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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환난의 날 13:14~20
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5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16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7 그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 이는 그날들이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0 만일 주께서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셨느니라
권능과 영광으로 오시는 인자 13:21~27
21 그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23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4 그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26 그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27 또 그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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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면, 산으로 도망해야 합니다. 그날은 환난의 날이며,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현혹하려 할 것입니다. 그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셔서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사방에서 모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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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환난의 날 13:14~20
심판주 하나님은 긍휼의 하나님이기도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에 의해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성전에 세워질 때가 환난의 시작이라고 하십니다(14절). ‘멸망의 가증한 것’은 우상 신상을 가리킵니다(단 11:31). 그날은 창조 이후 가장 큰 환난의 때가 될 것입니다(19절). 그때 지붕에서 내려오거나 필수품을 가지러 집으로 가지 말고 속히 대피해야 합니다. 임신과 출산은 복된 일이지만, 환난의 날에는 불행이 될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날이 겨울(우기)에 임하지 않기를 기도하라고 당부하십니다(18절). 그럼에도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위해 환난의 날을 줄여 주심으로 긍휼을 베푸십니다(20절). 이 예언은 일차적으로 주후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됨으로 실현됩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이 두려운 환난의 날을 줄여 주시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장차 임할 두려운 환난 날을 대비해 나는 어떤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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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과 영광으로 오시는 인자 13:21~27
예수님은 재림 때에 나타날 징조를 말씀하십니다. 그때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이 표적(이적)을 행사해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현혹하는 ‘영적 혼란’이 있을 것입니다(21~22절). 마지막 때에 사탄은 거짓 그리스도에게 권세를 주어 신처럼 경배를 받게 할 것입니다(살후 2:9~10). 또한 그때는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고 떨어지는 ‘우주적 재난’이 일어날 것입니다(24~25절). 구약성경은 이날을 ‘어둠의 날’로 묘사합니다(암 5:20). 그때 사람들은 인자가 권능과 영광으로 임하시는 것을 목격할 것이며, 인자는 천사를 보내어 택함받은 자들을 모으실 것입니다(26~27절). 그날은 신자에게는 구원의 날이지만 불신자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인자가 권능과 영광으로 재림하시는 때 나타나는 징조는 어떤 것들인가요?
재림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은 환난 때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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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종말론
인류 역사를 통틀어 보면, 한편의 사람들은 지구의 종말을 믿고, 또 한편의 사람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인간 모두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지상 낙원’을 언젠가 이 땅 위에 세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사상을 가진 이단 종교도 나왔습니다. 대표적 예가 한동안 ‘왕국회관’이라는 집회 장소를 곳곳에 세웠던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최근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신천지’ 역시 비슷한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이단에 속한 이들에게는 치명적인 오류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끝이 있다는 진리를 간과합니다. 이생의 끝인 죽음이 분명히 있듯, 이 세상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 끝에 이르면 모두 사라지거나 무의미하게 또는 무가치하게 변합니다. 아무리 과학 기술을 총동원해도 이 세상의 허무함 자체를 근본적으로 없앨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 세상을 끝내시는 것은 파괴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만드신 온 세상 만물의 회복을 위해 이 세상의 허무함을 끝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통해 이 세상을 끝내실지 모르지만, 그 종말은 우리를 이 세상의 허무함에서 건져 내시는 하나님의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의 종말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건강한 그리스도인은 사이비 시한부 종말론자의 헛된 약속이나 그들이 심어 주는 공포감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경건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립니다.
하나님께 길을 묻다 / 김학중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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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마가복음 13장 22~23절
신앙은 말씀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미리 말하였노라'라는 말은 '미리 보여주었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분 백성이 분별할 수 있도록 장차 있을 일에 관해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보여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기록된 '성경'을 통해 미리 보여 주십니다. 성경을 가까이하고 묵상하는 성도는 죄에 넘어지지 않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 수 있습니다.
구원을 확신하는 이는 환난의 한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굳게 서 있는 기개가 있다. - 짐 와일더
오늘의 기도
다시 오실 주님, 큰 영광과 권능으로 오실 그날에 제가 기쁨으로 서도록 택함받은 자답게 살기 원합니다. 거짓과 이적에 현혹되지 말고 오직 진리의 말씀 위에 견고히 서게 하소서.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지혜로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주님이 찾으시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180 하나님의 나팔 소리)
오늘 본문은 예루살렘의 멸망과 장차 인류에게 닥칠 마지막 날과 그리고 재림에 관한 3가지 주제로 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3가지 사건의 공통점은 전대미문의 환난과 핍박이 반복되어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거짓 선지자들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백성을 현혹하는 일들이 자행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환난의 날에 행할 행동, 거짓 그리스도와 선지자의 등장, 종말의 징조들, 재림하시는 예수그리스도 등입니다.
