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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라도 친구처럼 | 나훈아의 너와 나의 고향 - Daum 카페
청산 노승렬 | 무인도 작사 서영은 작곡 오기텍 노래 고향무정 - Daum 카페
2023년 大邱師範學校本科九回同期會 여행
1. 일자: 2023년 5월 17일 당일
2. 여행지: 경기도 수원
수원화성(세계문화유산), 융건릉(隆健陵)
3. 교통수단: 고속관광버스 44인승 대절
4. 참가자(가나다 순):
가. 대구 남자:
김규호, 김기업, 김신, 김용석, 김준환,
김희철, 노연수, 류덕환, 박수웅, 배재문,
전정광. 11명
나. 대구 여자:
고애자, 구순자, 김선보, 김정미, 문연선,
윤소자, 이순란, 전정숙, 정혜용, 하국자.
10명
다. 서울 남자:
김승태, 박수규, 박윤만, 신용환, 유명덕.
5명
라. 서울 여자:
김난아, 김정숙, 박징자, 서기영, 정금생,
최선희. 6명
합계: 32명
배재문 회장님, 윤소자 사무총장님의
주선으로,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한번도 총회를 못 가졌으나,
5월 17일 남녀 동기 32명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기도 수원의 화성과
사도세자의 한이 서린
융건릉을 둘러보며
동기간의 회포를 풀고
만남의 기쁨을 만끽하였습니다.
우리 대구사범9회
동기님들이
모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정보, 자료 제공:
윤소자 수필가, 사무총장
수원화성 동장대
화성 화홍문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북수문인 화홍문
수원화성 모형
6.25 전쟁 당시 반파당한
장안문의 모습
Unesco World Heritage Site Hwaseong Fortress VR/AR (수원화성 AR/VR, 水原華城 AR/VR) - YouTube
[문화유산 코리아] 조선 최후의 신도시, 최첨단 전투요새, 수원화성 - YouTube
KBS 역사스페셜 – 수원 화성은 18세기 최첨단 전투요새였다 / KBS 20020126 방송 - YouTube
수원화성(水原華城)은
조선 정조 시기에 지은
수원시의 성곽 건축물과
이를 중심으로 한 계획도시이다.
오늘날에도 수원시의 상징이자
랜드마크로,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오늘날의 수원화성은
수차례의 자연 재해와
한국전쟁 당시 파괴된 것을
일부 복원한 것이다.
원래 유네스코에 등재되는 건축물은
원본 그대로인 건축물이어야 하나,
수원화성은 70년대에
대대적인 복원을 거쳐
이러한 규칙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수원화성을 계획하면서
그림과 글로 설계도와 내용을
철저하게 남겨 놓은
'화성성역의궤' 덕분에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인정받아
이례적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정식 명칭은
수원화성(水原華城)으로,
약칭으로 수원성(水原城),
또는 화성(華城)이라고도 부른다.
왕릉이 있는 화산 주위는
여느 지역과 다르지 않다.
부동산개발 열기에
아파트가 우후죽숙 들어서고
도로에는 분양을 부추기는
플래카드가 겨울바람에
힘차게 나부끼고 있다.
반면 화산 안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방문했던 어떤 공원보다도
잘 정비되어 있다.
왕들의 안식처에 맞게
깔끔하게 정비된 흙길에
올곧은 적송과 참나무가
분위기를 한층 북돋우어준다.
효성이 깊었던 정조는
죽어서도 그의 부친과
같은 곳에 묻혔다.
융릉은 사도세자로 알려진
장헌세자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잠들어 있는 곳이고,
건릉은 정조대왕과
그의 부인 효의 황후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이를 합쳐 융건릉(隆健陵)이라 불린다.
융건릉은 사적206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속에 갇혀 세상을 떠나자,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 아래에
묘를 조성하고
묘의 이름을 수은묘(垂恩墓)라 하였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그의 아버지를 장헌세자라고
존호를 올리고
묘를 원으로 격상하여
이름을 영우원이라 하였다.
