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54]
서재필(徐載弼, 1864~1951)③
서재필은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면서 영어를 배웠습니다. 그때 언더우드는 주기도문을 함께 가르쳤고, 서재필은 영어로 성경을 공부하면서 점점 신앙적으로도 성장했습니다. 서재필, 박영효, 서광범은 죽을 상황에서 겨우 살아남아 일본으로 망명을 떠났다가 세 사람 모두 스크랜튼과 언더우드 선교사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정치범이 되어있는 상태라 미국에 가는 일도 쉽지 않았으나, 언더우드 선교사, 그리고 일본에서 최초로 한글로 성경을 번역한 이수정의 주선으로 일본에서 활동하던 다른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1885년 이들은 미국을 향해 떠났고, 언더우드, 스크랜튼, 아펜젤러 선교사는 조선을 향해 떠났습니다. 서재필 일행은 5월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고, 여관 주인의 소개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유학 경험이 있었던 서광범은 뉴저지로 옮겼고, 서재필은 박영효와 함께 남아 제일장로교회 어느 장로의 도움을 받아 가구점에 들어가 전단지 돌리는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영어성경을 매일 읽으며 감사와 기도 생활을 이어갔고, 박영효는 잘 알고 지냈던 일본인을 거기서 만나 함께 일본으로 돌아갔으며, 서재필은 여러 가지 일들을 해가면서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선교사의 주선으로 미국 동부로 옮겨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1890년에는 미국 시민권도 얻었으며, 1892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미국 의학사 학위를 받아 워싱턴 DC 커버넌트 교회에서 미국 여인을 만나 결혼했고, 개업의가 되었습니다. 그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재필 때문에 부모님이 논산 관아에 잡혀가 돌아가신 자리는 이제 은진초등학교와 은진면사무소가 들어서 있습니다.
<참고 문헌>
전정희,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