B.C. 168년 시리아의 왕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가 이집트를 공격하러 왔다가 로마의 간섭으로 실패하자 회군하던 중 눈의 가시였던 예루살렘을 안식일 날 공격합니다. 그때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상을 세우고 돼지고기를 제물로 바칩니다. 이는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으로,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이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그 예언은 불과 70년이 안 되어 현실로 나타났으니 바로 로마의 예루살렘 침공입니다.
A.D. 68년 로마의 베스파시안 장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합니다. 그러던 중 로마내부사정으로 인하여 그는 포위를 풀고 잠시 본국으로 철군합니다. 그 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 그리스도인들은 재빨리 예루살렘을 떠나 이주했지만, 성안에 있던 유대인들은 히스기야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유월절에는 최대의 인파가 모입니다. 과거 히스기야때 예루살렘을 공격했던 앗수르의 왕 산헤립은 잠시 귀국했는데 그만 본국에서 암살되어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스파시안 장군은 암살되기는커녕 로마황제가 됩니다. 그리곤 그 과업을 아들인 티투스 장군에게 위임합니다. 예루살렘은 결국 A.D. 70년 함락되는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사망은 110만명, 포로는 97,000명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한 조그만 성에 있던 이 엄청난 숫자만 보더라도 성내의 참혹함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성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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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 예수님이 가까운 미래를 보고 예언한 말씀입니다. 얼마나 급했든지 집에 들어가지도 말고, 일하기 위해 벗어놓은 겉옷도 챙기지 말고 산으로 도망가라고 합니다. 또한 얼마나 참혹했던지 임신한 여인들과 젖먹이는 어머니들에게 화가 되며, 이런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당부합니다. 이 말씀에 더 이상 토를 달아서면 안 됩니다.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로 시작된 이 일은 로마의 티투스 장군의 예루살렘 공격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어떤 특정한 장소로 가야 구원을 받는다든지, 특별히 어떤 사람을 중심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그런 해석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 예수님이 먼 미래를 보고 예언한 말씀으로, 궁극적으로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영광으로 오실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라’ 라는 재림의 예언입니다. 이 말씀에 토를 달아서도 안 됩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으며 장차 벌어질 사건이기에, 굳이 구분한다면 현재나 가까운 미래나 먼 미래로 반드시 일어날 일이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그리스도라든지, 이 세상과 태양계는 영원할 것이라는 해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시점으로 보아서 가까운 미래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짜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이 종종 이 시대에도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경고하십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 어쩜 이렇게 잘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단은 대단한 조직을 구비하고, 신자이건 비신자이건 포교하여 엄청난 속력으로 세를 확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놀라운 일들을 행한다고 참 선지자가 아니라는 가르침으로, 곧 거짓된 그들도 이적과 기적을 행한다는 암시입니다.
기적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아닙니다. 속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선택한 자들을 유혹하는 마귀의 계략입니다.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 그래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예고하신 것은 성도들을 끝까지 구원하시겠다는 의지로, 그런 뜻에서 조심하라고 한 것입니다. 알면 이길 수 있고, 분별하면 유혹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예수님이 오실 것입니다. 반드시 오십니다. ‘또 그 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 그 때에 우리는 주님 곁에 서 있을 것입니다. 그 때가 가까운 미래인지, 먼 미래인지, 별 상관이 없습니다. 그분의 택함은 변함이 없고, 그분의 말씀대로 사는 자를 잊을 리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모하는 주의 강림이 있기 전,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멸망의 가증한 것은 무엇이고 어디에 선다는 것일까요?
