 1570년대 나가사키를 시작으로 서양과 교류를 시작하자 예수회 소속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일본에서 활동했다. 선교사들은 금육을 지키기 위해 고기 대신 새우나 생선을 튀겨먹곤 했다. 당시 일본에는 기름에 튀긴 음식 자체가 드물어 선교사들이 먹는 이 튀긴 음식은 일본인 사이에서 관심사였다. 일본인들이 음식의 정체를 묻자 선교사들은 음식 설명과 더불어 ‘사계의 재(齋)’에 관해 설명했다.
사계의 재는 매 계절마다 각각 3일씩 속죄하는 마음으로 단식과 금육을 지키며 기도하던 때를 말한다. 겨울에는 대림 제3주간, 봄에는 사순 제1주간, 여름에는 성령 강림 대축일, 가을에는 십자가 현양 축일(9월 14일)을 전후로 수 · 금 · 토요일에 지켰다. 수요일은 예수의 체포됨을, 금요일은 예수의 죽음을, 토요일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 기쁨 사이의 날을 기억하는 의미다. 중세시대에는 이 날 평소보다 많이 봉헌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나눠줬으며, 죽은 이를 추모했다.
일본인들은 사계의 재를 일컫는 ‘콰트오르 템포라’의 ‘템포라’라는 말에서 튀김을 ‘덴푸라’라고 불렀다. 이후 ‘덴푸라’는 일본 상류층의 입맛을 사로잡아 고급음식으로 여겨지다 1700년대 후반부터는 길거리에서도 먹을 정도로 널리 퍼졌다.
서방교회를 중심으로 널리 지켜지던 사계의 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폐지됐다. 하지만 사계의 재의 단식이 대재(大齋)로, 금육이 소재(小齋) 형태로 남아 각국 주교회의가 정하는 특별한 때에 지켜지고 있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학위복과 학사모
가운과 모자, 성직자 복장서 유래
2월 각 대학에서는 학위수여식, 즉 졸업식이 열린다. 졸업식의 풍경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학위복과 학사모다. 검은색 계열의 긴 가운과 모자. 어쩐지 수도복을 연상하게 하는 이 복장은 실제로 교회의 성직자 복장에서 유래했다.
학위복은 현재 졸업식에서만 입는 복장이지만, 서양 중세 대학에서는 일종의 교복이었다. 중세 대학의 학생들은 대학들이 설립되기 시작한 12세기경부터 검은 색이나 갈색 계열의 길고 두꺼운 가운 형태의 옷을 입었다. 대학들이 이런 옷을 교복으로 사용한 것은 대학의 모태가 된 성당학교의 관습에서 유래한 것이다. 성당학교는 원래 성직자나 수도자를 교육하고 양성하기 위한 기관으로 후기에는 평신도들도 교리와 문법을 배우는 곳으로 변화했다. 이때 평신도 학생들도 성당학교의 학생으로서 성직자·수도자와 같은 복장으로 학교에 다녔는데, 이 습관이 대학에 이어진 것이다.
학사모도 성직자의 복장인 비레타에서 유래한다. 성당학교 졸업식에서 졸업생들은 재학생복과 쉽게 구분되도록 교복보다 긴 가운과 비레타를 착용했다. 비레타는 성직자들이 쓰던 사각 형태의 모자다. 오늘날 비레타를 착용하는 습관은 사라졌으나, 지금도 추기경 서임식에서 수여되고 있다. 학사모는 시간이 흘러 비레타와 다른 모습으로 변했지만, 비레타의 사각형 형태를 따르고 있다.
중세 이후 대학생들의 복장은 점차 간편한 형태로 변했지만, 졸업생을 위한 학위복은 대체로 당시의 형태를 유지했다. 학위복이 교회 정신과 전통을 계승하는 의미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학위 자체의 위상과 권위를 드러내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유럽의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들은 전통적으로 이어온 각 학교의 학위복을 고수했다. 유럽의 영향을 받은 미국도 1893년 프린스턴 대학 이사인 존 제임스가 만든 규칙에 따라 공통적으로 학위복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908년 최초의 현대식 고등교육기관인 제중원의 제1회 졸업식에서 처음으로 학위복과 학사모를 쓴 이래 대부분의 대학에서 사용하고 있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오리엔테이션’이란?
