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전 대전은 안개와 눈으로 가득찼었다. 그때 우연히 추동 가는 길을 발견하고 가슴 벅찼다. 이 길은 높은 산의 정상 능선을 걷는 것 같으면서도 눈을 돌려보면 남녁 다도해 바다가 한곁에 둥실 떠올라, 예로부터, 산이 물결 위에 둥실 떠오르는 부소담악이라는 곳이다. 추동가는 길은 산, 하천, 평야, 주택지, 갈대밭, 논이 구별되지 않는 무경계의 지대이다.
또 그게 섬인지, 만인지, 육지인지 구분조차 가지 않는다. 황금빛 벼가 익어가고 단풍이 질 무렵의 추동은 하늘과 물이 거울 처럼 붙어 위 아래도 구분이 가지 않는다.
추동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추소리는 고즈넉한 적요이다. 추소리에서는 누구나 외로움으로 몸을 떤다. 인적과 차가 끊어져 주변에 소리를 내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조금 광활해 보이는 추동 광경인데, 추소리는 담지 못했다. 추소리는 옥천에 가깝고, 추동 가는 길이 끊어진 한갓 진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
추동의 길은 진흙, 갈대밭, 징검돌, 나무 다리가 이어진끝없는 길이다. 오백리라고 한다. 나도 다 가보지 않았다. 걷다보면 십 여채 안되는 작은 마을들이 나온다. 첩첩산중의 두메산골 마을은 아니지만 도심지에서 그런 곳이 문득문득 나온다는 게 신기하다.
아침에 출발하여 오후 5시까지 30Km 거리를 걸어도 길은 끝이 보이지 않고 벌써 날이 저물어 간다. 그리고 시시각각 하늘의 빛은 황금색으로 물들어 간다. 가만보면 이탈리아 벽화나 그림에서 자주 나오는 색감이다.
딸 아이 또래 처녀인데 얼굴이 예쁘고 몸이 다부지다. 남자애 처럼 약간 건들건들 거리는 매력이 있다. 나와 30Km 행군하고 나서 갑자기 번데기가 먹고 싶다고 철부덩 앉아 지금 뻔데기를 먹고 있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젊은 애들이 마라톤, 산행같은 힘든 걸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에서 보기 드물게 좀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첫댓글 이강님 글을 염치없이 사진의 돌다리 만큼이나 기다렸네요.어디 아프신가 걱정했지요 사진 멎져
가보고싶어요
고맙읍니다
가보고 싶을 만큼 잼나게 쓰셨어요...추동 가는 길 ~
After your retirement, you could do this for living. Be a travel writer.
같은 길도 이렇게 묘사하면 길이 더 이뻐보이듯, 사람도 그렇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