멸망의 가증한 것은 적그리스도의 우상이고,
그것이 성전 곧 주의 몸된 교회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보고 아는 어떤 우상이 아니라, 깨달아 아는 어떤 우상입니다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막13:14)
그렇다면 깨달아 아는 적그리스도의 우상은 뭘까요? 정욕대로 행하는 자들이 성전 곧 주의 몸된 교회의 주도적 위치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유1:18~19)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미 멸망의 가증한 것이 많이 선 것을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 곧 큰 환난이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막13:18~19)
이 날은 사모할 날은 아닙니다
"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암5:18)
큰 슬픔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욜1:15)
그러나 주께서 우리를 위해 그 날을 감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막13:20)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움 없이 오직 담대하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 심판의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구원의 하나님이 되시고,
환난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평안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이 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사45:7)
그래서 잠시뿐인 그 환난만 견디면 우리를 사방에서 모으실 것입니다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막13:24~27)
그리고 공중에서 주를 뵙게 하실 것입니다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7)
계시록에는 ‘자칭 사도라 하는 사람(계 2:2)’,
‘스스로 예언자라고 하는 이세벨(계 2:20)’,
‘니골라당의 교훈(계 2:6)’,
‘발람의 교훈(2:14)’은 마지막 때에 택함 받은 자들을 끊임없이 유혹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고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들은 지금까지 쉬지 않고 반복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에 기록된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이사야 13:10)’와 같은 예언을 인용하시며
그 심판의 때가 얼마나 엄중한지를 알려주며
그 환난의 때에 ‘정신을 빠짝 차리라’고 반복하여 강조하시며
그런 징조 이후에 예수께서는 권능과 영광 가운데 구름을 타고 오고
택함 받은 자들을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모으는 장엄한 사건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그러한 크신 권능으로 오실 분이지만
성육신하여 오신 이 땅에서는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는
수치와 고통을 끝까지 감당하셨습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고 택한 자들을 모으시는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함으로 엎드리며 주신 사명 감당하는 주님의 제자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4-20절 택하신 자들을 위해 고통의 날을 감하십니다. 주님은 창조 이래 볼 수 없었던 가장 큰 재앙이 닥칠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세워질 때 시작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재앙이 인간이 자초한 결과이듯이, 이 재앙도 신실하지 못한 유다와 폭력과 전쟁을 일삼던 로마제국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때에 노아의 가족을 보호하신 하나님은 마지막 때의 재앙에서도 자기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그들을 위해 환난의 날을 감하실 것입니다.
24-27절 마지막 때에 예수님의 왕권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인자’(단 7:13)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인간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성경은 ‘인자 같은 이’를 하나님으로부터 나라를 받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물로 묘사합니다(단 7:13,14). 먼저 인자가 고난받고 죽임당하는 일이 있겠지만(8:31; 9:31; 10:33,45), 장차 세상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사방에서 모으는 왕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아들’로 오시는 것처럼, 그때 고난받고 멸시받던 주의 제자들도 주님과 함께 세상을 심판하는 자리에 앉게 될 것입니다(마 19:28).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1-23절 환난의 때에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외부의 핍박보다 내부의 혼란입니다. 환란을 견디며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공동체 안에 득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보더라도(살후 2:9)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그들의 교훈을 판단하고, 그들에게 어떤 희생과 섬김의 열매가 있는지 살펴보면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마 7:20).
28-37절 우리는 마지막 때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날이 점점 가까워진다는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마치 무화과나무를 보고 때를 판단하듯이, 지혜로운 자는 마지막 때가 가까움을 깨달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제자들은 세상을 섬기는 부지런한 청지기이자, 늘 깨어서 세상에 마지막 추수의 때를 알리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
마지막 때를 지혜롭게 분별하며 주님 오심을 준비하게 하소서.
마가복음 13:28~37 항상 깨어 있으라!
계속해서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성전을 바라 보시면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과 안드레에게 하신 말씀의 연속이다.
종말의 때와 징조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의 답변이다.
때와 징조를 아는 것 보다가 거짓 그리스도와 선지자에게
미혹되지 않도록 주의 해야 한다고 하셨다.
장차 예수님이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실 것이고
천사들을 보내어 택하신 자를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상방에서 모으신다고
말씀하셨다.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결론이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는니라.(32)
환란의 날에 대한 결론은 하나님만이 아시는 절대 주권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
1. 주의 하여 깨어 있으라 하신다.(33)
왜냐하면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35) 하신다.
여행간 집 주인이 언제 돌아 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3. 깨어 있으라(37) 하신다.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다 하신다.
마지막 때에 내가 해야 할 일은 첫째도 둘째도 세째도 깨어 있는 것이로구나.
그럼 어떻게 하면 깨어 있는가?
잠을 자지 말고 기다리고 있으란 말씀인가?
이런 말씀은 아닐 것이다.
그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3번이나 반복해서 강조한 말씀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불신자에게 하신 말씀도 아니요 종교 지도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아니요
지난 3년동안 동고동락한 제자들에게 감람산에서 특별하게 하신 말씀
항상 깨어 있으란 의미가 무엇인란 말인가?
매일의 순간 순간을 성실하게 살라는 말씀이다.
주의 제자로서 책임과 사명을 잘 감당하며 살라는 말씀이다.
어떻게 제자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며 매일의 순간순간을 깨어 살 수 있을까?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며 사는 것이다.
