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혹독한 추위에 된통 혼이 났다.
한적한 시골 초입에 위치한 전원주택에서의 겨울나기는 유례없었던 사상 최저 기온과
연일 기록을 경신하던 폭설과 한파를 감당하기에는 너무 매서웠다.
골짜기로 몰아치는 찬바람을 오롯이 정면으로 맞아야 하는 단독주택에서 기름보일러로 따뜻한
겨울을 지내기에 난방비가 너무 많이 들었고, 기름이 타들어갈 때 속까지 까맣게 태우며
따뜻하게 한다 해도 얿은 창틈으로 들어오는 외풍은 어쩔 수 없이 전기 히터로 보조 난방을 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집을 자주 비우는 일이 많았던 터라 외출 후
다시 실내를 태우기까지 모자 달린 기모 스펀지밥 의상으로 자주 원치 않은 귀요미가 돼야 했다.
몇 차례 몸살감기를 앓으며, 또 떨리는 손으로 기름값과 전기세 고지서를 움켜잡으며 다짐한 것이
다시 추워지기 전에 반드시 이사 가자는 것과 내년 겨울에는 꼭 따뜻한 나라에서 지내자는 것이었다.
결국 찬 바람이 불기 전에 이사를 마쳤고, 이제 경눌이 돼 따뜻한 나라에 와 있다.
한 달여간의 일정으로 떠나온 더운 나라, 지금 여자는 자연 난방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지난해 쏟아부은 난방비만큼의 예산으로 뜨거운 겨율나기를 하고 있다.
태국 남부의 어느 도시, 한여름 삼복같은 기온인 데도 이곳 계절은 겨울이다.
여기서 만난 지인은 이 더위에도 나름 겨울이라며 솜털이 보송보송한 반팔티를 입고 나왔고,
반면 추위를 피해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은 민소매 타는 기본이고, 물이 있는 곳이면 바다든,
수영장이든 주저없이 첨벙첨벙 뛰어든다.
오래전 LP판으로 들었던 노래가 흥얼거려자는 풍경이다.
'한 여름에 털장갑 장수, 한겨울에 수영복 장수~~'
김광석의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리메이크돼 더 알려졌지만 외국곡을 번안해 원 가수가 불렀던
이 노래의 제목은 '역(逆)'이다.
소녀 시절 그 심오한 은유와 역설의 아이러니는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가수의 독특한 음색과 창법,
그리고 삐딱이 같은 가사가 재미있어 자주 따라 불렀던 노래다.
역설적읜 풍자로 말도 안되는 모순된 사회를 고발하는 가사였지만 지금에 비춰 보면 그다지 엉뚱하지 만도 않다.
아직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보지 목했지만 동남아시아 곳곳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것이 세바퀴 자동타이고,
레일을 따라 달리는 네 바퀴 자전거는 관광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치료를 위해 남자처럼 마리 깎은 엄마,
여자처럼 머리 긴 남동생, 가방 없이 학교 가는 조카, 번개 소리보다도 데시벨이 약한 마누라 소리에 기절 직전인 남자와
천둥소리에 하픔하는 여자의 가족들 면면이 요즘 시대에는 그다지 특별나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역을 즐기는, 혹은 거뚜로, 떄로는 삐딱하게 살려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속도와 목표 지향의 사회에서 느리게 가려는 사람들, 혹은 거꾸로 사려는 사람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스카이캐슬에 오르려는 사람들을 추앙하기보다 반전을 거듭하며 결국에는 오르기를 포기하고
모두가 행복하게 살았더라는 조금은 통속적이고 우회 같은 드라마 엔딩에 유쾌하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逆,
거꾸로 살기의 한 모습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불안한 느낌도 밀려온다.
남들처럼 살지 않는 건 뒤처지는 것이 아닌지.
'역'으로 번안된 원곡은 밥 딜런의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이다.
가사를 그대로 번역하지 않고 멜로디만 가져온 곡이라 두 가사의 연관성은 전혀 없지만, 원곡의 제목에서 위로를 삼는다.
그래, 두 번 생각하지 말자.
모든 것이 다 괜찮으니까. 배민아 미드웨스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