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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동화(童話)]
《온천천에 쌓이는 금빛 은빛 사랑》
1. 활기찬 온천천과 다섯 보물 부대
가을 햇살이 온천천 물결 위에 부서져 금빛 비늘처럼 반짝였다. 오늘 온천천 산책로는 그 어느 때보다 활기와 정겨움으로 가득했다.
바람을 가르며 씽씽 지나가는 자전거 탄 사람들, 한쪽 농구장에서 땀을 흘리며 공을 튀기는 청소년들, 그리고 매끄러운 바퀴 소리를 내며 스케이트보드를 경쾌하게 타는 아이들까지. 산책로를 걸어가는 수많은 이웃들의 웃음소리가 가을 하늘 아래 넓게 퍼져 나갔다.
그 활기찬 길 한가운데, 정가운데를 씩씩하게 걷는 아주 특별한 일행이 있었다. 바로 서울과 청주에서 놀러 온 다섯 손주와 그들을 데리고 나선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또래 할아버지들과는 사뭇 달랐다. 안경도 쓰지 않을 만큼 눈이 밝았고, 수십 년간 요가로 몸과 마음을 단련해 온 마스터답게 허리가 곧게 펴지고 걸음걸이가 씩씩하고 당당했다. 건장한 체구와 넘치는 기운 덕분에 다섯 아이를 모두 품에 안아도 든든한 바위 같았다.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부르는 다섯 손주들의 별명은 들을 때마다 정감이 넘쳤다.
가장 큰아이인 초등학교 6학년 하윤이는 다섯 손주를 든든하게 이끄는 대장이라 ‘캡틴’이라 불렀다. 4학년 둘째 시윤이는 마음이 널따랗고 넉넉해서 ‘빅맨(Big Man)’, 1학년 셋째 서우는 어린 나이에도 품격과 매너가 남달라 ‘인터내셔널 젠틀맨(국제신사)’이라 불렀다. 일곱 살 넷째 리윤이는 마음씨가 천사 같으면서도 경상도 말로 야무지다는 뜻을 담아 ‘엔젤 똑띠’, 마지막 여섯 살 막내 서아는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고 눈빛이 초롱초롱해 ‘똑순이’라는 별명을 가졌다.
‘캡틴’ 하윤이를 필두로 ‘빅맨’ 시윤이, ‘인터내셔널 젠틀맨’ 서우, ‘엔젤 똑띠’ 리윤이, 그리고 막내 ‘똑순이’ 서아까지. 다섯 보물 부대가 할아버지 주위를 새끼 오리처럼 쪼르르 둘러싸고 걸었다.
2. 체온을 나누는 다정한 등에 업혀
"할아버지! 저 좀 업어주세요! 다리 아파요."
여섯 살 막내 똑순이 서아가 슬그머니 앙증맞은 손으로 할아버지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겼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영리한 똑순이는 할아버지 사랑을 차지하는 법도 잘 알고 있었다.
"허허, 우리 똑순이 서아 당연히 안아 줘야지! 어디 보자, 헛차!"
요가 마스터 할아버지는 가볍게 몸을 낮추더니 막내 서아를 수월하게 품에 안아 올렸다. 그렇게 막내 서아를 안고 걷다가, 옆에서 졸레졸레 따라오며 천사 같은 미소로 주위를 환하게 해주는 ‘엔젤 똑띠’ 리윤이도 차례로 안아주었다. 서아와 리윤이의 말랑말랑하고 따뜻한 볼이 할아버지의 넓은 뺨에 닿았다.
얼마쯤 걷다가 할아버지는 품격 있는 인터내셔널 젠틀맨 서우, 마음 넓은 빅맨 시윤이, 그리고 어느덧 듬직해진 대장 캡틴 하윤이까지 한 명씩 차례대로 널찍한 등에 업어주었다.
"와! 할아버지 등은 진짜 따뜻하고 넓어요! 마치 커다란 바위산에 올라탄 것 같아요!"
캡틴 하윤이가 할아버지의 목을 꼭 껴안으며 깔깔 웃고, 뒤이어 빅맨 시윤이와 젠틀맨 서우도 할아버지 등에 업혀 싱글벙글 웃었다.
할아버지는 듬직한 등에 업힌 아이들의 체온을 느끼며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너희가 조금만 더 크면 이제 할아버지한테 안겨 오지도 않고, 업어 달라고 하지도 않을 거 아니냐. 한 번씩 부산에 내려올 때마다 너희가 훌쩍훌쩍 커 있는 걸 보면 대견하면서도 참 아쉽단다."
할아버지는 등에 업힌 아이들의 엉덩이를 토닥여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캡틴, 빅맨, 젠틀맨, 엔젤 똑띠, 똑순이까지. 너희가 이렇게 할아버지 품에 안기고 등에 업히는 게, 할아버지한테는 너희와 나눌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소통이고 마음의 교감이란다. 솔직히 이 할아버지는 가끔 너희가 더 이상 자라지 않고, 딱 순수하고 예쁜 요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단다."
"에이, 할아버지! 계속 안 자라면 어떻게해요?"
