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바람, 안개와 동행하다 – 사명산 문바위봉
1. 문바위봉(1,004m) 가는 길
“폭풍을 거슬러가는 건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러운 일이어서 우리는 무의식중에 바람을 피하기 위해 계속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죠. 그런 상황에서는 저절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가 길을 잘못 든 건 바로 그 때문이었죠.”
쇼에닝은 말을 계속했다.
“바람이 너무나 거세어 가끔 자기 자신의 발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일행 중의 누군가가 주저앉아 버리거나
대열에서 떨어져나갈까 봐 걱정을 했어요. 그랬다간 다시는 그 사람을 보지 못하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콜의 평탄
한 지형에 이른 뒤부터 우리는 셰르파들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어요. 나는 그 사람들이 캠프가 어디 있는지 잘 알
고 있으리라 생각했죠. 그러다 그 사람들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되돌아오는 거예요. 그 순간 내 속 저 깊은 데서
구토증이 치밀어 올라오더군요. 그제서야 비로소 나는 우리가 곤경에 처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 존 크라카우어ㆍ김훈 옮김, 『희박한 공기 속으로 』의 ‘악몽의 사우스 콜’에서
▶ 산행일시 : 2024년 5월 1일(목), 비, 바람, 안개
▶ 산행인원 : 3명
▶ 산행코스 : 웅진리,520m봉,804m봉,문바위봉(1,004m),임도,△672.1m봉,임도,용두암,선정사,웅진리
▶ 산행거리 : 도상 10.2km
▶ 산행시간 : 6시간 38분(09 : 30 ~ 16 : 08)
▶ 갈 때 : 별내역에서 전철 타고 춘천역으로 가서, 역사 앞 길 건너 버스승강장에서 양구 가는 시외버스 타고
웅진리(웅진2터널 앞)로 감
▶ 올 때 : 웅진리(웅진2터널 앞 버스승강장)에서 양구에서 오는 시외버스 타고 춘천터미널로 가서, 남춘천역
근처에서 저녁 먹고 전철 타고 별내역으로 옴
▶ 구간별 시간
07 : 35 – 별내역
08 : 48 – 춘천역( ~ 08 : 50)
09 : 24 – 웅진리(웅진2터널 앞 버스승강장), 산행시작
10 : 40 – 520m봉
11 : 50 – 804m봉, 점심( ~ 13 : 04)
13 : 36 – 문바위봉(1,004m), ┣자 갈림길, 직진은 사명산 정상 2.5km, 오른쪽으로 감
14 : 20 – 임도
15 : 10 – 임도, 간이주차장, 용두암
15 : 22 – 선정사
16 : 00 – 웅진리, 산행종료, 휴식( ~ 16 : 50)
17 : 18 – 춘천터미널, 저녁( ~ 19 : 10)
19 : 19 – 남춘천역
20 : 34 - 별내역
2. 선정사 계곡
근로자의 날인 오늘을 공휴일로 착각하였다. 공휴일 전철시각표를 조회하고 그에 맞춰 춘천행 전철을 탔다. 공휴일
이라면 춘천역에 내려 그 앞 버스승강장에서 양구 가는 시외버스를 타기에는 8분의 여유가 있다. 그런데 평일에는
2분의 여유 밖에 없다. 그나마 전철이 연착하는 바람이 춘천터미널에서 08시 40분에 출발한 시외버스가 춘천역 앞
버스승강장에 도착(8분 정도 걸린다)함과 동시에 전철도 춘천역에 도착했다.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미리 도착한 메아리대장님이 씨알도 먹히지 않는 얘기이지만 버스기사님에게 일행이 오고 있으니 제발 1~2분만
기다렸다가 출발하면 안 되겠느냐 사정하고, 다행히 서울에서 왔다는 어르신 두 분이 춘천에서는 통용이 되지 않는
서울교통카드로 시외버스를 결제하려고 하여 시간이 약간 늘어져 통에 간신히 시외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웅진
리 경유 양구 가는 시외버스는 쾌적한 우등버스다. 웅진리 웅진2터널 앞 버스승강장에 우리 일행 셋이 내리니 버스
는 빈 차나 다름없다.
