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 조형물로 꾸민 국내 유일 ‘효’ 테마공원/드넓은 잔디광장 나무벤치 파라솔 갖춰 피크닉하기 좋아/주황색 ‘양반꽃’ 능소화 활짝/몸통·가지 하나로 붙어버린 연리지도 신기
뿌리공원 나무벤치 파라솔 능소화
한옥 담장 너머로 넝쿨을 뻗어 화려한 주황빛 꽃을 피우는 능소화.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7월이면 우아한 여인처럼 사내의 마음을 훔치다 절정의 순간, 꽃잎째 툭툭 떨어져 진한 그리움만 남기고 떠나 버린다. 짧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능소화 흐드러진 뿌리공원으로 들어서자 꽃 한 송이 품지 못하던 메마른 사내 가슴도 어느새 주황색으로 물들어 버린다.
뿌리공원 입구 효도령 효낭자
만성교에서 본 유등천
◆능소화 유혹하는 뿌리공원을 아십니까
뿌리공원이라니. 나무뿌리를 테마로 만든 공원인가. 아니다. 김해 김씨, 경주 이씨, 밀양 박씨, 경주 최씨 등 나의 뿌리인 시조가 태어난 본관 조형물로 꾸민 전국의 유일한 ‘효’ 테마 공원이다. 좀 고리타분한 곳 아닐까라는 선입견은 뿌리공원 입구에서 여지없이 깨져버린다.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유등천을 따라 예쁜 잔디공원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유등천을 가로지르는 만성교 입구에는 귀여운 효도령과 효낭자 캐릭터 조형물이 밝은 미소로 여행자를 반긴다.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이 그대로 담기는 유등천엔 눈을 의심하게 만드는 풍경이 기다린다. 만성보 위에 커다란 백로 한 마리 고고하게 앉아 부리로 한가로이 낚시질하는 걸 보니 맑고 깨끗한 하천인가 보다. 실제 유등천엔 대전의 ‘깃대종’인 멸종위기야생생물 1급 법정보호종 감돌고기가 살고 있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금강과 만경강 일대에 서식하며 꺽지의 알에 자신의 알을 붙여 부화시키는 특이한 탁란 습성을 지녔다. 멸종위기동물 수달도 종종 발견된다.
뿌리공원 능소화
알록달록 ‘사랑해요’ 글자로 꾸민 꽃밭 포토존을 지나면 광활한 잔디광장이 펼쳐진다. 한낮의 태양은 뜨겁지만 나무벤치 파라솔 10여개가 놓여 여행자들이 그늘 아래서 시원하게 담소를 나누기 좋다. 맛있는 김밥 도시락으로 피크닉을 즐기는 가족, 손을 꼭 잡은 노부부, 수다 삼매경에 빠진 아주머니 등등 여행자들 얼굴엔 웃음꽃이 가득하다.
파라솔마다 진짜 꽃, 능소화도 활짝 피었다. 옛날에는 꽃에도 계급이 있었나 보다. 지금은 흔하게 볼 수 있지만 예전에는 ‘양반꽃’으로 불리며 양반집에만 심을 수 있었단다. 목본류 중 싹이 좀 늦게 나오고 우아하고 고고한 자태가 느긋한 사대부의 기품과 기개를 닮았기 때문이다. 옛날 임금이 문과에 장원급제하는 이들에게 내리던 어사화가 바로 능소화다. 이에 서민들이 능소화를 키우다 발각되면 양반을 능멸한 죄로 관아로 끌려가 곤장을 맞았다고 한다. 능소화는 등나무처럼 다른 물체를 감고 오르는 능력이 뛰어나 금등화(金藤花)로도 불렸다. 여름이면 양반댁 담장을 타고 올라 담장 밖으로 흐드러지게 꽃잎을 내밀었기에 한옥과 잘 어울리는 꽃이기도 하다.