정조는 부친의 묘인 영우원을
현재의 화산으로 다시 옮기면서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으며,
순조때는 혜경궁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현륭원에 합장하였다.
그 후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에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존되자
원을 능으로 격상하고
융릉이라 하였다.
정조는 부친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자신이 군주로 오르자 마자
억울하게 돌아가신
부친의 지위 승격과
명예 회복을 위하여
그의 재임기간 동안 힘썼다
융릉은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존되기전
무덤인데도
정조는 다른 왕릉과 진배없이 꾸몄다.
이 역시 왕릉으로써
격을 높이려는 정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정조의 능참길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소장한
'화성행행도 팔첩병풍'에
잘 나타나 있다.
한 해에도 몇 차례씩
능참길에 올랐는데,
때때로 눈물짓고 통곡하기를
그치지 못했다고 한다.
정조의 효행과
가장 관련 깊은 곳 중의 하나가
수원의 지지대 고개가 아닐까 한다.
능참길 가는 길엔
수원을 거쳐야 하는데
지지대 고개에 와서는
행차에 불평을 하였다고 한다
수원으로 들어올 때는
왜 이리 가마가 느리냐며
재촉하기도 했고,
아버지를 보고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지지대 고개에서
뒤를 몇번 돌아보았다고 한다.
한양으로 올라가면서
한번이라도 멀리서
융릉을 보고자
돌로 대를 쌓아 만든 곳이
지지대 고개라고 한다.
옛날 왕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100리 밖 출입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궁에서 화성까지는
백리가 훨씬 넘는 길인데
굳이 팔십리 길이라고 했다.
이는 부친의 묘를 방문할
명분을 찾은 것 같다.
효행이 깊은 정조가
융릉을 방문하여
억울하게 죽은 그의 부친에 대한
애절한 시가 그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사모하는 마음 다하지 못해
오늘 또 화성에 왔구나.
부슬부슬 비 내리니
배회하는 마음 둘 곳이 없어라.
여기서 사흘밤만 머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
더디고 더딘 길,
아바마마 생각하는 마음
흘러가는 구름속에 생기네'
또한 정조는
풍수지리상 명당 앞에는
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융릉에서 바라보이는 곳에다
곤신지라는 연못을 조성하였다.
이처럼 정조대왕이
그의 부친을 생각하는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융릉의 제향일은
매년 4월 둘째 토요일이고
건릉의 제향일은
5월 둘째 일요일이다.
융릉과 건릉 앞에는
정자각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이곳에는 강력한 기가 흐르고 있어
정자각 앞에서
깊은 심호흡만 하더라도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문화재안내사가 전한다.
제향일에 맞추어
다시 한번 방문하고픈 곳이다.
요즘 우리는
급격하게 무너지는 가치관의
혼동시대를 살고 있다.
너무나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가족간의 사랑과 우애,
효행을 근본으로 하던
우리의 미풍양속도
현대화와 함께 무너져 버린지
오래되었다.
더욱이 핵가족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친척은 말할 것도 없이
가족마져 멀어지고 있다.
오늘 융건릉을 둘러보면서
안타깝게 무너지고 있는
가족이란 단어를 새로 되세겨 본다.
융건릉
주소: 경기 화성시 안녕동 187-39
운영시간:
2~5월, 9~10월 09:00 ~ 18:00
6월 ~ 8월 09:00 ~ 18:30
11월 ~ 1월 09:00 ~ 17:30
전화번호: 031-222-0142
입장료: 개인 1000원
24세이하 or 65세 이상 무료
매주 마지막주 수요일 무료
주차: 무료 공영주차장
(이 있지만 주말에는 꽤 붐비므로
가능한 한 한적한 시간인
오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정조와 사도세자가 잠들어 계시는
화성 융건릉
사도세자의 융릉과 정조의 건릉을 합쳐서
융건릉이라고 부른다.
