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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을 준비하는 제자들 14:12~16
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5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최후의 만찬과 배반자 14:17~21
17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20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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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예수님이 제자 둘을 성안으로 보내, 예비된 다락방에서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열두 제자와 함께 잡수실 때 그들 중 한 사람이 예수님을 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인자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가지만, 그를 파는 사람은 화를 당할 것이니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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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절을 준비하는 제자들 14:12~16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관련됩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이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죽음의 재앙에서 구원받은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출 12:21~25). 양을 잡는 무교절 첫날이 되자 제자들이 유월절을 지킬 장소에 대해 예수님께 묻습니다. 예수님은 두 제자를(베드로와 요한, 눅 22:8) 성안으로 보내 ‘큰 다락방’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제자들과 함께할 마지막 유월절 만찬 장소가 예수님의 신적 능력과 다락방을 내어 준 집주인의 헌신으로 마련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지고, 제자들은 유월절 음식인 무교병과 쓴 나물과 포도주를 준비합니다. 예수님은 인류 구원을 위한 ‘유월절 어린양’이시고(고전 5:7), 그분의 십자가는 유월절의 완성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과 제자들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 장소는 어떻게 마련되었나요?
주님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실 때, 나는 무엇이든 대가 없이 드릴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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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과 배반자 14:17~21
날이 저물자 예수님은 제자들과 예비된 장소로 가십니다. “너희 중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라는 말씀에 제자들이 동요합니다(18절). 예수님은 그가 자신과 함께 같은 그릇에 손을 넣는 자라고 암시하십니다. 유대인은 대개 떡(빵)을 소스에 찍어 먹는데, 같은 그릇을 사용한다는 것은 친밀한 관계임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파는 그 사람은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깊은 연민을 표하십니다. 예수님에 대한 배신과 악행의 책임은 유다 자신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배반자임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그의 이름을 감추십니다. 이는 죄인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주님의 긍휼을 보여 줍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님이 제자 중에 자신을 팔 사람이 있다고 언급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배반자를 향한 예수님의 모습에서 내가 배우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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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애타는 기다림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것도 미리 정해진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를 나무랄 수 없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에게는 예수님이 “이 가운데 나를 팔 자가 있다.”라고 하셨을 때 돌이킬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그만두기로 결정할 수 있었고,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자신의 악한 의도를 털어놓고 용서를 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결정을 하든 기다리시지만, 하나님 백성으로서 합당하지 않은 결정을 했을 때는 그분의 성령을 통해 우리를 통제하십니다. 그럼에도 믿음의 사람들이 반복해서 성령의 통제를 무시하면, 그것은 결국 내 의지로 살겠다고 선택하는 것이며 의지적으로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이때 멱살을 잡더라도 그 길을 못 가게 하시지 왜 내버려 두시느냐고 따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셔서 자유 의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계속해서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이 기다려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 중 누구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돌이킬 기회를 주시며 우리를 기다리신 주님 덕분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조정민의 답답답2 / 조정민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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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마가복음 14장 16절
말씀에 순종하면 말씀의 성취를 경험합니다. 제자들은 주님 말씀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상황을 만나 유월절을 준비합니다. 예수님은 구속 사역의 성취가 다가올수록 '기록된 대로'라는 말씀을 강조하십니다(21절; 마 26:24). 예수님은 변하는 상황에 맞추어 행하시지 않고, 기록된 말씀대로 행하십니다. 종말의 때에는 진리로 포장한 다양한 말이 난무합니다. 성도는 마음과 시선을 오직 하나님 말씀에 고정하고 말씀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주님이 뜻하신 일에 쓰임 받기 위해서는 그분이 우리 삶에 역사하시도록 우리를 그분께 맡겨야만 한다. - 프랭크 파비아노