‘주님은 동쪽에서 오신다’는 믿음이 유래
해마다 이맘때면 대학들은 갓 입학한 신입생들을 위한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 준비로 한창이다. 오리엔테이션은 흔히 대학·회사 등에 처음 온 이들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행사를 뜻한다. 어원으로 따지면 ‘동양, 동쪽’이란 의미의 오리엔트(Orient)에서 파생한 오리엔테이션의 유래를 살펴보면 동쪽을 바라보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온 신자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동쪽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왔다. 언뜻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유다인이나 메카를 향해 기도하는 무슬림과 유사해보이지만 담긴 의미는 다르다.
그리스도인들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요한 18,36)라는 말씀대로 특정 나라나 도시를 향해 기도하지 않았다. 다만 그리스도가 재림하면 동쪽에서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사야서 등 구약에서도 나타나는 이런 생각은 “동쪽에서 친 번개가 서쪽까지 비추듯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마태 24,27)이라는 말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동쪽을 향해 기도하는 습관은 성당건축에도 영향을 줬다. 전통적으로 성당은 동서(東西)를 중심축으로 제대가 동쪽을 향하게 지었다. 신자들은 한 방향, 즉 동쪽을 향해 미사를 드리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한 것이다. 그래서 성당을 짓기 전 성당 위치를 정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성당의 방향을 정하는 작업’을 바로 오리엔테이션이라 불렀는데, 동쪽을 기준으로 방향을 잡기에 오리엔트(Orient)가 쓰였다.
일부 성당은 동쪽을 더 세밀하게 잡아 성당 주보성인 축일에 해가 뜨는 방향으로 위치를 정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성 슈테판 대성당은 착공한 해인 1137년 성 스테파노 축일에 태양이 떠오른 방향을 중심축으로 설계됐는데, 현재도 스테파노 축일이면 햇빛이 성당 내부로 쏟아진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볼링과 테니스
중세 수도원 ‘신앙증명 놀이’였던 볼링
생명을 중시하는 교회 가르침은 스포츠에도 큰 영향을 줬다. 특히 우리에게 친숙한 볼링, 테니스 등은 교회에서 유래한 스포츠다.
로마의 그리스도교 국교화가 가져온 많은 변화 중에는 스포츠 변화도 있었다. 검투사 경기를 비롯한 로마의 많은 경기는 동물만이 아니라 사람까지도 희생물로 삼았다. 그리스도교가 로마 국교가 되면서 교회는 당시 성행하던 죽음의 놀이문화를 몰아냈다. 대신 경기장에는 생명을 희생하지 않는 새로운 스포츠가 채워졌다. 또 교회에서 시작된 스포츠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교회에서 출발한 대표적인 스포츠는 볼링이다. 볼링은 사실 종교적 의미가 담긴 스포츠였다.
기원전 5000년 경 이집트 고분에서 볼링 도구와 유사한 놀이기구가 발견됐듯, 공을 굴려 물건을 쓰러뜨리는 놀이의 역사는 길다. 하지만 현대 볼링의 기원은 중세 독일의 수도자들이 하던 ‘케겔 쓰러뜨리기’다. 호신용 곤봉의 일종인 케겔(kegel)은 경기에서 악마를 상징했다. 둥근 물체를 굴려 케겔을 쓰러뜨리는 것은 신앙심을 증명하는 행위였다.
점차 흥미 위주의 놀이로 변하면서 수도원 내에서는 금지됐지만, 이 경기는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등에서 크게 유행했다. 16세기에 이르러서는 마르틴 루터가 볼링 핀을 9개로 고정한 ‘나인핀스’를 고안했고, 유럽전역에서 인기를 끌다 아메리카대륙으로 넘어가 10개의 핀을 사용하는 현재의 ‘텐핀스 볼링’이 탄생했다.
테니스는 볼링처럼 종교적 의미가 담기진 않았지만, 역시 수도원에서 시작된 스포츠다. 테니스의 원형인 쥬드폼(jeu de paume)은 중세 프랑스 수도원에서 시작된 경기로 손바닥으로 공을 치며 주고받는 실내경기였다. 12세기경 프랑스의 성직자와 귀족 사이에서 성행하던 쥬드폼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맨손에서 장갑을, 장갑에서 라켓을 사용했고, 19세기 지금과 유사한 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테니스란 용어를 사용하게 됐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서기, 주님의 해
‘새 시대 연 예수 탄생’ 뜻 담아
우리는 올해를 2015년이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웃나라나 지구 반대편 어느 나라를 가도 역시 2015년이라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여러 나라가 연대표시를 같이 한다는 것이 옛 사람들의 눈에는 신기했을지 모른다. 일본이 아직 쇼와(昭和), 헤이세이(平成) 등의 연호를 사용하듯 많은 나라들이 각자의 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서력기원, 즉 서기(西紀)의 사용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서기의 중심이 다름 아닌 ‘그리스도 탄생’이기에 그렇다. 서기에는 하느님의 아들 우리 주 그리스도가 사람이 돼 오신 것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교회의 생각이 담겨있다. 그래서 기원전은 ‘그리스도 이전’이란 의미의 영어 약자 B.C.(Before Christ)를 사용하고 기원후는 라틴어로 A.D.(Anno Domini)라고 표기하며 ‘주님의 해’라고 고백한다.