빅맨 시윤이와 젠틀맨 서우가 재잘거리자 할아버지가 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게 말이다. 참 웃기는 생각이지? 하지만 너희가 커가면서 세상의 세파에 물들고 때묻는 모습을 보는 게 가끔은 마음 아플 때가 있거든. 너희의 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너무 귀해서 그래. 그러니까 이렇게 함께 있는 시간이 할아버지한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 같은 시간이란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깊은 사랑이 담긴 말에 할아버지의 목을 더 꼭 껴안았다.
3. 온천천의 숨은 보물 찾기
아이들을 차례로 업어주고 다정하게 품어주며 한참을 걸어 내려가던 할아버지가 온천천 돌다리 근처에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얘들아, 저기 물 밑을 한번 자세히 보렴."
할아버지의 손가락을 따라 다섯 아이의 시선이 물속으로 쏠렸다.
"와! 할아버지! 저기 커다란 물고기가 있어요! 팔뚝보다 훨씬 커요!"
국제신사 서우가 신사답게 점잖으면서도 신이 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허허, 저건 잉어라는 물고기란다. 유유히 헤엄치는 게 아주 당당하지? 그리고 저기 잔물결을 일으키며 떼 지어 다니는 작은 물고기들 보이지? 저건 갈겨니와 피라미라는 녀석들이야."
"할아버지! 저기 돌멩이 위에 이상하게 생긴 게 있어요! 뚜껑을 쓰고 있어요!"
엔젤 똑띠 리윤이가 손가락으로 물가 햇볕이 잘 드는 납작한 바위를 가리켰다.
"오, 우리 리윤이 눈이 아주 매섭구나! 저건 햇볕을 쬐러 나온 조그마한 거북이랑 자라란다. 가을 햇살이 따뜻하니까 바위 위에 올라와서 졸고 있는 거지."
아이들은 물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생명들이 신기한지 눈을 떼지 못했다.
산책로 옆 흙길을 따라 걸어가자, 이번에는 나뭇가지마다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나무들이 아이들을 반겼다.
"어! 저거 우리가 좋아하는 감이다!"
마음 넉넉한 빅맨 시윤이가 반갑게 외쳤다.
"맞다. 노랗게 익어가는 감나무지. 그리고 그 옆에 못생겼지만 향이 아주 향긋한 열매가 달린 나무는 모과나무라고 한단다."
4. 달콤한 향기와 캡틴 하윤이의 캔버스
감나무와 모과나무를 지나 온천천 둑길을 따라 정답게 걸어가던 바로 그때였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타고, 아까의 과일 향과는 또 다른, 달콤하고도 알싸하며 은은한 향기가 온천천 산책로 가득 밀려왔다.
"어? 할아버지! 아까부터 계속 이상하게 좋고 달콤한 향기가 나요!"
캡틴 하윤이와 빅맨 시윤이가 코를 킁킁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맞아요! 꼭 엄마가 외출할 때 바르던 향수 냄새 같기도 하고, 달콤한 꿀 향기 같기도 해요!"
서우, 리윤이, 서아도 신이 나서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아이들의 손을 잡고 산책로 옆에 늘어선 나무 앞으로 걸어갔다.
"허허, 드디어 향기의 주인을 찾았구나. 저기 노르스름한 금빛 꽃은 '금목서(金木犀)', 하얗고 깨끗한 꽃은 '은목서(銀木犀)'라고 부르지. 사람의 인공 향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연의 고마운 향기란다."
다섯 아이들이 손톱만 한 금빛, 은빛 꽃잎에 감탄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는 큰손주 캡틴 하윤이의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하윤이는 어릴 때부터 블록 쌓기나 조립을 할 때 남다른 집중력과 꼼꼼함, 치밀함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아이였다. 게다가 그림 그리는 재능이 뛰어나 여러 대회에서 큰 상을 휩쓸었고, 멋진 예술중학교 진학을 꿈꾸는 자랑스러운 손주였다.
"우리 캡틴 하윤아."
"네, 할아버지!"
"너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집중력으로 뭐든 꼼꼼하게 잘 만들었고, 무엇보다 그림을 참 잘 그리잖느냐. 오늘 할아버지 손잡고 걸었던 이 온천천의 햇살과 물소리, 금목서 은목서 향기, 그리고 동생들과 나눈 이 따뜻한 풍경을 눈에 꼭꼭 담아 두려무나."
할아버지가 하윤이의 눈을 바라보며 다정하게 당부했다.
"그리고 서울 집에 올라가거든 멋진 캔버스 위에 이 가을 온천천 풍경을 한 번 펼쳐보렴. 다 그리고 나면 할아버지한테 사진 찍어서 꼭 보여다오. 우리 캡틴이 그린 그림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작품이 될 게다."
"우와! 네, 할아버지! 진짜 멋지게 그려서 꼭 사진 찍어 보내드릴게요!"
하윤이가 눈을 반짝이며 당차게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다른 손주들도 돌아보며 허허 웃었다.