오늘의 기도
주님, 저의 배신과 죄악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시는 그 사랑에 감격합니다. 돌이키길 원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즉시 반응하게 하소서. 무엇을 하든지 주님께 먼저 묻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 뜻을 이루어 가는 복된 삶을 살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65 주 십자가를 지심으로)
오늘 본문은 물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 유월절 식사장소를 마련하라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시는 내용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제자 중 한 명이 주님을 배반할 것이라고 예고하시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자는 성경에 기록 된 대로 갈 것이지만, 주님을 파는 자는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게 좋을 뻔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유월절 준비, 식사 장소마련, 배신에 대한 예언, 부인하는 제자들과 지적하는 스승 등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 제자들이 예수그리스도께 유월절 식사장소를 가리켜 달라고 하는 말입니다. 유월절 만찬은 예루살렘 성 안에서 행하여야 하기 때문에 성내에 적당한 장소가 필요합니다. 유월절 만찬의 메뉴에는 구운 어린 양고기, 무교병, 포도주, 쓴 나물, 그리고 포도주에 수초, 무화과, 아몬드, 대추, 건포도, 향신료 등을 섞어 만든 일종의 크림인 차로셋 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런 음식물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런 이유들로 제자들은 주님께 만찬장소를 여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 ‘말한 대로 하면 그가 이미 자리가 다 마련된 큰 이층 방을 보여줄 터이니 거기에다 준비해 놓아라. ‘ 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는 매우 큰 방을 말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비스듬히 누워서 식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보면 주님이 제자들과 나란히 앉아서 식사를 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작품은 실제 상황과는 거리가 있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식사하는 것이 당시의 관습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말 번역에는 ‘다 앉아 먹을 때에’로 되어 있습니다. ‘다 비스듬히 누워 먹을 때에’라고 번역하면 다소 생소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영어 성경에는 ‘While they were reclining at the table eating’로 되어 있어 조금 더 원문에 근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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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 잡히시기 전 날 밤 식사자리에서 제자들을 향하여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저주보다 더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온 존재 그 자체를 부인하고 증오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분명히 그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제자들 모두에게 말씀해서 그렇죠. 하지만 그는 모르는 척 합니다. 그 때 그 말씀을 듣고 양심에 찔려 회개했다면, 즉각 그 자리에서 반응했다면? 비록 성경의 예언대로 주님은 골고다의 길을 갔을지라도, 그는 용서받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도 잃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마지막 기회를, 주님의 마지막 말씀을 놓칩니다. 의도적으로 거부하고, 스스로 외면한 까닭입니다. 그렇게 돌이킬 마음도 먹지 않은 것에 대한 이유를 성경은 밝힙니다. 누가복음에 따르면 사단이 그 마음에 들어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곧 이미 사단이 그의 주인이 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 이유로 아예 그런 생각할 엄두조차도 내지 않았으니, 그가 보기에 이미 엎질러 진 물이라는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그가 회개할 수 없던 결정적인 이유는 돈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받은 돈이 있는데 그 값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수중에 들어 있는 그 돈이 그를 꼼짝 못하게 붙잡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이 계시므로 사단이 들어 올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그 특별한 경우로, 그는 그리스도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었지만 사악한 마음을 먹습니다. 예수님보다는 사단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즉시로 그에게 들어갔으니, 이는 그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주님을 배척하고 사단을 선택하면 그렇게도 될 수 있는 샘플이 바로 그가 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용서하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증거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지만 용서받은 한 행악자입니다.
십자가에 달린 그 행악자는 마지막 순간에 돌이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룟 유다는 돌이킬 시간을 넘기고 맙니다. 끝까지 주님을 거부합니다. 물론 후회는 합니다. 스스로 뉘우쳤다는 기록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회개와 후회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후회는 후회로 그치지만, 회개는 회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용서로 이어지고 그것은 방향 전환되어 영생의 길로 갈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생명이 있는 한 돌이킬 시간이 있습니다. 가룟유다가 알아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회개는 유효하다는 것을! 주님은 그것마저도 용서하신다는 점을!