장래에 일어 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차관해서 염려하며 걱정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이 생의 마지막인 것 처럼 살라는 말씀일 꺼다.
매일의 삶이 생의 마지막인 것 처럼 열심히 분 초를 나누어 아끼며 산다면
아무리 어려운 경제 환경이라 하더라도 좋은 기회가 생기고
그러면 미래의 문들도 더 아름답게 열려 질 것이다. 아멘.
그러므로 현재 오늘의 지금 이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항상 깨어 있는 삶일 것이다.
어느날 갑자가 생각지 못한 시간에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부름을 받을 수있을 것이다.
항상 깨어 있는 자 되게 하옵소서.
세월을 아끼는 자 되게 하옵소서.
❝심판이 아닌 샬롬을 기다리는 삶❞
주님이 다시 오실 마지막 때에 닥칠 큰 환난이 샬롬의 날이 되도록 깨어 있는 삶이어야 합니다
✔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 환난 중에 임할 은혜를 기대하는 삶이어야 합니다(14~20절).
멸망의 가증한 것들이 세워져 있는 성전은 성전으로서 더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해 심판이 임합니다. 그러므로 산으로 도망하지 않으면 큰 환난을 경험하게 됩니다. ‘산’은 구약에서 전쟁 시의 피난처로 언급되었습니다. 우상 제물로 더럽혀진 성전은 이제는 더 이상 피난처도 되지 못했습니다.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17,18,19절).. 마지막 때에 임하게 될 심판이 얼마나 혹독한 시련이 될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날들을 줄여주지 않으셨다면 모든 육체가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주님이 뽑으신 선택받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줄여 주셨습니다’(20절,새번역)... 환난의 날을 감해 주신 것은 전적으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을 전부로 생각하여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이 땅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가면 심판의 때에 피할 준비를 하지 못합니다. 집에 있는 것을 챙기러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심판의 때는 긴급한 상황입니다. 환난의 경고를 무시하고 조롱했던 소돔과 고모라가 불과 유황에 멸망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명백한 경고를 무시하는 자는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오래전에 교회에서 교회 입당 기념 바자회를 준비한답시고 교회 주방이며, 주변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LPG가스를 교환하던 직원의 실수로 가스통이 넘어져 가스가 새어 나오는 아주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나는 주방으로 뛰어가 다급한 목소리로 성도들을 가급적 멀리 대피를 시켰습니다. 주방을 빠져나와 뛰어 가는데, 두 분이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분들은 주방에 자신들의 가방하고 핸드폰을 두고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랬었는지요.. 50KG가스 두 통이 폭발한 대형 사고였습니다. 감사하게도 교회 건물과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급작스럽게 임할 주님의 재림과 심판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의 힘으로 심판을 견딜 수 없기에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심판에서 건지실 주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환난 중에 피할 소망을 바라보는 삶이어야 합니다(21~27절).
마지막 때가 되면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 이적과 기사를 행하므로 택한 자들을 미혹하려 듭니다. 그래서 주님은 환난이 있기 전에 나타날 징조와 피할 방법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환난과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재난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일 뿐 마지막 징조는 아닙니다.
마지막 징조는 ‘...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는 것...’(26절)입니다. 오셔서 택하신 백성들을 땅 끝에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실 것(27절)입니다. 택한 백성들을 하나님 나라의 복에 참예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소망이 있기에 환난 중에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 일어날 놀라운 일들을 알고 있다면 소망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환난 중에도 선택함을 받은 내 자신을 구원하시기 위해 일하시는 주님을 신뢰할 때, 미혹해 오는 자들의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 앞에서 절망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내 자신이 감당할 시험을 주시며, 시험을 당할 즈음에는 또한 피할 길을 주셔서 능히 모든 시험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환난 중에 피할 길을 열어주시는 주님을 소망하며,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 환난 중에 맡은 사명을 감당하는 삶이어야 합니다(28~37절).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 종말에 있을 징조를 알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나의 말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31절,새번역)라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A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짐으로써 그 말씀이 역사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이 세상에 다시 오십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32절). 그 누구도 그때를 알 수 없으며 또한 그때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됩니다.
가끔 그 때와 그 날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100%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 깨어 있으라...’(33,35,37절).. 사무를 맡은 종들이 언제 올지 모르는 주인의 말에 순종하여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주인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게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의 때가 오지 않는다거나 아주 먼 나라의 일이라고 생각하여 영적으로 잠들어 있지 말고, 항상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깨어 있음의 모습은 내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흔들림 없이 잘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맡기신 사명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이 땅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 때와 그 날을 알려고 하는 일에 삶의 에너지를 쏟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실함과 진실함과 의로움을 가지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에 온 힘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겠습니다. 환난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사명을 잘 감당하여, 주님이 오시는 그날 통곡이 있는 심판의 날이 아니라 진정한 샬롬을 이루는 복된 날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 중에 기다리므로 현재의 고난을 능히 이겨내는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인내로써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끝까지 나에게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막 13:14~37절)..