서기는 6세기 요한 1세 교황이 디오니시오 엑시구스라는 수도자에게 만들게 한 달력에서 유래한다. 이후 학자들의 연구로 그리스도의 탄생은 그가 생각한 해보다 6~7년 더 앞선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그런 사실과는 별개로 디오니시오의 달력은 계속 됐다. 그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탄생 6~7년 전에 그리스도가 탄생했을 것이라는 아이러니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서기는 교회의 전파와 함께 널리 보급되면서 각 나라의 연대표시를 대체해나갔다. 11세기경에는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사용했고, 14세기에는 스페인, 16세기에는 그리스 문화권에서도 일반적으로 쓰였다.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서기를 사용한 것은 1962년부터지만 그보다 200여 년 앞서 서기를 사용한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에 천주교를 받아들인 신앙선조들이다. 당시 신자들은 서기를 ‘천주강생 후’라고 표현했고 새로운 시간 개념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강생을 기초로 삼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했다. 우리 신앙선조들에게 서기는 단순히 해를 표기하는 기준이 아니라 말 그대로 ‘주님의 해’였던 것이다.
[일상문화 속 교회 이야기] 아령
교회 종지기들의 연습용 종, 근력운동 도구로 인기 끌어
성탄에 울려 퍼지는 소리를 떠올린다면 빠질 수 없는 소리 중 하나가 종소리다. 성탄에 불리는 많은 캐럴들도 ‘징글벨’, ‘실버벨’, ‘탄일종’ 등의 가사로 성탄의 종소리를 묘사한다. 오늘날 이 종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지만, 아름다운 종소리를 내기 위한 노력은 아직도 우리 일상 속에 자리하고 있다. 바로 아령(啞鈴, Dumb-bell)이다.
근력 강화를 위해 사용하는 아령은 소리를 내지 못한다는 의미의 덤(Dumb)과 종을 뜻하는 벨(Bell)의 합성어다. 우리가 사용하는 아령은 이 말을 직역해 한자로 옮긴 것이다. 운동을 위한 아령과 종의 모습은 언뜻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벙어리 종’, 아령에는 종을 울리기 위한 중세 종지기들의 노고가 담겨있다.
교회의 종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의 기도시간뿐 아니라 마을의 모든 사람이 시간을 알게 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만큼 종탑의 종은 크고 무거웠다. 동양의 종은 종을 밖에서 때리는 방식으로 울리기에 비교적 적은 힘으로도 소리를 낼 수 있지만, 서양의 종은 잡아당기는 힘으로 종을 흔들어 울리기 때문에 많은 힘이 들었고 종이 울리는 횟수를 맞추기 위해서는 요령도 필요했다.
이를 위해 종지기들은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하지만 연습을 위해 함부로 종을 울렸다가는 종소리로 시간을 아는 많은 이들이 혼란을 겪게 될 일이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소리가 나지 않는 ‘벙어리 종’ 아령이었다. 첫 아령의 모습은 종탑의 종처럼 무거운 추와 그 추를 흔들기 위해 달린 도르래와 밧줄의 형태였다. 당시 일부 성당과 주교좌성당들에는 이 아령이 설치되기도 했다.
종지기들의 연습용 종이었던 아령이 근력운동의 도구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영국에서다. 종 치는 일이 근력단련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알려지자 귀족 자제들 사이에서는 아령을 집에 만드는 것이 유행했다. 시대가 흐르면서 도르래와 줄은 사라지고 추만 남았다.
현재와 같이 손잡이 양쪽에 같은 무게의 추가 달린 아령은 19세기 초반 등장했으며 20세기에 들어 보디빌더나 운동선수를 중심으로 널리 보급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