융건릉은 다른 왕릉과 마찬가지로
입구에서 왕릉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하고
두 왕릉 사이의 거리도
1㎞ 정도는 되기에
두 왕릉을 모두 보는데는
넉넉하게 한시간 정도
소요되는 듯 하다.
(입구에서 융릉까지 500m
입구에서 건릉까지 700m)
왕릉이 있는 화산 주위는
여느 지역과 다르지 않다.
부동산개발 열기에
아파트가 우후죽숙 들어서고
도로에는 분양을 부추기는
플래카드가 겨울바람에
힘차게 나부끼고 있다.
반면 화산 안은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방문했던 어떤 공원보다도
잘 정비되어 있다.
왕들의 안식처에 맞게
깔끔하게 정비된 흙길에
올곧은 적송과 참나무가
분위기를 한층 북돋우어준다.
효성이 깊었던 정조는
죽어서도 그의 부친과
같은 곳에 묻혔다.
융릉은 사도세자로 알려진
장헌세자와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잠들어 있는 곳이고,
건릉은 정조대왕과
그의 부인 효의 황후가
잠들어 있는 곳으로
이를 합쳐 융건릉(隆健陵)이라 불린다.
융건릉은 사적206호로 지정되어 있다.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속에 갇혀 세상을 떠나자,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 아래에
묘를 조성하고
묘의 이름을 수은묘(垂恩墓)라 하였다.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그의 아버지를 장헌세자라고
존호를 올리고
묘를 원으로 격상하여
이름을 영우원이라 하였다.
정조는 부친의 묘인 영우원을
현재의 화산으로 다시 옮기면서
현륭원(顯隆園)이라 하였으며,
순조때는 혜경궁 홍씨가
세상을 떠나자
현륭원에 합장하였다.
그 후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에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존되자
원을 능으로 격상하고
융릉이라 하였다.
정조는 부친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자신이 군주로 오르자 마자
억울하게 돌아가신
부친의 지위 승격과
명예 회복을 위하여
그의 재임기간 동안 힘썼다
융릉은
사도세자가 왕으로 추존되기전
무덤인데도
정조는 다른 왕릉과 진배없이 꾸몄다.
이 역시 왕릉으로써
격을 높이려는 정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정조의 능참길은
삼성 이건희 회장이 소장한
'화성행행도 팔첩병풍'에
잘 나타나 있다.
한 해에도 몇 차례씩
능참길에 올랐는데,
때때로 눈물짓고 통곡하기를
그치지 못했다고 한다.
정조의 효행과
가장 관련 깊은 곳 중의 하나가
수원의 지지대 고개가 아닐까 한다.
능참길 가는 길엔
수원을 거쳐야 하는데
지지대 고개에 와서는
행차에 불평을 하였다고 한다
수원으로 들어올 때는
왜 이리 가마가 느리냐며
재촉하기도 했고,
아버지를 보고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지지대 고개에서
뒤를 몇번 돌아보았다고 한다.
한양으로 올라가면서
한번이라도 멀리서
융릉을 보고자
돌로 대를 쌓아 만든 곳이
지지대 고개라고 한다.
옛날 왕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100리 밖 출입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궁에서 화성까지는
백리가 훨씬 넘는 길인데
굳이 팔십리 길이라고 했다.
이는 부친의 묘를 방문할
명분을 찾은 것 같다.
효행이 깊은 정조가
융릉을 방문하여
억울하게 죽은 그의 부친에 대한
애절한 시가 그의 마음을 대변해준다.
'아침이나 저녁이나
사모하는 마음 다하지 못해
오늘 또 화성에 왔구나.
부슬부슬 비 내리니
배회하는 마음 둘 곳이 없어라.
여기서 사흘밤만 머물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네.