1.종말론적인 신앙자세(14-23절)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두 가지의 예언을 동시에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 하나는 곧 닥쳐올 예루살렘의 환란에 대한 것과 주님께서 오실 때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환란의 때가 오면 그 누구도 그것을 피할 수도 없고 그때는 그 누구도 다시 되돌릴 수 없음을 오늘 말씀하십니다. 그때에는 후회하거나 뒤돌아보고 다시 하고자 하여도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급박하게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러한 심판의 시간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사랑하시며 선택한 사람들을 위하여 날들을 줄여 주시는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20절) 그리고 마지막때에는 거짓된 메시야들이 나타나고 미혹케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에게 미혹당하지 않도록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잘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성도된 우리도 항상 깨어서 마지막때를 잘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참뜻을 바로 깨닫고 항상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하루 하루를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종말론적인 신앙 자세를 갖고 살고 있는가?
2.소망 가운데 승리하자.(24-27절)
주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에는 이 세상에 아무리 강하고 대단한 권력도 무너지고 이 세상의 가치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지는 세상이 되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 날은 참으로 견딜 수 없는 심판의 날이며 그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들 어떤 환란 속에서도 참된 믿음을 유지하며 끝까지 견딘 성도들은 그들이 어느곳에 있든지 한 사람도 빠뜨리지 않고 하나님께서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서 다 모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믿음의 경주를 하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것은 성도들에게는 큰 소망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참된 믿음을 지켜 행하고자 할 때에 오는 여러가지 어려움들과 환란들을 대할 때에 이 말씀을 의지하고 담대함으로 참고 견디며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소망 가운데 온전히 달려가고 있는가?
오늘의 말씀요약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듯, 징조가 보이면 인자가 가까이 이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일어날 것이며, 예수님 말씀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날과 그때는 아버지만 아시니 우리는 주의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하나님만 아시는 마지막 때(13:28~32)
예수님은 종말의 징조에 이어 그 시기에 관한 교훈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 정확한 때와 날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에 속한 비밀이기에 하나님만 아시고 아무도 모른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존재도 그날과 그때를 정확하게 계산하거나 알려 줄 수 없습니다. 나무의 변화를 통해
계절을 알 수 있듯, 일어나는 징조들을 잘 살펴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것이 성도가 할 일입니다.
성도에게 중요한 것은 마지막 때가 언제냐는 것이 아닙니다. 종말이 머지않아 반드시 올 것이라는
말씀을 믿고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하나님 뜻을 좇아 사는 것입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영적 긴장감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 묵상 질문: 종말의 정확한 시기는 오직 누구만 알고 있나요?
- 적용 질문: 때는 모르지만 예수님이 곧 다시 오신다는 사실은 내 삶의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깨어 있으라(13:33~37)
종말의 징조와 때에 관한 문제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에게 권한과 임무를 맡기고 떠나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주인처럼 마지막 때도
언제 임할지 모르니 깨어 있으라고 여러 번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올 때 자고 있다면,
그 종은 신실하지 못한 자로 판명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은 반드시 깨어 기다리다가 주인을
맞아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어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권세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며, 영육 간에 긴장을 늦추거나 게으르지 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성도에게 맡겨진 가장 큰 사명은 복음 전파입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주인을 기다리는 종처럼 늘 깨어서 복음 전하는 성도는 칭찬을 받습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이 마지막 때에 깨어 있으라고 거듭 강조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 적용 질문: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깨어서 주님을 기다리는 삶일까요?
오늘의 기도
오늘 제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예수님의 본을 따라 인내하며 최선을 다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고난 중에서 말씀을 꿀처럼 달게 깨달아,
그것으로 다른 이들을 세워 주며 주님을 전하는 제자 되게 하소서.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창조주와 대속주,
그리고 심판주로 오시는 주님을 날마다 기억하고
그 크신 사랑과 공의 앞에 겸손한 청지기로 다시 서길 소망합니다.
마지막 때를 바라보며
사라질 세상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영원한 나라의 소망으로
여호와의 뜻을 구하는 성령의 넘치는 기름을 부어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하늘의 창고를 열어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을 위로하시고
저 북녘땅의 믿음의 자녀들에게도 예배와 찬양의 자유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예비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