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프랑스, 1869~1954
춤
Dance,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가 펼치는 춤의 세계를 여행해보자. 이 작품 <춤>은 세계 미술사에 길이 남을 아수파의 대표 화가 마티스의 또 하나의 걸작이다.
푸른 하늘과 녹색의 대지가 화면의 배경 전부인 단순화된 공간은 꼭 현실계가 아닌 것 같구나. 게다가 5명의 벌거벗은 여인들이 흥겨운 동작으로 큰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지. 이 여인들은 어떤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는 것일까? 짐작할 수 있겠니? 이 그림을 보건데, 인간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에 빠진 게 분명할 게다.
원형으로 손을 잡고 있긴 하지만, 왼쪽 여인들의 부분은 좀 원이 찌그러진 것 같구나. 아마 이들의 춤이 워낙 홍겹기 때문일 거야. 춤이 어찌나 역동적인지 왼쪽 두 여인들은 손을 놓치고 말았구나. 이 춤 속에서 여인들은 몸이 구부러지고 왜곡되는 느낌마저 주는데, 이 역시 춤의 속성을 보여주려는 거란다. 이곳은 여인들뿐만 아니라 시공간이 함께 춤에 완전히 빠져들어 무아지경인 듯하구나.
마티스 특유의 활기찬 원색과 자유로운 이 리듬감의 표현은 야수파 전형을 보여주는 거란다. 초록색, 푸른색의 전면에 다홍의 여인들 세 가지 색만으로 이렇게 감동적인 그림을 그렸다니 할아버지는 놀랍기만 하다. 마티스는 고대 그리스의 꽃병을 즐겨 감상했거든. 이 여인들의 몸과 붉은 색감은 그 병에 장식되었던 형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2차원의 그림으로 3차원의 리드미컬한 춤의 속성을 보여주다니, 이 정도라면 춤을 추지 못하는 사람마저 춤추는 느낌을 알 것 같구나. 이렇게 마티스의 춤은 세계미술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 됐지.
이건 마티스의 돋보이는 구성 때문인 것 같구나. 그의 구성을 자랑하는 기념비적 작품으로는 <춤〉 외에 <음악(The Musik》, 《강가에서 목욕하는 사람들(Bathers by a River)》도 있지.
마티스는 말년까지 끊임없는 예술적 기법의 탐구를 시도했던 덕분에 '일생 동안 열정적으로 그림을 사랑한 화가 라는 명성을 얻었지. 하지만 마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단다. "나는 균형 잡힌 순수한 그림만을 그리고 싶다. 지친 사람들에게 조용한 휴식처로 제공하는 것 같은 그림을."
마티스는 자신의 마지막 열정을 쏟아 1941~1951년 사이에 L자형의 예배당을 지었단다.
그곳이 바로 남부 프랑스 방스(Vence)에 있는 로제르(Rosarie) 예배당인데, '방스 예배당' 혹은 '마티스 예배당'이라 불린단다. 이 성당 안에는 마티스가 직접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와 13세기에 방랑하던 성 도미니크의 초상이 압권이란다. 황색(태양), 초록색(나무와 풀) 그리고 푸른색(지중해의 바다)만으로 이루어진 스테인드글라스는 어찌나 숭고하던지! 여기에 흰색 타일과 검은색 윤곽만으로 묘사한 도미니크의 모습은 마티스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단다.
https://naver.me/GaT70kMS 이중섭 춤
빨간 작업실
The Red Studio, 뉴욕, MoMA
이번엔 마티스의 화실을 찾아가 보기로 하자 마티스는 프랑스의 야수파 화가로 20세기 최고의 색채주의자였다. 그는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과 더불어 20세기 초 조형미술을 혁명적으로 변혁시킨 선
각자 중의 한 사람이다.
피카소는 대상의 형태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마티스는 찬란한 색으로 감정을 표현해 세상을 사로잡았지. 폭발하는 색채의 에너지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담는 마티스의 솜씨는 탁월했단다. 마티스에게 색은 하나의 느낌이며 하나의 표현 요소였다. 오죽하면 피카소는 "마티스의 뱃속에는 태양이 들어 있다"라고 감탄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겠니.