더디고 더딘 길,
아바마마 생각하는 마음
흘러가는 구름속에 생기네'
또한 정조는
풍수지리상 명당 앞에는
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융릉에서 바라보이는 곳에다
곤신지라는 연못을 조성하였다.
이처럼 정조대왕이
그의 부친을 생각하는 흔적을
곳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융릉의 제향일은
매년 4월 둘째 토요일이고
건릉의 제향일은
5월 둘째 일요일이다.
융릉과 건릉 앞에는
정자각이라는 건물이 있는데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이곳에는 강력한 기가 흐르고 있어
정자각 앞에서
깊은 심호흡만 하더라도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문화재안내사가 전한다.
제향일에 맞추어
다시 한번 방문하고픈 곳이다.
요즘 우리는
급격하게 무너지는 가치관의
혼동시대를 살고 있다.
너무나도 안타까울 따름이다.
가족간의 사랑과 우애,
효행을 근본으로 하던
우리의 미풍양속도
현대화와 함께 무너져 버린지
오래되었다.
더욱이 핵가족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친척은 말할 것도 없이
가족마져 멀어지고 있다.
오늘 융건릉을 둘러보면서
안타깝게 무너지고 있는
가족이란 단어를 새로 되세겨 본다.
융건릉
주소: 경기 화성시 안녕동 187-39
운영시간:
2~5월, 9~10월 09:00 ~ 18:00
6월 ~ 8월 09:00 ~ 18:30
11월 ~ 1월 09:00 ~ 17:30
전화번호: 031-222-0142
입장료: 개인 1,000원
24세이하 or 65세 이상 무료
매주 마지막주 수요일 무료
주차: 무료 공영주차장
(이 있지만 주말에는 꽤 붐비므로
가능한 한 한적한 시간인
오전에 방문하는 것이 좋다)
정조와 사도세자가 잠들어 계시는
화성 융건릉
사도세자의 융릉과 정조의 건릉을 합쳐서
융건릉이라고 부른다.
융건릉은 다른 왕릉과 마찬가지로
입구에서 왕릉까지
한참을 걸어가야 하고
두 왕릉 사이의 거리도
1㎞ 정도는 되기에
두 왕릉을 모두 보는데는
넉넉하게 한시간 정도
소요되는 듯 하다.
(입구에서 융릉까지 500m
입구에서 건릉까지 700m)
1776년 아들 정조가 왕위에 오른 뒤에
사도세자의 묘를
풍수 좋은 곳인 화성으로
이장하게 되며,
‘낳아주신 은혜에
융숭하게 보답한다’라는
의미의 ‘현륭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정조는 아버지가 잠든 이곳을
12차례 찾았다고 한다.
사도세자 묘는
왕세자의 신분이었지만
대한제국 고종이
장조로 추존하여
정식 왕릉으로 격상되어
‘융릉’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 이후 사도세자의 부인인
혜경궁 홍씨도 함께 합장되었다.
왕릉을 방문하며
매번 느낀 거지만
능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몇몇 능을 제외하고는
보존을 이유로
능침 앞 출입을 금하고,
가까이 할 수 없음이 조금은 아쉽다.
타 지역,
특히 경주의 신라시대 봉분이나
백제시대 무령왕릉은
가까이서 관람이 가능한데
조선왕릉은 접근을 금지하는 게
어떤 이유에서인지 궁금하다.
다른 장릉, 영릉, 선정릉처럼
이 융건릉에도
역사문화관이 있어서
조선왕릉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다.
걷기 좋게 되어있으니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수원화성의 꽃,
놓치지 말아야 할 최고의 명소
화성행궁
주소: 경기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25
운영시간: 09:00 ~ 18:00
연중무휴(입장마감 17:30)
입장료: 성인 1,500원
청소년 및 군인 1,000원
어린이 700원
(스마트 매표소 18:00 ~ 21:00)
수원은 역사가 있는 도시라서
문화재들이 도처에 있다.
