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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에 계절은 완연한 가을과 겨울의 경계선에 접어 들었다. 설악산에는 벌써 첫눈이 내리고 낮과 밤의 일교차가 10도 이상 벌어지면서 뜨겁던 지난 여름의 온열 공포에서 벗어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감기에 걸리는 일이 잦아졌다.
요즘의 우리나라 날씨를 보면 마치 사우나에서 냉탕과 열탕을 오가는 기분이랄까? 어쩌면 날씨가 작금의 세태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추석 전부터 2만원 까지 치솟았던 배춧값은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고 고공행진 중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중국산 배추 1천 톤을 수입해서 물가를 안정시킨다고 하는데 폭염과 남부지방의 호우 피해로 인해 올해 김장 배추까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배춧값만 문제가 아니다. 어느 식당에서는 공깃밥 한 그릇에 2천 원을 받는다고도 하고 서민 음식의 대표 격인 짜장면도 한 그릇에 칠천 원에서 만 원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물가 불안으로 서민경제가 휘청거린 지 한참이 지났지만 좀처럼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거리 곳곳의 빌딩에는 상가, 사무실 임대 현수막을 붙여 놓은 것을 흔하게 발견하게 되고 자영업자들의 폐업 신고도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빈 상가와 임대 사무실이 늘어난다는 사실은 불경기를 대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삶이 그만큼 팍팍해져 가고 있다는 현실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나 정치권의 대처는 안이함을 넘어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마치 자신들의 일과는 무관하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돈과 권력으로 특권을 누리느라 서민들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도 피부로 느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해마다 공직자들과 선출직 공무원들의 재산신고를 볼 때마다 그들이 왜 서민들 보다는 부자와 권력을 가진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지 스스로 해답을 찾게 된다. 그럴 때마다 상대적 박탈감은 물론 삶의 의지마저 꺾이게 하는 심각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서 말로는 늘 국민을 들먹이고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것처럼 번지르르한 립서비스를 한다.
연말이 되면 각종 국가 지원 보조금 사업의 정산을 해야 한다. 예술인들이 에술활동 지원금을 받거나 사회복지 시설에서 어린이, 어르신들의 돌봄 서비스를 비롯해 보조금을 집행할 때는 영수증에 사진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첨부해야 한다. 심지어 책을 출판하면 사진 속에 책이 몇 권이고, 출판기념회를 하면 사진 속 인원이 몇 명이고, 뒤풀이 만찬에선 무엇을 먹는 지까지 따지면서 검찰의 특활비는 하루에 일억오천만 원을 쓰면서도 영수증은 커녕 증빙 서류 하나 없이 지출이 가능한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박탈감을 넘어선 누가 진짜 도둑놈인지 심각한 배신감에 빠지게 된다.
이런 현상은 비단 검찰 뿐만아니라 소위 힘 있는 공공기관의 판공비나 특수활동비 업무추진비 등의 명목으로 관행처럼 사용되고 있지만 영수증조차 첨부하지 않으면서 주로 약자들이 받는 쥐꼬리만한 생색내기용 각종 지원금이나 보조금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철저한 집행내역을 따지고 감사를 하고 책임 추궁을 한다. 과연 누가 진짜 도둑놈인가. 국민의 세금을 권력 기관일수록 멋대로 집행하고 멋대로 세금을 빼먹어도 되는 법을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자신들이 도둑질을 하니 국민들이 받는 보조금이나 지원금은 일일이 증빙을 첨부하고 일 원이라도 틀리면 다음 보조금 신청 시 감점을 주고 불이익을 주는 갑질을 일삼는 것이 아닌가?
도둑놈을 뽑아 놓고 도둑놈의 지배를 자청하는 주인은 민주 시민의 자격이 없다. 공무원(선출직 포함)은 영어로 '국민의 하인'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과연 이 땅의 공무원을 국민의 하인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있을까. 선출직 공무원들은 당선되기 전에는 하인을 자청하며 머리를 조아리다가 당선되는 순간부터 자기 위에 누가 있는 지 눈치를 살피고 그들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전전긍긍하지 않았던가? 주인이 주인 노릇을 못하고 하인이 하인 노릇을 못할 때 주인은 하인의 종이 되고 하인은 주인을 개 돼지 취급을 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세금을 꼬박꼬박 바치면서 눈뜨고 도적질을 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제 집의 곳간이 비어 자식들이 굶을 지경이 되어도 하인의 눈치를 보느라 말 한마디 못하게 되는 것이다.
대전에 있는 공기업에 다니는 사람이 서울 빵집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며 하루에 수백만 원어치 빵을 사고, 차에 기름을 넣고, 택시비로 일억오천만 원씩 쓰고, 심지어 특수활동비를 타내어 착복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나라, 뻔뻔하게 청문회에 나와서 거짓말을 밥 먹듯 해도 또 다른 기관의 공직자가 되어 주인을 지배하는 이런 나라에서 나는 지금 또 세금을 도둑질 당하고 있다. 누가 진짜 나쁜 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