오늘 비가 내린다고 했으나 오후 2시 이후부터 5시까지라고 하니 우선은 화창한 봄날을 간다. 아프리카돼지열병
(ASF, African Swine Fever) 방지용 철조망문을 열고 구 도로에 내려서고, 소양호 바라보며 산모퉁이 길게 돌아
웅진리로 간다. 웅진리 동구 밖 대길교를 건너자마자 ASF 철조망문을 열고 들어간다. 등산로를 안내하는 방향 표지
판 따라 암벽 밑을 돌면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 낙엽이 수북하다. 앞장서서 낙엽 러셀하는 메아리대장님이 우리
보다 먼저 간 사람이 있었다고 하나, 나는 수적(獸跡)이 아닐까 한다.
지난날 우리는 이 능선은 여러 차례 올랐다. 문바위봉(1,004m)을 올라서 추곡약수 쪽으로 가기도 했고, 내쳐 사명
산 정상을 오르기도 했고, 문바위봉에서 그 동릉을 타고 선정사 쪽으로 내려 원점회귀하기도 했다. 올 때마다 이 오
르막이 점점 더 가팔라지는 것 같다. 낙엽에 코 박고 오른다. 내 거친 숨에 낙엽이 들썩거린다. 열 걸음에 아홉 걸음
은 미끄러진다. 핸드레일을 붙들고 바위슬랩 오르듯 한다. 단숨에 520m봉까지 오르기는 벅차다. 중간에 오르막이
주춤하는 틈을 타서 주력(酒力) 보충한다.
능선은 520m봉에서 오른쪽(서쪽)으로 꺾인다. 이제는 그리 심하지 않은 오르내리막이 이어진다. 철쭉 숲을 헤친다.
더러 철쭉꽃이 피었다. 진달래꽃은 졌다. 몇 번이나 그 낙화를 이제 피어나는 풀꽃으로 잘못 알고 엎드려 들여다보
곤 한다. 하기는 낙화인들 꽃이 아니랴. 꽃길을 간다. 내릴 듯 말 듯 하던 비가 그예 뿌리기 시작한다. 일기예보보다
훨씬 빠르다. 바람도 세게 인다. 비바람이 차디차다. 금방 손이 시리다.
3. 춘천 가는 전철 창밖으로 바라본 삼악산과 등선봉(오른쪽)
4. 웅진리 소양호 주변
5. 피나물
6. 804m봉 주변
7. 문바위봉 가는 길
804m봉 오른쪽 사면을 돈다. 여기는 완만하지만 바람이 비켜간다. 사면 풀숲에는 피나물과 홀아비꽃대가 작년처럼
여기저기 꽃을 피웠다. 점심을 먹으려니 능선에 오른다. 바람 비킨 공터에 자리 잡고 비닐쉘터를 친다. 비닐쉘터
안에서 비바람 소리 듣는 건 더없는 정취다. 대작하는 탁주 맛이 각별하다. 비닐쉘터를 걷기가 싫다. 다시 비바람 속
에 든다. 안개가 자욱하다. 숲속은 어둑하다. 빗물이 젖은 바지자락 타고 등산화 속에 흘러들어간다. 걸을 때는 벌컥
벌컥 소리가 난다. 손에 이어 발도 시리다.
앞서가던 메아리대장님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목청 높인 연호가 응답이 없다. 1,004m봉에서 오른쪽 능선 타고 하
산하기로 하였는데, 1,040m봉이라고 한 것을 내가 잘못 알았는가 하고 문바위봉인 1,004m봉을 대깍 넘는다. 하운
님과 나 둘이서 봉봉을 넘는다. 휴대전화가 울린다. 이런 비바람 속에서는 전화를 받기가 여간한 고역이 아니다.