특히 이 곳은
융건릉의 주인공인
정조대왕이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수원신도시를 건설하고
수원화성성곽을 축조하면서
화성행궁을 건립하였다.
이 행궁은 조성 행궁 중
규모나 기능면에서
최고로 꼽히는데
일제 강점기의
역사 말살 정책으로
사라졌다가
1996년 복원공사 이후
2003년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 후 화성행궁을 배경으로 한
'구르미 그린 달빛',
'그해 우리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과 같은
각종 드라마와 영화 등에
나오게 되면서
최근 수도권 내
가장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수원화성 관람안내를 보면
짧게는 1시간 반 ~ 3시간 소요
코스가 있어서
주요 건축물을 다 구경하려면
3시간 코스로
팔달문 - 서장대 - 화서문 - 장안문 -
방화수류정 - 창룡문 - 봉돈 -
재래시장을 성곽길 따라
일주해보면 된다.
행궁은 왕이 지방에 거동할 때
임시로 머물던 곳으로서
576칸에 이르는 화성행궁은
조선시대 행궁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정조는 1789년부터
1800년까지
11년 간 아버지의 묘를 찾았는데
이때마다 화성행궁에 거처하며
여러 행사를 거행했다고 전해진다.
그중에는 정조가 직접 나서
신풍루 앞에서
굶주린 백성들에게
쌀과 죽을 나눠줬다는
‘진휼 행사’라는 것도 있다.
정조의 효심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조선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원대한 꿈이 담겨 있는 곳이
‘화성행궁’이다.
조선의 부흥을 꿈꾸던
정조의 혼이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에 철거되었고,
1996년
복원공사를 시작해서
2003년에 다시
수원의 품으로 돌아왔다.
화성행궁을
재미있게 둘러보는 방법은
스탬프를 찍으며
행궁을 돌아보는
‘스탬프 투어’가 있다.
남군영, 봉수당, 특중정 등에 들러
문화유산을 살펴보고
정조의 동선을 따라 걷는다.
용지는 매표소에서
500원에 판매하고 있다.
(화성행궁은 10월 말까지
야간개장을 한다.)
정조의 어진이 모셔진 운한각은
다른 곳과는 다른게
소박하게 만들어졌는데
이는 검소한 생활을 강조하던
정조의 뜻이 담겨져 있다.
화성행궁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밤에 즐길만한 야간관광
100선 안에 들어가는
유명한 명소이다.
화성행궁 야간개장 덕분에
선선한 가을밤 공기를 느끼고 왔다.
전통가옥이나
전통 건물은
조명을 받아 보는 게
훨씬 분위기도 살고
예쁜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야간개장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수원 화성행궁의 제일 메인인 곳이
봉수당인데,
이곳은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열렸던 장소로
정조의 효심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곳의 아경명소는
행궁 뒷편으로 쭉 걸어가면
정자가 지어진 언덕배기를
오를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이 정자의 이름은 미로한정이다.
미로한정은
화성행궁의 후원에 세워진
정자인데
정조 13년에
‘육면정’으로 지어졌다가
‘늙기 전에 한가로움을 얻어야
진정한 한가로움이다’라는
시를 인용하여
‘미로 한정’이라고
이름을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순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수원에 내려와서
한가하게 노년을 즐기고자 했던
정조의 뜻이 담겨있는
곳이라고 한다.
올라가면
화성행궁을 한눈에 담으며
더불어 수원 야경도 보여서
도심 옛 것과 현대적인 것의
공존의 멋을 느낄 수 있다.
1976년에 상경하여
재경대구사범9회 남자 동기회
총무를 맡아서
올리베티 타지기로 동기회 안내장을
작성하고 활성화에 힘을 쏟았다.
관광버스로
남녀 동기가 수원 융건릉을 보고,
대구 동기회에도
남녀 동기가 함께 관광버스로
내려가 참석했다.
그 시절이 우리 재경동기회의
황금기로 생각된다.
