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도 착륙할 만큼의 드넓은 주차장이다, 날씨도 덟다,《삼국사기》에 따르면 330년에 축조된 우리나라의 3대 인공 저수지 중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다. 김제시 부량면에 위치하며 백제 비류왕 27년(330)에 둑의 길이 1800보 규모로 축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 2년(1420)에 홍수로 무너진 것을 일제강점기인 1925년에 동진 수리조합이 농지 관개용 수로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일부 훼손된 것을 1975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른다.
신라 원성왕 대에 벽골제 하류의 용추(龍湫)에 살던 수호신 백룡과 중류의 연포천(蓮浦川)에 살던 재앙신 청룡은 서로 대립하는 사이였는데, 두 용이 싸우면서 벽골제가 무너져 버렸다. 벽골제가 무너지면 농민들의 생명줄이 끊길 판이라서 조정에서 원덕랑이라는 이름난 토목 기술자를 보내 보수공사를 하도록 하는데.
김제 태수의 딸인 단야가 원덕랑에게 반했지만, 원덕랑에게는 이미 약혼녀가 있어 단야의 청을 거절했다. 그런데 큰 공사를 하기 전에는 처녀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백성들의 말을 미신으로 치부하면서 공사를 진행한 원덕랑 때문에 백성들은 둑이 완공되어도 성난 청룡에 의해 둑이 무너질 거라고 원성이 자자해졌다.
이때 원덕랑의 약혼녀가 김제로 찾아왔는데 이걸 본 김제 태수는 백성들의 원성을 잠재우고 단야를 원덕랑과 이어줄 방법으로 원덕랑의 약혼녀를 납치해 제물로 쓰려고 하는 아버지의 계략을 알게 된 단야가 스스로 벽골제에 목숨을 바쳤는데, 이 광경을 보고 청룡이 탄복하여 물러나 평온해졌다, 이후 사람들은 단야의 넋을 기리기 위해 매년 음력 9월 9일에 그녀의 영혼을 달래는 행사를 벌였는데 이것이 현재의 벽골제 쌍룡놀이다.
벽골제에는 농경문화 박물관, 단야각, 단야루를 비릇한 다양한 전통건축물과 농경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각종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김제를 배경으로 소설 아리랑을 쓴 조정래의 아리랑 문학관과 문학비 등, 그 외 지역 예술인들의 서화들도 전시되고 있다.
1999년 1회를 시작으로 매년 가을(9~10월)에는 벽골제에서 지평선 축제를 연다. 드넓은 지평선과 어우러지는 김제의 전통 벼농사 문화. 대규모 야외공연과 먹거리 장터, 줄다리기, 쥐불놀이, 연날리기, 농악, 풍년 기원 마라톤 행사 등을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