예수님의 땅에서의 마지막 유월절에 제자들은 어떻게 주께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할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여쭈었습니다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막14:12) 그러나 이 고민은 정말 쓸데 없는 고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유월절 음식이시고, 따라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유월절 음식을 먹이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즉, 참된 양식이신 예수님의 몸과 참된 음료이신 예수님의 피에 우리를 참여케 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6:55~57)
그래서 친히 다락방을 준비하시고 그렇게 원하시던 유월절 음식을 제자들에게 먹이시게 된 것을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22:15)
그러나 열둘 중의 하나 가룟 유다는 같은 그릇에 손을 넣으며 같은 떡에 참여하고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시험을 참고 끝까지 믿음을 붙잡아 반드시 주와 함께 천국의 유월절 음식에 참여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3:14)
주님은 우리 모두와 함께 천국에서 유월절 음식 잡수시기까지 지금도 드시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눅22:16)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 없어도, 약속하신 주님이 얼마나 미쁘신지 기억하고, 같은 고난을 받는 형제자매들을 격려하며 믿음과 소망을 굳게 붙들어 이제 곧 임하실 주와 함께 천국의 유월절 음식에 함께 참여하기 간절히 원합니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10:23~25)
유월절 만찬이 시작되었고 주님께서는 한 제자의 배반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셨던 것은 다른 제자들이 가룟 유다의 행동을 미리 제지할 수 없도록 한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그 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오신 그분의 목적을 이룰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일에 대해 심령이 괴로웠다고(요 13:21) 요한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제자들 모두 한 사람씩 슬픔에 빠져 자신은 아닐 것이라고 물었고 심지어 가룟 유다도 그렇게 말하였습니다(마 26:35).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에게 할 일을 속히 하라(요 13:28)고 말씀하셨고 가룟 유다는 그 빵조각을 받은 후 사탄의 유혹 가운데 사로잡혔고 (요 13:27)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요 13:30).
세상에는 악과 유혹으로 가득하며 우리는 그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울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과 성령으로 채워 그분의 전신 갑주를 입을 때 우리는 그 강력한 공격으로부터 능히 승리하고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날마다 순종으로 주님의 식탁에 머물며, 그분의 애통함과 간절한 사랑을 닮아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기쁨과 감사함으로 지고 가는 복된 자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2-16절 제자들이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주님은 자신의 몸을 영원한 양식으로 주시기 위해 준비하십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해방과 구원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백성은 유월절 양을 잡고, 그날 저녁 유월절 식사를 하며 명절을 지켰습니다. 유월절 만찬은 예루살렘 성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성내 모든 집은 만찬의 장소로 수많은 순례자들을 위해 무상으로 제공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만찬의 장소를 마련하도록 지시하십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이스라엘 백성을 죽음에서 구원한 것처럼, 예수님도 유월절 만찬 후에 곧 잡히셔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어린양이 되어 새 출애굽을 이루실 것입니다. 죽음의 길인 줄 알면서도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묵묵히 전진하시는 주님을 잠잠히 묵상해보십시오.
17,18절 자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아셨습니다. 시편의 말씀(41:9)처럼 함께 떡을 나누던 친구 중 하나가 그분을 배신할 것입니다. 유다뿐 아니라, 모든 제자가 끝까지 예수님 곁을 지키지 못하고 도망할 것이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버리실 것입니다(15:34). 주님이 가실 십자가의 길은 외롭고 힘든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십자가의 길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때로는 믿었던 이들이 외면하고 비난하는 길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앞서 이끌어주시고 동행하시는 주님이 계시니 오늘도 힘을 내어 맡은 사명을 감당합시다.
19-21절 예수님이 드러내놓고 배신에 대한 암시를 주셨음에도 가룟 유다는 내색하지 않고 끝까지 침묵하면서 만찬의 자리를 지킵니다. 아직 돌이킬 기회가 있지만, 그는 끝내 십자가의 길이 아닌, 제 탐욕을 채워줄 길을 택합니다. 예수님은 원래 정해진 하나님의 뜻대로 그 길을 가시는 것이지만, 예수님을 배신한 대가는 오롯이 유다 자신이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후 교회 역사는 제 욕망을 포기하지 못하는 수많은 가룟 유다들이 배교의 길을 걸은 역사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변함없이 예수님을 탐욕의 제물로 팔아넘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또 그들을 추종하면서 제 욕망을 채우는 종교인들의 모습 속에서 유다의 배신은 재현되고 있습니다.
기도
주님을 예배하는 공동체 안에서 주님을 배신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소서.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따르는 삶❞
- 유월절 어린양의 길을 걸으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만이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
✔ 예수님은 어떠한 길을 걸으셨습니까?
➲ 죽음의 길을 걸으셨습니다(12~16절).