신상만 사장 스타렉스와 같이
트라제를 몰고 남자 9명
여자 8명이 대구 동기회에 참석하여
동기회 총회를 마치고
대형 노래방에서
내가 부른
오기택의 고향무정,
나훈아의 너와 나의 고향에
맞추어
남녀 동기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좌로 돌고 우로 돌며
흥겹게 놀던 그 때가
축제의 밤인 것 같다.
옮겨온 자료 편집
靑山 노승렬
첫댓글 9회 후배님들 80을 넘은 나이에 이렇게 여행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 삶입니까.
좋은 후배님들의 소식과 수원성,융건릉의 사적지를 사진과 함께 해설을 주셔 가 보지 못한곳
구경 잘 했습니다.청산 후배님 편집 솜씨에도 놀랐습니다.
9회 후배님들은 8회의 바로 밑인데 알고 있는 분이 있나 보고 또 보고 했는데 없네요.ㅎ
노년의 여행기에 덧붙여 수원행성의 역사까지 첨부하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재경동문들과도 갔었고
우리 부부도 2017에 정조대왕 능행차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지요.
아마 대사카페 여행기난에 올려져 있을 것 같습니다. 다채로운 행사였던 정조대왕 능행차 이야기를......^^
김규호(8회 김문규로 부터 소개 받아 인사 나눔경북교장출신),김기업(왜관고향),김신(쌍둥이).김준환(구미중 출신으로 교장 출신)
김희철(대구교장출신),노연수.박수웅(대구교장출신),문연선(대구서부교 같이 근무),윤소자(이정원 선생님 심부름을 많한 후배)는 아는 후배네요
9회 후배들도 역시 명문 대구사범 출신답네. 내가 재경대구사범 동문회 회장을 하면서 저조했던 모임을 활성화 하기위해
심혈을 기우렸었는데 9회가 제일 참여도가 낮았고 소극적이어서 졸업기생중에 제일 미흡한 기생으로 생각해 왔는데 오늘 소식을 보고
역시나 명문출신들이구나 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9회 주류가 대구 본거지가 되다가 보니 그랬구나 하고 이해가 됩니다. 9회 후배들 미안합니다.
대구사범 9회 동기회의 행사에 찬사를 보냅니다.짝짝짝
참석자 명단을 살펴보면 대구분들은 생소하고
서울 거주 분들의 성함은 모두 아시는 분입니다.
수원화성(水原華城)은
조선 정조 시기에 지은
수원시의 성곽 건축물과 융릉 건릉 곤신지 화성행궁 성곽....
이를 중심으로 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문화재가 정조대왕의 효성으로
이루어진 유산이라고 다시 느낍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자료들을 논문제출 서류처럼 역사적으로 상세하게
편집해서 올리신 리포트를 보며
노승렬(靑山)선배님의 실력에 또 놀랐습니다.
저는 저쪽 아래 엎드려서 많이 배워야 겠습니다.
재경대구사범 동문회 총무 정경자 정신 확실히 차려라!!!
최소한의 형식적이고 간단하게 보고하는것만도 힘들다고 했구나!
지금도 목이 아프고 어깨가 무거워운데,어지럽습니다.
올리신사진과 글을 읽는것만도 어려운데요
이렇게 작성해서 올리시기까지에 성의와 노력과 실력에 감탄합니다.
가을 행사에는 노선배님을 대면으로 인사드리기를 바랍니다.
고향무정,너와 나의 고향 부르시는 모습 보고파요.
우리 소정 정경자 대구사범동문회 총무님의 말솜씨에는 당할 자가 없습니다.
동영상 제작에 제1 인자이시고 능변가이십니다.
정말 고래도 춤을 추게 만드시는군요.
여튼 장문의 댓글을 달아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정 대선배님, 한메 성 선배님, 바람새 지기님 과찬의 댓글을
달아 주셔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여불비
靑山 노승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