메아리대장님이다. 자기는 문바위봉에서 여태 기다리고 있다며 어디냐고 묻는다. 우리가 너무 멀게 가버렸다.
0.9km나 더 갔다. 뒤돌아간다.
나더러 사명산 정상을 오르려고 그렇게 뺀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데, 안개가 자욱하여 조망이 무망이라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고 강변했다. 사실이다. 어쨌든 그새 다시 만나 반갑다. 문바위봉 동릉을 내린다. 이곳은 바람이 주릉
에 막혀 잠잠하니 비로소 살 것 같다. 안개는 아늑한 풍경을 연출한다. 걷고 있어도 걷고 싶은 산길이다. 작년 이맘
때 저기서 청노루귀를 보았다. 오늘은 작년보다 불과 4일 늦게 왔는데(올해는 봄이 늦다고 했다), 이미 졌는지 보이
지 않는다.
임도로 내려선다. 날이 맑다면 이 언덕바지가 경점인데 오늘은 안개에 지척도 가렸다. 임도 건너 Y자 능선 갈림길인
△672.1m봉에서 주등로인 오른쪽보다 하산거리가 더 짧은 왼쪽으로 간다. 인적이 흐릿하다.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
트가 시작된다. 낙엽 수북한 가파른 내리막의 연속이다. 낙엽 밑 흙이 물러 쭉쭉 미끄러진다. 가까운 길을 멀리
간다. 일부러 갈지자 크게 그리며 내려도 소용없다. 자빠지고 엎어지고 흙투성이 된다. 짧은 직벽인 임도 절개지가
피날레다.
11. 제비꽃
12. 선정사 가는 능선
15. 각시붓꽃
16. 선정사 가는 능선
임도 바리게이트 지나고 간이주차장과 정자 지나면 용두암 앞이다. 선정사 계곡 물이 많이 불었다. 포말 일으키는
계류 들여다보며 내린다. 비는 멎었다. 만화방창한 주변은 봄빛이 눈부시다. 예로부터 여러 시인들이 다투어 봄을
읊었다. 특히 당나라 여류시인 설도(薛濤, 770?~830)의 「춘망사(春望詞)」는 봄날이 애달프다.
花開不同賞 꽃 피어도 함께 즐길 수 없고
花落不同悲 꽃이 져도 함께 슬퍼 못하네
欲問相思處 묻노니, 그대 어디 계신가
花開花落時 꽃 피고 또 지는 이 시절에
攬草結同心 풀 뜯어 동심결로 매듭을 지어
將以遺知音 그대에게 보내려 마음먹는데
春愁正斷絶 그리워 타는 마음 잦아질 즈음
春鳥復哀吟 봄새가 다시 와 애타게 우네
風花日將老 바람에 꽃잎은 날로 시들고
佳期猶渺渺 꽃다운 기약은 아득만 한데
不結同心人 한마음 그대와 맺지 못하고
空結同心草 공연히 동심초만 맺고 있다네
那堪花滿枝 어쩌나 가지 가득 피어난 저 꽃
翻作兩相思 날리어 그리움으로 변하는 것을
玉箸垂朝鏡 거울 속 옥 같은 두 줄기 눈물
春風知不知 바람아 봄바람아 너는 아느냐
웅진리 동구 밖의 계류에 들러 세면탁족한다. 알탕은 추워서 엄두를 내지 못한다. 흙투성이 옷을 갈아입는다. 이만
해도 개운하다. 예년처럼 춘천터미널에 내려 남춘천역 앞 단골식당에 들른다. 여사장님은 우리를 기억하고 있다.
주문한 삼겹살에 더 얹어서 주었다. (메아리대장님이 문바위봉 부근에서 데려온) 덕순주 가득 채운 뽀얀 술잔 높이
들어 오늘도 무사한 산행을 자축한다.
20. 선정사 계곡
21. 웅진리 주변 산릉
22. 철쭉
23. 웅진리 주변 산릉
24. 사명산 동릉
26. 금낭화, 웅진리 계곡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