그림을 보자. 자신이 그린 화실은 온통 짙은 붉은색뿐이구나, 색채에 대한 화가의 뜨거운 열정인 게야 화실은 분명히 3차원 공간인데 평평한 2차원 화면으로 보이는 것은 농담의 차이가 없는 붉은색이 화면의 거의 전체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창문이 있어 쉽게 방으로 식별되기는 하는구나.
화실 안에는 접시, 꽃병, 와인잔 들이 놓여 있는 탁자, 의자, 이젠 등 가구들과 벽에는 몇점의 그림이 붙어 있으나, 이 그림의 주제는 붉은색 그 자체인 듯하다. 타는 열정과 강열한 의지 그리고 따듯한 사랑의 감정을 떠오르게 하는 붉은색이 바로 화가가 그리고자 했던 진짜 대상이었다. 어때, 이만하면 사물보다 색채의 힘에 더 매료되었던 진정한 색채 화가의 진면목을 본 듯하지 않느냐? 마티스는 1911년 뮌헨에서 전시중이던 이슬람 미술에서 얻은 영감으로 이처럼 단색이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몇 점의 작품을 남겼다.
마티스가 그림을 시작한 것은 22세 무렵이었단다. 비교적 늦게 화가의 길로 들어선 셈이
지. 처음에는 정물화나 풍경화 등 수수한 그림을 주로 그렸단다. 그러다 브르타뉴 지방을 여행한 뒤로 급격히 화풍이 바뀌었지. 생명이 없는 것들보다는 자연의 햇빛을 받고 활기 있는 대상을 담기 시작했다.
마티스는 모네, 세잔 등의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에서 큰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어. 특히 세잔에 심취하여 그의 걸작들을 직접 구입할 정도로 좋아했단다. 그러나 정작 마티스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형태와 빛의 기교를 연구했단다. 1905년 무렵에는 앙드레 드랭(Andre Derain)과 함께 남프랑스를 여행했단다. 이 여행에서 그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색과 빛의 영향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기 시작했지. 이 뜨거운 결과물들로 전시회를 개최했는데, 당시 평
론가들은 이들의 작품이 원시적인 야수를 그린 것 같다며 혹평을 했단다. 이 때문에 야수파라는 별명을 얻게 된 거야.
1907년부터는 피카소와 교우하며 작품을 교환하고, 둘 사이의 우정을 돈독히 했지. 결국에는 이 두 사람이 20세기 예술의 얼굴을 바꾸어 놓은 대가로 칭송받게 되었구나. 마티스가 쓴 붉은색의 질감이 얼마나 섬세한지, 응시하고 있으면 진중하고 따뜻한 기운이 전해오는구나. 화가라면 마티스처럼 이런 순수한 열정을 간직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푸른 누드 IV
Blue Nude IV, 파리, 퐁피두센터
가위로 그린 그림 이야기를 아느냐? 색채의 마술사 마티스가 색종이를 가위로 오려서 캔버스에 붙여서 그림을 그린 적이 있단다.
“묘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표현을 하기 위해서" 라며 눈부신 원색의 돌풍을 캔버스에 마구 불어 넣던 마티스가 말년에 붓을 잡기 힘들 정도로 몸이 쇠약해지자 붓 대신 가위를 들고 창작작업을 계속했단다. 그것도 과슈를 칠한 종이 자르기(gouached paper cutout)라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그의 말년을 빛내준 걸작들을 제작하였다.
1952년부터 제작한 4점의 '푸른 누드' 연작은 마티스가 일생을 통해 사려 깊이 연구한 형체에 대한 연구의 극치로 보인다. 즉 전통에 바탕을 둔 오랜 실험의 결과이다. 목 뒤쪽으로 뻗어 나간 팔과 상체 앞으로 구부려 세운 다리는 마티스가 그동안 회화와 조각에서 즐겨 사용하던 포즈다.
푸른색은 양감(볼륨)과 거리를 표현하는 색이라고 하며 마티스가 즐겨 사용했던 색이다. 그림의 갈라진 틈들은 몸체의 관절 접합부분을 나타내며 동시에 윤곽선을 따라 벌려진 신체의 부분들은 한데 결합시킴으로 부조(릴리프)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2차원적인 작품을 둥글게 입체감을 보여준다. 단순화된 형체는 마티스가 오래 전부터 수집해오던 아프리카 조각들의 몸체를 양식화한 것으로 보인다.
*할아버지가 꼭 보여주고 싶은 서양 명화 101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