무교절 첫날 곧 유월절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유월절 식사를 위한 장소를 어디로 정해야할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제자 둘을 보내면서 성내에 들어가면 어떤 집의 주인이 큰 다락방을 보여 줄 것이니 그곳에서 준비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이 징표였습니다. 당시 남자들은 가죽 부대에 물을 담고 나르고 여자들은 물동이에 물을 담아 날랐는데, 한 남자가 물동이를 지고 있었다는 것은 이례적인 행위였습니다. 아마도 사전에 유월절 식사를 위해 예수님과 그 사람 사이에 약속이 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제자들은 말씀하신 대로 유월절을 준비합니다. 예수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예수님은 친히 당신의 죽음을 철저하게 준비해 가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 자신의 몸과 피를 주시려고 십자가의 길로 나아가고 계십니다. 나와 같은 죄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예수님이십니다. 평범한 죽음이 아니라 극악무도한 죄인의 형틀인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입니다. 그런 죽음의 길을 예수님은 스스로 차질 없도록 준비해 가셨습니다. 주님이 걸으신 그 길을 따르는 나 역시도 ‘육체의 일...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갈 5:19~21)을 십자가에 못 박고, 못난 나의 자아를 죽여야 하겠습니다. 매일 매일 말씀 앞에서 내 자신을 죽이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므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걸으신 예수님의 죽음의 길을 따라가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살리는 길을 걸으셨습니다(17~20절).
저녁때가 되어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먹을 때, 깜짝 놀랄 만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이 나를 넘겨 줄 것이다...’(18절,새번역)... 예수님은 시 41:9절의 말씀을 상기케 함으로 유다의 배신을 예고하십니다. 갑작스러운 말씀에 놀라 근심에 쌓인 제자들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나는 아니지요??’(19절)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20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 기적과 이적들을 직접 목격했던 제자들이었지만 여전히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뜻과 의미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시기 위한 죽으심입니다. 한 알이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만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처럼 또한 한 마리의 어린양이 제물이 되어 드려짐으로 죄악이 사해졌던 것처럼 그렇게 예수님은 영원한 멸망이 있는 어둠의 길로 나아가고 있던 나를 대신하여 죽어주심으로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따르는 삶이란, 수고와 헌신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하여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거룩한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영혼을 죽이는 길을 걷는 삶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길을 걷는 삶이어야 하겠습니다.
➲ 순종의 길을 걸으셨습니다(21절).
‘인자는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떠나가지만, 인자를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기에게 좋았을 것이다...’(21절,새번역)...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과 예정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았을 것이라는 말씀은 그에게 미칠 화가 얼마나 크고 두려운 것인지를 짐작하게 해 줍니다.
사랑하는 제자의 배신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참혹한 죽음을 인지하고 계신 인간 예수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메시아이시고, 그리스도이신 예수는 능히 감당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어떠한 삶이 펼쳐질 것인지 알고 있음에도 순종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제자들뿐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도 철저하게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순종의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길은 화목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어떤 상황과 형편에서라도 이러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예수님이 걸으셨던 순종의 길을 따라 걷는 삶이라는 사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십자가의 은혜를 바라보며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희생과 순종의 삶을 살아갈 뿐만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당당하게 전하므로 생명을 살리는 제자도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막 14:12~21절).
말씀대로 행하자(12-17절)
무교절 첫번째날 유월절 양을 잡는 날 유월절 음식을 먹는 곳을 준비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음식을 준비할 것인가 생각하며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이들의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생각할 수도 없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아무런 말 없이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그 말씀대로 의심없이 순종하고 행할 때에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참된 순종의 좋은 영적 습관을 가지도록 늘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성도인가?
같은 그릇에 손은 넣었지만(18-21절)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될일을 아시고 마지막 유월절을 제자들과 함께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마지막으로 가룟유다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공개적으로 자신이 제자들 중 한 사람에 의해서 제사장과 장로들에게 넘겨 지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가룟유다에게 예수님께서 지금 그가 하는 모든 일을 알고 있음을 알리시면서 회개의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사단에게 빼앗긴 가룟유다의 마음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는 예수님과 마지막 식사를 하고 같은 그릇에 손을 넣기도 하였지만 같은 예수님을 품고 있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믿음의 공동체 가운데 함께 예배하고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그릇에 손을 넣고 있지만 정작 그들의 중심은 하나님과 무관한 자들이 있을 수 있음을 알고 우리가 그러한 자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나는 공동체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모든 공동체원들과 한 마음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고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마리아는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넘겨 줄려고 제사장들에게로 갔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예비된 큰 다락방을 마련해 유월절을 예비한다.