연리지 나무
연리지 나무
궁녀 소화에 얽힌 이야기도 전해진다. 아름다운 외모로 하룻밤 임금의 성은을 입은 궁녀 소화는 그날 이후 매일 임금을 기다렸지만 오지 않았다. 결국 임금을 그리워하며 시름시름 앓다 죽었는데 담장 밑에 소화를 닮은 주황색 꽃이 피어나 지금의 능소화가 됐다. 그래서 능소화의 꽃말은 ‘여인의 기다림’ ‘그리움’이다.
잔디정원을 끝까지 가로지르면 연리지도 만난다. 신기하다. 따로 자란 두 개 나무는 땅에서 1m 높이에서 굵은 가지를 뻗어 몸통이 하나로 연결됐는데 이것도 모자랐는지 그 위에서 각각 뻗어 나간 잔가지 두 개가 또 하나로 붙어 버렸다. 마치 절대 헤어지지 말자고 굳은 약속을 하는 연인들처럼.
성씨 조형물
성씨 조각공원
◆나의 시조는 어디에 있을까
뿌리공원 둘레길도 걸어보자. 작은 동산 자산정에 오르면 뿌리공원을 감아 도는 유등천의 아름다운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져 가슴이 시원해진다. 만성교∼족보박물관∼성씨별 조각공원∼방아미다리∼충효예웰빙산책길∼장수봉∼효문화마을관리원을 지나 만성교로 돌아오는 둘레길은 2.5㎞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뿌리공원의 하이라이트는 각 문중에서 기증한 성씨 조형물. 1997년 개장 당시에는 충주 박씨와 양천 허씨 등 72개였는데 지금은 244개로 늘었다. 공원에 없는 성씨의 상세한 유래는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된다. 11만9062㎡ 규모 거대한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곳곳에 성씨 조형물이 보석처럼 숨어 있어 아이들 손 잡고 집안의 시조를 찾아 재미있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문중마다 나름대로 멋을 부린 디자인으로 꾸며 마치 멋진 예술작품들이 전시된 조각공원을 걷는 듯하다. 입구에서 자신의 성씨가 놓인 위치를 번호로 확인할 수 있다.
효심소원돌
대대로 장원급제자를 배출한 문중에서 기증했다는 효심소원돌도 만난다. 안내문엔 돌을 들어 보란다. 돌이 안 들리면 소원성취하고 돌이 들리면 운이 부족하다니 누구든 좋은 일만 이뤄지겠다. 곳곳에서 만나는 포토존의 따뜻한 문장은 이곳이 효를 주제로 꾸민 공원임을 다시 일깨운다. ‘엄마는 걱정하지 마’ ‘밥은 먹고 일해라’ ‘너희가 잘사는 게 효도야’ ‘아픈 데는 없니?’ 등 부모의 자식 사랑이 가득 담긴 문장들이 가슴 한쪽을 파고든다.
족보박물관
족보박물관도 꼭 가봐야 한다. 5개 상설 전시실엔 족보의 탄생, 역사, 제작법 등 아이들에게 흥미로운 내용이 많고 전통문화와 가족 생활사와 관련된 유물도 전시한다. 특히 최초의 가계기록인 광개토대왕릉비에서 현대 전자족보까지 시대의 흐름에 따른 족보의 변천 과정이 재미있다. 조선시대 족보문화의 정수인 왕실 족보도 왕의 계보표와 함께 자세히 담겼다. 특별전시실은 족보 분파도, 독립운동가의 성씨와 족보 등 매년 새로운 주제로 한국인의 족보와 성씨 문화를 소개한다. 오는 10월 13∼15일엔 대전효문화뿌리축제가 열린다. 어울림 한마당 판소리 공연, 우리 가족 사진 전시회, 효심뮤직페스티벌, 문중의 밥상 요리대회, 매직 버블쇼, 문중별 체험부스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행사기간 전국효문화청소년페스티벌도 열리며 8월 말까지 전국 청소년 동아리를 대상으로 그룹사운드, 음악, 댄스, 전통문화 분야 출연 신청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