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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와 눈을 마주치기도 싫고 말도 섞고 싶지 않아요. 이번 달에 짝이 되었는데, 짝도 바꾸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갈등이 생기면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바로 ‘손절’이죠. 심리학적 용어로는 ‘회피’라고 합니다. 갈등에 직면해 해결하는 것을 피하는 방어기제입니다. 갈등 당사자와 만나서 갈등을 직면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이죠. 아이들이 갈등을 피하려는 또 다른 이유는 갈등을 대화로 해결하는 평화로운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도덕 교과서나 여러 매체에서 갈등이 생기면 ‘대화로 해결한다’라는 것을 책으로 배워 알고 있지만 막상 상황이 도래하면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대화로 해결하는 것인지 아이들 입장에서는 묘연하기만 합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대화로 갈등을 해결하는 경험을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하는 말 속에 있는 진짜 의미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애와 눈을 마주치기도 싫고 말도 섞고 싶지 않아요. 이번 달에 짝이 되었는데, 짝도 바꾸어주셨으면 좋겠어요.”라는 표면적인 아이의 말만 듣고 수업 시간에 모둠활동이나 짝 활동에서 서로를 배제하거나 쉬는 시간에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좁은 교실에서 불가능한 일에 가깝습니다. 더러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하하호호 잘 지내는 아이들을 보고 ‘이럴걸 내가 왜 그리 애를 썼나’ 묘한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그 해를 서로 마주치지 않고 보내더라도 누군가 전학을 가지 않는 한 같은 교실에서, 복도에서, 학원에서, 동네에서, 운동장에서 반드시 마주칠 아이를 피한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사실 ‘그 아이와 눈도 마주치기 싫고 말도 섞고 싶지 않다’는 말은 아직 그 아이에 대한 감정이나 불안 혹은 불신이 남아서일 수 있습니다. 마주치기 싫을 만큼 불편하다는 의미이죠. 짝을 바꾸어달라거나 크게 벌을 주고 싶다는 말 속에도 그만큼 아이가 갈등 속에서 힘들어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럴 땐, 아이에게 물어봅니다.
“네가 그 애와 말도 하기 싫고 마주치기 싫을 정도로 이 일에 화가 나 있다는 말이지?”
아이들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마음을 되비쳐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너의 말대로 된다면, 복도나 운동장에서, 학원에서, 동네에서 앞으로 그 아이와 우연히 마주칠 일이 많을텐데 그 때, 너의 마음은 편할 것 같니?”
아이들은 십중팔구 고개를 흔듭니다.
“그럼 우리가 이 문제를 잘 해결했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게 되면 한 교실에서 함께 생활하는 너와 그 아이가 어떻게 지내는 모습을 기대하니?”
“그냥 아무 사이도 아닌 사이요.”
“너와 그 아이가 어디에서 마주쳐도 다른 아이들처럼 인사하고, 짝 활동 하고, 크게 친하지 않아도 마음에 불편함이 없는 사이가 되고 싶다는 말로 이해했는데 너의 생각은 어때?”
그제서야 아이들은 갈등을 풀어냈을 때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모습을 그려보게 됩니다. 또한 평화롭게 갈등을 풀어내는 것이 그 아이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과정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물론 함께 있던 그 아이도 상대방 아이의 말을 듣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책임지는 과정을 겪게 되겠지요.
“좋아.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선생님이 정확하게 이해했어. 이제 우리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누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대화를 시작해 보자.”
아이들이 성장한다는 것은 아이들 각자 삶에서 유효한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2차 성징을 겪으며 신체가 발달해 어른의 모습이 되면 내면도 따라 자동적으로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자라는 과정에서 성공과 실패의 경험을 통해 배우며 내면이 단단한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경험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말속에 숨어있는 속마음을 보려 노력해야 합니다. 편견 없는 마음으로 아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 속에서 아이들도 몰랐던 진짜 속마음을 이해해 아이들에게 들려준다면, 아이들도 친구를 비난하거나 공격하기를 멈추고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며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갈등이 평화롭게 해결되는 실마리가 보이겠죠. 어른은 아이의 말을 잘 듣고 세련되지 않은 아이의 말을 찰떡처럼 통역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갈등 해결의 첫 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