오늘 본문에는 죽음을 하루 앞둔 목요일 저녁 (유월절 하루 전 날)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 지는 장면이다.
지금도 기념하고 있는 성찬의 의식이 이 밤에 행해지고 있다.
마가의 다락방에 12제자가 다 모여서 공생애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한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18)하신다.
제자들에게도 충격적인 말씀이셨으리라.
저희가 근심하여 하나씩 하나씩 여짜오되 내니이까?(19) 라고 물어 본다.
불 같은 베드로도 이 때는 성질을 많이 죽이고 있었던것 같았다.
도데체 어떤 놈이 주님을 배반 한단 말입니까?
주님 어떤 놈입니까? 내가 당장 요절을 내 버리겠습니다.
이렇게 반응하고 묻지 않았다.
모두가 내니이까? 라고 묻는다.
다른 동료를 의심하고 남에게 네 탓이다 라고 돌리기 이전에
자기 자신을 살피는 모습이 보인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지난 3년 동안 가족들도 버리고 직업도 버리고 그물도 버리고
동고동락하며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주님을 판다고 하니
모두가 먼저 자신을 살피고 있다.
남을 비판하고 판단하기 이전에 나를 돌아보자. 아멘.
먼저 나 자신을 살피는 자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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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유월절 양 잡는 날 예수님은 제자 둘을 보내 성내 큰 다락방에 음식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말씀대로 준비한 다락방에 다 모여 먹을 때, 예수님은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 주님을 팔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제자는 차라리 나지 않는 게 좋을 뻔했다고도 하십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유월절 식사 준비(14:12~16)
예수님은 창조주시기에 모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히 조정할 수 있으십니다.
이런 모습은 유월절 식사 준비 과정을 통해 확인됩니다. 유월절에는 세계 각처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몰려오기 때문에 식사 장소를 급히 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성내에 들어가서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따라가면 유월절 식사 장소를 마련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일러 주십니다. 제자들이 말씀대로 순종하자, 그들이 함께할 큰 다락방이 마련됩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기념비적인 이별 만찬을 나누십니다.
전능하신 주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해 못 하실 일이 없습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위해 제자들에게 어떻게 할 것을 지시하셨나요?
- 적용 질문: 계산이나 확률로는 답이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말씀 따라 순종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배신을 예언하시다(14:17~21)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음모와 배신에 관한 전모를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대놓고 진노하거나 그를 질책하시기보다 그가 자발적으로 돌이키도록 기회를 주고 유도하셨습니다.
잡히시기 전날 유월절 만찬을 먹는 자리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 중 한 명이 주님을 배신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히십니다. 예수님은 그 말을 듣고 가룟 유다가 양심의 가책을 받아 마지막 순간에라도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기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유다는 깨닫지 못하고 결국 배신의 길을
가고 맙니다. 예수님은 완악하고 강퍅한 제자를 끝까지 품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기어이
예수님을 팔았고, 자신이 내린 잘못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기회를 주시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십니다. 이때 돌이키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입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은 당신을 파는 사람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 적용 질문: 내가 품고 있는,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강퍅하고 완악한 생각이나 계획은 무엇인가요?
오늘의 기도
끝까지 기다리시는 주님! 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그 자리에서 주님의 계획이 시작되고
이루어짐을 봅니다. 주님이 뜻하신 일이라면 온전한 순종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순종의 열매로서 하나님의 응답을 맛보아 경험하게 하소서.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구원받을 수 없는 우리를 향해 친히 우리의 양식이 되시고
생명의 피가 되셔서 그 온전한 사랑과 공의를 이루셨음을
더 깊이 알고 그 뜻에 따라 행하는 자녀 되길 소망합니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말씀과 성령에 머물고
주신 음성에 따라 거룩한 발걸음으로
나아가는 참 제자의 삶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놀라운 만지심을 경험하게 하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새기고 전하는
거룩한 통로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