"우리 빅맨 시윤이, 젠틀맨 서우, 엔젤 똑띠 리윤이, 똑순이 서아도 마찬가지란다! 너희도 오늘 할아버지와 걸었던 온천천 모습을 각자 그릴 수 있는 만큼 예쁘게 그려보렴. 그리고 엄마 아빠한테 부탁해서 할아버지한테 사진 찍어 보내달라고 해라. 너희의 그림을 기다리는 게 할아버지에게는 제일 큰 기쁨일 거란다."
"네! 저도 그릴래요! 할아버지한테 제일 먼저 보여줄 거예요!"
아이들이 저마다 손을 들며 소리쳤다.
"그러면 모두 약속한 거다, 오케이? 자, 새끼손가락 걸자."
할아버지는 아이들과 손가락을 걸며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는 너희가 그동안 한 번씩 삐뚤삐뚤한 글씨로 써 준 편지 한 장, 연필이나 색연필로 그린 엉성한 그림 한 장도 버리지 않고 다 모아놓고 있단다. 너희가 성인이 되었을 때 주려고 말이다."
"에이, 할아버지도 참!"
하윤이가 신기하다는 듯이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인석들아, 거짓말인 줄 아느냐? 너희 엄마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의 그림 및 통지표 등도 모두 보관하고 있단다. 언젠가 선물로 주려고."
"와~ 진짜예요, 할아버지?"
시윤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그래, 시윤아. 심지어 너희 엄마가 초등학교 때 사용하던 앉은뱅이책상까지 보관하고 있지. 부서진 다리도 고쳐서 말이다. 그 책상 위에는 너희 엄마가 낙서해 놓은 글도 있단다. <나는 부람 공주다> 같은 글들 말이다."
"아, 꼭 보여주세요, 할아버지!"
"알았다. 통영산방에 보관하고 있으니, 산방에 오면 보여주마."
5. 달 속의 계수나무와 영원한 추억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둘러보며 다정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너희 '푸른 하늘 은하수~' 하고 시작하는 노래 알지?"
"네! 반달 노래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맞죠?"
하윤이, 시윤이, 서우, 리윤이, 서아까지 다섯 손주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신이 나서 노래를 합창했다. 할아버지가 듬직한 체구로 허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옛날 중국에서는 이 금목서와 은목서를 달 속에서 자란다는 전설 속의 계수나무로 여겼단다. 이 꽃이 피면 온 세상이 달콤한 향기로 물든다고 믿었지."
바람이 한 번 더 살랑 불어오자, 금목서의 황금빛 작은 꽃잎 몇 개가 살포시 떨어져 엔젤 똑띠 리윤이와 똑순이 서아의 머리 위에 안겼다.
"아이쿠, 금목서 꽃잎이 우리 예쁜이들 머리에 머리핀처럼 앉았네!"
아이들이 깔깔 웃으며 손가락으로 서로의 머리를 가리켰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의 머리를 따뜻하게 다듬어 주며 곧은 자세로 눈을 맞추었다.
"너희가 서울로 돌아가서 공부하다가도, 마음이 답답하거나 지칠 때 오늘 온천천에서 할아버지 품에 안기고 등에 업혀 걸었던 이 길을 떠올려 보렴. 그럼 어디선가 이 달콤한 금목서 향기와 할아버지의 체온이 바람을 타고 너희 마음속으로 찾아갈 테니까."
"진짜요? 할아버지,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요?"
최근에 학교에서 글짓기 상을 수상한 서우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국어선생님인 엄마를 닮았는지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손주라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체육선생님인 아빠를 닮아 씨름도 잘하는 씩씩한 손주이기도 하다.
"그럼! 할아버지와 너희가 오늘 나누었던 이 따뜻한 체온과 자연의 향기는 너희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거란다."
캡틴 하윤이부터 막내 똑순이 서아까지 다섯 손주들은 건강하고 멋진 할아버지의 양쪽 손과 옷자락을 꼭 잡았다. 씩씩한 할아버지의 온기와 달콤한 금목서, 은목서 향기가 온천천 가을 길을 가득 채웠다.
자전거와 스케이트보드, 농구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을 햇살 아래, 건강하고 당당한 할아버지와 다섯 아이들의 그림자가 길게 이어지며 정답게 온천천을 걸어갔다. 그 길 위로 가을의 가장 달콤하고 따뜻한 사랑이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었다.
(끝)
/문화칼럼니스트ㆍ동화작가 최진태

첫댓글
이 글은 <브런치>에 게시한 본인글인데 <출처> 명시하지 않고 퍼온거네요
본인글이라 법적인 제한은 없겠지만
그런 출처언급도 없이 홍보를 위해 퍼나르는 것은
일반카페 정서상 맞지 않는거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연주카페에서 두세군데에 내 연주곡을 올리는 것은
순수한 연주 활성화차원에서 <<상업적 목적>>이 아닌 음악나눔으로 인식되어 문제가 없지만
<부산문인협회 직업출간작가>로서
상업적인 홍보가 개입된 수필/칼럼 퍼나르기는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브런치 올린 글을 찾아서 잘 읽어 보았습니다
<<부산문인협회 직업출간작가>> 셨네요~~
부럽습니다~~
https://brunch.co.kr/@7e23c869b88e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